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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몸 이야기 다시 읽기: 여성 몸에 대한 권리 존중돼야 
 
몇 살이었는지도 모를, 아주 오래 전에 본 한 TV 코미디 프로를 기억한다. 내용은 이렇다. 주르륵 서있는 코미디언들 사이 어떤 대화가 오가고 각각의 말 한마디로 서열이 결정된다. “난 집에서”라고 말했던 사람의 서열이 가장 낮고, 그 다음이 “동네병원”, 그 다음이 그 보다 더 큰 단위의 병원, 그 다음 무슨 유명한 병원의 이름을 댔던 사람이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으스댔으나, 맨 나중 사람의 “난 제왕이야”라는 말 한 마디에 모두 고개 숙여 그에게 “형님”을 외쳤다.

그 프로그램을 함께 보고 있던 나의 아버지가 덧붙인 말씀은 “우리 딸도 빠지지 않지. 대학병원에서 태어났으니”였다. 그 때 난 별로 웃기지 않았던 그 토막극에서, 마치 한 자리 인정 받은 듯한 으쓱한 기분을 느꼈었다.

그만큼 병원에 대한 ‘판타지’는 견고한 것이라서 어느덧 병원 아닌 곳에서의 출산은 상상할 수 없게 돼 버린 듯 하다. 하물며 임산부 입장에서는 의사의 말에 모든 권한을 쥐어줄 만큼 의존적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나 역시 임신을 하고 가장 먼저 병원을 찾았다. 임신을 확인해준 의사의 태도는 직업인으로서 믿음직스럽게(?) 철저히 사무적이었다. 그리고 연이은 검사와 진찰을 주관하는 의사의 태도는 ‘무시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지고’ 일방적이었다.

자료 사진입니다.

아이를 낳을 것이란 확인이 있자마자 줄을 이었던 각종 검사들에 대해서 나는 어느 정도의 필요와 효용을 믿는다. 그러나 문제는 임신의 주체인 내가 판단하고 결정하기 이전에 당연하다는 듯 강요되는 것들이었다. 대부분의 검사들은 아이를 임신한 내가 검사를 받을 것인지 받지 않을 것인지 생각할 시간은커녕, 하물며 검사의 내용에 대한 설명은커녕, 검사가 시작된 후 ‘지금 **검사에요’라는 간호사의 짧은 코멘트만을 달랑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전부다.

그러던 어느 날 문제는 터졌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지 가능성을 살피는 검사는 임신 6개월이 지나서야 (아이에게 문제가 있을 가능성에 대한) 최종 근사치를 알 수 있으며, 근사치가 높다 한들 치료로서의 의학적 조치는 불가능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게다가 검사는 사전동의서까지 갖추도록 되어있었는데, (그래서 그나마 어느 정도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나로서는 사전동의서란 과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 검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이와 나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지 다양한 고민을 진행하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의사에게 말했다. 임산부인 내가 내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그런데 의사는 돌연 얼굴을 붉히며, 지금껏 고수한 침착하고 사무적인 태도에서 갑작스레 돌변해 격앙되고 감정적인 목소리로 “그런 식이라면 앞으로 진찰을 거부하겠다”는 대답을 던졌다.

환자가 의사에게 부여하기로 되어있는 절대적 권위에 순종하지 않아서였을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는 환자가 아닌걸. 나는 감기에 걸린 것이 아니라 임신을 한 것이었다. 임신을 하고 나서 도서관에 있는 산부인과 책을 모조리 빌려다 읽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도 무엇이든 알아야겠고, 준비해야겠기에 산부인과 책들을 읽기 시작했으나, 거기엔 온통 이상증세에 대한 것들 뿐이었다.

임신을 질병 정도로 치부하는 사회인식 속에서 임신의 주체인 여성 몸에 대한 권리는 멀어져 간다. 딱딱하고 이리저리 돌덩이처럼 만져지는 배 때문에 한 숨 눈을 붙이지 못한 밤엔 날이 밝는 대로 병원부터 찾을 만큼 나는 내 몸을 몰랐고, 의사가 필요했지만 의사에게 원한 것은 도움이었지, 내 몸에 대한 전권행사는 아니었다.

결국 나는 병원 다니기를 그만하고 조산원을 찾았다. 그네분만, 수중분만, 라마즈분만법 등등 출산의 권리가 이야기되기 시작하고 있어서 그런지 조산원 원장이 매일매일 아이를 받아야 할 만큼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힘이 됐다. 만 서른을 넘긴 초산이었기 때문에 병원이었으면 응당 ‘제왕절개 감’이었겠지만, 양수가 터진 지 이틀이 될 때까지 “이번 주 안에 나오겠네. 새 식구 맞을 마음의 준비해. 엄마가 씩씩해서 잘 할 수 있을 거야” 라는 지지 속에서 자연분만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시 그럴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막상 진통이 시작되고 불안하면 “제왕절개 해달라”고 외칠 수도 있는 일. 그러나 나는 용기가 있었다. 그 누구보다도 내가 내 몸을 잘 알고 있다는 용기. 그것이 임산부를 대상화시키는 병원, 의사의 권위보다 중요했다. (이유지현) *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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