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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rainbow’ 인터뷰칼럼(6) ‘인터뷰칼럼’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동성애자 여성의 기록을 담은 ‘Over the rainbow’ 코너를 통해, 필자 박김수진님이 가족, 친구, 동료,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레즈비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이 칼럼은 격주로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인터뷰 칼럼의 여섯 번째 손님은 전라남도 광주에 거주하고 있는,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는 레즈비언, 서현님입니다.

 
몇 년 전에 제가 활동하던 단체인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서 ‘여름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열었는데요, 당시 ‘여성학 공부모임’을 운영하면서 처음 서현님을 만났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여성학 공부모임을 열었는데, 전남 광주에 거주하던 서현님은 이 모임을 참여하기 위해 매주 서울에 있는 상담소 사무실을 찾아와주셨어요. 회사 일로, 집안일로, 개인적인 일들로 매우 바쁘셨을 텐데, 그 먼 거리를 달려와 주신 것이지요. 그래서 저도 서현님이 뿜어주신 에너지 덕에 모임 준비를 더욱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서현님과 저는 상담소에서 맺은 인연을 ‘30세 이상 여성 이반모임’ <그루터기>에서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서현님이 <그루터기> 정기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온 2월 말에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 자리에는 서현님과 저 외에도, 제 파트너인 S씨와 친구인 명개님, 우피님이 함께 자리했습니다. 중간 중간 서현님에게 궁금한 것이 떠오르면 질문도 던지고, 이런저런 의견도 나눠달라고 세 분께 부탁 드렸어요. 다섯 명이 함께 한 인터뷰라고 할 수 있죠.
 
아, 나는 레즈비언이다! 자연스러운 깨달음
 
공식 질문을 던졌습니다. “언니는 왜 레즈비언인가요?” 서현님은 저의 이 질문이 이상하게 들린다고 했습니다.
 
“그 질문, 이상하게 들려요. 식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이성애자들한테 ‘너는 왜 이성애자야?’ 라고 묻는 것이 이상한 것처럼, 내게 ‘너는 왜 레즈비언이야?’ 라고 물으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가 왜 레즈비언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나는 레즈비언인가보다’ 생각하던 그 순간에도 ‘나는 레즈비언이구나’, ‘아, 나는 레즈비언이다’ 라고 생각했지, ‘왜 레즈비언일까’ 생각해보지는 않았거든.”
 
서현님은 20대를 스스로 ‘이성애자’라고 철썩같이 믿고 살아왔다고 해요. 아, 참고로 서현님은 30대 후반입니다. 서른이 되기 전까지 이성애자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서현님은 30대 들어 여성인 상대와 교제를 시작하면서, 이성애자로 살아온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자 친구를 만나는 과정에서 늘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무엇인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항상 가지고 있었으니 만남을 지속하기가 어려웠죠.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상대가 결국은 남자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기본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판’ 자체가 다르다고 할까. 너무 다른 점이 많아서 소통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이를테면 남자 친구보다는 여자 친구 앞에서 나는 더 편해요. 내 모습을 드러내는데 있어서도 꾸밈이 없이, 나를 포장하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러운 경험을 여자 친구를 만나면서 처음 경험해본 것 같아요. 서로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경우에도 남자 친구가 요구하는 것과 여자 친구가 요구하는 것들의 무게가 다르고, 여자 친구와의 관계에서 더 가벼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어요. 결국 아주 간단하게 정체화했지요. 아, 나는 레즈비언이다!”
 
생각해보니, 저도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치른 후 ‘이성애자로 살겠다’며 남자 친구를 사귀었던 적이 있네요. 무려 두 번이나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남자 친구와의 관계가 정말 불편하더라고요. 이를테면 영중이라는 남자 친구는 만나기만 하면 모든 음료와 식사비용을 자기가 내겠다고, ‘그런 것은 남자가 하는 것’이라며 막무가내로 굴었죠. 성민이라는 남자 친구는 사귀기로 한 날부터 그렇게 뽀뽀를 해달라고 졸라서 큰 마음먹고 한번 뽀뽀를 해주었더니, 만나기만 하면 뽀뽀를 하자고 덤벼들더라고요. 어찌나 불편했던지 말도 못해요.
 
물론 내 경우에는 애초에 남자 친구가 불필요했던 사람이 ‘이성애자가 되기 위해서’ 남자 친구를 만난 경우였으니 모든 것이 불편하고 이상하게만 느꼈던 것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성애자로 정체화 한 친구들과 지인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확실히 남자와 여자가 다르기는 한가보더라고요. 아, 지난 인터뷰에서 결혼한 제 동생도 그런 말을 했어요. “남자랑 여자랑은 정말 달라. 그것 맞추는 데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릴 것 같아. 그런 면에서 동성을 만나면 더 편할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긴 해.” 뭐, 이에 관해서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리라 생각해요.
 
서현님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했고, 급기야 ‘너는 왜 레즈비언이야?’ 라는 질문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본인이 아무리 레즈비언 정체성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도, 사회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지요. 이에 관한 서현님의 생각을 들어보았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지. 걔네들이 이상한 거에요. 사람들은 ‘다른 것’을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아요. 끼리끼리 노는 것을 좋아하잖아. 그런 마음이 깔려있는 것 같아요.”
 
‘언니는 왜 레즈비언이에요?’ 라는 질문 외에도 ‘레즈비언이 뭐냐’, ‘사랑이 뭐냐’ 등을 묻기도 했는데, 단답형으로 시원시원하게 답해주셨죠. 서현님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저는 잠시 엄마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줄 착각했어요. 어찌나 답변을 단순 명료하게, 시원시원하게 하시던지요.
 
“지역은 너무 좁아서…” 광주와 서울을 오가다
 
공식 질문에 관한 답을 들었으니, 본격적인 인터뷰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말했죠. “언니를 전라남도 광주 대표 레즈비언이자, 남한 싱글 레즈비언 대표로 이 자리에 모셨어요.” 모두가 웃었습니다. 웃는 와중에 서현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지요. “굉장히 뉘앙스가 불쌍하고,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얘기”라고요. 저는 광주에서 레즈비언으로 살기는 어떠한지 늘 궁금했어요. 서울 외 지역에서 만난 레즈비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거든요. “여긴 너무 좁아서….”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싶었죠.
 
“가족들 중 언니들, 동생에게 커밍아웃을 하기는 했지만, 광주에서 나는 철저하게 이성애자로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워낙 지역이 좁기 때문에 여기저기 커밍아웃을 하고 다니는 것이 어려운 일이에요. 그냥 온 동네 커밍아웃하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하지만, 이후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면 아찔하기도 해요. 커밍아웃 후에 내가 겪어야 할 일들보다는 가족들이 겪을 일들이 더 걱정이 된다고 할까. 정말이지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야. 내 동생을 어디에서 봤다며 직장 동료가 말해주기도 하고, 건너 건너면 이렇게 저렇게 다 연결되는 상황이지요.”
 
서현님은 광주에선 철저하게 이성애자로서 살다가 서울에 와선 동성애자로 변신한다고 했습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광주에서의 서현님보다 서울에서의 서현님은 조금 더 느슨해지고,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고 합니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서현님의 성격상, 직장 동료들과는 개인적인 일들을 공유하지는 않는 편이라고 합니다. ‘동성애혐오’가 있는 동료들과의 대화는 더더욱 조심하는 편이라고 해요. 당연하겠지요.
 
서현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혹시 서현님만의 특수한 경험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러나 서현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역을 좁다고 느끼고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인간관계가 얽혀 있어 살필 일이 많다고 느낄 것이라 합니다. 그러자 동석하고 있던 친구 명개님도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서울하고 서울 외 지역하고는 분위기가 다르기는 다른 것 같더라고요. 장기간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어느 지역이든 그렇게 어른들이 개인적인 질문을 하는 거예요. 부모님은 계시는지, 부모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 결혼은 했는지, 왜 안 하고 있는지…. 사적인 질문을 굉장히 많이 받으면서 다녔어요. 여행하면서 귀찮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죠. 그런 것을 ‘인정’이 있는 거라고 보는 것 같기도 한데, 내 입장에서는 불편하더라고요.”
 
서현님 이야기처럼 ‘지역이 좁은’ 까닭도 있겠지만, 명개님 이야기처럼 ‘지나친 관심’ 때문에 광주에서 레즈비언으로 살기가 서울에 비해 조금 더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겠지요. 서현님은 광주에 레즈비언 친목모임이 여럿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굳이 서울에서 정기모임을 여는 <그루터기> 활동을 하고 계시죠.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에서 서울까지 와서 모임에 참여하는지, 멀어서 많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궁금했습니다.
 
“서울은 굉장히 서로에게 무관심한 동네잖아요. 익명성도 보장되는 편이고, 사람들 시선 걱정 안 해도 되는 분위기고. 거리가 멀어 불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마음먹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멀어도 마음 편하게 잘 다니고 있어요. 전에 여자 친구하고 연애할 때, 정말 둘이서만 붙어 지냈거든.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가 중요한데,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지나고 보니까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사람은 교류를 하고 살아야 해요. 광주에서와 달리, 가면 하나 쓰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서울에서 이렇게 교류를 하고 있는 거죠. 한 달에 한 번 정도 서울에 오는 건 내 나름대로 ‘일탈’이기도 하고, 나만을 위한 ‘여행’이기도 해요.”
 
언뜻 생각할 때, 광주에서 레즈비언 지인을 만들고 교류하면 서울에서 만나는 사람들보다 더 가깝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일종의 동지애나 소속감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서현님 얘기에 따르면 광주에서는 아무래도 서울과 비교해 적은 수의 사람들 간에 교류가 이루어지니,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말이 전해질 것을 더 걱정하게 되기도 하고, 동지애나 소속감이 간섭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고 합니다.
 
조용하게 듣고 있던 S씨가 서현님에게 궁금한 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아는 언니가 대구에 살고 있는데, 그 언니도 서울에서 생활할 때가 많아요. 그 언니는 자신이 서울 사람도 아니고 대구 사람도 아닌 경계에 서 있는 사람 같다며 스트레스를 받곤 하던데, 언니는 어떤가요?”
 
“나는 그런 경계에 선 느낌을 즐기는 것 같아요. 나는 내가 항상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시 한번, 서현님은 엄마를 연상시키는 쿨한 답변을 해주셨습니다. 이 시점에서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전라남도 광주 지역 대표 레즈비언이라는 말은 취소할게요. 유행하는 말로 ‘광주와 서울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것을 즐기는 레즈비언’으로 수정하겠어요.” 모두들 웃었습니다.
 
레즈비언 ‘싱글’로 살아가기
 
이제, ‘남한 싱글 레즈비언 대표’인 서현님을 만납니다. 서현님은 자신을 그냥 싱글이 아닌 ‘정말 싱글’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정말 싱글’이 어떤 뜻이냐고 물으니 “살짝 강조하고 싶었어요. 2008년 4월에 헤어진 후, 현재까지 싱글이니까” 라고 답하더군요. 전 애인과 헤어진 후에도 이런저런 ‘썸씽’들이 있어왔다 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제가 말했죠. “남한 싱글 대표라는 말도 취소하겠어요. 싱글 2년차도 안 되었잖아요. 대표라고 할 수 없겠어요.” 모두들 웃었습니다.
 
서현님에게 싱글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펼쳐주십사 부탁했습니다.
 
“싱글이라고 하면 ‘죄 아닌 죄’를 짓고 살고 있거나, 굉장히 ‘못난 사람’ 취급을 받는 분위기가 있어요. 특히 가족들 사이에서 그렇죠. 커플이라고 모두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싱글이라고 모두 불행한 것도 아니고. 혼자 있으니 남들은 그렇게 나를 불쌍하게 보는데, 나는 지금 상황에 만족하고 있어요. 그게 중요한 것 아닌가? 부모님과 떨어져 살다가 함께 살기 시작하던 시점에 내가 조건을 하나 달았어요. ‘나를 결혼시키려고 하거나, 그럴 계획을 가지거나, 그런 마음을 갖는다면, 즉시 가출할 것이니 그리 알고 계세요.’ 그래서 가족들이 결혼을 강요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레즈비언인 싱글’에 관한 질문을 했던 건데, 서현님은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비춰지는 ‘이성애자인 싱글, 서현’에 관해 먼저 이야기를 풀어 놓네요. 참 재미있는 순간이었어요. 주제를 조금 더 좁혀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언니 가족들에게 언니는 ‘결혼하지 않은 이성애자 딸’이겠지요. 그런데 언니는 여자 친구와 교제를 하던 시기가 분명히 있었는데, 교제 중인 그 시기에도 여전히 가족들에겐 ‘결혼하지 않은 이성애자 딸’이었겠지요?”
 
“내가 전 애인과 교제 중인 상태에서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었겠죠. ‘죽이 잘 맞는 단짝 친구가 있는 이성애자 싱글 서현’. 그 후에는 ‘죽이 잘 맞는 단짝 친구가 없는 이성애자 싱글 서현’ 이렇게.”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이상, 레즈비언인 나는 부모님과 가족들에겐 항상 ‘싱글인 딸’이죠. 여자 친구와 긴 교제를 해도 항상 ‘싱글’일 뿐인 거죠. 긴 연애를 끝내고 실연의 고통으로 아파도 가족들 눈에는 그저 ‘쟤가 감기에 걸렸나’ 정도로만 보일 뿐이고요.
 
이어서 서현님에게 ‘레즈비언 싱글’에 관한 생각을 물었습니다.
 
“레즈비언 지인들은 나를 ‘하루라도 빨리 짝을 만들어 주어야 할 애’ 정도로 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서현도 어서 좋은 사람 만나야지’, ‘소개팅 좀 해봐’, ‘왜 연애를 안 해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죠. 물론, 진심으로 나를 ‘불쌍하게’ 보는 사람도 있어요.”
 
그러자 동석한 우피님이 한 마디 했어요.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외롭게 느껴질 것 같기도 해요.”
 
“지금은 그런 단계는 지난 것 같아요. 내가 싱글인 것을 자꾸 ‘외롭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외로움은 누군가를 옆에 둔다고 사라지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건 혼자여서 느끼는 감정은 아니에요. 주위에 사람이 많아도, 내 옆에 사람이 있어도, 마음으로 교류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가장 외로운 거지. 연애 문제도 그래요. 사람들은 ‘결혼해야지’ 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하지만 상식적으로 결혼이 ‘목적’이 되어선 안 되는 거잖아요.”
 
서현님의 얘기를 듣고는 모두들 경험이 있어 그런지 ‘싱글을 귀찮게 하는 일들’에 관한 일종의 성토대회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싱글들을 빨리 벗어나게 해주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 ‘혼자 있는 것이 필요하고 그게 더 좋을 때도 있는데, 싱글을 가만 놔두지 않는 것 같다’, ‘펨과 부치를 딱 나누어서 엮어주려고 하는 분위기가 싫다’ 등 이런저런 의견들이 오갔죠. 서현님이 분명하게 이야기했어요.
 
“나는 자기들의 숙제 대상이 아니야.”
 
그간 싱글인 서현님에게 소개팅 하자며 귀찮게 하고, 실제로 성공하지도 못할 소개팅을 주선한 바 있는 저는 이 대목에서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현님에게 사과해야겠어요. “언니, 귀찮게 해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명개님이 재미있는 생각을 들려주었습니다.
 
“이성애의 완성은 ‘결혼’이고, 동성애의 완성은 ‘연애’라고 보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말이죠, 레즈비언 중에는 독신주의자가 있으면 안 되나? 이성애자 중엔 독신주의자가 있는데, 왜 레즈비언 중에는 독신주의자가 있으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인 거에요? 연애를 하든, 하지 않든, 연애를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이 스스로 ‘나는 레즈비언이고, 독신주의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어요. 나는 그 정체성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서현님께 마지막 질문을 했습니다. “언니, 저와 인터뷰한 게 두번째잖아요. 인터뷰 제안 받고서, 그리고 인터뷰를 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재미있어요. 인터뷰하면서 내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작은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인터뷰하다 보면 평소 내가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을 생각해보게 돼요. 이렇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 정말 필요한 일이라고 봐. 말을 하다 보면 뭔가 풀어지는 느낌이 들기고 하고, 얘기하면서 내 생각도 한 번 정리해보고 말이죠. 이런 기회를 주니 고맙지, 뭐.”
 
인터뷰해달라는 제안이 귀찮을 법도 한데, 말할 기회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고 이야기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고, 솔직하고 허심탄회하게 살아 온 이야기들을 들려주셔서 서현님과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현님이 제게 준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서현님은 내년에 어쩌면 서울로 거주지를 옮길지 모른다고 합니다. 저야 조금 더 자주 서현님을 만날 수 있으니 대환영하는 바입니다. 만약 이런저런 이유로 서울 거주가 어렵다 하더라도, 서현님과 연락도 자주하고, 서로 지역을 오가며 더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서현님. 그리고 인터뷰 자리를 빛내준 S씨, 명개님, 우피님께도 감사 드립니다.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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