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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윤하의 딸을 만나러 가는 길(23)
[연재 글] 이혼을 하면서 두고 온 딸은 그녀에게는 늘 어떤 이유였다. 떠나야 할 이유, 돌아와야 할 이유, 살아야 할 이유……. 그녀는 늘 말한다. 딸에게 하지 못한 말이 너무 많다고. 열흘에 한 번씩 연재될 <딸을 만나러 가는 길>은 딸에게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여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윤하의 고백이 될 것이다.
세월을 살아나온 선물
"이번에 받은 원고료 30만원은 빌린 돈을 갚았어. 돈이 너무 없어서 ㅇㅇ한테 좀 빌려 썼거든."
그때 남편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이 바로 지금의 아이 새엄마이다. 그녀는 나와 남편이 연애를 할 때부터 그를 좋아한 대학후배였고, 결혼 후에는 남편과 함께 활동한 동료이기도 했다. 난 그녀가 남편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남편으로부터 직접 들었었다. 당시, 그는 별 웃긴 일도 다 있다는 표정으로 “ㅇㅇㅇ이라는 후배가 나를 너무 좋아해”라며,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더랬다.
나 역시 그냥 웃음으로 그 말을 넘겼다. 난 ‘애인이 있는 남자를 계속 좋아할까, 저러다 말겠지’라고 순진하게 생각하고는 이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더욱이, 결혼 후에는 남편에 대한 감정을 당연히 접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허물없이 우리 집에 놀러오는 그녀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이혼을 하고 나니,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그녀는 우리가 결혼한 후에도 전남편에게 지나친 관심을 보여, 사람들로부터 근심을 사고 있었다고 했다. 주위에서 “너, 왜 결혼까지 한 ㅇㅇ형을 좋아하니? 형네 집은 왜 자꾸 가는데?” 친구들의 이런 질책에 그녀는 “나도 모르겠어!”하더라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아차’하는 마음이 스쳐갔다. 이런 말은 자기도 주체할 수 없는 감정 상태에 빠졌을 때 하는 말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을 정말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토록 그 사람 곁을 맴돌고, 남편에게 큰돈을 선뜻 빌려주었구나 생각했다. 게다가 우리가 이혼할 당시에는 자기 때문에 이혼하는 거라며, 자기가 죽어야 한다고 울고불고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녀에 대한 무수한 소문에 이어 시어머니는 내게 전화를 해, 이혼 판결이 나기 무섭게 그녀가 ‘보따리를 싸갖고 왔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시어머니는 너무 속상해 하며, “이렇게 짝 달라붙어 있는 아이가 있는 줄 알았더라면 절대로 이혼을 시키지 않았을 거”라며,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셨다. 그리고 아이가 크면 모든 사실을 다 말해주고 외갓집으로 보내겠다는 약속도 하셨다. 그리고 몇 달 뒤 그들의 결혼 소식이 전해졌다.
진실은 늘 이렇게 모든 사건이 끝난 뒤에야 알게 된다. 결혼 생활을 할 때는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믿기 힘든 이야기들이 수 없이 들려왔다.
그러나 우리의 이혼을 그녀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 그것은 또 얼마나 구차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인가? 그녀의 존재와 관계없이 남편과 나의 관계는 조금씩 삐걱거리고 있었으니까, 더욱이 에세이 대필과 관련한 사건이 우리의 관계가 끝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걸 내가 모를 리 없었다. 이혼은 시간의 길고 짧음의 문제였을 뿐이지,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당시 들려왔던 이야기들이 내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아무리 이혼은 그녀와 상관없다고, 우리 둘의 문제를 가지고 남을 탓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이성적으로 다짐해도, 쉽게 그 상처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과연, 그 곁에 이렇듯 깊은 애정을 보이며, 그 사람 주변을 맴도는 그녀가 없었더라도, 전남편이 그 상황에서 이혼을 요구해 왔을까?’하고 수없이 되물었다.
세월이 흘렀다. 아픈 그대로, 아이에 대한 그리움은 그리운 채로, 그렇게 상처와 그리움을 켜켜로 쌓으며, 1년이, 5년이, 그리고 10년이, 18년이 지났다. 놀랍게도 절대로 살아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세월을 다 지나왔다. 나는 가끔 내가 어떻게 그 긴 세월을 지나왔는지 놀라울 때가 있다. 결코 살아서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던 긴 세월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세월 흘러서는 전남편과의 결혼생활이 그때 그렇게 끝난 것이 안타깝지는 않다. 오히려 1년 8개월밖에 안 되는 짧은 결혼생활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때가 더 많다. 이것이 그 세월을 살아 나온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윤하)
[연재 글] 이혼을 하면서 두고 온 딸은 그녀에게는 늘 어떤 이유였다. 떠나야 할 이유, 돌아와야 할 이유, 살아야 할 이유……. 그녀는 늘 말한다. 딸에게 하지 못한 말이 너무 많다고. 열흘에 한 번씩 연재될 <딸을 만나러 가는 길>은 딸에게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여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윤하의 고백이 될 것이다.
세월을 살아나온 선물
"이번에 받은 원고료 30만원은 빌린 돈을 갚았어. 돈이 너무 없어서 ㅇㅇ한테 좀 빌려 썼거든."
그때 남편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이 바로 지금의 아이 새엄마이다. 그녀는 나와 남편이 연애를 할 때부터 그를 좋아한 대학후배였고, 결혼 후에는 남편과 함께 활동한 동료이기도 했다. 난 그녀가 남편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남편으로부터 직접 들었었다. 당시, 그는 별 웃긴 일도 다 있다는 표정으로 “ㅇㅇㅇ이라는 후배가 나를 너무 좋아해”라며,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더랬다.
나 역시 그냥 웃음으로 그 말을 넘겼다. 난 ‘애인이 있는 남자를 계속 좋아할까, 저러다 말겠지’라고 순진하게 생각하고는 이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더욱이, 결혼 후에는 남편에 대한 감정을 당연히 접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허물없이 우리 집에 놀러오는 그녀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이혼을 하고 나니,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그녀는 우리가 결혼한 후에도 전남편에게 지나친 관심을 보여, 사람들로부터 근심을 사고 있었다고 했다. 주위에서 “너, 왜 결혼까지 한 ㅇㅇ형을 좋아하니? 형네 집은 왜 자꾸 가는데?” 친구들의 이런 질책에 그녀는 “나도 모르겠어!”하더라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아차’하는 마음이 스쳐갔다. 이런 말은 자기도 주체할 수 없는 감정 상태에 빠졌을 때 하는 말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을 정말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토록 그 사람 곁을 맴돌고, 남편에게 큰돈을 선뜻 빌려주었구나 생각했다. 게다가 우리가 이혼할 당시에는 자기 때문에 이혼하는 거라며, 자기가 죽어야 한다고 울고불고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녀에 대한 무수한 소문에 이어 시어머니는 내게 전화를 해, 이혼 판결이 나기 무섭게 그녀가 ‘보따리를 싸갖고 왔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시어머니는 너무 속상해 하며, “이렇게 짝 달라붙어 있는 아이가 있는 줄 알았더라면 절대로 이혼을 시키지 않았을 거”라며,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셨다. 그리고 아이가 크면 모든 사실을 다 말해주고 외갓집으로 보내겠다는 약속도 하셨다. 그리고 몇 달 뒤 그들의 결혼 소식이 전해졌다.
진실은 늘 이렇게 모든 사건이 끝난 뒤에야 알게 된다. 결혼 생활을 할 때는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믿기 힘든 이야기들이 수 없이 들려왔다.
그러나 우리의 이혼을 그녀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 그것은 또 얼마나 구차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인가? 그녀의 존재와 관계없이 남편과 나의 관계는 조금씩 삐걱거리고 있었으니까, 더욱이 에세이 대필과 관련한 사건이 우리의 관계가 끝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걸 내가 모를 리 없었다. 이혼은 시간의 길고 짧음의 문제였을 뿐이지,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당시 들려왔던 이야기들이 내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아무리 이혼은 그녀와 상관없다고, 우리 둘의 문제를 가지고 남을 탓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이성적으로 다짐해도, 쉽게 그 상처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과연, 그 곁에 이렇듯 깊은 애정을 보이며, 그 사람 주변을 맴도는 그녀가 없었더라도, 전남편이 그 상황에서 이혼을 요구해 왔을까?’하고 수없이 되물었다.
세월이 흘렀다. 아픈 그대로, 아이에 대한 그리움은 그리운 채로, 그렇게 상처와 그리움을 켜켜로 쌓으며, 1년이, 5년이, 그리고 10년이, 18년이 지났다. 놀랍게도 절대로 살아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세월을 다 지나왔다. 나는 가끔 내가 어떻게 그 긴 세월을 지나왔는지 놀라울 때가 있다. 결코 살아서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던 긴 세월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세월 흘러서는 전남편과의 결혼생활이 그때 그렇게 끝난 것이 안타깝지는 않다. 오히려 1년 8개월밖에 안 되는 짧은 결혼생활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때가 더 많다. 이것이 그 세월을 살아 나온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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