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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말하다

시골마을, 누군가 또 사라져간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1.10.01 16:41

<일다> 자야, 귀촌을 이야기하다: 다섯째 이야기 ① 
 
어젯밤 눈송이처럼 소리도 없이 빗방울 몇 개가 떨어지는가 싶더니, 오늘은 소매 긴 옷을 겹쳐 입어야 할 만큼 기온이 떨어져 있다. 잔뜩 흐리지만 비는 내리지 않는 가을 아침. 몸을 움직여 뭔가를 하기에 딱 좋은 날이다.
 
나는 뒷집 아주머니가 주신 쪽파 구근을 일찍 심기로 하고 밖으로 나간다. 대문을 열자 물기 가득한 흙냄새가 밀려온다. 이런 냄새를 뭐라고 해야 하는 건지.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냄새라 하면 말이 되려나 모르겠다.
 
빈자리가 커 보이는 아침

바람 스산해지고 사물 사이 여백이 많아지는 가을엔,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진다. ©자야 
 
쪽파 심을 곳을 정하기 위해 텃밭을 휘휘 둘러보니 어느새 듬성해진 자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규모가 작긴 해도 오뉴월은 물론이고 칠팔월까지는 제법 풍성했었는데. 양파와 마늘 줄기가 하늘을 향해 치솟은 옆으로 하얀 감자 꽃이 하늘거리고, 또 물오른 감나무 아래서는 완두콩과 옥수수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하루가 다르게 여물어가지 않았던가. 양파, 감자, 마늘을 수확하고 나서는 들깨와 호박이 그 자리를 대신해 주었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각각 한 이랑씩 차지하고 있는 김장용 배추와 무가 전부다. 담 쪽 가장자리에 있는 폭 좁은 두둑에 가지와 아삭고추와 파프리카가 몇 그루 심어져 있긴 하지만 이미 끝물에 접어들어 찬란한 빛을 잃은 지 오래고, 이제 막 연녹색 가는 줄기를 뻗어가는 당근 또한 양으로 보나 질로 보나 이랑을 꽉 채울 만큼은 안 된다.
 
감이라도 실하게 열려 있으면 봄직하고 먹음직하여 얼마나 좋을 것인가. 그러나 비가 너무 많이 내리고 더웠던 탓인지, 작년에 이어 올해도 그 많던 감들은 미처 단단해지기도 전에 죄 곯아 떨어져 버렸다. 더군다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질반질했던 초록 잎들마저 기름기가 쪽 빠진 채로 바람이 불면 우수수 땅에 떨어지기 바쁘다. 덕분에 가을의 운치도 느끼고 좋지 않느냐고 누군가 말하면 고개를 끄덕이기는 하겠지만, 이사한 첫해에 신물 나게 먹어댄 홍시 맛을 잊지 못하는 내 혀는 여전히 아쉬워할 것도 같다.
 
드문드문해진 밭을 보며 고랑을 뒤덮은 잡풀들을 뽑고 있자니, 이 동네에 생기고 있는 사람의 빈자리에도 문득 마음이 머문다. 재작년 이맘때 하늘 길을 오르신 옆집 할머니를 비롯해 몸이 점점 노쇠해지고 정신마저 혼미해져 자식들이 있는 도시로 옮겨 간 할머니 두 분, 그리고 올 초에 역시 세상을 등진 앞집 아주머니까지….
 
나와 K가 옆집이라 부르는 곳이 두 군데인데 하나는 대문을 기준으로 삼을 때 옆집이고, 다른 하나는 마당 안 텃밭에 면한 담 너머로 보이는 옆집이다. 우리가 이사 온 해 가을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대문 쪽 옆집 분으로, 다리가 불편해 유모차처럼 생긴 바퀴 달린 보조기구에 의지해 바깥 걸음을 하시곤 했다.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다며 하루에 두어 번은 꼭 대문 밖으로 마실을 나가던 할머니는 가고 오는 길에 우리 집에도 종종 들르셨는데, 그럴 때면 할머니의 발소리나 목소리보다도 시멘트 바닥 위를 돌돌 구르는 경쾌한 바퀴 소리가 먼저 들렸다.
 
"혼자선 죽어 삘 수도 읍서."
 

그날도 그랬다. 8월 초의 덥고 끈적한 어느 날 오후. 우리 집에서 가장 널찍하고 시원한 공간인 부엌 바닥에 누워 책을 읽고 있던 나는 어느 순간 예의 그 바퀴 소리를 들었고, 아니나 다를까 파란 나무대문 사이로 기역 자로 꺾인 할머니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얼른 일어나 마당으로 나간 나는 할머니를 부축해 마루까지 모셔 오려 했으나, 할머니는 더 이상 걷기가 힘든지 대문 옆 그늘에 그냥 주저앉으셨다.
 
"할머니, 마을회관에서 오시는 길이세요?"
 
귀가 안 좋은 할머니를 위해 나는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당신 저고리며 치마를 더듬거리느라 분주할 뿐, 아무런 대답이 없으셨다. 뭘 찾는가 싶어 가만히 보고만 있으니, 할머니는 잠시 후 꼬깃꼬깃 접힌 종이 한 장을 내게 내밀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우리 딸이 오기루 했는데 이 망할 놈의 가스나가 여즉 안 오니 걱정이 돼서 뭘 할 수가 있어야지. 전화가 와도 들을 수가 있나, 전화를 받아도 뭔 말을 하는지 알아먹을 수가 있나. 귀 먹은 병신이라서, 내가."
 
이사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건만 나는 할머니가 당신을 가리켜 "병신"이라고 하는 것을 수십 번도 넘게 들었다. 난 다리도 못 쓰는 병신이야. 가는귀먹은 병신이야. 누가 밥을 차려주지 않으면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병신이야….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던지, 생각 같아선 할머니 앞에서 매몰차게 등을 돌려 내 집으로 쏙 들어오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어색하고 쓰린 속내를 감추며 몇 번인가 나는 푸념하시는 할머니 손을 잡아 드렸었다. 평생 고되게 살아온 내력이 압축되어 있는, 굳은살에 검버섯이 가득한 까칠한 손을.
 
이번에도 여지없이 불편해지려는 마음을 지그시 누르며 나는 얼른 종이쪽지를 펼쳐 거기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를 보았다.
 
"할머니, 이게 따님 전화번호죠? 제가 할머니 대신 전화 걸어볼까요?"
 
할머니와 나는 나란히 일어서 할머니네 집 대문 옆 문간방으로 갔다. 할머니는 툇마루에 앉아 계시고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가 쪽지에 적힌 번호대로 다이얼을 눌렀다. 신호가 몇 번 가지 않아 딸이 전화를 받았다. 내가 전화 건 사연을 설명하니, 그이는 차가 너무 밀려서 늦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열린 방문 틈으로 들어오는 작고 그늘진 할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두 눈엔 물기가 가득했고 입술은 이지러져 있었다. 게다가 주름은 왜 또 그렇게 골이 깊은 것인지.
 
그 모습을 보자 괜히 심술이 난 나는, 수화기에 대고 약간 목소리를 높여 그럼 언제쯤 도착할 건지라도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이는 잘 모르겠다며, 할머니에게 걱정 말고 그냥 편히 계시라고 전해달라는 말만 하곤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툇마루로 나가니 할머니는 내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간절한 눈빛에 내 마음은 또 사정없이 불편해졌다. 빨리 할머니와의 대화를 끝내고 내 집 부엌 바닥에 누워 속 편하게 책이나 읽었으면 싶었다.
 
"할머니, 딸이 지금 오고 있대요. 그런데 차가 많이 막혀서 좀 늦는다니까 밖에서 이러고 계시지 말고 방에 들어가세요. 조금 있으면 올 거예요."
 
"하이고 그년이 그게 애들까지 데리고 오면서 좀 일찍 나서지. 울산이면 여기서 먼 것도 아닌데. 저녁밥은 어찌할려고. 에이, 미친년."
 
딸에 대한 그리움이 담뿍 담긴 욕을 한바탕 해댄 할머니는, 그러고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 채 연방 같은 질문을 내게 던졌다. 그래서 내 딸이 언제 온다요? 해지기 전에 도착한다요? 저녁은 어찌 한다요?
 
그날 저녁, 긴 긴 여름해가 넘어가고도 한참을 지나서야 비로소 딸네 식구는 할머니 집에 도착했다. 밖에서 차 소리가 나나 안 나나 괜히 신경을 쓰고 있던 나는 그제야 안심이 되어 대문을 닫았다.
 
할머니 상여 나가던 날
 
이튿날 오후. 점심밥을 먹고 대문 옆 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데 옆집 할머니가 여느 때처럼 돌돌돌 바퀴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오셨다. 그러고는 내가 미처 인사를 하기도 전에 발치에 놓인 페인트 통 옆에 주저앉으시는 거였다. 할머니는 아무 말씀 없이 손등으로 눈가를 연방 훔치시며 훌쩍이셨다. 곰팡이 꽃 마냥 검푸른 손은 금세 축축이 젖어 들었다.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할머니 곁에 앉아 무릎을 어루만져 드렸다. 그러자 할머니의 하염없는 넋두리가 시작되었다.
 
"우리 엄니는 왜 나 같은 걸 나아갖고서는… 엄니가 원망스러워. 그만 약 먹고 딱 죽어 삐고픈데… 나는 병신이라 그것도 할 수가 없어. 그러니 이제 어떻게 사누…."
 
아무래도 할머니는 딸이 왔다간 후유증을 앓는 듯했다. 다시 혼자 남게 되면서 밀려드는 외로움과 두려움을 견딜 수 없던 것이리라. 그렇게 한참을 훌쩍이다 일어서는 할머니를 배웅하기 위해 대문을 나서는데, 저편으로 양손에 지팡이를 짚고는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걸어가는 또 다른 할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마을사람들이 상동 할머니(가명)라 부르는 분으로, 아마도 마을회관에 가시는 길인 것 같았다.

그걸 본 옆집 할머니는 마을회관 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새댁은 어여 들어가, 하셨다. 그사이 표정이 약간 밝아져 있어 마음이 놓였다. 그러고 보면 옆집 할머니와 대화 상대라도 되어 줄 다른 할머니가 이 마을에 계신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한가지로 병들고 늙어가는 몸이지만 그래도 서로 기대어 있으면 바싹 마른 삶에도 얼마간의 온기가 느껴질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 해 추석이 되기 전에 옆집 할머니는 평소 앓던 황달이 악화되어 부산 큰아들 집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 무렵 일 때문에 서울행이 잦아 인사는커녕 더 이상 옆집에 할머니가 안 계신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던 나는, 안타깝게도 나중에야 그 소식을 들었다. 그래도 다른 이웃 아주머니께서 '전에도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며 '몸이 괜찮아지시면 곧 오실 것'이라고 하기에 마음을 놓았는데, 할머니는 끝내 다시 돌아오시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할머니를 실은 상여가 우리 동네에 오던 날. 마침 집에 있던 나는 삼베옷 입은 이들이 평소 할머니가 다니시던 길을 걸어 그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할머니가 평소 자주 하시던 말씀들이 바람에 실려 와 환청처럼 내 귀를 울렸다. 우리 엄니는 나 같은 걸 왜 낳아서는… 다리도 못 쓰는 병신이 어떻게 살라고… 나는 병신이라서 약 묵고 죽지도 못혀….
 
환청이 지나가자 이번엔 할머니의 투박하고 거친 손이 환영처럼 나타나 내 눈 앞에서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평생을 가난과 더불어 살다가 말년에는 쇠약한 육신과 두려움이라는 마음의 병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던 할머니의 손. 내게 호박 두어 개를 건넬 때, 우리 집 대문 앞에 주저앉아 우실 때 힘겹게 들어 올리던 그 손이.
 
대문 앞 감나무 아래를 서성이던 나는, 번갈아 나타나는 환청과 환영으로부터 도망가기라도 하듯 방으로 들어갔다. 돌아 나가는 상여를 보며 할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 끝내 그러지 못한 것이다.

대신 마음속으로 빌었다. 할머니가 안 계시는 동안 그 넓은 마당을 차지하고 일가를 이루며 살던 서너 마리의 고양이들만이라도 부디 할머니 가시는 길에 다정한 눈빛을 건네기를. 좋은 데 가시라고 넌지시 할머니 귓가에 속삭여 주기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바라기는, 자기가 할 일을 고양이에게 미루는 이 못된 이웃 처자를 할머니는 부디 용서하시기를.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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