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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무는 빗물이 필요하지 않아”
이민자들의 눈물에 대한 소설, 카롤린 필립스의 <눈물나무>

국제인권위원회에서 알리는 글을 두 번이나 읽으며 배낭을 꽉 끌어안는 한 소년.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불법이민을 하는 소년, 루카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가 현재 서있는 위치는 국경의 남쪽 멕시코 티후아나에 있는 ‘이민자들의 집(카사 델 미그란테)’. 이민자들의 집에는 국제인권위원회뿐 아니라 멕시코 정부의 경고장도 곳곳에 붙어 있다.
 
“미국 국경을 넘으려고 시도하면 목숨이 위험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3,500명 이상의 멕시코 인들이 불법으로 미국 국경을 넘다가 사망했습니다.”

 
반면, 이민자들이 묵는 숙소 위에는 정부의 경고문에 시위라도 하듯이 “이민자를 부양할 수 있는 나라가 그의 조국이다!”라고 보란 듯이 붉은 글씨로 커다랗게 쓰여 있기도 하다.

 
배낭을 꽉 껴안고 있는 소년 루카의 이야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책의 프롤로그 한두 장을 뒤적인 독자들이 그런 문구들과 함께 계속 신경 쓰이는 부분은 주인공 루카의 행동, 즉 그가 한시도 배낭을 가만두지 못하고 의식적으로 배낭을 품에 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배낭 안에 무엇이 있길래. 루카가 남에게 쉽게 말하지는 못하는 비밀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생생한 이야기 전개로 마치 눈으로 루카의 행동과 시선을 좇고 있는 것처럼 읽어 내려가게 되는데, 루카의 시선이 멈추는 곳은 ‘눈물나무(엘 아르볼 데 라그리마스)’다. ‘이민자들의 집’에 있는 사람들 누구나 그렇게 부른다는 눈물나무 앞에서, 시선이 멎어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게 된다.

 
“이 나무에는 빗물이 필요하지 않아. 우리 이야기와 여기서 흘린 눈물만 먹고도 자라지.”

 
이 구절 하나가 얼마나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표현하고 있는지 그 구절 앞에서 루카와 마찬가지로 우뚝 설 수밖에 없다. 수많은 이민자들의 죽음과 슬픔의 이야기를 듣고 자라는 나무, 멕시코 티후아나에 서있는 눈물나무가 이 이야기의 배경이다.

 
루카는 그 눈물나무 아래서 그의 비밀을 꺼내 보인다. 보물처럼 가슴에 꽉 끌어안고 있던 배낭엔 루카의 아버지 해골이 들어 있었다. 나무 아래에 아버지의 해골과 급히 만든 십자가를 놓고, 루카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불법체류자’로 미국에서 살아가는 루카의 가족

 
루카는 수많은 이민자와 마찬가지로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넘는 국경을 건넌다. 이미 국경을 넘어 로스엔젤레스에 정착하고 있는 어머니와 누나를 찾아서, 국경을 넘는 도중 연락이 두절된 아버지와 형을 만나게 되는데…. 아버지는 사막에서 죽은 지 오래였고, 루카는 사막에서 해골로 변해있는 아버지와 재회한다.
 
루카의 형은 국경을 넘으려는 멕시코 인들에게서 돈을 받고 길을 안내하는 유명한 코요테였다. 루카는 아버지의 죽음이 형 때문에 비롯되었다고 생각하고 형을 용서하지 못한다. 형과 결별하고 극적으로 국경을 넘은 루카스는 로스엔젤레스에서 어머니와 누나를 만난다.

 
이모네 집에서 얹혀사는 어머니와 누나와 더불어 루카 또한 ‘불법체류자’로 미국에서 살아간다. 미국에 새로운 이민법이 만들어지면서 지역사회가 논쟁하는 상황과 불법체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안한 삶 등이 루카를 둘러싼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진다.

 
루카는 결국 자발적으로 멕시코로 귀환하는 것을 선택한다. 경찰에 체포된 어머니와 이모를 찾아 스스로 국경으로 이동해, 멕시코 티후아나 ‘이민자의 집’에서 그들을 기다린다. 그러나 이모네를 비롯해, 큰형 가족, 누나 등 다른 가족들은 각자 다른 입장을 드러내고 다른 선택을 한다.

 
이민자들의 각기 다른 입장과 선택

 
그래서 <눈물나무>는 수많은 이민자들의 눈물과 슬픔에 대해 얘기하지만, 논쟁적인 지점을 담고 있다. 루카와 달리, 가족들이 헤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라도 미국 사회에 남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한편, 이미 미국에서 시민권을 얻은 친척 형은 루카와 같은 ‘불법체류자’의 존재를 불편해 한다.

 
여전히 불안한 신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숨죽이며, 그러나 생존하기 위해 또렷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표현한다. 또한 강제추방 당한 이모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혹여 앞으로 더한 처벌을 받더라도 다시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가겠다고 말하지만, 루카의 어머니는 어떤 선택을 할지 아직 모른다.

 
“내 목표는 사람들이 책의 내용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 것입니다.”
국내에서 <커피우유와 소보로빵>으로 잘 알려진 저자 카롤린 필립스는 “독자들이 손에서 책을 내려놓은 뒤, 계속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눈물나무>는 이민자들의 다양한 입장과 목소리를 보여준다. 루카의 가족들은 서로 다른 선택을 하지만, 누군가의 선택이 옳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는다. 작가가 의도한대로, 눈물나무 아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루카는 독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계속 생각하도록 만든다.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소년 루카의 체험과 시선이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전개되는 <눈물나무>의 이야기는 비단 멕시코와 미국 국경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만은 아닌 듯하다. 불과 1년 전에 일어났던 여수출입국관리소 화재참사사건에서 보듯이, 한국사회에서 흘리는 이민자들의 눈물 또한 멕시코 이민자들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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