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경신의 도서관나들이(25) 지속가능한 도시, 과연 가능할까?

현재 전 세계 사람 절반 정도가 도시에 살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의 도시행렬은 앞으로도 계속, 더 빠른 속도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런데 세계 그 어느 곳보다도 도시집중현상이 두드러진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국토연차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2005년 이래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90%를 넘어섰단다. 놀랍지 않은가.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사는 것은 꿈이요, 도시에서의 삶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과연 개발의 산물인 도시가 자연친화적이고 자립적인 공간으로 누구에게나 살만한 곳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요시다 타로의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들녁, 2004)>과 박용남의 <꿈의 도시 꾸리찌바(이후, 2000)>, 이 두 권의 책을 통해 길 잃은 도시의 길찾기를 시작했다.
 
도시빈민의 복리 증진을 위한 꾸리찌바의 노력들
 
 

▲ 박용남의 <꿈의 도시 꾸리찌바(이후, 2000)>의 표지
 
꾸리찌바와 아바나도 처음부터 지속가능한 도시는 아니었다. ‘친환경적이면서도 경제적으로도 자립적인 도시’로 탈바꿈하면서 현실적 위기를 타개해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꾸리찌바와 아바나, 두 도시의 도시 자립에 대한 관점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꾸리찌바는 50년대부터 무분별한 개발, 급속한 인구증가, 자동차 증가로 인한 교통체증, 환경파괴와 오염, 슬럼화 등 개발도상국가의 전형적인 대도시 문제들로 몸살을 겪어왔다. 이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도시빈민의 복리를 증진시키고, 부자와 빈자가 함께 공생하는 통합정책을 펼쳐나간다.
 
우선 70년대부터 도시 개혁비용을 마련하고 빈민의 고용효과도 낳을 수 있는 공업단지를 조성한다. 공업단지로 인해 사람들의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도시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녹지 속에 공단을 건설하고 엄격하고 체계적으로 산업폐기물을 처리하는 등 환경문제를 유발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이 공단에서 취업한 사람은 전체주민의 5분의 1에 해당된다고 한다.
 
또 빈민가구에게 생계를 꾸릴 수 있도록 농사를 권장하고, 잉여농산물은 판매를 주선했다. 집이 필요한 사람은 건축가, 엔지니어의 안내와 도움을 받아 정부가 제공한 자재로 스스로 집을 지을 수 있다. 일명 ‘자조주택’이다. 대중교통이용에 있어서도, 여유가 있는 중심가 사람들이 외곽의 가난한 사람들의 교통비를 분담하는, 거리와 무관한 ‘단일요금제’를 택하고, 물, 하수처리 서비스의 경우는 차등요금제를 적용했다.
 
빈곤층 아이들이 교육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세 끼 무료급식이 제공되는 ‘전인교육센터’를 만들었다. 학교를 다닐 수 없는 가난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삐아’ 등과 같은 다양한 교육기회를 마련하고, 빈민의 취업기회를 확대하기 위해서 저렴한 수업료에 다채로운 배움이 가능한 버스순회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초등학교 옆 도서관인 ‘지혜의 등대’야말로 빈부와 무관한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동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하려는 의지의 실천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도시농업과 유기농업에서 대안을 찾은 아바나
 
그런데 아바나의 문제는 꾸리찌바처럼 소외계층인 도시빈민의 문제와 결부된 것은 아니었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서 국민 개개인의 소득격차는 크지 않았고, 온 국민이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혜택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히려 나라 전체가 갑자기 경제적으로 고립되어 전 국민이 절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데 있다.
 
쿠바는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소련의 붕괴와 미국의 경제봉쇄로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했다. 농약, 화학비료와 같은 화학물질, 근대화된 기계에 의존한 대규모 단작농업을 지향하면서, 사탕수수, 오렌지와 같은 환금작물을 수출하고 식량, 석유, 실생활 소비재 등은 수입에 의존해왔던 터라 식량자급률이 낮았다. 경제위기가 닥치자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진 아바나는 시민전체가 먹고 살 방도를 찾아야 했다.
 
 
▲ 요시다 타로의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들녁, 2004)>  표지
 
그러나 꾸리찌바처럼 농업에서 공업으로 전환하면서 대안을 찾을 수는 없었다. 유일한 탈출구는 도시를 경작하는 것이었다. 당장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집안의 마당, 베란다, 옥상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해서, 농사는 도시의 빈 땅, 쓰레기처리장까지 확대되었다. 10여년이 지나면서 시의 땅 40%가 농지로 전환되었고, 식량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으며, 도시농업은 7%의 고용창출 효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농약과 화학비료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유기농업을 시작했지만 96년부터는 국가차원에서 먹을거리, 안전한 식수를 위해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을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유기농법을 토양도 보전하고 자연생태계도 살리기 위한 지속가능한 농법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극한적인 상황 속에 강제된 아바나는 자립적 도시의 해법이 바로 농업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농업은 단지 가난한 도시인이 생계를 꾸려나갈 해법만은 아니라는 것, 도시 자체가 진정으로 자립적 기반을 확보하려면 농업이외의 다른 선택은 없다는 것을 이해한 것이다.
 
지구 온난화에 직면해 화석에너지 사용을 절대적으로 줄이는 것이 지구의 당면 과제임을 감안한다면, 모든 도시가 겪어내야 할 미래를 조금 일찍 체험한 아바나가 궁극적으로 ‘지구상의 모든 도시’가 나아가야 할 유일한 대안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국토 대부분이 국유화되어 있고, 교육과 의료가 무상이며, 빈부격차가 크지 않는 아바나를 자본주의 국가의 도시들이 과연 어떻게 뒤따를 수 있을지 는 의문이다.
 
미래세대를 위한 ‘푸른 도시’로
 
꾸리찌바와 아바나는 이처럼 현안 문제에 집중하면서도 자연환경을 지키려는 노력을 함께 함으로써 미래세대에 대한 배려를 잊지는 않는다.
 
도시교통부터 살펴보자. 꾸리찌바는 버스 중심의 대중교통체계를 확립하여 교통사고와 소음 및 대기오염을 줄였을 뿐만 아니라, 녹색교통인 보행과 자전거를 위해 자동차 도로를 축소하고, 지하도와 육교를 건설하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인도의 불법주차나 자동차의 보도주행도 거의 발견할 수 없다.
 
아바나는 화석에너지가 부족해서 대중교통조차 거의 운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전거가 교통의 중심이 되었다. 자동차 도로를 자전거 전용으로 바꾸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자동차 제한속도를 낮추었다. 오히려 일부 버스의 경우, 좌석을 없애 자전거전용 승합버스를 만들기도 했다.
 
또한 두 도시 모두 나무를 심고 공원을 조성하는 도시녹화사업에 집중한다. 꾸리찌바의 ‘그늘과 신선한 물’ 프로그램은 시(市) 차원에서 나무를 심고, 시민들이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도록 스스로 나무를 가꾸도록 하는 것이다. 또, 하천의 자연적인 흐름을 호수로 유도해서 홍수를 막았을 뿐만 아니라, 호수 주변을 공원으로 만들어 1인당 녹지가 52m²(유엔 권장 수치의 네 배 이상)에 이를 정도로 푸르른 도시가 되었다.
 
아바나의 ‘나의 녹화계획’ 프로그램은 96년에 시작했는데, 1인당 한 그루의 나무심기를 추진했다. 나무를 심고 싶은 곳이면 어디나 심을 수 있도록 했고, 건물이 무너진 곳에는 다시 건물을 짓지 않고 나무를 심었으며, 흙이 없는 도로에는 화분가로수를 두었다. 또 ‘수도 공원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유기농업을 활성화하고 숲을 복원해서, 시 중심에 거대한 녹지를 조성하기로 한다.
 
재활용 정신과 자연에너지 이용이 맺은 결실
 
물자 자체가 부족한 아바나에서 쓰레기를 재활용하고, 물자와 에너지를 절약하는 교육이 환경교육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꾸리찌바 역시 쓰레기에 대한 대중의식을 고양하기 위해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환경교육에 집중했다. 재활용쓰레기를 식품(쌀, 콩, 감자, 양파 등), 버스표, 교재 등으로 교환해주어 재활용 쓰레기 수거율을 높일 수 있었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어 꾸리찌바에서는 소각장을 짓지 않고서도 자체적으로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 꾸리찌바 시 직원들이 시민들이 가져온 재활용쓰레기를 식품으로 교환해주고 있다.   ©사진출처: 꾸리찌바 시정 홍보 홈페이지     
 
재활용 정신은 건물에도 그대로 이어져, 낡은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기보다는 수리해서 이용하는 쪽을 택했다. 꾸리찌바는 탄약고를 연극관으로, 본드공장을 창조성 센터로, 고저택을 문화센터 등으로 변모시켰고, 아바나도 낡은 건물을 카페나 식당으로 고쳐서 관광객을 유치해 외화벌이에 이용했다.
 
물론 꾸리찌바도 화석연료를 적게 쓰는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화석에너지를 이용하기 어려웠던 아바나는 바이오매스, 수력, 풍력, 태양열과 같은 자연에너지를 대체에너지로 적극 개발해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비록 쿠바의 1인당 에너지소비량이 선진국의 30분의 1에도 못 미친다고 하지만, 수입에 의존하지 않는, 스스로 생산해 낸 자연에너지로 바꿔 나간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갈 길이 멀지만 ‘길은 있다’
 
확실히 꾸리찌바와 아바나는 개발과 자연환경을 조화시키고, 현재와 미래를 함께 생각한다는 점에서 우리 도시와는 다른 방향에 있는 것 같다. 우리 도시는 자동차와 자동차 도로를 위한 도시, 자연하천보다는 하천의 직강화를 도모하는 도시,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기를 반복하는 도시, 나무도 녹지도 부족한 도시, 소각장 없이는 쓰레기를 처리하지 못하는 도시,  즉 반환경적이고 지속불가능한 도시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경우, 막대한 예산과 비효율적인 대토목공사에만 치중해 광역지자체들이 적자재정에 시달리고 있다.
 
지속가능한 도시들은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절약하면서 비용이 적게 드는, 효율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한다. 그러다보니, 비용이 많이 들고 첨단기술이 필요한, 전문가의 복잡한 아이디어보다는 적정기술을 이용한, 단순한 아이디어를 더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다. 꾸리찌바의 페트병을 본뜬 원통형 버스 정류장만 해도 그렇다.
 
이렇게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면서도 친환경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대안을 찾아갈 수 있는 데는 좋은 방향의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의지를 가진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지역주민의 능동적 참여를 이끌어내고 그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는 공직자 집단,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적극적인 시민의 참여가 함께 어우러질 때만이 가능하다. 결국 도시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 말이다.
 
우리 도시가 지속가능한 도시가 되려면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누구도 에어컨, 자동차, 감시카메라가 넘치는 도시, 동식물이 소리 없이 죽어가는 도시를 살만한 도시라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도시가 지금도 살 만하고, 앞으로도 계속 살기 좋은 곳이 될 길은 분명해 보인다. 도시를 떠날 수 없다면, 지금 당장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일다 / 이경신)

*여성주의 저널 일다는 광고 없이 독자들의 후원으로 운영됩니다. "일다의 친구를 찾습니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