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서사의 가능성…억압된 말들의 귀환[페미니스트의 책장] 최은영 소설집 『쇼코의 미소』 『쇼코의 미소』를 처음 딱 읽고 책을 덮으면, 부드럽고 따뜻한 기분이 든다. 아름다운 이야기책을 읽은 것처럼 소중한 마음이 차오른다. 그러나 혼자서 조용히 이야기를 잘 곱씹어보면, 이상하게도 이것은 그리 아름답기만 한 이야기들은 아니다. 삶의 초라하고 추악한 단면들이 그의 이야기 속에 어떤 치장도 없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쇼코의 미소에 서려 있는 서늘함처럼, 문득 터져 나오는 미진의 분노처럼, 알 수 없이 단절되어버린 어떤 관계의 날카로움처럼 이 따뜻한 이야기들은 칼을 품고 있다. 그래서 『쇼코의 미소』를 다시 펼쳤을 때, 스스로 질문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여기서 느꼈다고 생각했던 온기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건강을 잃어도 모든 것을 잃지는 않는 사회로!① 아픈 몸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이 흔한 사회다. 이는 아픈 몸을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말이다. 그럼에도 ‘덕담’으로 회자된다. 이런 사회에서 아픈 몸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혼돈의 세계에 던져진다는 의미다.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불안, 아픈 몸에 대한 사회의 무지, 정상성에서 빗겨난 몸으로 사회에서 탈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아픈 몸들은 건강 중심 사회에서, 이러한 질병 세계의 경험을 표현할 언어도 없이, 모호하게 살아간다. 자신의 질병 경험을 설명하고 싶지만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부족하다 보니, 자주 침묵으로 미끄러진다. 침묵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기도 한다. 아픈 몸은 낯선 세계에서 새롭게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