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야, 귀촌을 이야기하다 겨울 해는 짧다. 오후 서너 시가 지나면 햇살이 도마뱀 꼬리처럼 뭉텅뭉텅 잘려나간다. 그에 따라 마당에 그늘이 번져가고, 그 순서와 속도에 맞추어 사물들이 식어가는 것을 관찰하는 일은 늘 흥미롭다. 마지막까지 해가 비치는 곳에 빨랫줄을 걸어놓은 것은, 아마도 이 집을 손수 짓고 삼십 년 넘게 살다 간 전 주인의 솜씨이자 지혜이리라. 그에 감탄하며, 나는 아직 해가 남아 있는 동안 빨래를 걷거나 건조대 위에 놓인 귤껍질 따위를 안으로 들인다. 바싹 마른 것들이 풍기는 냄새는 왠지 모르게 비슷하다. 아궁이에서 타 들어가는 나무 향처럼, 맵싸하면서도 은은하게 달콤하다. 구들방 두 개, 뭘 더 바래? 잠시든 오래든, 시골집에 머물려는 사람 중 온돌방에 환상을 갖지 않는 이가 과연 있을까..
윤하의 딸을 만나러 가는 길 (29) 진실을 알 권리 릴(Lille)의 미리암과 에릭 부부에게 결혼여부를 묻지 않아서 이혼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그들이 이 질문을 안 해서 좋았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내가 이혼을 했고, 딸이 있고, 딸은 전남편과 살고 있다는 얘기를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하지만, 묻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자진해서 꺼내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이혼했다는 말을 꺼내기가 부담스러웠다면, 프랑스에서는 아이를 만나지 않는다고 말하기가 힘들었다. 실제로 한국에서 결혼여부를 묻는 사람들에게 이혼했다고 말했을 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 ‘그런 말은 앞으로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그들은 모두 나보다 나이가 많고, 많이 배운 사람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