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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칼럼’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동성애자 여성의 기록을 담은 ‘Over the rainbow’ 코너를 통해, 필자 박김수진님이 가족, 친구, 동료,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레즈비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이 칼럼은 격주로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Over the rainbow’ 인터뷰칼럼(7)

스웨터 만드는 공장, 김밥집, 갈비집, 보쌈집, 해물탕집, 텔레마케팅, 빵공장의 식빵-패스츄리 라인, 국어와 수학 과외, 휴대폰 제작공장에서 품질관리 및 포장, 영화관 수표-매표, 우체국 우편발송 및 세금지로 발송업무, LCD 기판 공장, 재고정리 의류판매점, 세무서에서 종합소득세 신고담당, 학교 근로장학생, 기업체 행정서무, 팬시 및 장난감 등 일일판매, 컴퓨터 오락실, 성인오락실, 대리운전 상황실, 복조리 판매업, 스티커 및 포스터 부착업무, 버거킹, 전단지 배포 등.
 
위 업종과 업무들은 [인터뷰 칼럼]의 일곱 번째 손님인 명개님이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졸업 직후까지 했던 아르바이트 목록입니다. 길지 않은 시간에 명개님이 해온 아르바이트 종류와 수가 50개에 육박한다는군요. 놀라운 일입니다.
 
3월 첫째 주 일요일 저녁,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명개님과 그녀의 파트너 우피님 집에 방문하였습니다. 우피님이 만들어주신 맛있는 떡볶이를 먹으면서 인터뷰를 시작하였습니다. 떡볶이에 눈이 멀어 그랬는지 제가 나름대로 정해놓은 '공식질문', “왜 레즈비언인가요?”라는 질문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만 잊어버린 것이죠. 저는 곧장 어떤 이유로 저렇게 다양하고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인지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용돈벌이를 하기 위해서 시작했어요. 엄마가 스웨터 공장에서 일하셨는데, 일손이 부족하다 해서 도와드릴 겸 일했죠. 부모님이 용돈을 주시긴 했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그 돈으로는 살 수가 없고, 대학 들어가면서부터는 부모님에게 기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본격적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대학 2학년 때부터는 용돈벌이가 아니라 내 학비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죠."
 
명개님의 부모님은 대학 2학년이 되는 시점에 이혼했는데,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었고 가족 성원들의 관계가 악화되는 시점이기도 해서, 명개님은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완전히 독립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르바이트의 시작은 '용돈 벌이'였지만 점차 '독립'을 위한 경제활동이 된 것이지요. 하지만 그도 잠시, 명개님은 가족의 생활비를 지원해야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래서 저렇게도 많은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엄마는 이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일하던 곳에서 일을 계속 하기가 어려워졌어요. 나쁜 소문이 돌고, 남자들이 치근거려서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되었어요. 더 근본적인 이유는 아빠는 요양원에 계시고, 엄마 건강도 매우 안 좋아져서 경제활동을 전혀 못하게 된 거죠. 그래서 언니가 아빠를 책임지고, 내가 엄마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된 거에요."
 
경제적인 문제와 관련해 가장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웠던 시기는 명개님이 공장에서 일했던 때였다고 합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버는 50만~60만원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공장에 들어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는데요. 다른 아르바이트와 달리 공장에서는 식사도 제공해주고 주거를 할 수도 있으니, 의식주 비용이 들지 않아 그저 일만 열심히 하면 버는 돈을 고스란히 모을 수 있었다는 얘깁니다.
 
"내가 배웠던 것들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때 하기 시작했어요. 지금에야 진실일 수도 있고,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고 생각하면서 괴로워했죠. 나만 이렇게 사는 것 같다는 생각에 많이 괴롭기도 했고.
 
그런데 되게 웃긴 일이 벌어졌어요. 공장에서 일하던 시기에 나는 대학친구들을 보며 좌절감을 많이 느끼곤 했는데, 동시에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다른 동료들을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예요. '나는 너희들처럼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공장으로 취업한 애가 아니라, 대학 재학 중 휴학하고 그 기간에 잠시 일하는 사람이니 나는 곧 여기를 나갈 사람이야'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스스로도 그런 마음을 가지는 내 모습을 보면서 정말 창피했고, 내가 굉장히 간사한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당시에 상대적인 빈곤과 상대적인 부유함을 동시에 느끼면서 대단히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웠어요."
 
명개님이 느꼈던 그 혼란과 고통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정리되었다고 합니다. 자신보다 더 불행할 것 같아 보였던 공장 동료들은 매일매일 즐겁고 행복하게 살더랍니다. 동료들은 퇴근 후 친구들과 모여 수다 떨고, 놀러 나가고, 그렇게 즐기면서 생긴 에너지를 잘 비축해서 일하는 시간에 쓰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명개님은 '매일매일 너무너무' 괴롭기만 했답니다.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 생각하고 있구나', '행복하게 살 방법을 찾아야 겠다', '행복의 기준이 돈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얼마가 있어야 행복한 것인지, 무엇이 행복인지는 상대적인 것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답니다.
 
명개님은 '돈을 버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고, '행복을 사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돈을 버는 것'을 목적으로 삼게 되었다고 해요. 예전에는 갖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제 값을 주고 다 사야하는 줄로만 알고 그 돈이 없다는 것에 속상해했는데, 이제는 그만큼의 돈을 지불하지 않고 그 물건을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고, 연구한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인 상실감이나 좌절감을 느낄 일도 줄었다고 해요. 돈이 부족해서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것은 시선을 조금만 옮기면 훨씬 적은 액수로 살 수 있다는 얘깁니다. 뭔가 기가 막힌 방법을 명개님이 알게 된 것 같은데, 조만간 그 기술을 전수받아야겠습니다.
 
명개님은 돈에 관해 큰 욕심은 없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가끔 명개님에게 "네 인생은 네 인생이고, 부모님 인생은 부모님 인생이니 분리해서 생각하라"고 충고하기도 한다는데, 명개님은 부모님을 저버릴 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저 부모님 생활비를 지원해드리고, 명개님 스스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돈만 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돈을 잘 쓰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큰돈이 들어오는 것도 두려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명개님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집을 사고, 좋은 차를 타고 하는 것들이 아니라 명개님 자신에게 투자하는 돈이라고 합니다.
 
"학자금융자, 엄마 수술비, 아빠 병원비, 내 생활비 등 해서 현재 빚이 1천2백만 원이에요. 이 빚을 갚기 위해서 나는 지금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1천만 원이라는 돈이 있다면 그 돈을 가지고 전셋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나한테 투자해야하는 상황이죠. 지금처럼 부모님 생활비 보조해드리고, 나 살고 하면서 빚을 갚을 수가 없어요. 지금 당장은 기존에 해왔던 만큼도 벌지 못하지만, 이 시간이 지나면 내가 조금 더 벌 수 있는 때가 올 것 같아요. 그래야 생활도 유지하고 빚도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난 2월 명개님은 오랜 아르바이트 생활과 직장생활을 마감했어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 외국에 나가 활동도 하고 경력을 쌓기 위해서입니다. 명개님 자신을 위한 투자 개념으로 이러한 진로를 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기간이 단순히 명개님 자신의 경력을 쌓는 기간만은 아닙니다. 오랜 시간동안 가족과 본인의 생계 문제로 시달렸던 상황에서 잠시 벗어나 있을 시간이,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사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명개님이 외국에서 활동하는 특정 기간 동안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경제적으로 가족을 지원할 수 없을 겁니다. 이 점이 명개님의 선택에 큰 어려움을 주었을 테고, 바로 이 점에서 명개님은 용기를 냈어야 했을 겁니다. 명개님의 용기와 결단에 진심으로 박수를 쳐드리고 싶습니다.
 
명개님에게 '빈곤과 레즈비언'에 관한 생각을 물었습니다.
 
"레즈비언 정체성은 자연스럽게 그냥 얻어지는 정체성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자각하게 되는 정체성인 것 같아요. 내가 누구의 딸이고, 내 나이가 몇이고 하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정체성들인데 반해, '나는 페미니스트이다' 라든가 '나는 레즈비언이다'라는 것들은 내가 자각을 해야만 얻어지는 정체성이잖아요. 내가 의식해서 얻은 정체성인 만큼 그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을 만드는 데에도 그 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레즈비언 중에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이성과의 결혼을 선택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잖아요?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내가 레즈비언으로 살기 때문에라도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주변인들 중에 나이는 들어가고, 경제적으로 계속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고, 연애는 생각처럼 잘 안 되고 하는 과정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자기 정체성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쉬울 리 없죠. 그래서 노력하려고요. 내 정체성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해요."
 
명개님의 얘기는, '레즈비언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더 들어보죠.
 
"하루에 몇 천원 쓰기도 너무너무 빠듯할 때, 사람들이 '카페에나 가자!'고 말하면 나는 커피 값이 부담스러워서 자리에 함께하지 못할 때가 많았어요. 레즈비언 바(bar)에 간다고 하면 1만원, 2만원은 내야하는데 내가 충당할 수 없으니 어울릴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나는 '바쁘다'고 변명하고 함께 하지 않으니, 레즈비언 지인들이 날더러 '너, 레즈비언 아니지?'라고 묻는 사태까지 벌어지는 거예요.
 
연애를 할 때 더 곤란한 상황이 연출되고는 하죠. 연애하면 돈 들어갈 일이 많으니까요. 연애를 하면 기본적으로 어딘가에 가서 앉아 있어야 하고, 공원 걸어 다니고 시원한 은행에 앉아 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그럴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영화도 봐야하고, 차도 마셔야 하고. 내 경제 사정이 이러하니 애인에게 '우리 이런 것 하자, 저런 것 하자'고 할 수도 없고, 애인이 하자고 해도 마음대로 만날 수조차 없을 때가 많았어요. 이렇게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돈이 든다 이 말이죠."
 
한 번은 사귀던 사람이 명개님의 경제적 상황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용돈을 빌려 주었다고 합니다. 가지고 있는 돈의 대부분은 집으로 들어갔고, 수중에 있는 돈을 써버리면 휴대폰 비용, 등교 시에 필요한 차비 등 다음 달 생활비에 문제가 생기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애인으로부터 받은 용돈으로 같이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데 그렇게 마음이 불편하더랍니다. 돈을 써도, 안 써도 서로 눈치 보고 불편한 그런 상황 말이죠.
 
"내 스스로가 너무 비참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하면서까지 연애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보니 '나 바빠', '오늘 피곤해' 하면서 만남을 줄여나가게 되고 하는 일들이 잦아지는 거예요."
 
명개님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 잠시 직장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기도 했는데, 곧 직장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학 졸업 전에는 낮에는 학교에서 수업하고, 밤에는 일을 하고 하는 생활 때문에 연애를 생각할 수 없었다고 해요. 제가 알기로도 명개님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싱글이었어요. 연애에 정말 무관심한 친구로 보였죠. 저는 그저 명개님이 사람에게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사람에게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어느 순간에 '이렇게 사는 건 진짜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언제까지 하루 12시간, 14시간씩을 일하면서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직장 생활만 하니 저녁 시간 여유도 생기고, '그래. 이제는 연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더군요. 그 즈음에 우피를 만났죠."
 
제가 아는 한, 명개님과 우피님은 '환상의 짝꿍'입니다. 성격은 참 다른데, 그 다른 성격이 어찌나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조화를 이루는지요. 명개님에게 부족한 부분을 우피님이 채워주고, 우피님에게 부족한 부분을 명개님이 채워주는 보기 드문 '찰떡궁합 커플'이라고 소개하고 싶군요.
 
그런데 둘 사이에도 명개님의 경제적 상황에 기인한 갈등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물었어요. "과거에 비해서 등록금을 내야 한다거나 하는 등의 지출이 줄어든 상황이어서, 명개님의 경제 상황이 훨씬 나아졌기 때문에 우피님을 만날 수 있는 여유도, 용기도 가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여전히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을 텐데, 명개님의 경제적인 상황이 둘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고는 하나요?"
 
"우선, 우피는 돈을 빨리 많이 벌어서 집을 사야한다는 분명한 욕구가 있는 사람이에요. 반면에 나는 돈을 많이 벌어서 집을 마련하는 것에 관심이 없죠. 뚜렷한 차이에요. 또 아무래도 우피가 나보다 수입이 훨씬 많고, 내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우피가 생활비 등 지출도 더 많이 하는 상황이에요. 7:3, 6:4 정도 비율이죠. 앞으로 얼마간은 내 수입이 전혀 없으니까 우피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고. 언니는 내게 '한 푼도 내지마'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나는 가끔 눈치를 보게 되는 부분들이 있지요. 이를테면, 언니가 여행을 하자는데 나는 상황이 안 되니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여행 싫어'라고 말하면서 버틴다거나, 사야 할 물건이 있을 때 '다음에 사자'라고 하거나 하는 상황들. 결국에는 언니가 돈을 더 많이 내면서 여행을 하거나 물건을 사거나 하지요."
 
한 번은 명개님과 우피님이 다툴 일이 있었는데, 집밖에 있던 명개님에게 우피님이 "너, 그냥 네 집에 가. 집에 들어오지 마!"라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이후에 우피님이 '홧김에 한 소리'였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이었지만, 그런 뜻은 전혀 없었다'며 사과를 했대요. 우피님이 사과를 하지 않았어도 명개님은 애인이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이렇게 해석되더랍니다. '나는 엄마 집에도, 아빠 집에도 갈 수 없는 상황인데 어쩌나. 그래. 여기는 내 집이 아니라 언니 집이지. 나는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는 사람이구나'.
 
정말 가끔 듣는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들이 있기는 하더라고요. 명개님이나 저처럼 파트너 집에 얹혀사는 상황에서 둘이 싸움이 나면, 집주인인 파트너가 상대방에게 "너, 나가!"라고 하는 상황들 말이죠. 거 참, 불미스러운 일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아는 게이 오빠가 한 명 있는데, 그 분은 정말 쫓겨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야말로 '불미스러운 일'일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지나친 오해와 불신은 없어야 할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글을 이렇게 쓰다 보니 우피님이 다소 나쁜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겠는데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우피님은 그 일에 관해 진심으로 사과했고, 전에도 지금도 명개님의 상황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그 짐을 함께 짊어지려고 애쓴답니다. 명개님이 지난 2월에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우피님은 명개님에게 "그동안 열심히 일했다. 당분간만이라도 아르바이트 자리 구하지 말고, 이 돈으로 그저 편안하게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선물로 축하 퇴직금을 주었다고 합니다. 감동적인 사연입니다.
 
명개님은 제가 아는 레즈비언 중 가장 성실하고 씩씩하고 강한 친구입니다. 앞으로 명개님의 인생에 어떤 어려움이나 즐거움의 문이 열릴 지 알 수 없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명개님은 잘 이겨나갈 위인이라는 확신도 있습니다. 저는 멀지 않은 곳에서 언제나 명개님의 선택을 응원하고 지지하면서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다음 주에 명개님, 우피님과 함께 평창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맑고 밝은 4월에 평창에서 속 깊은 대화, 이번에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더 나누고 와야겠습니다.
ⓒ[일다] 바로가기 www.ildaro.com

[Over the rainbow] 커밍아웃, 긴 터널을 빠져 나온 엄마와 나 | 파트너와 나, 우리가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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