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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딸과 느릿느릿 아시아여행> 뜨거운 감자, 어떻게 먹나요?
*풍경보다는 사람을, 사진 찍기보다는 이야기하기를, 많이 돌아다니기보다는 한 곳에 오래 머물기를 선택한 어느 엄마와 세 딸의 아시아 여행기입니다. 11개월 간 이어진 여행, 그 길목 길목에서 만났던 평범하고도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진형민)
말레이시아 페낭②
말레이시아 페낭(Penang)에 한달 머물 숙소를 구하면서 내가 양보할 수 없었던 딱 한 가지 조건은 부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세 아이 키우며 직장 다닌다는 핑계로 집안은 언제나 막 이사 온 것처럼 어수선하고 밥 해먹는 일도 건성건성 요령 피우기 일쑤였다. 하지만 난 원래 밥상 차리는 일을 좋아했었다. 쌀 씻어 밥을 안치고 조물조물 반찬을 장만하는 일은 얼마나 재미나는 놀이인가. 나라 밖 여행길에선 제대로 된 끼니를 포기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또닥또닥 도마소리 울려 퍼지는 내 부엌을 되찾고 싶었다. ▲ 자장면의 원조 완땅미(WanThanMee) 가게. 큰 그릇이 3링깃, 우리 돈으로 약 천원쯤 한다. © 진형민
냄비 하나, 프라이팬 하나를 어찌어찌 빌려놓고 아이들과 시장을 보러 다녔다. 처음엔 가까운 슈퍼마켓을 들락거렸는데, 잘 포장된 먹을 거리들이 넘쳐나긴 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가 우리 숙소 위층 미얀마 언니들이 싱싱한 채소다발들을 장바구니 가득 담아오는 걸 보았다. 길 건너 고갯길 위에 있는 ‘모닝 마켓’에서 사오는 중이란다. 알고 보니 아침 일찍 문을 열어 오후면 파장을 하는 모닝 마켓(Morning Market)이나, 오후 느지막이 시작하여 밤늦게까지 장사를 하는 이브닝 마켓(Evening Market)들이 동네마다 띄엄띄엄 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때부터 땡볕을 머리에 이고 걷고 또 걸어 모닝마켓 오가는 일이 시작되었다. 허름한 루핑 지붕 아래 작은 노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닝마켓은 내가 어린 시절 장보러 다니던 동네 재래시장과 거짓말처럼 똑같았다. 다듬지 않고 파는 야채며 그 자리에서 손질해주는 생선, 원하는 만큼 덜어 파는 어묵이며 달걀, 마른 멸치들의 가격도 소문대로 슈퍼마켓의 반값이 채 안되었고 말이다.
모닝마켓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열에 아홉이 중국인이다. 그런데 이 중국인들의 셈 계산은 참 냉정하기 짝이 없다. 저울 눈금 하나도 허투루 보아 넘기지 않고 물건을 고만큼 덜어내거나, 단돈 10센트라도 그 값어치를 더 받아내었다. 아무리 눈웃음을 쳐도 절대 넘어가주지 않고 매일 보는 단골이라도 예외는 없다. 그게 처음엔 좀 서운하고 얄미웠는데, 다들 그러는 걸 보고는 중국인들의 특성인가 보다 싶어 더는 실랑이 하지 않았다.
말레이시아는 말레이계 사람들 외에도 중국계와 인도계 사람들이 아주 오래 전부터 이주해와 살고 있는 다민족 국가인데, 그악스러움으로 버텨내야 하는 시장 통은 오래 전부터 중국인들 차지였던 모양이다. 뿐만 아니라 거리마다 한 귀퉁이에 꼭 있게 마련인 길거리 식당, 호커(hawker)에도 중국사람들의 중국식 메뉴들이 점령군처럼 빼곡하게 포진해있었고, 어쩌다 영화 한편 보러 극장에 가보니 말레이어 자막 밑에 중국어 자막이 가지런히 박혀있었다.
수영선생 림(林) 역시 중국계 청년이었다. 아이들과 내내 빈둥대다가 한번씩 이웃 아파트에 딸린 수영장으로 잠입하여 물장구를 치곤 하였는데, 줄줄이 튜브 끼고 물장구만 치는 것이 민망하여 수영선생을 찾아 나선 참이었다.
이제 막 전문대학을 졸업한 햇병아리 선생 림은 명랑하고 또 다정한 청년이라 금세 아이들과 장난치는 사이가 되었고, 나 역시 사회초년생의 어수룩함이 기꺼워서 수영하는 사이사이 이런저런 얘기를 자주 나누었다.
그런데 어느 날 림이 아이들의 ‘풀 네임’(Full Name)이 뭐냐고 다시 물어왔다. 아이들 이름에 돌림자가 있어 그런지 다 엇비슷하게 들리고 어렵다기에, 그 동안은 부르기 쉬운 별명으로 대신하였더랬다.
딴에는 중국인인 림의 이해를 돕는답시고 젖은 손을 말려 아이들 이름의 한자(漢字)를 하나씩 써서 보여 주었다. 그러고 나니 이 청년 돌연 눈을 빛내며 한국사람들도 이름을 한자로 쓰냐고 묻는 것이다. 자기 이름은 림준팅(林俊延)이라면서, 한국사람들 이름 쓰는 방식이 중국 것과 같다면서, 게다가 우리 딸내미들의 성씨가 중국에도 있다면서. 그러더니 급기야 이야기는 “그러니까 한국은 옛날에 중국이었어?”로 넘어가고 말았다.
“아니. 한국과 중국은 서로 다른 나라였어.” 정색을 하며 답하고 나니, 갑자기 말문이 막힌다. “그러면 옛날에 중국사람들이 한국으로 이사 간 건가?” 림은 재미난 이야깃거리에 빠져든 어린아이 같다. “글쎄. 잘 모르겠네.” 하고는 어물쩍 물속으로 뛰어드는데, 한국에 넘쳐나는 중국 성씨들이 내 옆에서 어지럽게 헤엄을 치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성씨인 은(殷)이나 내 성씨인 진(陳) 역시 한국 고유의 성씨와는 거리가 먼, 진짜 중국 성씨들 아닌가.
그러다가 대체 성씨며 혈통 운운하는 것이 새삼스레 무슨 의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양반입네 아닙네 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시대착오적 집착과 다를 바 없다. 시도 때도 없이 흔들어대는 한민족 한겨레라는 깃발도 불편부당하기는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문화적 동질성과 순혈주의를 착각해서는 곤란한 것 아닌가. 내 정체성의 근원을 어디에 두고 살 것인가 하는 문제 외에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없다.
나는 여전히 매일 아침 중국 아줌마에게 채소거리를 사다가 나의 부엌에서 밥을 했다. 또 이따금씩 중국 아저씨가 파는 자장면의 원조 완땅미를 사먹었고, 일주일에 세 번 중국 청년에게 어푸어푸 수영을 배웠다. 그리고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중국이라는 오래된 제국의 그림자가 좀 불편했고, 말레이시아와 중국이 축구경기를 한다면 그들은 누구를 응원할까 궁금해 하며 또 다시 쌀을 씻어 밥을 안쳤다.
밥상을 차리다 문득 돌아보니, 저만치 웬 요리사의 한숨이 길다. 국가라는 도마 위에 민족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올려놓고 깊이 고뇌하는 요리사, 그는 말레이시아였다.
[세 딸과 느릿느릿 아시아여행] 아주 특별한 위로, 아잔(adhan) | 모녀의 여행, 그 앞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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