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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창아가 만난 사람] 미디어 아티스트 변금윤 
 
자신의 이미지를 “어느 프레임 안에 들어갔을 때 잘 맞는” 타입이라고 말하는 여자가 있다.  주위에서 사람들이 ‘담배 피시죠?’, ‘운동 잘할 것 같아요’, ‘결혼 안 하셨죠!’ 등과 같이 스스럼없이 치고 들어올 때, 그런 질문 앞에서 스스로 “뭔가 좀 있을 것 같은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에게 되묻기도 한다는 여자. 삼십대의 끝자락에서, 떠나기 위해 배낭을 싸고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 변금윤씨를 만났다.

 
누구나 가끔씩은 남에게 보여 지는 자신의 이미지가 어떤지 궁금해질 때가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삶은 끝없이 자신을, 타인을, 세계를 의식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보따리를 펼쳐나가게 마련이다.
 
"어릴 때부터 혼자 공상하고 그림 그리는 걸 즐겼어요. 한 달이 지나서 찢은 달력 뒷면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제일 행복했어요. 땅바닥에도 벽에도 끊임없이 뭔가를 그렸죠. 그래서 매도 많이 맞았죠. 부모님에게는 ‘자파리’(쓸데없는 짓만 한다는 뜻의 제주말) 심한 아이로 찍혔죠."
 
내가 그녀의 이미지에 질문을 보탠다면 분명 '한 고집하시죠?'라고 물으리라.
 
미술(예술)은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하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님이 '그거허영 어떵먹엉살꺼냐(그것으로 어떻게 먹고살려고 하느냐)?' 걱정하시면서도, 감귤 밭을 팔아 미대공부를 시켰으니 말이다.
 
그녀는 제주대 미술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후 제주를 잠시 벗어나 이대 대학원 미술학부 회화, 판화를 전공했다.
 

"말소된 Page" 부분

"지도교수가 개념미술을 전공한 분이셨는데 유화, 평면 작업을 하다가 매체에 대한 경계를 허무는 작업에 문화적 충격과 더불어 관심을 갖게 된 거죠. 미디어가 이야기를 다양하게 풀어낼 수 있는 매체이고, 적나라하게 시간을 담을 수 있는 매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001년 첫 개인전 <사소한 시선 여백의 시간>은 제목처럼 '시간'에 집중한 작업이었다. 여기에서 그녀는 이력서에 적히지 않는 시간들의 이야기를 담은 판화 설치작품 “여백의 시간”, 작업공간의 제습기 물을 모아 날짜를 쓰고 전시한 “말소된 Page”등을 통해 하나의 결정체를 이루는 사고와 '담는다'는 행위 속에 자기만의 시간을 기록했다. 또한 “웅크린 형상”에서는 “나는 집이 없고, 방만 있다”는 시인 이상의 시에서 자극을 받은, 꽁꽁 닫혀있으면서 동시에 '확' 열고 나가고픈 욕망이 큰 시간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이십대는 고민만 하다가 지나버린 시기 같아요. 이력서에 쓸 수 없는 시간들이 많았던 시간이죠.” 누구나처럼 그렇게 예민한 시절의 칼바람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삼십대가 되었다.
 
그녀는 삼십대 초입에서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고픈 욕망을 향해 내달렸다. "이십대에는 감성에 집중했다면, 삼십대에는 체계적으로 작업을 보여주고 싶고 개인 작업에서 분업화된 형식의 작업으로, 그리고 '비디오아티스트'의 정체성을 찾는 시기였어요."
 
개인전 이후 다양한 프로젝트와 그룹전 활동을 하면서 2006년, 생애 처음 제주영상미디어센터에서 '직장생활'도 시작했다. 그리고 조직에 너무 잘 적응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스스로 '나는 미쳤다'고 진단하게 되자, 2년6개월의 직장생활을 과감히 때려치웠다. 그리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올레 길을 걷는 동안 스틱으로 땅을 마구 찍어댈 정도로 나의 분노와 상처들을 직면했어요. 걷는 것이 제겐 치유하는 시간이었어요. 인생의 군것(군더더기)들이 쏘옥 빠져나가는 느낌이랄까…"
 
삼십대의 막바지에서 예술가로서의 성공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고, 그녀는 이력서에 적히지 않는 여백의 시간으로 그렇게 돌아왔다.

 
이제, 길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한때 뉴욕이 현대미술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영국으로 옮겨가는 추세죠. 이젠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다양한 작업들을 보고 싶어요."
 
극심한 비행기 공포증보다 떠나야겠다는 의지가 승리한 경우랄까. 그녀는 영국을 들러 프랑스, 스페인 산티아고 길까지 6개월의 여정을 계획하고 있었다.
 
"요즘 떠날 준비를 하면서 듣게 되는 말들이 부럽다, 좋겠다, 나도 그랬으면…하는 얘기들이예요. 나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거나, 자극받는 이들을 보면서 예술(예술가)이 그런 자극을 주는 것이 아닌가 새삼 느끼죠."
 
나이가 들어갈수록 여자들은 떠나야 하나보다. 아니, 떠나지 않으면 안 되나보다. 자기 길 위에 오롯이 혼자서 서야만 하는 때를 마주하는 시간은 행복하다.
 
※추신: 변 작가는 이 글을 마무리 지을 즈음, 아이슬란드 에이야프얄라요큘 화산 폭발로 런던 행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덕분에 붕 뜬 시간에 직면했지만 예기치 않은 시간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나'와 '상황'에 집중하게 되었다는 글이 반갑다. 인생의 한 페이지를 이렇게 넘기고 가나보다. * 일다 (www.ildaro.com)
 
[인터뷰 작가 소개 - 박진창아: 제주도 설문대 할망의 귀한 손녀. 서울에서 문화공연기획자로 활동하다가 제주로 귀향, 어른들을 위한 문화학교 '한라산학교' 기획자로 동네안의 복합문화공간 '달리도서관' 을 만들고 달리지기로 활동하고 있다.]  다른 인터뷰 보기-> 제주도 낙천에서 물드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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