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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작곡, 그 여자 작사?
페미니스트의 음악블로그⑤ 혼성듀오의 음악을 들으며
 
[여성주의 저널 일다] 성지혜

‘그녀’와 ‘그’가 만날 때

 
그러고 보면 예전에는 가수들 중에도 혼성 듀오가 꽤 많았어요. 자, 각자의 연령과 경험, 취향에 따라 바로 생각나는 팀들이 몇 개 있으시겠죠? 요새 “TV 음악가”들 중에서는 혼성 듀오가 그렇게 많진 않은 것 같지만, 거기서 고개를 돌려보면 국내외로 여전히 그런 팀들이 참 많습니다. 최근에는 특히 일렉트로닉적인 ‘클럽뮤직’이나 퓨전성이 강화된 ‘모던포크’, 다양한 문화에 걸쳐져 있는 일본의 ‘시부야케이’ 등에서 그들을 자주 만날 수 있죠.
 
Carpenters [As Time Goes By] 앨범자켓 2001
개인적으로는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서 “Rainy Days And Mondays”나 “Yesterday Once More”로 유명한 카펜터스(Capenters)가 떠오릅니다. 카펜터스의 경우 가족관계이긴 하지만 여하간 ‘혼성’으로 구성되어 ‘둘이서’ 음악을 한다는 것이, 두 명 이상으로 구성된 그룹이나 밴드, 혹은 솔로 아티스트와는 다른 미적 감흥을 느끼게 해줍니다.

 
(혼성)듀오의 음악들은 파트너십-멤버십과는 미묘하게 다르죠-의 영향인지, 정서적으로 상호성의 제스처가 더욱 잘 나타나는 것 같아요. 그 정서라는 건 어딘가에 집중되어 있다 해도 솔로 아티스트가 발산할 수 있는 ‘틈 없는 아우라’와는 차별되죠.
 
저는 동성 듀오보다는 혼성 듀오에 더 관심이 갑니다. 이유는 그런 팀들을 바라보는 음악 매니아들의 시선 속에 때때로 혼성 듀오의 표현 영역을 성별로 구분하려는 의지들이 보이기 때문이에요. 현실적으로도 그것은 종종 혼성 듀오 음악의 살결에서 중요한 특징의 일부를 드러내기도 하지요.

 
모든 혼성 듀오들이 ‘고착화된’ 성 역할을 보여주느냐. 물론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재밌지 않으세요? 혼성 듀오라고 하면, 남성이 ‘주로’ 작곡과 연주를 담당하고 여성은 ‘주로’ 노래(와 작사)를 담당하는 것이 보편적인 이미지로 떠오른다는 점 말이에요.

 
혼성 듀오에서 남성이 작곡을 전담할 경우, ‘여성’을 부차적인 역할로 간주하려는 시각이 있는데요. 그 근저에는 창작자와, 그것을 수행하는 자에 대한 이분법이 들어 있습니다. ‘오리지널리티’를 맹목적으로 강조하다 보면, 그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구축되어 어떤 우열을 가르기 위해 쓰이는지에 대해선 간과할 때가 많죠. 게다가 이것은 공동작업에 의해 하나의 예술작품이 만들어지는 복잡한 과정-섬세한 체험들이 뒤섞이고 결정되는-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사고이고요.
 
그런데 사람들은 혼성 듀오와 남성 듀오를 조금은 다른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 같아요. 예컨대 남성 듀오에서 한 남성이 표면적으로 보컬 역할만을 수행한다고 해서, 그를 작곡자의 도구적인 영역으로만 보진 않거든요. (물론 개별 밴드에서 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남성은 있겠고, 그럴 경우 그 사람은 기능적인 위치로써 각인될 수 있겠죠.)
 
남성작곡자와 여성가수의 관계에 유달리 투사되는 이와 같은 사회적 고정관념들은, 여러 가지로 성적인 역할분담의 차원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각 성별이 역사적으로 부여 받아 온 표현수단의 사회적 차이를 쉽게 진리화하는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하죠.

 
‘그’의 음악 속에서 ‘그녀’는…?

 
▲ 싸지타(Sagitta) 1집 [Hello World] 앨범자켓 2005
‘새로운’ 남성예술가들이 이전 시대의 ‘남성적인’ 음악, 가령 공격적인 카리스마나 엘리트주의적 치밀함을 넘어서는 대안 중 하나로 ‘여성화 된’ 표현스타일을 추구하면서 여성뮤지션들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는 점은 도외시될 수 없겠죠. 실제로 최근 유행하고 있는 일본이나 유럽의 혼종적인 장르들을 들어보면, 연주곡이 아닌 노래가 들어가는 음악은 보컬이 여성인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어떤 때 ‘그녀들’은 남성아티스트가 만든 곡을 형상화하는 역할을 오롯이 떠맡습니다. 또 어떤 때에 ‘그녀들’은 남성연주자(작곡가)와 예술적 스타일을 공유하며, 자신의 보이스 칼라로 ‘그’의 음악에 독특한 채색을 합니다. 달리 말하면 ‘창작자’인 남성이 (설사 연주를 하더라도) 그 자신을 프로듀서 역할로 한정하여 여성 보컬리스트 뒤에 선다든지, 반대로 여성보컬의 색채에 통과시킨 자신의 음악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무대에 올린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사실 귀엽고, 상큼하고, 패셔너블한 목소리에 한정되어 소비되는 여성적 목소리에 대한 미적 관점은 다시금 성별 분리를 구태의연하게 반복하는 것이기는 합니다. (고개가 갸웃거려지시는 분들은 최근 우리나라 CF에도 많이 쓰이는, 가히 ‘여성 보컬표’ 음악이라고 불릴만한 곡들을 들어보세요.) 또한 여성음악가들의 존재감이 작곡자에 의해 지나치게 중화되고 가공되어 쓰이게 됐을 때, 여성들의 예술행위는 전과 유사하게 오직 ‘여성적인 것’으로서만 발견되고 인정될 뿐일 수 있고요.
 
하지만 예술계에서도 자주 배제되거나 고립된 영역에서만 추앙 받아 왔던 여성의 문화적 현실을 생각할 때, 일차적 창작자가 아니라는 점을 지나치게 터부시하면 도리어 기존의 위계를 복귀시키는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또한 여성의 체험을 미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남성뮤지션과 ‘완전한’ 분리가 이뤄져야만 그녀가 ‘독립적인’ 음악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동일시된다면, 그것은 매우 거친 틀이 되고 말 것이고요.

 
그 음악 속에서 ‘그녀’는….

 
▲ 프라이드 프라이드(Fried Pride) [Heat Wave]  2004
일본의 혼성 재즈 듀오인 프라이드 프라이드(Fried Pride)에서 보컬인 시호(Shiho)는, 엄청난 센스로 연주라인을 편곡하는 기타리스트 아키오 요코타(Akio Yokota)의 음악성을 대변하기보다는, 그 음악의 몸체에서 필수적 자리를 차지합니다. 어느 한 쪽이 더 낫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말 그녀의 진한 표현력과 멋진 톤이 없었다면 아키오의 현란한 연주가 지금 같은 뉘앙스로 들렸을까 싶어요.

 
하지만 재즈 음악에서 테크닉적인 구사 능력이 강조되는 바, 시호가 재즈 보컬로서 뛰어난 역량을 지니지 않았다면 그녀 역시 종속적인 위치를 벗어날 수 없었을 거라고 누군가는 평할 수도 있겠죠. 우리는 ‘충분한’ 가창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 속에서 장식물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한 여성뮤지션이 있거나, 있음직하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음악에서 깊은 문화적 체험을 맛보고 싶어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뮤지션의 탁월한 테크닉을 갈구합니다. 그러나 예술에서 ‘실력’이라는 건 쉽게 공식화해서 이야기하기 어려운 부분인데다, 그려진 악보가 두 뮤지션에 의해 각자의 구체성과 직접성을 가지고 표현될 때 그것은 일차적 작곡의 범위를 넘어서게 된다는 점을 되새겨봐야 할 거에요.

 
프라이드 프라이드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음악적 맥락을 갖고 있는 하나의 예를 더 들어볼게요. 바로 ‘시부야 케이’의 복합성을 그대로 담은 보사(bossa) 사운드, 오렌지 페코(Orange Pekoe)인데요. 이들도 앞의 밴드처럼 재즈적인 구성과 편성을 가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도시적인 (Urban Groove) 팝의 성향이 강해요. 그렇다면 오렌지 페코의 경우에는 악기나 목소리의 연주적 자질보다 곡을 구성하는 요소요소의 아이디어적 측면이 부각될 수 있을 거예요.

 
여기서는 남자멤버인 후지모토 카즈마(Fujimoto Kazuma)가 작곡과 편곡 및 기타 연주를, 여자멤버인 나카시마 토모코(Nagashima Tomoko)가 작사와 보컬을 맡고 있는데요. 그녀의 감성적인 가사와 ‘노래하기’는 남성멤버의 재즈기타 연주의 따뜻한 음색처럼 전체적인 무드에 있어서 대체될 수 없는, 구체적인 오렌지 페코를 그려낸답니다.

 
물론 여기 소개된 밴드들에 대한 미적인 감흥이 누구에게나 동일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각자의 취향에 맞는 예들을 상기해보아도 혼성 듀오 속 ‘그녀’들의 음악적 성공을 단지 기술적 지표로서만 가늠해본다면, 복잡미묘한 차원들을 많이 건너뛰게 된다는 데에는 공감하실 겁니다.

 
주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그들의 이야기

 
▲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2집 [입술이 달빛] 2006
국내에서도 몽환적인 일렉트로 사운드 계열(캐스커, 포츈쿠키), 특정악기에 프로그래밍된 리듬이 접목되거나 포크음악에 빈티지한 색감이 덧대어진 예들(플라스틱 피플)에서 혼성 듀오들이 눈에 띄곤 합니다. 게다가 오버그라운드에서도 몇 가지 광고와 영화음악, 그리고 <커피프린스 1호점> 같은 트렌디드라마를 통해 잔잔한 ‘감성음악’들에 상품미학적인 조명이 약간은 이루어지게 되었잖아요.

 
그래서인지 요새는 선율 고운 기타연주에 여성보컬이 등장하는 일이나, 그녀들이 노래를 부르며 건반악기로 남성연주자와 함께하는 일도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게 되었어요. 이것도 어디까지나 일부 문화에서의 이야기지만요.

 
가령, 저는 최근 새 앨범을 발매한 소규모아카시아밴드를 좋아합니다. 인디음악계에서는 꽤나 유명세를 타고 있는 그들의 음악은, 과하지 않은 멋과 찻잎 같은 은은한 맛이 있어서 끌려요. 민홍의 어쿠스틱기타가 차분한 대기를 이룰 때, 송은지의 다분히 언어적인 노래법은 맴을 돌며 청자의 감각을 이리로 저리로 부드럽게 기울게 하죠.

 
그런가 하면 밴드 코코어(Cocore)의 리더인 이우성과 그래픽디자이너 이정은으로 구성된 싸지타(The Sagitta)의 색다른 분위기도 즐기곤 해요. 싸이키델릭 포크 듀오로 소개되는 이들은, 소수의 문화취향을 아주 섬세하게 잘 펼치는 데 일가견이 있어요. 그들의 곡을 듣고 있노라면 바랜 빛깔에 뽀얀 먼지가 묻어나는 히피들의 옷이 연상됩니다. 그러면서도 춥고, 쓸쓸하고요, 정말이지 기묘한 것에 취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을 전해주죠.

 
이처럼 두 사람의 독특함과 어울림이 공존하는 음악들의 경우에, 그것들은 단지 각자의 성별(젠더적) 특성이나 개성을 원형 그대로 합친 결과물이 아닌, 두 사람의 공통과 차이들을 음악적으로 유영한 반영이라고 느끼게 하죠.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스트이고 음악팬인 저는, 혼성 듀오들의 작업이 문화적인 대안을 추구하는 데에 있어 이미 존재하는 ‘여성적인’ 무드를 강박적으로 버리려 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입장에서 살아온 그들 둘의 구조적인 대화에 관심을 갖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일회적이지 않은 연합으로 음반과 공연의 장(field)에서 이런 형태의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고정된 역할 분담 범주의 안팎을 넘나들며 음악적인 소통구조를 지속적으로 모색한다면, 그것은 오래된 이미지를 다시 보게 하면서 관계적 예술작업에 또 하나의 새로운 감수성을 창조할 테니까요. 2008/10/13 ⓒ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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