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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윤하의 딸을 만나러 가는 길(24) 
 
[연재 칼럼 소개] 이혼을 하면서 두고 온 딸은 그녀에게는 늘 어떤 이유였다. 떠나야 할 이유, 돌아와야 할 이유, 살아야 할 이유……. 그녀는 늘 말한다. 딸에게 하지 못한 말이 너무 많다고. 열흘에 한 번씩 연재되는 <딸을 만나러 가는 길>은 딸에게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여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윤하의 고백이 될 것이다.

서현이는 잘 있을까?

헤어진 딸이 커갈수록 서현이가 생각났다. 서현이는 중학교 2학년 때, 내 짝꿍이었던 아이다. 그녀는 그해 가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떠나면서 서현이는 내게 계면쩍은 표정으로, 그러나 제법 용기를 내어 말했다.
 
“이모라고 했던 사람, 사실은 엄마였어!”
 
나는 그저 웃으며, “알고 있었어” 했다.
 
그녀는 그렇게 친엄마 가족과 이민을 떠났다.
 
학기초 어느 날, 화장실을 가려고 교실을 나왔을 때, 서현이는 복도 한 켠, 창 앞에서 울고 있었다. 그 때, 옆에는 서현이 등을 토닥이던 여인이 있었다. 의아스럽기만 한 상황을 못 본척하고 서둘러 화장실을 다녀왔을 때, 눈치 빠른 반아이들은 서현이에 대해 쑥덕이고 있었다.
 
“작년에도 저랬는걸!”

“저 사람이 서현이 친엄마래. 서현이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더라.”

“지금은 아빠랑 살고, 동생들은 모두 새엄마가 낳은 애들이래.”

 
서현이에 대해 알고 있는 아이들이 제법 많았다. 그러나 아무도 서현이 앞에서 이런 사실을 아는 척하지는 않았다. 나도 모른체 했다.
 
그 후로도 이런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친엄마 앞에서 서현이는 자주 울었다. 그러다 한번은 우연찮게 이런 말을 듣기도 했다.
 
“자기네들끼리... 흑..흑.. 어쩌구 저쩌구...”
 
본의 아니게 들은 이 말 때문에, 나는 서현이가 당시 함께 사는 가족들로부터 약간은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친구들 앞에선 늘 밝고 명랑했다. 서현이는 내게 친엄마를 이모라고 소개했다. 가끔은 이모네서 주말을 보내고 학교로 바로 왔노라고 묻지도 않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서현이의 친엄마에게 남편과 아이가 있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서현이의 친어머니는 학교만 드나드는 것은 아니었다. 소풍이나 사생대회처럼 야외로 나갈 때는 아예 엄마와 단 둘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서현이와 친했던 나와 몇몇 아이들은 그녀와 소풍을 즐긴 적이 한번도 없다. 우리는 서현이가 엄마와 깔깔거리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그저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던 그녀가 결국 친어머니 식구들을 따라 이민을 갔다. 한국을 떠날 즈음, 서현이는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고,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로 들떠 있었다. 서현이가 떠난 이후, 그녀의 소식은 한번도 듣지 못했고, 그녀의 기억도 까맣게 잊었다.

 
그렇게 잊고 있던 서현이가 떠오르기 시작한 건 내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이다. 나도 텔레비전 드라마에서처럼 학교근처 전봇대 뒤에 숨어 아이가 교문을 드나드는 모습을 훔쳐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서현이 어머니처럼 학교로 달려가 아이와 애정을 쌓을 수도 있었다.
 
이제 나도 남편에게 조르지 않고 얼마든지 아이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서현이 생각을 했다. 당시, 서현이는 함께 살았던 당시의 가족들이 너무 나빠서 그들로부터 소외감을 느꼈던 걸까? 서현이가 가족들로부터 겉돌았던 데에 친엄마의 책임은 없을까? 그러면서 늘 궁금했다. ‘과연, 친엄마의 가족과 살면서는 행복했을까?’

 
서현이 기억을 더듬으며 나는 아이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늘 물었던 것 같다. 물론, 나의 선택도 극단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부모의 이혼과 출생의 진실을 철저하게 감추며, 아이에게 거짓된 삶을 살게 한 것은 어떤 말로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아이가 거짓된 삶을 살게 한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바로 나라는 걸 부인할 수도 없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친엄마의 자격으로 그녀를 만나면서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나 아이가 자랄 때는 친엄마 앞에서 울고 있던 서현이 모습이 자꾸 떠올라 아이 앞에 나설 수가 없었다. 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이가 함께 살고 있는 가족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끼지 않고 평안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늘 생각했다. 누구와 산들 갈등이 없을 수 없는 노릇이니까. 삶은 다 비슷비슷하지 않은가? 그래서 아이를 흔들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현이도, 나도 좀더 쿨하게 엄마나 아이를 만나면서 살았더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꼭 극단적으로 어느 한 쪽을 택하고 다른 한 쪽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양쪽 부모 집을 오가며 사는 것이 그렇게 하기 힘든 것이었는지 의문이다. 그러면서 난 또 서현이를 생각한다. “그녀는 잘 있을까?”  (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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