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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딸과 느릿느릿 아시아여행> 풍경보다는 사람을, 사진 찍기보다는 이야기하기를, 많이 돌아다니기보다는 한 곳에 오래 머물기를 선택한 어느 엄마와 세 딸의 아시아 여행기입니다. 11개월 간 이어진 여행, 그 길목 길목에서 만났던 평범하고도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말레이시아 페낭①
 

우리 동네 이름 없는 모스크. 모스크에 들어갈 때는 온몸을 덮는 긴 옷을 빌려 입고 들어가야 한다. 외국인이라고 머리에 쓰는 히잡은 면해주었다.

말레이시아 북서쪽 해안의 작은 섬 페낭(Penang)으로 올라왔다. 몇 년 전에 아이들 데리고 건너와 터 잡고 사는 친구를 찾아온 길이었다. 말레이 사람들에게는 피낭(Pinang)이라 불리우는 이 곳 페낭은, 말레이시아의 중심 쿠알라룸푸르에서 버스로 다섯 시간 남짓 달려야 닿는 구석진 곳이다.
 
한때는 동양의 숨겨진 휴양지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는데, 2004년 겨울 동남아를 뒤덮은 검은 파도 쓰나미 이후로는 관광객이 부쩍 줄었다고 한다. 바닷물이 예전 같지 않다고도 하고, 갑자기 해파리가 많아진 탓이라고도 했다. 쇠락한 여배우처럼 어쩔 수 없이 한가한 얼굴을 하고 있는 섬의 한 귀퉁이에다 한달 쯤 머물 방을 얻었다.
 
누가 일러준 것도 아닌데, 우리는 말레이시아가 이슬람국가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리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른 새벽부터 한밤중에 이르기까지 하루에 다섯 번씩이나- 새벽, 한낮, 오후, 저녁, 밤중- 무슬림들의 기도시간을 알리는 아잔(adhan)소리가 동네방네 울려 퍼지는 것이다.
 
하도 가깝게 들려 도대체 어디쯤에서 나는 소리인가 두리번거리다 보니, 길 건너편에 작고 허름한 이슬람 사원 모스크가 하나 눈에 띈다. 그 지붕 위로 높직하니 솟은 기둥에 사방으로 네 개의 확성기가 매달려있고, 그 곳에서 시시각각 아잔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던 거다.
 
웅얼웅얼 단조로운 가락에 실려 오분 쯤 이어지는 아잔을 좋으나 싫으나 매일 듣고 있자니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궁금해졌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알라는 위대하시다’ 등속의 기본 교리에 덧붙여 ‘어서 기도하러 오라’는 얘기를 반복하는 거란다.
 
시간 맞춰 생방송으로 아잔을 읊는 사람을 무아진이라 부른다고도 했다. 그런데 우리 동네 소박하기 그지없는 모스크의 무아진께서는 음감이 부족한 건지 아님 지나치게 뛰어난 건지 똑같은 아잔을 부를 때마다 전혀 다른 노래처럼 변주하곤 하여 우리를 즐겁게 하였다.
 

큰딸 승현.

어쨌거나 우리는 학교 종소리에 맞추어 수업을 받듯이 아잔 소리에 맞추어 눈을 뜨고 밥을 차려 먹고 다시 잠자리에 들곤 했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이제 넌더리가 난다고 생각했었는데, 규칙적으로 꼬박 반복되는 아잔 소리 덕분에 불안과 긴장으로 펄떡대던 내 심장이 차츰 제 속도를 찾아가는 듯했다.

 
하루는 아이들과 시내에 나갔다가 까삐딴 껠링(Kapitan Keling)이라는 크고 번듯한 모스크를 우연히 보고 마음이 혹하여 들어갔다. 우리 같은 구경꾼이 많은지 입구에서 안내인을 원하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친절해 보이는 이집트 출신의 이맘(이슬람 예배를 주관하는 사람)이 손수 모스크 여기저기를 둘러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마침 오후 아잔이 시작되길래, 예배 드리는 모습을 봐도 좋으냐 물었더니 선뜻 그러라고 했다. 동네 모스크에서는 여자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이곳에는 히잡을 쓴 여자들이 간간이 눈에 띈다.
 
어느 새 모여든 사람들이 손과 발과 얼굴을 씻고 회랑에 들어가 어깨가 닿을 만큼 나란히 서서는 이맘의 이끄는 소리에 따라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십오 분쯤 함께 예배를 드렸다. 한낮의 더위가 무색할 만큼 사람들의 뒷모습이 고요하고 평온해 보였다.
 
그러고 보면 이슬람교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유독 인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긴 세월 테러리스트로 폄하된 전력 탓일 수도 있고, 라마단 금식이며 여자들의 부르카나 히잡 착용 문제, 또 돼지고기와 할랄(이슬람 계율에 따라 도축하는 것)되지 않은 고기를 금하는 것과 같은 다소 엄격한 교리 탓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막상 삶으로 스며든 이슬람교를 곁에서 지켜보자니, 일면만이 부각된 세간의 날 선 눈초리들이 좀 안타깝다. 하루 다섯 번 신 앞에 온 몸을 숙여 기도하고 일년 중 한 달을 금식하며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고자 애쓰는 무슬림들의 일상적 겸허함은 누가 뭐래도 종교의 보편적인 미덕에 맞닿아 있으니 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덧붙이는 이야기 하나.
 

시내에 있는 까삐딴 껠링 모스크

돼지고기 넣고 찌개나 해먹자고 아이들과 동네 슈퍼마켓에 장을 보러 갔는데, 고기 진열장에 돼지고기가 보이지를 않았다. 닭고기, 소고기, 양고기 모두 번듯하게 누워 있는데 돼지고기만 없길래 점원에게 물어보니 한쪽 구석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잘 보이지도 않는 그 곳에는 생고기뿐 아니라 돼지고기로 가공된 햄이나 소시지, 베이컨들이 머리카락 보일 새라 꼭꼭 숨어 있었다.

 
의붓자식처럼 처량한 신세의 돼지고기를 조금 사가지고 계산대로 나오니, 히잡을 쓴 점원언니 표정이 영 좋질 않다. 미간을 찌푸린 채로 새 비닐봉투를 꺼내 손에 끼우더니 돼지고기 포장 팩을 겨우 들어 전자계산대에 툭 찍고는 얼른 떨궈버리는 게 아닌가. 손에 끼웠던 새 비닐봉투는 어느 틈에 쓰레기통 속으로 던져 넣었고 말이다. 생고기를 직접 주무르는 것도 아니고 여러 겹 포장된 팩을 만지는 일도 꺼려할 만큼 무슬림들에게 돼지고기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치, 돼지고기만 차별해.” 우리 둘째 빈이가 돼지고기 불쌍하다며 품에 안고 한참을 쓰다듬어 준다. 지나친 경계심을 상대로 어린아이와 돼지고기가 눈물겹게 연대하는 순간이었다. [진형민
ⓒ 일다 www.ildaro.com  [이전 글보기-> 여행 그 앞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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