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장애여성의 몸 이야기② 외면하기  <장애여성의 몸 이야기> 연재는 외면하기, 직면하기, 비교하기, 수용하기, 강점 찾기, 표현하기 등 장애여성이 자신의 몸에 반응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타자화된 장애여성의 이미지를 뛰어넘어, 우리 자신의 언어를 통해 장애여성의 삶을 재구성하려는 데 의의가 있다.
 

질투심과 함께 사라지다
 

카메라에 잡힌 내 뒷모습은 평소 그려왔던 머리속 몸 이미지와 너무 달라 당황스러웠다. (그림:임현주)

“야, 말도 마라. 언니랑 굳이 똑같이 해달라고 고집 피워대서 원…”

아직도 엄마와 언니는 어린 시절 언니를 향한 내 질투심을 가지고 놀려대곤 한다. 언니의 머리모양을 따라 하려 짧은 머리를 두 갈래로 간신히 묶어서 선생님께 인사할 때마다 목덜미가 짜릿짜릿했던 기억과, 똑같은 부츠와 치마를 입고 언니와 나란히 찍은 사진들이 엄마와 언니의 말을 부정할 수 없게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까지 이어진 대단했던 나의 질투심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것은 외모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사라져버린 모양이다. 어느새 언니와 달리 내 스타일은 거의 대부분 커트머리였고, 바지를 입은 모습으로 변해 갔다. 언니와 같은 길을 가기 어려운지는 어떻게 눈치챘을는지.
 
여하튼 외모에 대한 관심은 사라져갔지만, 몸의 기능에 대해서는 그나마 관심이 컸다. ‘아! 그나마 철봉은 할 수 있구나, 이만큼의 높은 계단은 무리군, 저 정도 거리의 버스는 못 잡아타겠군.’ 알고 있어야 미리 대처하며 상황판단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어디서나 눈에 띈다는 생각으로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는데, 머리를 기르거나 치마를 입어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보다는 힘들어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던 기억이 더 많다. 내 몸의 능력을 모른 채 무리한 도전을 해서 “저런 쯧쯧”, “가서 쉬어”, “내가 해줄게” 등의 말을 듣기가 너무도 싫었다. 심지어 넘어져 아파도 울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괜찮다”를 연발하며 웃어댈 정도였다.
 
이렇듯 내게 자신감을 주지 않는 몸은 머리(지식)에 집중하게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너는 다른 장애인과 다르다”, “머리만 똑똑하면 된다”는 주위 어른들의 말씀은 공부에 더 집중하게 만들었고, 어느 정도의 자신감을 가져다 주었다. 공부를 잘하는 길만이 인정받는 길이라 생각할수록 몸은, 특히 외모에 대한 관심은 점차 사라져갔다.
 
아직도 시선을 피하며
 
스무 살이 되어 장애인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고, 점차 장애여성으로서 정체성을 가지려 노력하고 조금씩 변해가는 시간을 보냈다. 뒷전으로 밀려났던 몸에 대한 관심도 키워갔고, 남의 시선에서도 점차 자유로워졌다. 이제 마흔이 다 되어가고 있고 몸은 그 자체로 익숙해졌지만, 그럼에도 아직도 나를 종종 당황하게 만드는 상황이 있다.
 
나는 흔히 여성들의 방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전신거울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외출할 때도 상반신 거울로만 확인한다. 길을 걷다가 문득 시선을 옆으로 돌렸을 때 한 건물의 전면유리에 슬쩍 내가 보인다. 그러나 흘깃 쳐다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아무 일 없듯 시선을 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최근 들어 몇 번 TV에 출연할 일이 있었는데, 한 번은 리포터와 함께 걸어가고 있는 나의 뒷모습이 나도 모르는 사이 찍혔고, 그 2초도 안되었을 방송장면을 보며 너무도 화가 났다. ‘왜 말도 안하고 찍었을까’, ‘앉아 있는 인터뷰로는 장애가 드러나지 않아서군’. 나름대로의 분석이 이어졌다.
 
그런데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니, 내가 그렇게 이상하리만큼 화가 난 이유의 숨겨진 측면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평소에 내가 보지 않아서 검열하지 못하는 뒷모습을 준비 없이 갑자기 보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앞뒤로 굽은 허리 때문에, 옆이나 뒤에서 보면 유난히 허리가 들어가고 한 쪽 엉덩이가 튀어나와 보인다. 두 목발을 짚은 어깨가 유난히 기울어져 도드라져 보이고, 게다가 동영상의 경우 좌우로 흔들리는 내 장애가 더 심하게 느껴진다. 내가 걷고 있을 때의 느낌은 그렇게 기울어지고 흔들리는 것 같지 않아 몰랐을 뿐이었다. 전신거울, 유리창을 평소 보지 않아 외면해 온 그 모습은, 평상시에 암암리에 내가 그려 온 머릿속 몸 이미지와 달라 나를 당황하게 했나 보다.
 
나를 응시하는 자유
 
지인인 뇌병변장애가 있는 한 언니는 남이 자신의 사진을 찍는 것이 흔쾌히 내키지 않는단다. 근육이 본인 뜻대로 되지 않아 원하는 얼굴표정을 짓기 어렵기에,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오히려 혼자 셀카 찍기를 즐기는데, 자기가 원하는 표정이 나올 때까지 액정을 보면서 기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여성 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제 장애가 있는 몸을 굳이 감추려 하지는 않는다 해도, 아직도 어떤 부분은 알게 모르게 외면하고 싶어 하는 유사한 경험들을 종종 확인하게 된다. 물론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능력 있고, 외형적으로도 이상적인’ 몸이 중요한 자원으로 부각되는 사회분위기상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는 듯하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몸(특히 외모)에 대한 관심을 줄임으로 해서 몸을 외면한 것은, 평가절하된 몸을 붙들고 기준에 맞추려 집착하고 좌절하는 것보다는 결과적으로 내가 그나마 좀더 행복하게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이제 내가 좀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그 오래된 습성으로 깊이 박혀 아직도 외면하고 있는 어떤 부분을 찾아내는 일에 민감해질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우선 알고 난 후 다시 덮어버리지 않는다면 언젠가 어떤 해결의 방법이나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 몸에 꽂히는 남의 시선뿐만 아니라 자신의 시선 또한 피하지 않게 될 자유를 상상해본다. [관련기사 보기 -> 감추어야 하는 몸과 드러내도 좋은 몸] www.ildaro.com

(필자 '
호야'는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으며, 유머감각과 통찰력이 남다른 지체장애여성입니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