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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믿어야 치유의 길이 열린다 
-이경신이 말하는 최현정의 <조용한 마음의 혁명> 
                                                                                                    <여성주의 저널 일다> 이경신 
 
 
우리는 살아가면서 마음의 상처를 입고, 또 누군가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기도 한다. 때로는 그 상처가 너무나 커서 우울증과 같은 마음의 병이 되기도 하고, 암에 걸리거나 심장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몸이 상하기도 한다.
 
마음의 상처가 고통이 되어 몸이 병들고, 망가진 몸 때문에 마음의 병이 더 깊어지는 괴로운 상황을 벗어날 방도를 찾지 못해 힘겨워하는 사람들, 이들의 경험이 특별하다 볼 수는 없다.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어느 누구도 이 경험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고통 받고 있지 않다면, 과거 어느 때 겪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앞으로 언젠가 겪어내야 할 수도 있다. 우리가 경쟁적이고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관계와 감정이라는 이정표 
 

▲ 최현정의 <조용한 마음의 혁명-심리학으로 본 한국사회 마음의 건강> (일다, 2010)     
 
<조용한 마음의 혁명(일다, 2010)>에서 저자는 마음의 상처로 고통 받는 사람이 넘치는 우리 사회에서 그 상처를 치유할 길을 열어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관계’와 ‘감정’이라는 이정표를 좇아 치유의 길을 찾아 나설 용기를 되찾는다.
 
사실 우리가 ‘불가피한 삶의 파도 속에서 키를 놓지 않고’ 계속해서 삶의 항해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이성적이고 합리적 판단에 근거한 자기통제력, 자율적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힘 덕분에 우리 인간은 독립적인 주체로서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
 
하지만 ‘왜곡된 독립심을 부추기면서’ 개인들 사이의 분리를 조장하고 서로를 경계하도록 내모는 세상에서 우리 각자가 이성적이고 자율적인 힘을 제대로 작동시킬 수 없을 만큼 무력하고 나약한 존재로 전락해 있다면 어떨까? 저자는 우리에게 ‘관계지향적인 삶’을 되돌아보도록 권유한다.
 
인간은 ‘독립적인 주체’이면서 ‘상호의존적인 존재’이고, ‘이성적인 존재’이면서 ‘마음과 감정을 가진 존재’이지만, 저자는 후자를 주목하는 것이다. 원래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서로 관계 맺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관계지향적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은 그릇된 욕망에 사로잡힌 채 제대로 관계 맺는 법을 알지 못한다. 자기 가족, 자기 패거리만 챙기는 관계 집착은 집단이기주의일 뿐, 일그러진 관계를 살찌운다.
 
병든 세상이 사람을 병들게 하고, 병든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세상은 그 병이 날로 더 깊이지는 악순환을 벗어날 길이 없어 보이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바로 사람에게서,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탈출구를 발견한다. 난폭한 사회 속에서 상처 입은 개인은 스스로를 지키기에 무력하니, 힘들 때 타인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내 상처에만 골몰하지 않고 타인의 상처도 어루만져 줄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기대고 서로 돌보려고 애써야 하고 그럴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물론 서로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동반돼야 할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우리가 제대로 된 관계를 맺어나가기 위해서는 감정의 울림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내 마음이 느끼고 있는 것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우리는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고 아파해야 할 때 아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우리가 진정으로 마음을 모아 함께 분노하고 함께 애도할 수 있다면, 이 공동의 정서경험을 기반으로 보다 안전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신뢰
 
나 역시 마음 깊이 느끼는 감정의 움직임 없이 이성적인 판단에만 의존해 윤리적 행위로 나아가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를 치유하면서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감정의 힘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한다.
 
그렇다고 해도 저자가 이토록 감정의 힘에 낙관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무엇보다도 그녀가 인간을 믿기 때문이리라. 때로는 선하게, 때로는 악하게 보이는 우리 인간을 악한 존재라고 결론짓지 않고, 오히려 “사람은 충분히 선하고 정의로운 판단을 내리고 실천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으며 사람에게서 희망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 누구도 인간의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 명확한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생물학적 존재이자 환경적 존재인 우리 인간 개개인이 때에 따라 좋은 생각이나 행동, 나쁜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그런 불완전한 존재라는 경험적 사실뿐이다. 이 사실은 인간이 충분히 정의로운 판단과 선량한 행위를 할 수 있는 존재임을 부정하지도 않지만, 그 반대 역시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간의 선량함에 무게를 싣고 신뢰할 수 있는 저자가 심리치료사로서 믿음직하다. 인간에 대한 믿음 없이 어찌 감히 마음의 상처에 대한 치유를 언급할 수 있겠나.
 
책을 읽어가는 동안 우리는 저자의 잔잔한 음성을 바로 곁에서 듣고 있는 듯하다. 그녀는 상처받아 주저앉은 마음을 향해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우리 자신의 상처에만 갇히지 않고 주위의 다른 상처들에도 눈길을 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부드럽게 말을 건네 오는 그녀에게 지금 마음의 문을 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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