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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신의 도서관 나들이(31) 기후, 인권, 자연을 지키는 길 
 
항상 그렇듯, 희망도서를 위한 도서관 예산은 가을이면 바닥이 난다. 당분간 도서신청이 불가능하니, 서가에 비치된 도서를 더 눈여겨볼 수밖에 없다. 그 덕분에 발견한 책이 맨디 하기스의 <종이로 사라지는 숲 이야기(상상의 숲, 2009)>이다. 숨겨진 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이라서, 읽으며 마음 불편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우리는 종이를 얼마나 사용할까?
 

국내 한 기업이 생산한 재생복사용지. 그러나 '흰 종이'에 익숙한 소비자의 수요가 없어 결국 생산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녹색연합
 
나만 해도 종이 없는 일상을 상상하기 어렵다. 화장실에서 휴지를 사용하고, 키친타올로 프라이팬을 닦고, 일을 위한 자료준비를 위해 프린터 출력을 한다. 책을 읽고, 포스트잇으로 표시를 하고, 종이에 메모도 한다. 영화를 보면 종이티켓을 받고, 상점에서 물건을 사면 영수증을 받는다. 또 물건을 구입하면 종이포장이 함께 따라온다. 게다가 원하지 않는 각종 홍보용 전단지가 날마다 현관문을 도배하고 우편함을 채운다. 그나마 꿋꿋이 신문을 배달받지 않으니 종이를 좀 아끼긴 했을까?
 
우리나라의 경우, 1인당 연평균 종이소비량이 179.1kg에 이른다고 한다. 비록 미국이나 일본의 종이소비량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우리나라도 종이소비의 상위권 국가다. 1년에 불과 4.59kg의 종이소비에 그치는 인도사람과 비교할 때, 우리가 소비하는 종이의 양이 적다 말할 수는 없다. 참고로 A4용지 4장이 30g이라고 한다.
 
우리는 도대체 종이를 어디다 쓰고 있는 걸까? 재생종이 운동가인 정은영은 ‘재생종이는 아름답습니다’라는 글에서,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종이의 60%는 산업용 포장용지에 사용되고, 24%는 출간용지로, 12%는 신문용지로, 4%는 화장지로 소비된다고 적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상품의 내용물을 보호하고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목적으로 포장용 종이를 지나치게 사용함을 알 수 있다. 세계에서 사용되는 종이 25%가 포장지에 사용된다는 통계와 비교해 보아도 그렇다.
 
아무튼 전 세계인이 하루 동안 사용하는 종이 때문에 1천 2백만 그루의 나무를 베어야 하고, 한 사람이 팔십 평생 종이를 쓰려면 30년생 나무 237그루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 계산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 쉽게 사용하고 버리는 종이 때문에 수많은 나무가 희생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원시림의 수난
 
“하루살이 목숨 같은 종이가 지구에서 생명이 가장 긴 유기물로 만들어졌다.”(맨디 하기스, 종이로 사라지는 숲 이야기, 2장 얼마나 많은 종이를 쓰고 있는가)

 
처음부터 나무를 잘라 종이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약 2천 년 전 중국에서 처음 탄생했다는 종이는 ‘셀룰로오스 섬유를 물과 섞어 묽게 만든 펄프를 얇게 편 후 건조시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즐겨 사용하는 종이 대부분은 나무를 그 원료로 한다. 19세기 중엽에 와서야 비로소 가능해진 ‘나무를 펄프로 만드는 기술’ 덕분이다. 종이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된 우리에게 이 기술은 하늘이 내린 축복이겠지만, 나무와 숲에는 비극적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산업용 원목의 42%가 제지산업의 펄프용으로 소비되고 있을 정도로 많은 나무들이, 특히 생태적으로 중요한, 수백 살 먹은 나무들이 종이로 생을 마감한다. 제지산업은 온대림, 열대림, 아한대림을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전 세계의 숲에 손을 뻗치고 있다. 현재 남은 원시림은 35%정도에 불과하다고 하니, 숲의 수난이 끔찍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제지회사들은 비용절감을 위해 앞 다투어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에 펄프공장을 세우고, 불법 벌목을 서슴지 않는다. 이곳에서 벌목되는 원목의 절반 이상이 ‘불법원목’이다. 산불이 났거나 폭풍이 지나간 다음, 또 나무들이 병들었을 때 숲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서 행하는 ‘위생 벌목’과 달리, 불법 벌목은 숲을 돌이킬 수 없도록 파괴시킨다.
 
심지어 러시아처럼 정부가 앞장서서 불법 벌목을 조장하기도 한다. 전 세계 숲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아한대림, 즉 러시아와 캐나다의 숲에서 자라는 나무는 추위 때문에 천천히 성장한다. 그래서 나무를 자른 뒤, 숲을 자연적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불가능해 그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
   
‘나무농장’의 폭력성
 
펄프 확보를 위해 벌목된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  ©그린피스

 
원시림의 나무를 ‘모두베기’로 벌목한 곳에 다시 심는 나무는 전나무, 소나무, 열대 아카시아, 유칼리나무 등과 같은 펄프용 나무다. 다시 말해서, 다양한 생명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숲을 다시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이익이 되는 한 종류의 나무만 심는 ‘나무농장’으로 바꿔놓는 것이다. 숲에는 다양한 생명주기의 나무들이 존재하지만, 비슷한 연령의 젊은 나무만 가득한 나무농장은 죽은 나무가 없어 곤충이 없고, 곤충이 없다보니 새가 없는, 기이하고 섬뜩한 공간이다.
 
이 나무공장은 이윤추구를 위해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공장식 가축사육장, 바다의 양식장과 닮았다. 단일수종을 심어, 병충해에 약하고 영양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다 보니 화학비료와 제초제 등의 화학물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화학물질은 땅과 물을 오염시키고 있다.
 
또, 농장은 경제적 가치만 고려하기 때문에 자생종이 아니라 외래종을 선호해서 자생 동식물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채 피해만 준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농장의 아카시아나 남아프리카 농장의 유칼리나무는 화학물질을 배출해 다른 식물이 아예 발붙일 수 없도록 방해한다. 심지어 유전자 조작한 나무까지 가세하고 있다. 생장속도가 빠른 전나무, 다양한 기후에 적응 가능한 유칼리나무, 종이 만드는 데 불필요한 리그닌 함유가 낮은 나무, 곤충이나 균류를 죽이는 나무가 그것이다.
 
나무농장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나무를 심는 것만으로 훼손한 숲을 복구할 수는 없다. 유전자조작이 없는, 지역생태계에 적합한 나무를 심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숲이 없는 곳에 나무를 심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제지회사에게 나무는 생명이 아니라 상품일 따름이다. 물 부족 지역에 물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나무를 심어 사막을 만들고, 물이 부족해서 나무가 자라지 않는 초원에도 나무농장을 조성해 물 부족을 야기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게다가 나무농장은 자생 동식물에게는 물론이요, 대대로 땅을 지켜온 원주민에게도 재앙이긴 마찬가지다. 제지회사는 원주민의 땅에 관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원주민이 ‘고무나무수액을 채취하고, 벌꿀을 모으고, 작물을 키우고, 과일을 따고, 사냥을 하며’ 살아온 땅, 캐나다 원주민이 ‘식량과 약초를 구하고, 야생 벼와 농작물을 재배하고, 풀과 나무껍질을 채취해 옷감을 짜고, 사냥과 낚시를 하며’ 생계를 이어 온 땅을 ‘경제적으로 무가치하고 비생산적인 땅, 놀고 있는 땅’이라고 억지주장을 편다. 원주민들과의 협상에도 응하지 않고, 나무농장에 반대하는 사람에게는 위협, 살해도 서슴지 않는 제지회사의 폭력성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더 깨끗하고 더 안전한 재생 종이
  
그런데 원시림을 파괴하지 않고도 종이를 만들 방법은 있다. 이미 존재하는 종이를 재활용하는 것이 그 하나다. 즉, 재생펄프로 종이 만들기. 저자는 원시림의 나무로 종이를 만드는 것보다 ‘재생펄프로 종이를 만들면 훨씬 더 깨끗하고 더 안전하고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재생지가 원시림의 나무로 만든 종이보다 온실가스를 2.3배 적게 발생시키고, 아산화질소, 휘발성유기화학물, 황화합물과 같은 유독물질의 배출이 적고, 골판지를 만들 때는 아예 독성가스를 발생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또 원목을 제지공장에 운송할 때보다 폐지를 재생지공장으로 운송할 때 화석연료가 더 적게 든다고 평가하고 있다.
 
종이는 최대 아홉 번까지 재활용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분리수거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종이 재활용의 질이 결정된다. 종이가 음식물쓰레기, 플라스틱과 같은 다른 쓰레기와 뒤섞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종이 회수율, 폐지사용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분리수거 후 선별작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재활용된 종이는 종이상자용 판지나 화장지로만 쓰인다고 한다. 그런데 표백종이를 선호하는 소비자로 인해 재생종이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간과할 수 없다. 종이를 재활용하면 할수록 숲의 훼손을 줄여나갈 수 있으니, 소비자로서 재생 종이에 관심을 갖는 것이 마땅하다.
 
종이를 적게 사용하자
 
▲ 녹색연합의 '종이 안쓰는 날 (매년 4월 4일)' 캠페인 이미지. ©녹색연합 

 

자연친화적이고 윤리적인 종이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지만, 나무농장이 날로 늘어나고 제지산업이 거대화되고 종이사용이 급증하는 지금, 종이를 소중히 여기고 최대한 적게 소비하는 것이 보다 윤리적일 것이다. 저자는 휴지나 종이냅킨 대신 손수건 사용하기, 이면지 사용하기, 신문보다 온라인 뉴스 이용하기, 서류를 전자화하기 등을 권한다.
 
그리고 내가 사용하는 종이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알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한다. 원시림을 파괴하고 만든 종이인지, 염소 표백으로 수질오염, 대기오염을 야기한 종이인지, 폐수처리시설 없이 유독한 폐수를 무단방류하는 제지공장에서 나온 종이인지, 원주민의 땅을 빼앗아 세운 나무농장의 나무로 만든 종이인지, 모든 문제를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비양심 거대기업이 생산한 종이인지 알고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종이를 사용하는 소비자로서 숙제가 많아졌다. 하지만 종이가 기후와 인권, 인간과 자연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외면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여전히 혼란스럽다. 과연 종이를 아끼기 위해 화석연료에서 나온 전기나 깨끗한 물을 사용하는 것이 종이를 사용하는 것보다 자연을 지키는 더 나은 방법인지 잘 모르겠다. 전기를 아끼기 위해 종이에 글을 쓰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나만 해도 물을 아끼기 위해 프라이팬을 키친타올로 닦아왔었는데……. 좀 더 정확하고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어쨌거나 종이도 나무도 물도 적게 사용하는 것이 실수를 덜 하는 최선의 길이긴 할 것 같다.
(이경신)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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