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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신의 도서관 나들이(29) 이윤증식의 새로운 출로가 된 ‘기후위기’
<여성주의 저널 일다> 이경신
여름이 끝나가는 요즘, 왜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지 모르겠다. 기후 변화가 심상치 않다. 겨울이 되어봐야 알겠지만, 더는 ‘삼한사온’이 없을 거라는 기사만 해도 그렇다. 다들 기후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리고 이 변화에 위기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이대로 가다가 언젠가는 인류를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소멸되는 무시무시한 환경 재앙을 맞게 될까봐 두렵기만 하다.
‘지구온도 상승 임계점’에 도달하면, 기후변화의 영향이 극도로 증폭되어 지구환경과 서식생명에게 돌이킬 수 없는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된다고 한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이 한계점은 지구표면온도가 평균 2도 상승할 때다. 지금 현재, 거의 2도에 육박하고 있다고 하니, 나의 불안과 공포가 근거 없다 말할 수는 없다.
기후변화, 지옥문이 열리면
우리 인간이 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 지옥의 문을 열게 되면,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팀 플래너리의 <지구온난화 이야기(지식의 풍경, 2007)>에서 읽은 적이 있다. 멕시코 만류의 붕괴, 아마존 열대우림의 파괴, 해저메탄의 방출이라는 세 가지 시나리오가 펼쳐질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첫 번째 시나리오를 살펴보자. 멕시코 만류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해류다. 열대의 햇빛으로 데워진 만류의 물은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가라앉아 기후를 따뜻하게 해준다. 그런데 빙하가 녹아서 민물이 바닷물에 대량으로 유입되면, 염분이 희석되어 멕시코 만류가 가라앉질 못해서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 농장을 위한 벌목으로 파괴되고 있는 아마존의 열대우림 ©그린피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첫 번째 시나리오보다 더 치명적이고 더 현실적이라고 한다. 아마존 숲의 식물은 증산작용이 활발해서 스스로 비를 만든다. 그런데 대기에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식물은 기공을 짧게 열 것이고 그러다 보면 수분배출이 적어져 강수량이 줄어들게 된다. 게다가 기온이 상승하면 토양 자체가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배출하게 되어 악순환을 가속화시킨다. 강수량이 점차로 줄어들면서 아마존 숲은 사막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아마존의 사막화는 지구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리라 예상한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실제 지구역사 속에서 이미 발생한 적이 있다고 한다. 2억 4500만 년 전 대규모 화산폭발로 인해 지구 기온이 상승하면서 해저메탄이 방출되어 당시 지구 전체 생물의 90%가 절멸했다고 고생물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저메탄이란 무엇일까?
해저에는 메탄과 같은 고압가스를 품고 있는‘불타는 얼음’이 대량으로 묻혀 있는데, 이 얼음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면 터지면서 불이 붙는다. 그런데, 바닷물의 수온이 낮은 덕분에 이 얼음이 해저뿐만 아니라 북극해 수면 가까이서도 고체의 안정된 상태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것을 누르는 압력이 약해지거나 심해나 북극해의 수온이 올라가면 엄청난 양의 메탄이 방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를 더 두렵게 하는 것은 해저메탄 방출과 아마존 숲의 사막화가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켜 더 심각하고 끔찍한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예측이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조여드는, 무시무시한 미래의 그림이 아닐 수 없다.
‘탄소상쇄’라는 신종 면죄부
그런데 기후 위기에 직면해 시장을 활용해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함으로써 환경재앙을 피해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정부도 이 길을 함께 가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과연 자유시장을 통해 기후위기에 대처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케빈 스미스는 자신의 저서 <공기를 팝니다(이매진, 2010)>를 통해 우리에게 그것이 왜 불가능한지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저자는 이 ‘탄소상쇄’를 중세의 면죄부에 비교한다. 죄인이 돈을 주고 성직자로부터 면죄부를 사면 죄에 대한 참회나 회개를 하지 않더라도, 죄가 면해지는 효과를 발휘한다고 보았던 그 면죄부 말이다.
오늘날의 신종 면죄부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지구의 온실가스를 증가시켜 기후 위기를 가중시키는 자들이 ‘탄소계산기’로 자신들이 배출한 탄소를 계산해서 ‘탄소배출권’을 구입한다. 혹은 ‘탄소상쇄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하여 배출한 탄소를 상쇄해‘중립화’한다. 그러면 온실가스 감축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고, 또 탄소발생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것이다. 돈 있는 자에게 얼마나 손쉽고도 만족스러운 해결책인가!
계속 탄소를 배출해 지구환경에 악영향을 끼치고 환경보호의 노력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친환경 이미지로 포장하는 ‘그린 워시’가 필요한 기업이나 개인이 존재하는 이상 ‘탄소상쇄’라는 면죄부는 새로운 시장 형성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탄소중립’을 광고하며‘탄소배출권’을 싼 값에 사서 ‘탄소상쇄’를 원하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팔아 중간이득을 챙기는 ‘탄소상쇄기업’이 존재한다. 기후위기가 이윤 증식의 새로운 출로를 마련해 주고 있는 셈이다.
나무를 심어서 탄소상쇄? 진실은…
▲ 케빈 스미스는의 책 <공기를 팝니다> (이매진, 2010) 표지
탄소상쇄기업은 플랜테이션(단일종 대규모 조림) 프로젝트, 에너지효율 향상 프로젝트, 재생가능한 에너지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나무심기 프로젝트만 살펴보겠다.
나무는 심지 않으면서, ‘이미 심은 나무의 탄소배출권’만 구입해서 탄소를 배출하는 기업과 개인에게 판매하는 행위를 주목해보자. 탄소상쇄기업이 기후변화에 대한 현실적 대처에는 무관심하다는 것, 나무를 심는다는 친환경 이미지를 이용해 이윤추구에만이 관심이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설사 탄소상쇄기업이 실제로 조림사업에 참여한다고 할지라도, 내가 배출한 탄소를 상쇄해서 중립화시키기 위해 몇 그루의 나무를 심어야 하는지 현실적으로 정확히 계산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한다. 내가 돈을 주고 심은 나무가, 과연 내가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 발생시킨 탄소를 흡수해서 정말로 중립화시킬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또 나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탄소를 흡수하기 때문에 당장 발생시킨 탄소가 나무를 통해서 흡수되려면 기나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향후 10년간의 온실가스 감축이 중요한데, 나무심기는 현재의 긴급한 탄소감축에 효과적이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심은 나무를 잘 관리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무 심을 땅은 또 어디서 구할 것인가?
북반구 국가들은 남반구의 땅을 이용해 탄소상쇄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남반구의 지역공동체는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인도의 망고나무 플랜테이션 프로젝트만 해도 그렇다. 이 사업이 실패함으로써 지역주민들은 심각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지만, 기업이나 정부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우간다 엘곤산 국립공원 나무심기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이 사업으로 갈 곳 없는 지역민들이 강제로 내쫓기고, 벌목을 금지 당함으로써 생계를 꾸릴 연료인 땔감마저도 구할 수 없게 되었다.
저자는 이처럼 지역공동체와의 소통 없이 지역민을 배제한 채 이루어지는 탄소상쇄 프로젝트는 ‘탄소 식민주의’라며 비난한다. 북반구의 이익을 위해 배출하는 탄소를 상쇄하는 일에 현재 기후변화에 가장 책임이 적은 남반구 사람들이 시달려야 하니 말이다.
본격적인 탄소시장 가동을 앞둔 우리 사회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했나. 탄소상쇄를 위한 나무심기 프로젝트만 살펴보아도, ‘탄소상쇄’니, ‘탄소중립’이니, ‘탄소배출권’이니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신자유주의 경제는 기후위기조차 이윤증식을 위해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기후위기의 절박함에 동의한다면, ‘탄소상쇄’라는 면죄부에 현혹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는 탄소를 상쇄시킬 수 없다. 우리가 정말로 환경재앙을 피하고 싶다면, 정부, 기업, 개인이 지금 당장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그것이 진실이다.
이 땅도 ‘탄소상쇄’라는 자유시장경제의 물결을 피할 수 없다. 정부가 기업이 줄인 온실가스를 국민의 세금으로 사들이는 어이없는 일은 이미 벌어져 왔다. 이제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는 본격적 탄소시장도 가동될 참이란다. 또 자동차, 비행기를 타고 다니고 에어컨, 냉장고를 사용하는 현재생활을 포기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탄소상쇄기업은 스타 마케팅을 동원해 면죄부 판매에 열을 올릴 것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오염산업을 지원하고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지옥의 문이 열린다면, 면죄부가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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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이경신
여름이 끝나가는 요즘, 왜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지 모르겠다. 기후 변화가 심상치 않다. 겨울이 되어봐야 알겠지만, 더는 ‘삼한사온’이 없을 거라는 기사만 해도 그렇다. 다들 기후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리고 이 변화에 위기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이대로 가다가 언젠가는 인류를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소멸되는 무시무시한 환경 재앙을 맞게 될까봐 두렵기만 하다.
‘지구온도 상승 임계점’에 도달하면, 기후변화의 영향이 극도로 증폭되어 지구환경과 서식생명에게 돌이킬 수 없는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된다고 한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이 한계점은 지구표면온도가 평균 2도 상승할 때다. 지금 현재, 거의 2도에 육박하고 있다고 하니, 나의 불안과 공포가 근거 없다 말할 수는 없다.
기후변화, 지옥문이 열리면
우리 인간이 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 지옥의 문을 열게 되면,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팀 플래너리의 <지구온난화 이야기(지식의 풍경, 2007)>에서 읽은 적이 있다. 멕시코 만류의 붕괴, 아마존 열대우림의 파괴, 해저메탄의 방출이라는 세 가지 시나리오가 펼쳐질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첫 번째 시나리오를 살펴보자. 멕시코 만류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해류다. 열대의 햇빛으로 데워진 만류의 물은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가라앉아 기후를 따뜻하게 해준다. 그런데 빙하가 녹아서 민물이 바닷물에 대량으로 유입되면, 염분이 희석되어 멕시코 만류가 가라앉질 못해서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 농장을 위한 벌목으로 파괴되고 있는 아마존의 열대우림 ©그린피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첫 번째 시나리오보다 더 치명적이고 더 현실적이라고 한다. 아마존 숲의 식물은 증산작용이 활발해서 스스로 비를 만든다. 그런데 대기에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식물은 기공을 짧게 열 것이고 그러다 보면 수분배출이 적어져 강수량이 줄어들게 된다. 게다가 기온이 상승하면 토양 자체가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배출하게 되어 악순환을 가속화시킨다. 강수량이 점차로 줄어들면서 아마존 숲은 사막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아마존의 사막화는 지구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리라 예상한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실제 지구역사 속에서 이미 발생한 적이 있다고 한다. 2억 4500만 년 전 대규모 화산폭발로 인해 지구 기온이 상승하면서 해저메탄이 방출되어 당시 지구 전체 생물의 90%가 절멸했다고 고생물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저메탄이란 무엇일까?
해저에는 메탄과 같은 고압가스를 품고 있는‘불타는 얼음’이 대량으로 묻혀 있는데, 이 얼음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면 터지면서 불이 붙는다. 그런데, 바닷물의 수온이 낮은 덕분에 이 얼음이 해저뿐만 아니라 북극해 수면 가까이서도 고체의 안정된 상태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것을 누르는 압력이 약해지거나 심해나 북극해의 수온이 올라가면 엄청난 양의 메탄이 방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를 더 두렵게 하는 것은 해저메탄 방출과 아마존 숲의 사막화가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켜 더 심각하고 끔찍한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예측이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조여드는, 무시무시한 미래의 그림이 아닐 수 없다.
‘탄소상쇄’라는 신종 면죄부
그런데 기후 위기에 직면해 시장을 활용해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함으로써 환경재앙을 피해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정부도 이 길을 함께 가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과연 자유시장을 통해 기후위기에 대처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케빈 스미스는 자신의 저서 <공기를 팝니다(이매진, 2010)>를 통해 우리에게 그것이 왜 불가능한지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저자는 이 ‘탄소상쇄’를 중세의 면죄부에 비교한다. 죄인이 돈을 주고 성직자로부터 면죄부를 사면 죄에 대한 참회나 회개를 하지 않더라도, 죄가 면해지는 효과를 발휘한다고 보았던 그 면죄부 말이다.
오늘날의 신종 면죄부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지구의 온실가스를 증가시켜 기후 위기를 가중시키는 자들이 ‘탄소계산기’로 자신들이 배출한 탄소를 계산해서 ‘탄소배출권’을 구입한다. 혹은 ‘탄소상쇄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하여 배출한 탄소를 상쇄해‘중립화’한다. 그러면 온실가스 감축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고, 또 탄소발생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것이다. 돈 있는 자에게 얼마나 손쉽고도 만족스러운 해결책인가!
계속 탄소를 배출해 지구환경에 악영향을 끼치고 환경보호의 노력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친환경 이미지로 포장하는 ‘그린 워시’가 필요한 기업이나 개인이 존재하는 이상 ‘탄소상쇄’라는 면죄부는 새로운 시장 형성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탄소중립’을 광고하며‘탄소배출권’을 싼 값에 사서 ‘탄소상쇄’를 원하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팔아 중간이득을 챙기는 ‘탄소상쇄기업’이 존재한다. 기후위기가 이윤 증식의 새로운 출로를 마련해 주고 있는 셈이다.
나무를 심어서 탄소상쇄? 진실은…
▲ 케빈 스미스는의 책 <공기를 팝니다> (이매진, 2010) 표지
탄소상쇄기업은 플랜테이션(단일종 대규모 조림) 프로젝트, 에너지효율 향상 프로젝트, 재생가능한 에너지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나무심기 프로젝트만 살펴보겠다.
나무는 심지 않으면서, ‘이미 심은 나무의 탄소배출권’만 구입해서 탄소를 배출하는 기업과 개인에게 판매하는 행위를 주목해보자. 탄소상쇄기업이 기후변화에 대한 현실적 대처에는 무관심하다는 것, 나무를 심는다는 친환경 이미지를 이용해 이윤추구에만이 관심이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설사 탄소상쇄기업이 실제로 조림사업에 참여한다고 할지라도, 내가 배출한 탄소를 상쇄해서 중립화시키기 위해 몇 그루의 나무를 심어야 하는지 현실적으로 정확히 계산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한다. 내가 돈을 주고 심은 나무가, 과연 내가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 발생시킨 탄소를 흡수해서 정말로 중립화시킬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또 나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탄소를 흡수하기 때문에 당장 발생시킨 탄소가 나무를 통해서 흡수되려면 기나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향후 10년간의 온실가스 감축이 중요한데, 나무심기는 현재의 긴급한 탄소감축에 효과적이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심은 나무를 잘 관리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무 심을 땅은 또 어디서 구할 것인가?
북반구 국가들은 남반구의 땅을 이용해 탄소상쇄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남반구의 지역공동체는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인도의 망고나무 플랜테이션 프로젝트만 해도 그렇다. 이 사업이 실패함으로써 지역주민들은 심각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지만, 기업이나 정부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우간다 엘곤산 국립공원 나무심기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이 사업으로 갈 곳 없는 지역민들이 강제로 내쫓기고, 벌목을 금지 당함으로써 생계를 꾸릴 연료인 땔감마저도 구할 수 없게 되었다.
저자는 이처럼 지역공동체와의 소통 없이 지역민을 배제한 채 이루어지는 탄소상쇄 프로젝트는 ‘탄소 식민주의’라며 비난한다. 북반구의 이익을 위해 배출하는 탄소를 상쇄하는 일에 현재 기후변화에 가장 책임이 적은 남반구 사람들이 시달려야 하니 말이다.
본격적인 탄소시장 가동을 앞둔 우리 사회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했나. 탄소상쇄를 위한 나무심기 프로젝트만 살펴보아도, ‘탄소상쇄’니, ‘탄소중립’이니, ‘탄소배출권’이니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신자유주의 경제는 기후위기조차 이윤증식을 위해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기후위기의 절박함에 동의한다면, ‘탄소상쇄’라는 면죄부에 현혹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는 탄소를 상쇄시킬 수 없다. 우리가 정말로 환경재앙을 피하고 싶다면, 정부, 기업, 개인이 지금 당장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그것이 진실이다.
이 땅도 ‘탄소상쇄’라는 자유시장경제의 물결을 피할 수 없다. 정부가 기업이 줄인 온실가스를 국민의 세금으로 사들이는 어이없는 일은 이미 벌어져 왔다. 이제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는 본격적 탄소시장도 가동될 참이란다. 또 자동차, 비행기를 타고 다니고 에어컨, 냉장고를 사용하는 현재생활을 포기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탄소상쇄기업은 스타 마케팅을 동원해 면죄부 판매에 열을 올릴 것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오염산업을 지원하고 기후위기를 가속화시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지옥의 문이 열린다면, 면죄부가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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