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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의 몸 이야기⑥ 드러내기: 이 연재는 외면하기, 직면하기, 비교하기, 수용하기, 강점 찾기, 표현하기 등 장애여성이 자신의 몸에 반응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타자화된 장애여성의 이미지를 뛰어넘어, 우리 자신의 언어를 통해 장애여성의 삶을 재구성하려는 데 의의가 있다. – 편집자 주

의도적인 새로운 실험
 
짧은 치마를 입는다. 메이크업 전문가가 화장을 해주고, 머리도 만져준다. 준비를 끝내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지 빠른 비트의 음악이 흐르고, 어두운 무대에 조명이 비추고, 딸과 함께 무대 앞쪽으로 나간다. 조명의 강한 빛 때문인지 긴장한 탓인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환호성만 들린다.
 
한 6, 7년 전 쯤 여성페스티벌의 한 코너로 기획된 장애여성패션쇼에 나갔었다. 너무나 낯설었던 그 경험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때 제목도 모르는 그 팝송이 어디선가 나오면, 아직도 “아, 그때 패션쇼 때 노래다!”라고 나도, 딸내미도 외치곤 한다.
 
그 패션쇼를 위해서는 출연할 장애여성이 평소 입고 싶었던 의상을 의상학과 학생들에게 사전에 얘기하여 입고는 패션쇼에 출연하는 색다른 과정이 있었다. 외출시 대부분 긴바지만 입었던 터라 짧은 치마를 택했고, 소매 달리지 않은 상의와 함께 재활용된 레이스 달린 청치마가 준비되었다.
 
패션쇼를 마치고 은근히 딸의 반응도 궁금해서 “엄마 어때?” 하고 물었더니, 당시 여덟 살쯤 되었던 딸은 “음 이쁜데, 치마가 좀...”하고 말끝을 흐렸다. 치마가 어떠냐고 다시 묻자, 딸은 치마 밑으로 보이는 오른쪽 보조기를 가리키며, “그것도 좀 보이고 해서 좀 이상하다”고 조그맣게 이야기했다. “안 보던 모습이라 낯설어서 그럴 거야”하고 쿨한 척 넘겼다.
 
칠부바지 입고 외출하기
 

의도적으로 장애를 드러내려고 시도했던 것은 내 몸의 약점을 감춰둔 채 다른 강점을 찾지 않겠다는 나름의 노력이었다. ©사진 촬영- 정선아

뭐 멋지다는 딸의 반응이 아니어서 실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충격은 심하지 않았다. 내 보기에 평소보다 예뻐 보였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약간 들뜬 기분 탓도 있었으리라. 그때부터였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그 즈음부터 나름대로 이런 류의 시도들을 조금씩 해왔다. 그 하나로 칠부바지를 입고 외출하는 것이었다.
 
평소 목발에 보조기를 사용하고 있는데, 긴 바지를 입어 보조기를 감추면 그저 잠시 다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장애인이라는 걸 의도적으로 감추고 싶을 때는 사고당한 비장애인인 척했다. 특히 택시를 탔을 때, 쏟아지는 질문과 사돈에 팔촌까지 아는 장애인을 들먹이며 동정과 편견 섞인 말들을 듣곤 하는데, 만약 처음부터 “아, 다쳤어요.”라고 하면 다친 이유만 물을 뿐 이런 말들로 기분을 망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러니 여름에 긴바지를 고수하다 칠부바지를 입었을 때, 난 더 이상 사고당한 비장애인으로 위장할 수 없는 나름 큰 방어책을 포기한 것이었다. 그리고 더 쏟아지는(더 쏟아진다고 생각하는) 시선도 감수해야 했다. 남자선배의 썩 좋지 않은 반응도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던 건 멋있다고 해주고, 시원해 보인다고 말해주는 장애여성언니들 때문이었다. 유니섹스 의상을 입어 오다가 의도적으로 화장도 해보고, 하늘하늘한 블라우스도 입어보고 하는 등의 새로운 시도를 이어갈 수 있던 것은 박수쳐주는 언니들 덕이 크다.
 
약점은 감추라?
 
주위에는 나처럼 흔히 장애를 감추거나 ‘남자같이’ 입고 다니는 장애여성들이 많다(물론  예외도 있다). 대놓고 장애를 드러내지 말라며 치마를 못 입게 하는 가족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고, 암암리에 영향을 받아 감추고 무관심하게 되다 보니 편한 스타일로만 입어온 이들도 있다. 치마를 입긴 해도 화려한 색이나 디자인은 꺼리는 장애여성도 있다.
 
드러나게 혹은 암암리에 장애여성에게 금기시된 것들이 있다. 내게는 균형이 맞지 않는 다리, 그를 지탱하는 쇠로 만들어진 보조기, 휘어진 허리, 두꺼운 팔뚝을 드러내는 것이 그랬다. 이런 몸을 의상이나 화장이나 악세서리 등의 강점으로 바꿔내긴 어려워 보인다. 동양적인 외모를 가진 모델의 콤플렉스였던 쌍꺼풀 없는 눈이 매력적인 장점으로 바뀌는 상황처럼, 장애가 시대나 유행에 맞춰 장점으로 변화되는 황당한 날이 온다면 모를까.
 
생각해보면, 의도적으로 장애도 드러내고, 여성스러운(?) 옷도 입고, 패션쇼 같은 퍼포먼스에도 참여해왔던 것은, 내 몸의 약점일 수 있는 부분을 매력적인 강점으로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약점으로 어느 부분을 감춰둔 채 다른 강점을 찾지 않겠다는 나름의 노력이었다. 약점은 무시한 채 공부라든지, 직업이라든지 다른 강점으로 자존감을 찾기 어려웠던 내 경험에서의 판단이었다. 약점이라 생각해서 감추고, 외면하고, 튀지 않게 입고, 여성스러움과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해서 못해 본 것들을 시도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크고 작은 용기가 필요했던 내게는 ‘별 것’이었던 그런 시도들은 지나고 보니 나를 많이 바꿔놓은 듯하다.
 
'조금 더'의 자유
 
이제 외모에 대한 선택의 폭은 이전보다 넓어졌고, 남들의 시선에서 좀 더 자유로워졌다. 외모에 대한 조금 더의 자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와도 밀접하게 이어졌다. 솔직히 능력이 안 되서 못하기보다 동정의 시선을 받기 싫어 혹은 못 견뎌 포기한 일이 많았다. 특히 비장애인들 속에 있을 때 그렇다. 어떤 모임에 늦게 도착하면 땀을 뻘뻘 흘리거나 얼굴이 벌개진 모습으로 들어가 시선을 집중시키기 싫어 웬만하면 약속시간 전에 도착하려 한다. 혹은 들어가기를 포기하기도 했다. 중간에 나갈 일이 생겨도 웬만하면 먼저 밖으로 나오지 않고 참는다. 혜택을 포기하면서도 웬만하면 앞에 나가는 일은 자진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는 반 연극에서 스쿠루지 같은 주역도 했고, 깍두기를 하면서도 고무줄놀이에 빠지지 않았다. 물론 그때도 체육시간에는 교실을 지키는 등 못하는 게 많았지만, 하고 싶은 걸 포기할 만큼 주눅 들진 않았나 보다. 주위 친구들이 나에게 허용적이었을 수도, 내가 어려서 남의 시선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았었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어린 시절 그 자유를 다시 되찾고 있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외모에 꽂힌 시선에서 점차 자유로워지면서, 행동도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물론 장애인끼리 모여 있을 때는 더 자유롭다. 기어다니는 모습을 절대로 보여주기 싫어했지만 좌식배구를 하며 기쁨을 느꼈고, 포켓볼도 쳐봤고, 나이트클럽도 가서 춤도 쳐봤다. 재작년인가 대학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긴 줄을 서기도 했다. 비장애인 언니와 함께였는데, “다리도 불편한데...”라고 말하는 듯한 시선이 계속 신경 쓰였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 중 이런 이가 몇이나 되었을까. 공연이 시작되자 시선의 불편함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한껏 재충전된 시간이었다.
 
아직도 난 어디서나 눈에 띄는 내 몸이 피곤하다. 시선에서 완전 자유롭지도 못하고 시선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맘이 편하다는 데 희망이 있어 기분이 좋다. 목발을 한 개에서 두 개로 늘렸는데, 이제 손목도 발목도 무릎도 휠체어를 탈 때가 되어온다고 준비를 하란다. 우리 언니는 내가 휠체어 탈 예정이라는 말에 “그런 말 마라”며 상당한 반응을 보인다. 운동이 부족한 몸은 무게가 점점 나가자 딸은 밉다며 자꾸 살을 빼라고 구박한다. 또다시 새로운 약점이 될 조짐이 보이는 휠체어와 비만은 다른 방식으로 시선을 꽂을 것이다. 새로운 지혜를 모을 때다. (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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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의 몸 이야기] 감추어야 하는 몸과 드러내도 좋은 몸 |  8년 만에 새로운 내 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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