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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오줌은 폐기물이 아니라 자원
이경신의 도서관 나들이(30) 수세식화장실, 이대로 괜찮은가?
                                                                                                    <여성주의 저널 일다> 이경신 
 
 
“인분을 퇴비로 만든다는 것은 바로 겸손의 실천이고, 겸손은 우리의 영혼을 강하게 만든다.”(조셉 젠킨스, 똥살리기 땅살리기, 제 4장 똥무덤)
 
도시인에게 수세식 화장실은 필수인가? 아파트촌인 우리 동네만 해도 집 안에서나 집 밖에서나 용변은 수세식 화장실에서 해결하는 것이 당연하다. 양변기가 설치되지 않은 곳은 있어도, 예전의 재래식 화장실은 찾아볼 수 없다. 공공시설의 공중화장실 조차 수세식이다. 등산로 입구에 설치된 화장실만이 예외다.
 
내 기억을 더듬어 보면, 과거 우리 집에는 재래식 화장실과 수세식 화장실이 모두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재래식 화장실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나는 도시인답게, 냄새나고 불편한 재래식 화장실보다는 산뜻하고 깔끔한 수세식 화장실을 내 일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수세식 화장실의 폐해 
 

▲ 조셉 젠킨스의 <똥살리기, 땅살리기(녹색평론사, 2004)> 표지  
 
수세식 화장실에 익숙한 나 같은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조셉 젠킨스의 <똥살리기, 땅살리기(녹색평론사, 2004)>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아마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
  
우리가 수세식 변기에 배변을 하면 똥오줌을 씻어 내리기 위해 매번 18-20리터의 깨끗한 물을 소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때 배설물은 물과 섞이면서 액체 폐기물로 전락한다. 즉, 물과 인분 자체는 자원인데, 수세식 화장실은 이 필요한 자원을 ‘인간의 생산 및 소비활동에 불필요한 물질’로 바꾸는 놀라운 장치인 셈이다.
 
그리고 우리가 날마다 쏟아내는 이 폐기물, 우리는 이것을 비용을 들여 다른 사람들에게 처리하도록 떠넘기기까지 한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폐기물이 오수관을 통해 땅에 묻힌 정화조로 가건, 아니면 오수처리장으로 가건 심각한 환경오염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저자는 정화조가 병균을 퍼뜨리고 땅과 지하수를 오염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화조는 배설물에 섞여 있는 병원균을 사멸시키도록 설계된 것이 아니다. 단순히 배설물을 수거하여 고형물을 가라앉히고 혐기적으로 일부 분해시킨 다음 흙 속으로 누출시키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정화조는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 바이러스, 원생동물 및 장내 기생충을 감염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스템이다.”(같은 책, 제 5장 똥의 하루)
 
이처럼 정화조는 세균, 바이러스, 기생충을 감염시킬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사용하는 세척제, 살균제 등으로 인해 유기화합물까지 땅 속으로 누출시킨다. 게다가 인구증가로 정화조가 날로 늘어남에 따라, 땅이 오염을 정화시키는 데 힘이 부친다.
 
또 오수처리장에 도달한 액체 폐기물은 고형물 침전단계를 거친다. 고형물은 농축, 탈수시키는 과정에서 기체 상태로 대기로 날아가는데, 이때 메탄가스도 방출된다. 남은 슬러지는 태우거나 건조시켜 매립장에 묻거나 바다에 버린다고 한다. 액체는 염소처리해서 방류한다.
 
그러나 하수처리장이 노후화되거나 용량이 초과되거나 갑작스레 비가 쏟아진다면, 오염된 물은 언제든지 강과 바다로 흘러들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형오염물질만 침전시킨 채 액체를 그냥 흘려보내 강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한 사례가 있다.
 
염소소독도 걱정스럽긴 마찬가지다.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염소는 독성이 강해 아주 위험한 물질이다. 폐수 처리에 이용한 염소가 수생생물의 생식, 이동 등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단다. 뿐만 아니라, 폐수와 식수 모두 염소소독을 하고 있어, 염소사용량이 날로 늘어나니 그만큼 다이옥신도 증가될 수 있다고 한다. 다이옥신이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두려운 일이다.
 
그런데 수세식화장실을 전 세계 누구나 사용할 수는 없다는 명백한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수세식 화장실에서 깨끗한 물을 낭비하며 우아하게 용변을 보고 있는 동안, 어떤 사람들은 마실 물이 없어 고통 받는 것이 이 지구상의 현실이다. 당장 마실 물도 없는 사람들에게 수세식 화장실은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러면, 전 세계 사람들이 물을 공평하게 잘 나누어 가진다면 어떨까? 누구나 수세식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을 만큼 물이 충분한가? 역시나 이 지구에는 그 정도로 물이 넘치진 않는다. 물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생태계를 오염시키는 수세식 문화는 지속 불가능한 것이며, 인류의 불평등을 인정할 때만이 가능한 폭력적인 문화라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인분을 퇴비로 만들자 
 

▲ 인분은 퇴비로 이용된다. 귀농한 두 여성들의 삶을 그리고 있는 연재만화 <전원일기> 중.     © 권경희, 임동순 
 
그렇다면, 지속가능한 인분처리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우리에게 인분을 재순환해서 퇴비로 사용하자는 제안을 한다. 여기서 퇴비란 유익한 미생물이 함께 붐비며 살아가는 흙을 말한다. 찻숟가락 하나 분량에도 만 가지 종의 세균이 6~8억 마리, 곰팡이 5천 종, 원생생물 천여 종, 선충류 백여 종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다양한 생명체가 바글거리는 흙 말이다. 이렇게 미생물 숫자가 많고 종이 다양한 흙일수록, 병원균, 기생충, 바이러스 등을 사멸하는 효과도 크다고 한다. 놀랍게도 미생물이 가득한 퇴비는 살충제, 제초제, 폭약, 경유 등 유독성 화합물도 분해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는 인분만이 아니라 유기물 쓰레기라면 모두 퇴비화 시킬 수 있다고 단언한다. ‘유기물 쓰레기’란 사람이나 가축의 배설물, 음식물 쓰레기, 농산물 폐기물, 정원 쓰레기, 낙엽, 동물 사체 등을 뜻한다. 자원으로 재순환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해한 독성물질을 포함하고 있는 산업폐기물과는 구분될 수 있다.
 
오늘날 산업이 발달한 서유럽 국가에서는 유기물쓰레기가 전체 폐기물의 3분의 1,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남미의 가난한 나라에서는 절반에서 3분의 2정도라고 한다. 만약 유기물 쓰레기를 제대로 재순환시킬 수 있다면, 도시의 골칫거리인 쓰레기 문제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우리에게는 인분을 퇴비로 이용하는 것이 그리 낯설지 않다. F.H.킹이 <4천년의 농부(들녁, 2006)>에서 한국, 중국, 일본의 순환농법의 지혜에 관해 언급하고 있듯이, 우리 조상들은 이미 인간과 동물의 배설물을 자원으로 생각했고, 질소, 칼륨, 인산을 낭비하지 않고 땅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도시화 물결이 거세지면서 배설물은 더는 자원이라기보다 전염병을 야기할 수도 있는 불결한 것, 불필요해서 없애야 하는 폐기물이 된 것이다.
 
도시농업에 해법이 있다
 
이렇게 도시가 자원으로서 배설물의 가치를 잊게 된 것은 도시로부터 농업을 축출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도시농업이 다시 자리 잡게 된다면, 잃어버린 우리의 지혜를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도시인도 먹을거리를 자급자족한다면 당연히 거름도 자급자족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수세식 화장실이 더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자원을 돈 들여 버리는 바보는 없을 테니까. 그때는 도시의 땅도 영양을 되찾아 원기를 회복할 것이다.
 
제 똥을 챙겨 버스타고 주말농장을 찾는 도시인이 지금은 유별나고 엉뚱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도시가 언제까지 깨끗한 물로 똥오줌을 씻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라면, 그 사람은 한발 앞서 지혜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인은 자연으로부터 먹을거리를 구하듯, 제 몸에 더는 필요 없어 배출하는 것을 다시 자연에게 제대로 되돌려줘야 한다는 것을 놓치고 있다.
 
도시인인 나도 아직 겸손해지긴 요원한 것 같다. 내가 쏟아내는 배설물을 당장 아파트 내에서 어떻게 자원으로 바꿔낼 수 있을지 아직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수세식 화장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 아니 당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한 것에 안도할 따름이다. 도시의 허약한 영혼들은 다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 (일다/ 이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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