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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의 몸 이야기③ 직면하기 <장애여성의 몸 이야기> 연재는 외면하기, 직면하기, 비교하기, 수용하기, 강점 찾기, 표현하기 등 장애여성이 자신의 몸에 반응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타자화된 장애여성의 이미지를 뛰어넘어, 우리 자신의 언어를 통해 장애여성의 삶을 재구성하려는 데 의의가 있다.
 
감촉만으로도 참혹했던 수술 자국

 

사진 찍으며, 내 몸과 맞닥뜨리길 피해왔던 과거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촬영-정선아

허리 수술 후 수술자국을 두고 동생은 내게 “언니, 등에 지네가 있어. 징그러워”라고 했었다. 병원생활 초기엔 전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중증환자였기에 욕창도 생겼다. 욕창은 계속 커졌고 결국 수술로 욕창을 치료해야 했다. 욕창 수술이라는 것이 주변에 있는 살을 당겨다  욕창부위에 구겨 넣는 거라, 엉덩이의 수술 자국은 감촉만으로도 참혹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어깨 수술 자국은 그나마 나았지만 당시엔 그것조차 버거웠다.
 
퇴원 후 집에 돌아와 집에 있는 대형거울에 알몸을 비춰보았지만, 지네 같은 흉터와 찢고 꿰맨 자국이 있는 엉덩이가 있는 뒷모습은 비춰보지 않았다. 거울 속에 비친 볼록 나온 배를 바라보고 “난 앉아서만 생활하니깐 이 정도는 어쩔 수 없어, 사실 비장애인일 때에도 배만 볼록한 건 유명했잖아”라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사고 직후 배꼽 아래에 작은 관을 꽂았던 자국과 초등학교 때 했던 맹장수술 자국은 볼록한 배 뒤로 숨겨버렸다.
 
그때 귀에서는 고장 난 ‘텔레비전’ 소리가 끊임없이 나고 온 몸은 수술자국들로 넘쳐나고 금속으로 된 허리지지대와 어깨 관절을 몸속에 감추고 있는 내가 사이보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외래진료 후 주치의에게 “고장 난 텔레비전 소리가 계속 들려요. 혹시 제가 사이보그라 온전히 못 고치신거 아니에요?”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당황한 의사를 보고 동생은 서둘러 나를 진료실에서 데리고 나갔다.
 
사진을 찍다…“나쁘지 않은데?”
 
시일이 지나 장애인 활동보조인 제도가 도입되고 활동보조인에게 알몸을 보여야만 하는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허리보조기로 인한 땀띠 때문에 등에 분을 바르거나 목욕 후 옷을 입을 때 등 생활에서 필수불가결한 상황이 발생할 때였다. 아무렇지 않은 듯 알몸을 내보였지만, 그럴 때마다 활동보조인들의 입에서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다 보면 실제로 아무렇지 않게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수치심은 그대로였다.
 
작년 가을 인사동에서 열었던 <장애여성 몸으로 말하기> 사진전에 참가하면서, 뒷모습 상반신 누드를 찍을 기회가 있었다. 사진을 컴퓨터모니터로 확인해보니 생각보다 괜찮은 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의 수술 자국이 지네처럼 흉하지는 않았다. 통자허리, 살짝 튀어나온 살, 비스듬한 어깨, 땀띠까지 전부 이미지로 구현된 내 몸은 썩 괜찮았다. 몇 년 동안 전전긍긍하며 뒷모습을 비춰보지 못한 내가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자신감을 얻어 내 뒷모습 중에서 가장 참혹하다고 생각되는 욕창 수술 자국을 사진 찍었다. 엉덩이라 동생이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는데, 동생은 찍는 내내 구시렁거렸다.
 
“이게 보고 싶어? 이걸 굳이 봐야겠어? 보고 충격 받는 거 아냐? 그냥 관두자!”
 
하지만 이미지로 구현된 엉덩이는 나쁘지 않았다. 감촉으로만 느꼈던 욕창 부위는 참혹했었는데…. 이제 살도 많이 차올라 있었고, 꼼꼼한 수술 자국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쁘지 않다고 동생에게 이야기하니, “참, 저 근거 없는 자신감은…”이라고 핀잔을 주었다.
 
내 몸을 직면하기까지 꼬박 8년이 걸리다

 
거울의 시선이 아닌, 감촉이 아닌, 타인의 목소리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내 몸과 직면하는 순간이 오기까지 걸린 시간 8년. 8년 동안 두렵지 않은 척 굴면서 주변과 자신을 속여 왔지만, 온전히 맞닥뜨리고 난 후 몸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늘 보아오면서도 별다른 시선을 두지 않았던 변형된 다리에도 눈이 갔다. 현실을 직시하자 변형된 다리에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의사의 진단이 필요한 작업이라 차일피일 미루다가 며칠 전 보조기를 맞췄다.
 
변형이 시작된 다리에서 나온 석고본은 눈으로 직접 볼 때와는 또 달랐다. 늘 길다고 주장했던 다리는 생각보다 짧았고 발등은 많이 굽어 있었다. 하지만 발의 변형에는 관리와 유지를 소홀히 한 내 책임도 일정 부분 있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 몸과 직면하자, 외면했던 부분들이 새롭게 드러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외면했기에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그것들에 관심을 갖고 처방을 내린 후 내 몸을 보살필 수 있게 되었다. 현실과 직시하는 괴로운 순간을 넘어서자 새로운 내 몸과 만난 것이었다. 반갑다, 내 몸! 일다 www.ildaro.com

*푸훗은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톡톡 튀는 감수성의 소유자로서 휠체어를 사용하는 척수장애여성입니다.  [관련 기사] 뒷전으로 밀려났던 ‘몸에 대한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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