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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의 몸 이야기⑤ 강점 찾기 내 영혼의 좌표를 찍어준 몸 
 
<장애여성의 몸 이야기> 연재는 외면하기, 직면하기, 비교하기, 수용하기, 강점 찾기, 표현하기 등 장애여성이 자신의 몸에 반응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타자화된 장애여성의 이미지를 뛰어넘어, 우리 자신의 언어를 통해 장애여성의 삶을 재구성하려는 데 의의가 있다. – 편집자 주
 
파탄이 나버린 연애의 원인은 외모지상주의?
 
태어나 처음으로 연애라는 걸 시작했을 때서야 비로소 내 몸을 진지하게 돌아봤을 것이다. 비(非)장애인 애인에게 섹시하게 보이고 싶은데, 이 몸으로는 도저히 섹시한 분위기가 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이 여자친구에게 바란 건 ‘섹시함’이 아니었고, 나는 어떻게 꾸며도 섹시해 보이는 타입이 아니었는데, 더 사랑 받길 원했던 나는 다른 비장애인들처럼 짧은 스커트를 입고 예쁜 다리를 뽐내지 못하는 내 몸을 미워하고 원망했다.(여기서 잠깐 변명을 하자면 이놈의 세상은 결국 ‘성적 매력이 있는’ 누군가가 되는 것, 또 그런 누군가를 찾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지 않나.)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의 연애는 지속되지도 못하고, 좋게 끝나지도 않는다. 당시 나는 파탄이 난 연애의 원인을 외모지상주의로 돌렸으며, “Love is suicide!”라는 노래 가사를 손목에 문신으로 새길까도 생각했다. 맞다, 이 정도면 피해망상 수준이었다.
 
지금도 나는 내 몸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그 이후의 연애들도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철이 든 탓인지 다행히 이전 남친들을 외모지상주의자라고 매도하진 않지만, 여전히 나는 장애인이고, 어릴 때부터의 병원생활로 바람 부는 언덕의 소나무처럼 굽고 휘어진 내 몸을 거울에 비춰보는 건 자학놀이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 칼럼을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장애여성의 ‘강점 찾기’에 대해 쓰려고 하다 보니. 못생긴 나무는 산이라도 지키지, 지젤 번천의 몸매를 기준으로 하면 여자 축에도 못들 내가, 장애여성이기 때문에 가지는 강점이 뭐가 있을 것인가.
 
장애를 가진 몸의 ‘강점’ 찾기?

 
아! 내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나의 외적인 면이 아닌 다른 부분에 장점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것을 찾아낼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사실, 알고 보면 그런 건 없다. 장애인이라고 비장애인보다 빛나는 정신을 가지고 있을까? 그냥 운 없게 장애라는 불편을 떠안은 사람일 뿐 나머진 다 똑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거라는 신비성이 저절로 풍겨 나오는 모양이다. 그럴 때 입을 열어 내 실체를 까발리지만 않으면, 비장애인보다 좋은 쪽으로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이런 점이 강점이라면 강점이다.
 
하지만 이런 일로 “어때? 장애여성으로 사는 것도 꽤 근사하지?”라고 뽐낼 생각은 없다. ‘강점’을 찾으려면 먼저 나와 남을 비교해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 경우엔, 장애인인 내 몸이 비장애인보다 열등하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당신보단 이런 점이 낫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우리는 수영복을 입고 나와 서로의 신체 사이즈를 비교해서 1등을 뽑는 미인대회를 환영하지 않을 만큼 현명하다. 그런데 장애여성과 비장애여성의 몸을 비교하다니… 그럴 필요가 있을까?
 
잠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상황을 떠나서 생각해본다. 아이를 둘 낳은 엄마들의 몸이 다 똑같지는 않다. 어떤 사람은 살이 많이 찌기도 하고, 다른 사람은 오히려 출산 전보다 날씬해지기도 한다. 후자의 몸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외부 환경과 영양상태에 맞춰, 좀더 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몸이 변한 것이다. 그러므로 몸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살아온 날만큼 아픔과 불편을 견뎌준 몸
 
장애 때문에 변형되는 몸들도 마찬가지다. 앉아서만 생활하다 보면 척추가 굽고, 배도 나오고, 부러진 뼈를 잘못 맞춘 경우엔 팔다리도 휜다. 그런 상태가 모두 비정상이고 건강하지 못한 것일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내 몸을 그대로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건 어떨까. 아무도 장애인인 날 건강하다고, 섹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린 왕자가 자기 별로 돌아가기 위해 무거운 몸뚱이를 지구에 버렸던 것처럼, 나도 내 불편한 몸이 짐스럽다고만 생각했다. 장애인이 아니었어도 아마 그랬을 거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버리고싶어 했던 내 몸은 이 넓은 공간에서 내 영혼의 좌표를 콕 찍어주고, 내가 살아온 세월만큼 아픔과 불편을 견뎌왔다. 비장애인 아니라 그 누구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굳이 장점을 찾으려 하지 않더라도, 존중 받고 보살핌 받을 필요가 있다. (악녀펑크) ⓒ일다 www.ildaro.com
 
*악녀펑크님은 다름이 종종 그릇된 것으로 인식되는 세상에서, 씩씩하고 현명하게 그 둘의 차이를 지적하는 장애여성입니다.  ->8년 만에 새로운 내 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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