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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스런 일상을 견디어가다: <소소한 휴일>
누구나 20대 초중반에서 후반의 나이로 넘어가면 심리적 변화를 겪게 되는 듯 하다. 신문이나 잡지를 봐도 더 이상 흥미진진한 지식을 얻기 어렵다. 연애나 친구관계에 있어서도 더 이상 새로운 경험을 기대할 수 없다. 한편 취직을 하건 전문적인 직종에 종사하기 위해 사회 진입을 유예하건 간에 다소 불만족스러운 상태가 된다. 사회의 벽은 높고 자신이 기대한 만큼의 자리를 얻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가하라 마리코의 <소소한 휴일>은 잡지에 글을 쓰면서 소설가를 지망하는 28살 마리코의 일과 사랑을 그린 만화다. 단정하지만 평범한 그림체에, 20대 후반 여성의 일과 사랑이라는 다소 정형화된 주제를 다룬 이 만화는 욕심이 없고 상당히 소박하다. 그래서 오히려 주인공의 현실적인 상황을 부담스럽지 않게 잘 전달한다.
주인공 마리코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일에 대한 집착도 결혼에 대한 동경도 연애에 대한 기대도 버리지 못하고, 형태가 갖춰진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야망도 체력도 저금도 (별로)없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 채 아무 데로도 가지 못하고 버둥거리며 헛돌고 있을 뿐.”
잡지작가에서 전업하기 위해 순정소설을 기획하던 중 기획 자체가 사라지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고향으로 내려간 마리코. 그녀는 하는 일 없이 일상을 보내면서 저축한 돈을 쓰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럽다. 젊은 신진 작가들이 잡지계에 속속 등장하는 와중에 더 이상 쓰고 싶은 글이 없어서 답답할 뿐이다. 한편 고향에서 중고등학교 때 동경하던 남자 츠토무를 만나 헛된 기대를 품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조심스럽게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츠토무가 오랫동안 연인이자 친구로 지내온 요우코에게 돌아가면서 실패하고 만다.
이처럼 20대 후반의 마리코에게는 특별한 발전도, 심각한 후퇴도 없다. 저금이 떨어질 까봐 끊임없이 걱정하고 엄마와 다투면서, 일감이 들어오는 와중에 데이트를 해야 할 때가 오면 일과 사랑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하는 그녀. “일을 하는 한 연애는 무리일지도 모른다고 깨닫기 시작한 나였다.” 연애를 잘 하기 위해 일을 접을까 고민하다가도 자신이 직접 번 돈으로 마련한 방을 차마 빼지 못한다.
일 중독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고, 제대로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마리코는 일상에 대한 불만족과 실망을 이겨나간다. 완벽한 탈출구는 없으므로 불안정한 상태를 어떻게든 견디면서 하나 둘 배워가야 할 뿐이다. [일다 김윤은미의 글에서 발췌]
20대 여성의 경험이 녹아 들어 있는 한혜연의 만화
한혜연의 작품 속에는 현재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20대 여성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들어 있다. 작품 속 인물들은 딱히 유형화 하기 힘들만큼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준다. 단편집 <푸르츠 칵테일>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레몬과 솔로몬’에서는 레몬을 매개로 세 사람의 각기 다른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상대방의 시각에서 이해하기를 거부하다가 결국 애인을 떠나 보낸 뒤에 후회하는 남자, 헤어진 연인을 레몬맛을 통해 추억하는 여자, 사랑했던 형이 찾아올 때를 위해 레몬차를 준비하는 또 다른 남자의 이야기.
‘복숭아 샤베트’의 주인공은 현실에 타협한 결혼을 앞두고 갈등한다. 스스로의 발로 걷는 삶을 택할 것인가, 누군가의 벤츠에 실려갈 것인가. 그녀는 하얀 웨딩드레스를 벗고 두 발로 걷는 삶을 선택한다. ‘코팅오렌지’에서는 같은 실연의 상처를 입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는 두 여성이 등장하고, ‘수박을 만드는 세가지 방법’에서는 외모 콤플렉스에 빠져 쌍커플 수술을 받게 되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 집… 딸기빙수’에서는 액세서리 점의 도난방지 감시원이면서 백화점의 스카프에 손을 대게 되는 여성이 등장한다. 감시하는 것이 일인 주영은 일상에서도 타인을 감시하는 것이 생활화된 자신에게 염증을 느낀다. 그런 그녀가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때마침 등장한 미라라는 여성에 의해서 위기를 모면하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주영의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 주영에게 용서 받은 적이 있던 여자였다. 미라 또한 주영처럼 한 서점에서 ‘감시인’으로 일하고 있다. 같은 경험을 공유한 그들은, 역시 그들 기억 속에 공유되어 있는 장소인 ‘딸기빙수’ 집으로 향한다.
격주간지 [오후] 2호에 실린 단편 'Dog Day Afternoon'도 그녀만의 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단편이다. 늘어지게 더운 여름날(Dog Day), 지열이 훅훅 올라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한 날. 차가운 소나기 한줄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6년간 동성친구 K를 짝사랑해 온 윤숙. 6년 전 그 때 윤숙의 고백으로 둘은 친구도 완전한 타인도 아닌, 어정쩡한 관계가 되어버렸지만, 윤숙은 여전히 K에 대한 작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 어느 날 문득, K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윤숙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녀가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는 신호일까.
그러나 거리를 하얗게 물들이는 태양에 아스팔트가 녹아 내리는 것처럼 그녀의 작은 기대도 뜨거운 열기 속으로 녹아버린다. K가 가져온 소식은 ‘이민’. 그나마 곁에 있고 싶다는 소망마저도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다.
윤숙의 기대는 무너졌다. 그러나 윤숙은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왠지 한혜연의 캐릭터들은 극단적인 절망으로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은 믿음을 준다. 그것은 그의 인물들이 인생의 슬픔을 받아 들이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다 박희정의 글에서 발췌]
일상에서 행복을 <딸기쇼트케이크>
<딸기쇼트케이크>의 여자들은 말수가 적었다. 그녀들은 사회 주변을 서성이는 20대의 소심하고, 예민한 사람들이다. 그녀들은 학교와 가정처럼 인간들을 매일 보는 공간을 벗어나, 홀로 지낸다. 직장과 자취방을 오가는 단조로운 일상, 좁은 관계망, 빈곤한 경제, 초라한 작은 방. 대화를 나눌 사람은 한정되어 있고, 여자들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대도시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녀들은 ‘닫힌' 것이다.
매력적인 나나난식 스타일
<딸기..>의 매력은 그 스타일에 있다. 물론 <딸기..>는 20대 여성의 소외된 일상과 소통 및 치유에의 열망을 짚고 있기에, 주제적 측면에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딸기..>의 풍경은 등장인물들의 민감하고 예민한 시선을 통해 한 차원 걸러진 까닭에 단조롭다. 그녀들은 자신과 관련된 것에 극도로 민감한 반면, 관련 없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그 둔감성은 때로는 타인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토우코와 치히로의 어긋난 소통에서 잘 드러난다.
민감성과 둔감성이 공존하는 그녀들의 세계는 나나난식의 절제된 연출을 통해 민감한 부분이 극대화된다. 그녀는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소외와 단절, 외로움의 정서를 그녀만의 스타일을 통해 환기시킨다. 굵고 막 그린 듯 하나 실은 매우 단련된 선, 과감한 생략과 여백의 배치, 짤막한 대사가 그것이다.
나나난은 <호박과 마요네즈>의 츠치다가 현 애인 세이와 다시 만난 것처럼 <딸기..>의 여자들에게 진정성 어린 해피엔딩을 안겨준다. 치히로는 반복된 구토에 시달리던 토우코를 안아주고 기쿠치는 사랑을 말하는 아키요에게 눈물을 보인다. 좁은 일상에서 찾아낸 탈출구란 옛애인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거나(토우코) 시골로 돌아가는 것(치히로)처럼 소박하기 그지없지만, 그녀들의 소외된 상황은 결론에 진정성을 부여한다.
… 우리들의 이 흔해빠진 일상은 실은 아주 망가지기 쉬워서 끝내 잃어버리지 않는 건 기적이다. p202 <호박..>
… 애정이었든 이용이었든 마차의 말처럼 나를 움직이게 해서 내 일을 궤도에 올려놓은 것은 너야. 증오하면서도 감사하고 있어. p145 <딸기..>
나나난은 소외와 상처에 의한 여성들의 강렬한 자의식들을 능숙하게 다룬 듯 하다.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겨운 여자들, 그녀들은 결국 자신의 존재 이유를 일상에서 찾아냈다. [일다 김윤은미의 글에서 발췌] ⓒ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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