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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자야, 귀촌을 이야기하다: 여섯째 이야기
두유에 잼 바른 식빵, 과일 몇 조각, 그리고 텃밭에서 뽑은 푸성귀를 툭툭 잘라 간장과 식초와 올리브유를 몇 방울 뿌린 샐러드로 아침상을 차리던 시절은 갔다. 요즘 함양의 아침 기온은 5도에서 6도 사이. 잠옷으로 입는 바지 위에 치마를 두르고 두툼한 등산양말과 수면양말을 겹쳐 신고도, 온기가 전혀 없는 마룻바닥을 디딜 때는 나도 모르게 깨금발을 들고 종종걸음을 치게 된다.
코를 훌쩍이며 뜨거운 미역국이나 김칫국을 후루룩 들이마셔야, 세포들이 비로소 지난밤의 여운을 털어버리고 깨어나는 계절. 바람도 흙도, 심지어는 햇살마저 푸르고 서늘한 기운을 뿜어내는 가운데 식물들은 이미 제 몸에 붙어 있던 살들을 발라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수확되지 않은 채 하나둘 논바닥에 눕고 마는 벼이삭들만이 애써 가을을 붙잡고 있는 것 같다. 곧 사라질 풍광을 두 눈에 담느라, 요즘은 부쩍 동공이 시리다.
추운 날 땀내는 법
날씨가 추워지면서 웬만큼 움직여서는 땀이 나질 않는다. 약을 지어준 친구 말대로 하루에 한 번은 걸으려고 하지만, 달팽이를 닮은 내 걸음으로 땀까지 흘리는 건 어림도 없다. 그래서인지 며칠 전부터 약간의, 그러나 몸으로 확실히 느낄 정도의 불편함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머리로 기운이 몰리면서 열이 나고 뭔가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것 같다고 할까. 이 증상은 아프다기보다 말 그대로 불편하고 불쾌한 것에 가깝다.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그러니깐 빨리 나가서 움직이라구!" 소리를 지르며 어울리지도 않게 독종 의사를 흉내 낸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나 또한 이렇게 엄살을 부리는 환자 역할을 할밖에.
"나 땀 잘 안 나는 체질인 거 너도 알잖아. 그리고 요즘은 웬만해선 땀이 안 난다고. 그러니 어서 다른 방법을 알려줘. 손발과 몸통은 전부 사라지고 머리만 남은 것처럼 기분이 이상해."
친구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반신욕과 족탕을 하면 몸을 도는 에너지가 어느 정도 균형을 되찾을 거라고 일러줬다. 하지만 가장 좋은 건 역시 걸어서 땀을 내는 것이라는 말도 물론 잊지 않았다. 친구와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생각했다. 평지가 아닌 오르막길을 걸어보자고. 그러면 내 리듬에 맞춰 천천히 걸어도 땀이 나지 않겠느냐고.
이런 생각을 K에게 전하니 그는 단번에 백암산을 추천했다. 백암산은 우리 마을 건너편에 솟은, 결코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제법 우람해 뵈는 산이다. 바위가 많은 데다 군데군데 불에 탄 흔적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처음 이사 왔을 땐 좀 사납고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몇 해 전인가 누군가 산에 불을 질러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화인火印이 얼룩덜룩하게 남은 자리에 다시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무성한 잎을 드리우면서 많이 복원된 상태다.
맞아, 백암산이 있었지! 나는 K의 말에 백, 암, 산, 이름 석 자를 떠올린다. 집을 나서면 10분 안에 산으로 향하는 흙길을 밟을 수 있는데도 나는 왜 그 산에 무심했던가. 원래 등산을 즐기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자니, 종종 읍내에 있는 필봉산을 오르고 가끔은 군내버스를 타고 외곽으로 나가 백운산이며 덕유산이며 지리산을 찾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처럼 옹색한 이유를 늘어놓을 바에야 차라리 바로 집 앞에 있어서 무심했다고, 언제든 오를 수 있는 곳에 있어 오히려 흥미를 잃었다고 하는 편이 더 나을 것도 같다.
백암산에서 길을 잃다
2년을 넘게 이 마을에 살면서 내가 백암산에 오른 건 딱 한 번뿐이다. 작년 설 연휴, 나도 K도 차례를 지내러 가지 않고 집에 있었을 때다. 삼일 내내 동네 곳곳에서 풍기는 기름 냄새를 맡으며 방안에만 있자니 답답해서 나선 걸음이었다.
며칠 전 눈이 내린 덕분일까. 먼발치에서 본 백암산은 마치 흰 수염을 날리는 산신령처럼 뭔가 신비롭고 멋진 분위기를 한껏 자랑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날따라 기온이 꼭 초봄 같아서 쌓인 눈을 밟는 느낌은 따스하고 폭신했다.
우리는 천천히 산을 올랐다. 예상대로 돌이 많고 제법 패인 물길이 곳곳에 있어 좀 미끄럽긴 했지만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쯤 걸었을까. 마을 쪽에서 봤을 때 전면이 드러나는 큰 바위가 발밑에 있는 것을 확인하며 우리는 정상이 가까이에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리로 향하는 좁고 비탈진 길의 한쪽이 낭떠러지처럼 되어 있는데다가 얼음판처럼 반들거리는 상태였기에, 우리는 미련 없이 정상에 오르기를 포기하고 온 길을 되짚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길을 잃었음을 안 것은 그로부터 삼사십 분 정도 지나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와 K는 우리가 계속해서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음을 눈치 챈 것이다. 아니, 이렇게 작은 산에서도 길을 잃을 수가 있나? 이 산에는 왜 그 흔한 산악회 리본도 없는 거야?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실없이 웃어댄 것도 잠깐, 그러고도 한참을 헤매기만 하자 나도 그도 서서히 지쳐갔다. 다리는 아프고 마을은 보이지 않고, 눈에 젖은 등산화 속에서 발가락은 얼어가고.
당연하게도, 우리는 결국 내려오기는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예고 없이 툭툭 끊기는 길 때문에 도랑을 건너고 둔덕을 뛰어내리고 잡풀을 헤치며 돌아가는 등 고생을 좀 했다. 더군다나 시멘트로 포장된 내리막길을 발견하고는 이젠 됐다고 안심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집도 밭도 지나가는 고양이들도 모두 처음인 낯선 동네가 아닌가. 그러니까 그곳은 우리가 산을 오르기 시작한 동네에서 멀찍이 떨어진, 완전히 다른 장소였던 것이다.
그 후 백암산은 우리에게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은 황당하기도 한 산으로 기억되었다. 눈 덮인 산을 오를 때만 해도 '여름이면 물소리가 시원하니 좋겠다'며 한 번 더 오자고 했었는데. 그러나 길을 잃어본 자의 소심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그 산을 다시 찾지 않았고, 그 사이 어느새 달력이 바뀌고도 아홉 장이 넘어갔다.
여전히 정상에는 오르지 않지만
K의 조언을 받아들여 나는 매일, 가능하면 오전 중에 백암산을 오르기로 했다. 정상까지 가는 건 물론 아니다. 내겐 정상에 대한 욕심이 손톱만큼도 없다, 고 하면 좋게 말하는 거고, 당최 그럴 의지와 열정이 없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리라.
첫날은 마침 휴일이어서 K와 동행을 했다. 차가 쌩쌩 달리는 2차선 도로에서 불과 스무 걸음 정도 안쪽으로 들어왔을 뿐인데, 그 즉시 산 아래 마을 특유의 따스한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는 것이 우선 신기했다. 좁은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하나둘 보이는 집들하며, 그 옆에 딸린 텃밭은 어찌나 정겨우면서도 풍성해 보이던지.
계절이 계절인지라 집 가까이에 있는 텃밭은 온통 배추와 무 차지고, 서서히 비탈길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란다는 고구마며 콩이며 들깨 천지다. 제법 규모가 큰 밭 중간에는 어른 키를 훌쩍 넘는 높이로 수수가 자라고 있는가 하면, 그 옆엔 반대로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양 작고 예민해 보이는 새끼 감나무들이 즐비하다. 그 어린 감나무에 일반 감보다 크고 끝이 뾰족한 대봉이 여럿 달린 걸 보니, 안쓰러우면서도 웃음이 나는 걸 어쩔 수 없다.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이제 길이 본격적으로 산의 품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길 양옆으로 소나무가 즐비하다. 그만큼 머리 위로 드리우는 그늘은 깊고 진하며, 가슴에 차오르는 공기는 더 서늘해진다. 문득 발밑이 까슬해지는 걸 느끼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이번엔 둥치 굵은 밤나무들이 무리지어 있는 것이 보인다. 고개를 들면 빳빳하게 날을 세운 초록빛 가시들이 햇살에 반짝이는데, 그 아래엔 온갖 신산고초를 다 겪으면서 뭔가 깨달음을 얻기라도 한 듯 온몸이 열린 고동색 밤송이들이 굴러다닌다.
몇 개를 발로 까보니 더러는 썩었고 더러는 괜찮다. 구멍이 없고 매끈한 것들을 골라 주머니에 담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나와 K는 계속 걷는다. 산허리쯤이나 왔을까. 아니면 그보다 못 미친 것일까. 누군가 벌을 치는지 웽웽거리는 소리가 제법 요란하다. 가까이 가 보니 양봉장이 설치돼 있고 들어가지 못하게 줄을 쳐놨다. 계속해서 산에 오르려면 살짝 비껴가면 되지만 그 또한 오늘은 여기까지.
내려오는 길에 우리는 밤을 몇 개 더 주웠고 집에 돌아와서 바로 쪄먹었다. 찻숟가락으로 노란 속살을 파먹으며 나는 생각했다. 내일도 밤 주우러 가야지. 이런 걸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하는 건가, 아니면 임도 보고 뽕도 딴다는 건가. 아니, 뭐가 됐건 중요한 사실은 내가 백암산을 오르기 시작했다는 게 아닐는지?
서로 닮은 할머니와 콩깍지
▲ 녹두밭에서 일하는 어느 할머니의 뒷모습. © 자야
그날 이후 나의 백암산 산행은 다행히, 아직까지는, 매일 이어지고 있다. 밤은 누군가 다 쓸어갔는지 이제는 구멍 숭숭 뚫린 빈 껍질만 나뒹굴고 있으나, 괜찮다. 밤 말고도 그 산에는 보고 듣고 주워 담을 게 너무나 많으니까.
그중에서도 요즘 내 마음에 쏙 들어오는 장면은 콩밭에서 일하시는 어느 할머니의 뒷모습이다. 산으로 향하는 길에 서 있는 새끼 감나무만한 키에, 그나마도 몸이 반으로 접혀 더 작아 보이는 그분을, 나는 며칠째 계속해서 본다. 머리엔 수건을 두르고 엉덩이의 3분의 1이 드러나도록 간신히 몸빼를 걸치고 있는 모습도 늘 똑같으시다.
나는 할머니가 날마다 수확하고 있는 콩이 무엇인지 깍지 모양을 보고 알았다. 길고 가느다라며 익을수록 까맣게 변하는, 바로 녹두인 것을. 그러고 보니 할머니와 그 콩깍지가 매우 닮은 듯도 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까맣게 타들어간 모양새는 물론, 그 안에 작은 무언가를 잔뜩 품고 있는 것까지.
산을 내려오며 나는 그 할머니가 왜 그처럼 내 마음에 오래 남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래. 우리 모두 한때는 저 할머니와 같은 여자라는 깍지 안에 든 작디작은 알이 아니었던가. 깍지가 마음에 들든 안 들든 내가 그 품안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 없으며, 더군다나 살다 보면 다시 깍지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순간이 가끔은 찾아오기도 하지 않는가.
아, 그래서 땀은 좀 흘렸느냐고? 다른 데 정신을 쏟느라 정작 그건 잊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산을 아주 약간 오르는 것만으로도 내 몸 안의 에너지가 서서히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 내 가슴도 축축함과 메마름 사이에서 촉촉하게 젖어 들고 있다는 것이다. 가을인데, 이거 말고 뭘 더 바라랴. 몇 주 후면 또 생각이 달라지겠으나 당분간은 이 몸, 이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넉넉할 것 같다. (자야)
두유에 잼 바른 식빵, 과일 몇 조각, 그리고 텃밭에서 뽑은 푸성귀를 툭툭 잘라 간장과 식초와 올리브유를 몇 방울 뿌린 샐러드로 아침상을 차리던 시절은 갔다. 요즘 함양의 아침 기온은 5도에서 6도 사이. 잠옷으로 입는 바지 위에 치마를 두르고 두툼한 등산양말과 수면양말을 겹쳐 신고도, 온기가 전혀 없는 마룻바닥을 디딜 때는 나도 모르게 깨금발을 들고 종종걸음을 치게 된다.
코를 훌쩍이며 뜨거운 미역국이나 김칫국을 후루룩 들이마셔야, 세포들이 비로소 지난밤의 여운을 털어버리고 깨어나는 계절. 바람도 흙도, 심지어는 햇살마저 푸르고 서늘한 기운을 뿜어내는 가운데 식물들은 이미 제 몸에 붙어 있던 살들을 발라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수확되지 않은 채 하나둘 논바닥에 눕고 마는 벼이삭들만이 애써 가을을 붙잡고 있는 것 같다. 곧 사라질 풍광을 두 눈에 담느라, 요즘은 부쩍 동공이 시리다.
추운 날 땀내는 법
날씨가 추워지면서 웬만큼 움직여서는 땀이 나질 않는다. 약을 지어준 친구 말대로 하루에 한 번은 걸으려고 하지만, 달팽이를 닮은 내 걸음으로 땀까지 흘리는 건 어림도 없다. 그래서인지 며칠 전부터 약간의, 그러나 몸으로 확실히 느낄 정도의 불편함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머리로 기운이 몰리면서 열이 나고 뭔가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것 같다고 할까. 이 증상은 아프다기보다 말 그대로 불편하고 불쾌한 것에 가깝다.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그러니깐 빨리 나가서 움직이라구!" 소리를 지르며 어울리지도 않게 독종 의사를 흉내 낸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나 또한 이렇게 엄살을 부리는 환자 역할을 할밖에.
"나 땀 잘 안 나는 체질인 거 너도 알잖아. 그리고 요즘은 웬만해선 땀이 안 난다고. 그러니 어서 다른 방법을 알려줘. 손발과 몸통은 전부 사라지고 머리만 남은 것처럼 기분이 이상해."
친구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반신욕과 족탕을 하면 몸을 도는 에너지가 어느 정도 균형을 되찾을 거라고 일러줬다. 하지만 가장 좋은 건 역시 걸어서 땀을 내는 것이라는 말도 물론 잊지 않았다. 친구와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생각했다. 평지가 아닌 오르막길을 걸어보자고. 그러면 내 리듬에 맞춰 천천히 걸어도 땀이 나지 않겠느냐고.
이런 생각을 K에게 전하니 그는 단번에 백암산을 추천했다. 백암산은 우리 마을 건너편에 솟은, 결코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제법 우람해 뵈는 산이다. 바위가 많은 데다 군데군데 불에 탄 흔적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처음 이사 왔을 땐 좀 사납고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몇 해 전인가 누군가 산에 불을 질러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화인火印이 얼룩덜룩하게 남은 자리에 다시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무성한 잎을 드리우면서 많이 복원된 상태다.
맞아, 백암산이 있었지! 나는 K의 말에 백, 암, 산, 이름 석 자를 떠올린다. 집을 나서면 10분 안에 산으로 향하는 흙길을 밟을 수 있는데도 나는 왜 그 산에 무심했던가. 원래 등산을 즐기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자니, 종종 읍내에 있는 필봉산을 오르고 가끔은 군내버스를 타고 외곽으로 나가 백운산이며 덕유산이며 지리산을 찾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처럼 옹색한 이유를 늘어놓을 바에야 차라리 바로 집 앞에 있어서 무심했다고, 언제든 오를 수 있는 곳에 있어 오히려 흥미를 잃었다고 하는 편이 더 나을 것도 같다.
백암산에서 길을 잃다
▲ 백암산은 우리 마을 건너편에 솟은, 결코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제법 우람해 뵈는 산이다. © 자야
2년을 넘게 이 마을에 살면서 내가 백암산에 오른 건 딱 한 번뿐이다. 작년 설 연휴, 나도 K도 차례를 지내러 가지 않고 집에 있었을 때다. 삼일 내내 동네 곳곳에서 풍기는 기름 냄새를 맡으며 방안에만 있자니 답답해서 나선 걸음이었다.
며칠 전 눈이 내린 덕분일까. 먼발치에서 본 백암산은 마치 흰 수염을 날리는 산신령처럼 뭔가 신비롭고 멋진 분위기를 한껏 자랑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날따라 기온이 꼭 초봄 같아서 쌓인 눈을 밟는 느낌은 따스하고 폭신했다.
우리는 천천히 산을 올랐다. 예상대로 돌이 많고 제법 패인 물길이 곳곳에 있어 좀 미끄럽긴 했지만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쯤 걸었을까. 마을 쪽에서 봤을 때 전면이 드러나는 큰 바위가 발밑에 있는 것을 확인하며 우리는 정상이 가까이에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리로 향하는 좁고 비탈진 길의 한쪽이 낭떠러지처럼 되어 있는데다가 얼음판처럼 반들거리는 상태였기에, 우리는 미련 없이 정상에 오르기를 포기하고 온 길을 되짚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길을 잃었음을 안 것은 그로부터 삼사십 분 정도 지나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와 K는 우리가 계속해서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음을 눈치 챈 것이다. 아니, 이렇게 작은 산에서도 길을 잃을 수가 있나? 이 산에는 왜 그 흔한 산악회 리본도 없는 거야?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실없이 웃어댄 것도 잠깐, 그러고도 한참을 헤매기만 하자 나도 그도 서서히 지쳐갔다. 다리는 아프고 마을은 보이지 않고, 눈에 젖은 등산화 속에서 발가락은 얼어가고.
당연하게도, 우리는 결국 내려오기는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예고 없이 툭툭 끊기는 길 때문에 도랑을 건너고 둔덕을 뛰어내리고 잡풀을 헤치며 돌아가는 등 고생을 좀 했다. 더군다나 시멘트로 포장된 내리막길을 발견하고는 이젠 됐다고 안심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집도 밭도 지나가는 고양이들도 모두 처음인 낯선 동네가 아닌가. 그러니까 그곳은 우리가 산을 오르기 시작한 동네에서 멀찍이 떨어진, 완전히 다른 장소였던 것이다.
그 후 백암산은 우리에게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은 황당하기도 한 산으로 기억되었다. 눈 덮인 산을 오를 때만 해도 '여름이면 물소리가 시원하니 좋겠다'며 한 번 더 오자고 했었는데. 그러나 길을 잃어본 자의 소심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그 산을 다시 찾지 않았고, 그 사이 어느새 달력이 바뀌고도 아홉 장이 넘어갔다.
여전히 정상에는 오르지 않지만
K의 조언을 받아들여 나는 매일, 가능하면 오전 중에 백암산을 오르기로 했다. 정상까지 가는 건 물론 아니다. 내겐 정상에 대한 욕심이 손톱만큼도 없다, 고 하면 좋게 말하는 거고, 당최 그럴 의지와 열정이 없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리라.
첫날은 마침 휴일이어서 K와 동행을 했다. 차가 쌩쌩 달리는 2차선 도로에서 불과 스무 걸음 정도 안쪽으로 들어왔을 뿐인데, 그 즉시 산 아래 마을 특유의 따스한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는 것이 우선 신기했다. 좁은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하나둘 보이는 집들하며, 그 옆에 딸린 텃밭은 어찌나 정겨우면서도 풍성해 보이던지.
계절이 계절인지라 집 가까이에 있는 텃밭은 온통 배추와 무 차지고, 서서히 비탈길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란다는 고구마며 콩이며 들깨 천지다. 제법 규모가 큰 밭 중간에는 어른 키를 훌쩍 넘는 높이로 수수가 자라고 있는가 하면, 그 옆엔 반대로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양 작고 예민해 보이는 새끼 감나무들이 즐비하다. 그 어린 감나무에 일반 감보다 크고 끝이 뾰족한 대봉이 여럿 달린 걸 보니, 안쓰러우면서도 웃음이 나는 걸 어쩔 수 없다.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이제 길이 본격적으로 산의 품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길 양옆으로 소나무가 즐비하다. 그만큼 머리 위로 드리우는 그늘은 깊고 진하며, 가슴에 차오르는 공기는 더 서늘해진다. 문득 발밑이 까슬해지는 걸 느끼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이번엔 둥치 굵은 밤나무들이 무리지어 있는 것이 보인다. 고개를 들면 빳빳하게 날을 세운 초록빛 가시들이 햇살에 반짝이는데, 그 아래엔 온갖 신산고초를 다 겪으면서 뭔가 깨달음을 얻기라도 한 듯 온몸이 열린 고동색 밤송이들이 굴러다닌다.
몇 개를 발로 까보니 더러는 썩었고 더러는 괜찮다. 구멍이 없고 매끈한 것들을 골라 주머니에 담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나와 K는 계속 걷는다. 산허리쯤이나 왔을까. 아니면 그보다 못 미친 것일까. 누군가 벌을 치는지 웽웽거리는 소리가 제법 요란하다. 가까이 가 보니 양봉장이 설치돼 있고 들어가지 못하게 줄을 쳐놨다. 계속해서 산에 오르려면 살짝 비껴가면 되지만 그 또한 오늘은 여기까지.
내려오는 길에 우리는 밤을 몇 개 더 주웠고 집에 돌아와서 바로 쪄먹었다. 찻숟가락으로 노란 속살을 파먹으며 나는 생각했다. 내일도 밤 주우러 가야지. 이런 걸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하는 건가, 아니면 임도 보고 뽕도 딴다는 건가. 아니, 뭐가 됐건 중요한 사실은 내가 백암산을 오르기 시작했다는 게 아닐는지?
서로 닮은 할머니와 콩깍지
▲ 녹두밭에서 일하는 어느 할머니의 뒷모습. © 자야
그날 이후 나의 백암산 산행은 다행히, 아직까지는, 매일 이어지고 있다. 밤은 누군가 다 쓸어갔는지 이제는 구멍 숭숭 뚫린 빈 껍질만 나뒹굴고 있으나, 괜찮다. 밤 말고도 그 산에는 보고 듣고 주워 담을 게 너무나 많으니까.
그중에서도 요즘 내 마음에 쏙 들어오는 장면은 콩밭에서 일하시는 어느 할머니의 뒷모습이다. 산으로 향하는 길에 서 있는 새끼 감나무만한 키에, 그나마도 몸이 반으로 접혀 더 작아 보이는 그분을, 나는 며칠째 계속해서 본다. 머리엔 수건을 두르고 엉덩이의 3분의 1이 드러나도록 간신히 몸빼를 걸치고 있는 모습도 늘 똑같으시다.
나는 할머니가 날마다 수확하고 있는 콩이 무엇인지 깍지 모양을 보고 알았다. 길고 가느다라며 익을수록 까맣게 변하는, 바로 녹두인 것을. 그러고 보니 할머니와 그 콩깍지가 매우 닮은 듯도 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까맣게 타들어간 모양새는 물론, 그 안에 작은 무언가를 잔뜩 품고 있는 것까지.
산을 내려오며 나는 그 할머니가 왜 그처럼 내 마음에 오래 남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래. 우리 모두 한때는 저 할머니와 같은 여자라는 깍지 안에 든 작디작은 알이 아니었던가. 깍지가 마음에 들든 안 들든 내가 그 품안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 없으며, 더군다나 살다 보면 다시 깍지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순간이 가끔은 찾아오기도 하지 않는가.
아, 그래서 땀은 좀 흘렸느냐고? 다른 데 정신을 쏟느라 정작 그건 잊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산을 아주 약간 오르는 것만으로도 내 몸 안의 에너지가 서서히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 내 가슴도 축축함과 메마름 사이에서 촉촉하게 젖어 들고 있다는 것이다. 가을인데, 이거 말고 뭘 더 바라랴. 몇 주 후면 또 생각이 달라지겠으나 당분간은 이 몸, 이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넉넉할 것 같다. (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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