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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 앞 이야기
*풍경보다는 사람을, 사진 찍기보다는 이야기하기를, 많이 돌아다니기보다는 한 곳에 오래 머물기를 선택한 어느 엄마와 세 딸의 아시아 여행기입니다. 11개월 간 이어진 여행, 그 길목 길목에서 만났던 평범하고도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여행이나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줄곧 입에 달고 살았었다. 멀리 출장 가는 남편 등짝만 봐도 부러워 한숨이 나왔지만, 그렇다고 코앞의 일들을 다 떨치고 나설 엄두가 나지는 않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덜컥 마흔 줄에 접어든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릎이 푹 꺾이고 보니 내 나이 마흔이었다.
좀 길게 여행을 가야겠다는 내 말에, 남편은 달리 토를 달지 않았다. 그즈음 나의 상태가 여러모로 아슬아슬해 보이기도 했겠고, 어쨌거나 내가 세 딸아이를 모두 데리고 다니겠다고 하니 자기로서도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으리란 계산이 선 것 같기도 했다.
아이들은 여행 이야기에 대번 반색을 했다. 공부하라고 닦달한 적도 없는데, 그래도 학교 가는 것보다는 매일 길 위에서 노는 게 더 재밌겠는 모양이었다. ‘얼마나 길게’에 대한 정확한 예정도 없이 아이들 학교에 휴학을 신청하고 났더니만, 어떤 이는 부럽다고 했고 어떤 이는 나중을 걱정했고 또 어떤 이는 진짜 엄마 맞느냐고 했다.
내가 다니던 학교도 정리를 했다. 다른 일도 그렇거니와 가르치는 일에는 기운이 필요했다. 기운 없는 교사는 아이들을 시들게 한다. 한때 나의 전부였던 것들도 시간 속에 나이를 먹고 어느 새 속절없이 늙어 있었다.
나는 한 곳에 오래 머무는 여행을 할 생각이었다. 남보다 빨리 최대한 많이 보고 서둘러 움직이는 여행은 생각만 해도 멀미가 났다. 빈틈없이 하루를 쪼개 사는 일이 지겨워져 떠나는 길이었고, 나는 내 옆구리쯤에서 세월이 좀 먹는 걸 기어이 보고야 말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고생스럽게 왜 하필 아시아냐고, 아이들까지 데리고 괜찮겠느냐고, 사람들이 자꾸 물어 왔다. 그러고 보니 우리 처지가 좀 딱하긴 했다. 열한 살 먹은 막내부터 두 살 터울로 조르륵 올라붙은 딸내미 셋과 나. 그러니까 굳이 분류하자면 재난 시 구호물품 배급 1순위가 분명한‘여자 넷 - 어린아이 포함’그룹인 것이다.
실제로 나는 위급상황에서 빼낼 비상용 칼자루 하나 없는 허술한 엄마였다. 게다가 퇴직 후 더 얇아진 지갑에 한 번씩 허리가 휘청거렸으며, 영어실력이라는 것 또한 알량하기 짝이 없어 떠듬떠듬 내 할 말이나 겨우 하는 정도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염려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먹고 나면 막바로 몸을 움직여야 하는 종류의 사람이었고, 대체로 사고 친 후 생각이란 걸 하고 살아왔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끈끈이에 한쪽 다리가 달라붙은 파리가 죽을힘 다해 파드득 날갯짓을 하듯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절박함으로 냅다 땅을 박차고 우리는 기어코 날아올랐다. 끈끈이 한 켠에 끝내 떨어져 나간 다리 한 짝이 어른거렸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2009년 2월 4일, 비행기는 말레이시아를 향하고 있었다.
▲ 여행 이야기의 주요인물들 : 왼쪽부터 엄마 진형민(40), 큰딸 은승현(15), 둘째 은승빈(13), 막내 은승채(11)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풍경보다는 사람을, 사진 찍기보다는 이야기하기를, 많이 돌아다니기보다는 한 곳에 오래 머물기를 선택한 어느 엄마와 세 딸의 아시아 여행기입니다. 11개월 간 이어진 여행, 그 길목 길목에서 만났던 평범하고도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여행이나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줄곧 입에 달고 살았었다. 멀리 출장 가는 남편 등짝만 봐도 부러워 한숨이 나왔지만, 그렇다고 코앞의 일들을 다 떨치고 나설 엄두가 나지는 않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덜컥 마흔 줄에 접어든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릎이 푹 꺾이고 보니 내 나이 마흔이었다.
좀 길게 여행을 가야겠다는 내 말에, 남편은 달리 토를 달지 않았다. 그즈음 나의 상태가 여러모로 아슬아슬해 보이기도 했겠고, 어쨌거나 내가 세 딸아이를 모두 데리고 다니겠다고 하니 자기로서도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으리란 계산이 선 것 같기도 했다.
아이들은 여행 이야기에 대번 반색을 했다. 공부하라고 닦달한 적도 없는데, 그래도 학교 가는 것보다는 매일 길 위에서 노는 게 더 재밌겠는 모양이었다. ‘얼마나 길게’에 대한 정확한 예정도 없이 아이들 학교에 휴학을 신청하고 났더니만, 어떤 이는 부럽다고 했고 어떤 이는 나중을 걱정했고 또 어떤 이는 진짜 엄마 맞느냐고 했다.
내가 다니던 학교도 정리를 했다. 다른 일도 그렇거니와 가르치는 일에는 기운이 필요했다. 기운 없는 교사는 아이들을 시들게 한다. 한때 나의 전부였던 것들도 시간 속에 나이를 먹고 어느 새 속절없이 늙어 있었다.
나는 한 곳에 오래 머무는 여행을 할 생각이었다. 남보다 빨리 최대한 많이 보고 서둘러 움직이는 여행은 생각만 해도 멀미가 났다. 빈틈없이 하루를 쪼개 사는 일이 지겨워져 떠나는 길이었고, 나는 내 옆구리쯤에서 세월이 좀 먹는 걸 기어이 보고야 말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고생스럽게 왜 하필 아시아냐고, 아이들까지 데리고 괜찮겠느냐고, 사람들이 자꾸 물어 왔다. 그러고 보니 우리 처지가 좀 딱하긴 했다. 열한 살 먹은 막내부터 두 살 터울로 조르륵 올라붙은 딸내미 셋과 나. 그러니까 굳이 분류하자면 재난 시 구호물품 배급 1순위가 분명한‘여자 넷 - 어린아이 포함’그룹인 것이다.
실제로 나는 위급상황에서 빼낼 비상용 칼자루 하나 없는 허술한 엄마였다. 게다가 퇴직 후 더 얇아진 지갑에 한 번씩 허리가 휘청거렸으며, 영어실력이라는 것 또한 알량하기 짝이 없어 떠듬떠듬 내 할 말이나 겨우 하는 정도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염려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마음먹고 나면 막바로 몸을 움직여야 하는 종류의 사람이었고, 대체로 사고 친 후 생각이란 걸 하고 살아왔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끈끈이에 한쪽 다리가 달라붙은 파리가 죽을힘 다해 파드득 날갯짓을 하듯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절박함으로 냅다 땅을 박차고 우리는 기어코 날아올랐다. 끈끈이 한 켠에 끝내 떨어져 나간 다리 한 짝이 어른거렸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2009년 2월 4일, 비행기는 말레이시아를 향하고 있었다.
▲ 여행 이야기의 주요인물들 : 왼쪽부터 엄마 진형민(40), 큰딸 은승현(15), 둘째 은승빈(13), 막내 은승채(11)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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