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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의 몸 이야기① 감추기 
 
우리 자신의 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낯설다. 무성적 존재로 여겨지곤 하는 장애여성의 몸은 늘 여성의 몸의 범주에서 제외되곤 했다. 하지만 그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장애여성들은 오랜 세월 자신의 몸의 조건을 바탕으로 해서,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부정적인 인식과 억압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연재 칼럼은 외면하기, 직면하기, 비교하기, 수용하기, 강점 찾기, 표현하기 등 장애여성이 자신의 몸에 반응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타자화된 장애여성의 이미지를 뛰어넘어, 우리 자신의 언어를 통해 장애여성의 삶을 재구성하려는 데 의의가 있다.
 
어린아이와도 같은 몸
 
감출 수 있다면 감추고 싶었다. 또래들보다 키가 작아 늘 반에서 1번이었는데도 이미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 젖가슴이 나오기 시작했다. "너 가슴 나오네! 브래지어 해야겠다!" 언니들의 말을 들을 때마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브래지어 사줄까?" 하며 엄마가 물었을 때 나는 완강히 거부했다. 브래지어를 하면 가슴이 더 돋보일 것 같아 싫었다. 여자가 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목욕탕에 가는 게 제일 싫었다. 여자가 되어 가고 있는 몸과 대면해야 하는 것도 그렇지만, 또래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곤혹스러웠다. 또래 친구들은 이미 엄마와 동행하지 않고도 저희들끼리 삼삼오오 어울려 목욕탕을 찾곤 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서로의 몸을 비교하기도 하고 이성에 대한 관심도 표현하며 목욕탕을 거의 놀이터처럼 여기는 듯했다. 그런데 내가 들어가면 아이들의 수다가 딱 멈췄다.
 
어른들은 딱히 무어라 표현하진 않았지만 신기한 듯, 딱한 듯 내 몸을 쳐다보았다. 사람들에게 나는 영원히 자라지 않는 어린아이였다. 나 역시 그럴 수 있다면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고 싶었다. 내게는 여자가 된다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해야 하는 어떤 것이었다.
 
엄마 역시 여자가 되어가는 나의 몸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초경을 시작했을 때 엄마는 '빨리 시작했구나. 한 달에 한 번 이런 일을 감당해야 하다니…' 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뒤, 생리를 할 때마다 여자가 되고 엄마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꿈꾸기보다는 매번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귀찮은 손님을 치른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매번 하루라도 빨리 귀찮은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죄인처럼 지내기
 

▲ 오른손의 장애를 감추기 위해 뒷짐지는 자세를 유지하곤 하는 뇌성마비 장애여성 별동별의 뒷모습 ©사진- 정선아

남들이 알면 ‘주제에 여자라고’ 생리까지 한다고 할 것 같아 창피해서, 생리를 할 때마다 식구들이나 주변사람들이 알까 봐 조바심 쳤다.
 
30~40년 전엔 면 생리대밖에 없었다. 그걸 주위사람 눈에 띄지 않도록 숨겨서 가지고 다니거나 세탁하기는 쉽지 않았다. 1회용 생리대가 나왔을 때도 약국에 들어가 생리대 사러 왔다고 할 용기가 없어 망설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불안과 초조, 긴장의 나날들이 지나면 날아갈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중고등학교 때 장애가 없는 친구들 집에 놀러 갔을 때, 생리대를 화장대 수납장에 보관하고 꺼내 쓰고 있음을 알고서 좀 놀랐었다. '나만 생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였나 보다'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애가 있는 여성들은 대개 비슷한 경험을 하는 듯하다.
 
지체장애로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는 50대 장애여성의 경우, 아버지 혹은 오빠 등 나이 많은 남자 어른이 아니라 20대 조카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도, 집안에서 속옷바람의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인 적이 없다고 했다. 나 역시 결혼 전 부모님, 형제들과 함께 살 땐 목욕 후 김이 잔뜩 서린 욕실 안에서 축축해진 옷을 잔뜩 껴입고 나오느라 낑낑 매곤 했다.
 
감추어야 하는 몸과 노출이 자연스러운 몸
 
하지만 어떤 두터운 옷으로도 감추기 어려운 몸의 조건을 가진 경우도 있다.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장애인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20대 장애여성 ‘별똥별’은 오른손으로 뒷짐을 지는 자세를 유지하곤 한다. 그런데 그것은 장애로 인해 심하게 흔들리곤 하는 오른손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어릴 적 아버지가 팔뚝에 막대기를 대고 허리에 묶었었어요. 지금도 오른손이 올라가면 부끄럽고 위축이 돼요. 그래서인지 사진을 찍을 때 아직도 오른손을 뒤에다 놓거나 왼손으로 오른팔을 잡곤 해요."
 
거리를 걷다 보면 굉장히 뚱뚱한데 브래지어도 하지 않고 뱃살이 그대로 드러나는 민소매를 입고 아무렇지도 않게 거리를 활보하는 서양여자의 모습이 눈에 띠곤 한다.
 
그런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수치심으로 인해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허둥대곤 한다. 그러면서 잘 빠진 몸매를 가진 여자가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과감한 패션을 연출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몸은 타인의 시선을 배려해 감추어야 하고, 어떤 몸은 드러낼수록 좋다는 징글징글한 이분법에서 언제쯤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관련 글] 모든 몸은 평등하다 

※ 필자 '백발마녀'는 지체장애여성으로서 장애여성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글쓰기를 통해 개인의 성장과 사회 변화를 꿈꾸고 있습니다.    일다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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