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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딸과 느릿느릿 아시아여행> *풍경보다는 사람을, 사진 찍기보다는 이야기하기를, 많이 돌아다니기보다는 한 곳에 오래 머물기를 선택한 어느 엄마와 세 딸의 아시아 여행기입니다. 11개월 간 이어진 여행, 그 길목 길목에서 만났던 평범하고도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필리핀 민다나오 섬 와와이 마을
 

와와이 마을을 알리는 마을 입구의 표지

와와이(Waway Saway)는 마마로사의 오랜 친구였다. 인연의 끈을 타고 와와이가 살고 있는 민다나오 본섬으로 건너가려는데, 한참 만에 연락이 닿은 남편이 걱정을 놓지 못하고 계속 끌탕이다. 그 맘도 그럴 것이 민나다오는 아직 끝나지 않은 필리핀 내전의 현장이며, 요즘도 외국인 유괴가 종종 보고되는 여행위험지역이었다.
 
오래 전 민다나오는 고유한 문화를 이루며 살던 이슬람 독립 국가였다고 한다. 그러나 침략자 에스파냐는 350여 년이 넘는 필리핀 점령 기간 동안 피 묻은 칼과 함께 자신들의 종교 가톨릭을 깊숙이 묻어두었고, 민다나오를 제외한 나머지 섬들은 그들의 바람대로 가톨릭 신자들의 다소곳한 땅이 되었다. (지금도 필리핀 사람들 중 80% 이상이 가톨릭교도들이다.)
 
그러나 민다나오는 좀 달랐다. 이슬람 종교를 기필코 지켜내고 싶은 이들이 더욱 모여들어 갈수록 결연한 세를 이루었다. 이를 두려워한 집권자들은 가톨릭교도들을 대거 이주시키는 한편,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무슬림들에게 온갖 박해와 차별을 가하였다. 지금까지 질기게 이어지고 있는 민다나오의 종교분쟁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고맙게도 에니그마타의 스텝 깅(Ging)이 우리들 길잡이로 나서주었다. 배 타고 버스 여러 번 갈아타고 마지막으로 ‘지프니’라는 트럭 개조차량까지 얻어 타야하는 장장 여덟 시간 동안의 이동이었다. 그런데 멀미 없이 타고난 딸아이들과는 달리, 깅은 모든 탈 것들에 부지런히 반응하며 먹은 것들을 도로 내놓기 바빴다.
 
날은 저물고 비상용 비닐봉투도 다 떨어져 난감할 즈음 딸라안디그(Talaandig) 부족 와와이 마을을 알리는 나무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안도감으로 큰 숨을 내쉬고 나니, 일면식도 없는 와와이가 벌써부터 내게 안식을 건네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이방인들로 하여금 힘겨운 이 길을 더듬어 오게 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겨우 준비운동을 마친 셈이다.
 

와와이 빌리지 예술가들의 소일 페인팅 작품

염치 불구하고 와와이네 좁은 집에서 같이 머물기로 하였다. 집 안에는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다섯이나 되었다. 음악 공부하러 딴 곳에 가 있다는 큰 아들까지 합해 와와이 부부에게는 모두 여섯 아이들이 있었고 막내는 이제 막 걸음마를 내딛는 중이었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바깥손님들 때문에 아이들은 잠자리를 구해 이리저리 흩어졌고, 우리는 아이들 방에 몸을 부린 뒤 야전침대처럼 생긴 접이식 침대에 두 명씩 끌어안고 누워 불편한 줄도 모르고 금세 골아 떨어졌다.
 
구수한 냄새에 억지로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지금껏 나에게 필리핀은 반팔 옷에 슬리퍼 직직 끌고 다니는 덥고 습한 나라였는데, 지난밤에는 밤새 추위로 덜덜 떨어야 했다. 몸을 있는 대로 오그리고 잤더니 마디마디가 장작처럼 뻣뻣하다. 여기는 민다나오 서쪽 고산지대였다.
 
와와이 부인이 차려주신 아침상 앞에서 딸들이 저희끼리 툭툭 치며 자꾸만 얼굴을 히죽거린다. 둘째 빈이가 냄비 안을 가리키며 입모양만으로 ‘닭.고.기.’ 라고 그 기쁨을 나에게 전하였다. 어제는 하루 종일 먹은 것들이 시원치 않았다. 살코기들을 양껏 접시에 덜어 서둘러 한입 베어 무는데, 에구머니나 고기 맛이 좀 이상하다.
 
옆에서 냠냠 맛나게 먹는 깅에게 이게 무슨 음식이냐고 다급히 물으니 잭프룻 수프(Jackfruit Soup)란다. 잭프룻이라면 우리가 맛을 들이는 데 실패한 두 열대과일 중 하나인 바로 그 녀석이다. (나머지 하나는 실로 독특한 냄새의 주인공 두리안이다.) 그 속살을 파내어 국을 끓여 놓으니 닭백숙과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정말 똑같았다.
 
갑자기 아이들 얼굴이 노래진다. 입에 댄 음식을 안 먹는다고 물렸다가는 엄마한테 경을 칠 것 같고, 그렇다고 그 많은 잭프룻을 맨 정신으로 씹어 삼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큰딸 써니는 엄마랑 담판 짓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듯 낮은 소리로 나에게 종알종알 따지기 시작했고, 마음 여린 둘째는 울상을 하면서도 조금씩 먹어치우는 시늉을 하였다.
 
그 와중에 막내 짜이는 깅 언니를 쳐다보며 씩 웃더니 큰 덩어리 하나를 언니 접시에 얼른 옮겨다 놓는다. 그제서야 사태를 알아챈 깅이 웃으면서 아이들 접시 위의 가짜 고깃덩어리들을 슬쩍슬쩍 덜어가 주었다.
 

딸라안디그 부족의 전톨악기를 손보는 와와이(Waway Saway)

얘기를 듣고 보니 와와이는 참 대단한 사람이다. 젊은 시절 도시에서 음악공부를 하다가 불현듯 짐을 싸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뒤 부족의 소리 안에서 새로운 음악의 길을 찾기 시작했고, 전통 악기인 두 줄 기타나 피리, 북 등을 만들고 연주하고 노래하며 지금껏 살아오는 중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바깥 문명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던 부족 사람들과 아이들에게 부족의 영혼이 담긴 음악을 가르쳐왔고, 이제는 꼭 필요한 만큼만 농사짓고 남는 시간에는 자신들만의 음악과 그림과 춤과 이야기들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도 했다.
 
너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와와이가 물었다. 선뜻 대답을 못하는 나에게 자신이 나줘 줄 수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준다. 나는 그 중에서 그림을 선택하였다. 늘 하고 싶었지만 잘 할 수 없다고 여겨 머뭇거렸었는데, 갑자기 잘 그리든 못 그리든 상관없단 생각이 들었다.
 
와와이는 손수 나무를 짜고 천을 덮어 만든 커다란 캔버스와 곱게 갠 흙에 꽃잎과 이파리들을 짓찧어 뚝딱 마련한 색깔 물감 몇 개를 내주고는 이제 그려, 하였다. 아무거나 네 마음속에 있는 것을 그리라는데 한참을 애를 써 봐도 도무지 떠오르는 것이 없다.
 
마을에서 만난 예술가들(그들은 연주하며 노래하고 그림 그리다가 춤을 추는 정말 총체적인 예술가들이었다) 라울과 솔리만과 발룩토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발끝에서부터 밀려올라오는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었다. 그것은 자연을 자기 자신처럼 이해하는 이들만이 뿜어낼 수 있는 영적인 그 무엇이었다.
 
나는 결국 와와이네 집 담장에 걸려있던 카츄붕(Katsubung) 꽃가지를 그렸다. 넓은 캔버스에 달랑 꽃 하나였다. 라울과 솔리만은 잘 한다 격려도 해주고 여기저기 서툰 부분도 살살 손보아주면서 줄곧 내 옆을 지켰다. 다 했다고 붓을 놓는데 라울이 잠깐만, 하더니 하늘 한쪽 구석에 작은 태양 하나를 슬그머니 그려 넣는다. 태양은 모든 것들의 어머니, 라며 라울이 소리 없이 웃었다.
 

내 그림 작업을 도와준 라울과 솔리만 (좌) 우측은 그림의 모델이 되었던 카츄붕 꽃


오랜 세월 소외되고 버려졌던 땅 민다나오, 가톨릭 정부군과 무슬림 반군 사이에 끼인 그 아슬아슬한 곳에서 딸라안디그 부족 사람들은 살아왔고 또 살아간다. 그리고 싶은 것, 부르고 싶은 것, 춤추고 싶은 것들이 볕 아래 곡식처럼 나날이 영글어가는 부러운 삶이다.
 
그런데 그 빛나는 알곡을 한 줌 얻어가면서도 나는 대신해 내놓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낡은 지식으로 잰 체하던 내 가난한 정신이 고개를 떨구었다. (진형민)
 
[세 딸과 느릿느릿 아시아여행] 오미드의 첫사랑  독수리 둥지에서 잠들다 | 영어, 너는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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