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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신의 도서관나들이(22) 도시의 새들과 공존하기
▲ 참새 대신 도시의 텃새가 되어가고 있는 직박구리. © encyber.com
일요일 오전, 잔뜩 게을러진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도서관에 반납해야 할 책이 2권인데, 하루가 연체되어 이틀 동안 책을 빌릴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무더위를 핑계로 더는 미룰 수 없는 노릇이다.
도서관 안은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어 서늘하다. 에어컨 없이 지낼 뿐만 아니라 평소 선풍기, 부채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 내겐 다른 계절로 뛰어든 듯하다. 대출정지로 책을 빌릴 수도 없는 형편이니, 시원한 곳에서 책이나 읽고 가자 마음먹었다.
열람실 풍경은 피서 철이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 책을 고르며 서가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 이들을 바라보다 보니, 정체된 고속도로 위나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휴가나들이를 보내기보다 도서관에서 느긋하게 독서하며 더위를 식히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반가운 손님의 등장
그런데 새에 관한 책은 어디에 있는 걸까? 직박구리에 대한 궁금증이 발동해서이다. 작년부터인가, 낯선 새가 우리 베란다 화분걸이에서 쉬고 가곤 했다. 그 전에는 까치가 즐겨 머물다 가던 자리였다. 처음에는 그 새가 어떤 새인지 알지 못했지만, 곧 직박구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삐죽삐죽 머리 위로 솟아 있는 회색빛 깃털은 록밴드 멤버의 곧추세운 머리모양을 연상시키고, 양 볼의 적갈색 동그란 무늬는 수줍어 발그레해진 뺨을 떠올리게 한다. 또 몸을 덮고 있는 회갈색 깃털은 손질하지 않은 듯 어수룩해 보인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한번 보면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직박구리가 내는 ‘삐이, 삐이’ 하는 소리는 참으로 맑고 높아서, 집안에서 졸고 있다가도 그 소리가 들리면 얼른 베란다로 뛰쳐나가거나 창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무더운 오후, 정신이 번쩍 드는 경쾌하고 반가운 소리다.
이 반가운 새가 좀 더 자주 우리 집을 찾도록 유인책을 쓰기로 했다. 언젠가 다육식물을 밖에 내어놓았더니 노란 꽃대만을 똑똑 끊어먹었던 것이 생각나서 이번에는 노란색 꽃이 피는 돌나물을 내다 놓았다. 물론 그때 꽃대를 먹어치운 범인을 정확히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냥 직박구리로 추측해 보았을 뿐이다.
직박구리는 돌나물을 좋아할까?
▲ <한국의 야생조류 길잡이 산새>(신구문화사, 2008) 표지.
그런데 아쉽게도, 예상과 달리 직박구리는 그 돌나물을 조금도 건드리지 않았다. 게다가 돌나물 때문인지 방문횟수까지 줄어들었다. 돌나물을 싫어하는 것일까? <한국의 야생조류 길잡이 산새(신구문화사, 2008)>라는 책에서 ‘직박구리’에 대한 설명부분을 들춰보니까, “여름에는 곤충이 주식이고, 가을과 겨울에는 열매를 먹는다. 특히 감을 즐겨 먹는다”라고 되어 있었다. ‘아차!’ 싶었다.
그랬다. 2월과 3월에는 회화나무, 향나무 열매를, 4월과 5월에는 살구꽃, 매화꽃을, 여름에는 층층나무 열매를, 가을에는 말채나무 열매를, 겨울에는 팥배나무, 황벽나무, 산수유 열매를 즐겨 먹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동궐의 우리 새(눌와, 2009)>에서는 “경계심이 강해 사람이 주는 먹이를 먹지 않으며, 다른 새들은 잘 먹지 않는 회화나무 열매까지 먹는 등 환경적 적응력이 뛰어나다”라고 쓰여 있다.
이제야 직박구리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돌나물 따위는 도무지 관심거리도 될 수 없구나 싶었다. 더불어,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동네에 직박구리가 그토록 늘어난 까닭도 추측할 수 있었다. 산수유, 감나무, 매화나무 등의 성장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우리 아파트 도로가에는 회화나무 가로수가 조성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가까이에 산이 있고 동네에 공원이 많아 직박구리의 생활권으로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주로 한반도, 일본, 대만, 필리핀에서 서식하는 텃새, 직박구리의 개체수가 나날이 늘어가는 추세라서 당분간 우리 동네에서 직박구리 보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반가운 손님을 계속해서 맞이할 수 있다니, 즐거운 소식이다.
‘유해야생동물’로 전락한 도시의 새들
그런데 직박구리가 이 땅의 ‘유해야생동물’로 분류되어 있다는 이야기에 놀랐다. 바라만 보아도 기쁨을 주는 새가 해로운 존재라니!
그러고 보면, 도시의 회색빛 공간 속에서 우리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새들, 까치, 참새, 비둘기가 모두 ‘유해야생동물’이다. ‘장시간 무리지어 농작물, 과수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에서이다. 뿐만 아니라, 까치는 전력시설에 피해를 주고, 집비둘기의 경우, 배설물이 교량, 건축물 등을 부식, 균열시키고, 사람의 건강에 위협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미움을 받아왔다.
몇 년 전, 우리 아파트에서도 창으로 들어와 배설물을 쏟아내는 비둘기를 퇴치해야 한다고 주민들의 원성이 대단했다. 비둘기의 배설물에는 폐질환과 내수막염을 일으키는 클립토코커스 곰팡이균이, 깃털에는 폐렴과 천식을 일으키는 오염물질, 진드기, 이 등이 있다고 알려져 왔다. 최근 소식에 의하면, 폐렴을 일으키는 클라이디아 시타시균과 식중독을 일으키는 캄필로박터 제주니 균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작년에 와서야 비둘기를 유해동물로 지정하고, 모이 주는 행위를 금지시켰을 뿐만 아니라, 알, 둥지를 제거하거나 덫과 그물을 이용하는 퇴치작전을 구상 중에 있다. 하지만, 영국, 프랑스, 독일과 같은 유럽국가에서는 오래 전부터 비둘기와 전쟁을 치러왔다. 얼마 전 미국에서 록밴드 연주자 얼굴에 비둘기 배설물이 떨어져 공연을 중단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 있는데, 나도 프랑스의 한 도시를 걷다가, 비둘기 똥을 머리에서부터 완전히 뒤집어써 낭패를 본 기억이 있다.
가장 손쉽고 현명한 공존법은 ‘개입하지 않는 것’
▲ <동궐의 우리 새>(눌와, 2009) 표지.
이렇게 불편을 끼치고 건강에 위협이 되고 도시생활에 장애를 일으키는 새들, 이들을 더는 ‘평화의’ 비둘기로, ‘행운을 주는’ 까치로 친하게 지내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천적이 없어, 먹이가 넘쳐서 개체수가 증식된 것이 새들의 탓일까?
오히려 인간이 과도하게 이들의 삶에 개입하고, 또 인간의 편의를 위해 자연 생태계를 교란, 파괴해온 것에서 그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새들과 제대로 공존하는 삶에 대한 고민이 참으로 필요한 때이다. 둥지와 알 제거, 그물과 덫, 과태료로 완전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스스로 개체수를 조절할 수 있도록 인간이 이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가장 손쉬운, 현명한 공존법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일단, 이들에게 모이를 주지 않는 것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까치도 비둘기도 참새도 자연 속에서는 소중한 생명체이다. “먹이를 저장하는 영리함, 맹금류를 몰아내는 용감성, 철새들이 감이나 나무열매를 같이 먹으려 해도 공격하지 않는 너그러움을 지닌 까치”, 귀소본능이 있어 몸이 ‘나침반’이라고 불리는 비둘기, 비교적 지능이 높고 한 해 세 번까지 알을 낳는 번식력 왕성한 참새. 이들의 탁월한 능력이 인간으로 인해 빛이 바래고 있다.
나는 우리와 가까이 지내는, 도시에서도 살아남는 새들이 궁금해서 도서관의 책들을 더 기웃거려 보았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책이 그리 많지 않다. 다들 새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것일까? 몇 줄 되지 않는 설명들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창을 활짝 열어두고 내내 직박구리를 기다렸다. 직박구리가 화분받침대의 물을 맛나게 마시고 갔다는 친구 이야기가 생각나서, 돌나물에 물을 잔뜩 뿌려주었다. [저자의 다른 글보기] 왜 지금, 용산참사를 기억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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