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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마 사에 作 <유기동물에 관한 슬픈 보고서>
 

길고양이 '건강이'와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을 함께했다.

얼마 전 내게 작은 아기가 찾아왔다. 한 뼘도 안 되는 크기에 비쩍 마른 몸, 야옹거리며 울고 있지 않았다면 실수로 밟았을지도 모르는 작은 아이였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 길, 앙칼진 울음소리에 둘러봤더니 대문 앞 골목 한가운데 차가운 시멘트바닥에 작은 아기고양이가 기어 다니며 울고 있었다. 내가 ‘아휴’ 하며 한 손으로 들어올리자, 있는 힘껏 양 손으로 뿌리쳤지만 역부족이었다.

 
‘건강이’는 그렇게 우리를 찾아왔고,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함께했다. ‘건강이’는 많이 아팠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왼쪽 뒷발이 잘려있었고, 너무 굶어서 뼈가 훤히 드러날 정도였다. 100그램이 채 되지 않은 몸무게로 무슨 힘이 있었는지, 첫날은 방구석에서 앙칼지게 울기만 했다. 병원을 다녀오고 링거를 꽂은 후로는, 거꾸로 품에서 내려놓기만 하면 안아달라고 울어댔다.
 
우리는 꼬박 일주일을 밤낮없이 ‘건강이’를 품에 안고 살려달라 기도하며 간호했다. 하지만 장기간 굶은 탓에 장 기능이 회복되지 않았다. 손가락을 가만히 대면 꼬옥 부여잡는 ‘건강이’를 볼 때마다, 살려달라고 하는 것 같아서 꼭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우리 품에 온지 엿새 만에 세상을 떠났다.
 
애초에 고양이를 기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애인과 나는 알레르기성 비염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고양이는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했다. 또 둘 다 바쁜 편이라 누굴 돌볼 처지가 아니라고 여겼다. 나는 예전에도 버려진 개를 데려다 기른 적이 있었는데,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는지라 결국 지인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것과 책임을 지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걸, 당시 느꼈다. 충분히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이 될 때까지 어떤 동물도 기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건강이’가 온 것이다. 어쩌면 ‘건강이’에게 선택 당한 것만 같다.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못 본 척하면 그만이었지만, 그것은 ‘건강이’의 죽음을 의미했다. 운이 좋게도 나는 건강이 병원비를 감당할 만큼 벌이가 있었고, 교대로 잠을 자며 간호해줄 수 있는 애인과 친구도 있었다.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건강이’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나마 우리가 곁을 지킬 수 있었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픈 ‘건강이’를 돌보는 동안, 아주 많이 힘들었다. 아픈 가족을 돌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정말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건강이’를 보살피면서 오히려 내가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픈 아이를 보면서 괴롭고 고통스러웠지만, 도리어 그 아이로부터 내가 따뜻한 돌봄을 받는 느낌.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아이가 내게 의지하는 느낌, 꼭 살아줬으면 하는 나의 바램, 이런 감정들로 어린 고양이와 깊이 교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작은 고양이 한 마리는 우리에게 짧지만 깊은 변화를, 말로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경험을 선물해주었다. 동물이지만 사람과 똑같이 숨 쉬고 교감하고 깊이 어루만져줄 수 있음을 느꼈던 것일지도.
 
‘안락사’란 이름으로 ‘살처분’되는 동물들
 

책 "유기동물에 관한 슬픈 보고서"

<유기동물에 관한 슬픈 보고서>(고다마 사에 作, 책공장더불어)는 인간이 동물을 ‘사육’하고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임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세상 속에 살아가는 동물들이 우리와 똑같이 호흡하고 감정을 가진 존재라는 걸 보여준다.

 
이 책은 일본인 저자가 유기동물보호소에서 ‘살처분’ 당하기 전의 동물들을 직접 촬영한 사진모음집이다. 저자는 책에서 ‘안락사’라는 용어 대신 ‘살처분’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살 의지가 있는 건강한 동물들의 생명을 강제로 빼앗는 걸 ‘안락사’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기동물보호소에서 동물들은 안락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는다. 마대자루에 덮여 가스실로 보내지고, 고통스러워하며 죽음을 맞는다.
 
한국에서는 원래 마취제와 함께 근육이완제가 투여되는데, 마취제 비용을 아끼기 위해 근육이완제만을 투여하기도 한다. 그 결과 동물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죽음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호소직원들은 사람들이 자신이 버린 반려동물이 고통스럽게 죽임 당하는 현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려동물을 버리는 사람들은 알아야 해요. 대부분 보호소에서 주사를 놔서 편안하게 보내 준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개도, 고양이도 가스실에서 울부짖고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다가 죽어가죠. 저도 직업으로 이 일을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괴롭습니다.” (p.68)
 
사진 속의 동물들, 보호소와 우리에 갇혀 있는 동물들은 제각각 사연을 지닌 채 슬픈 눈을 하고 있다. 몇 년 전 키울 형편이 안 된다고 친구에게 보내버린 우리 ‘시로 주니어’의 모습도 보이고, 도로에서 구출했으나 유기동물보호소로 보내야 했던 강아지의 모습도 보이고, 길가에서 ‘누군가 주인이 있겠지’하며 지나쳤던 수많은 유기동물의 모습도 보인다.
 
아마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일종의 책임감이 없었다면, 나는 책을 펼쳐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책 속에 있는 유기동물들의 모습이 다름 아닌 내가 져버렸던 그 불쌍한 아이들의 결말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함께 했던 늙은 개의 뒤치다꺼리가 하기 싫다고, 원하지 않는 새끼를 뱄다고, 이런 저런 이유로 사람들은 기르던 동물을 보호소로 데려온다. 물론, 이것도 양반에 속한다. 대부분의 주인들은 ‘죽음’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길에 그냥 버린다.
 
책의 편집자는 특히 한국사람들이 시골 사는 친척이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에게 개를 맡기는데, 그건 개를 길에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꼬집는다. 시골에 도착하기도 전에 개 식용업자에게 팔리거나, 시골에서도 농작물을 망친다고 묶여 지내거나, 식용문화로 인해 여름을 넘기기 힘들다는 것이다.
 
떠올려보면 내가 어렸을 적에 길렀던 강아지들 대부분은 시골에 계신 할머니 집으로 보내졌다. 그 뒤로 그들 대부분이 잡아 먹혔거나, 아니면 길에 있는 쥐약 섞인 먹이를 먹고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 같다.
 
유기동물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이 책은 동물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이 좀더 책임 있는 태도를 가지기를 촉구한다. 우선 많은 유기동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반려동물’을 대하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많은 사람들이 별 고민 없이 장난감이나 유행처럼 ‘애완동물’을 선택한다. 그러다 새끼 때의 귀여운 모습이 사라지고, 이웃들과 문제가 생기거나 사료 등 경제적 부담이 커지면 동물들을 내버린다.

 
반려동물을 쉽게 선택한 사람들에게는 버리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 따라서 반려동물을 선택하는 것, 그 순간부터 책임감 있는 태도를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애초에 반려동물을 진정 인간과 ‘함께 하는’ 존재로 인식한다면, 현재와 같이 거리를 떠도는 동물들의 수는 크게 줄어들지도 모른다.
 
한편, 이 책은 유기동물이 늘어나는 주요한 원인으로 ‘행정기관의 책임’도 묻고 있다. 소홀한 관리로 인해 반려동물이 초과 공급되면서 잉여동물이 늘게 됐고, 그 결과 무절제하게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잉여동물들을 싼값으로 손쉽게 사들일 수 있기 때문에, 기르는 과정에서 더 많은 비용이 들면 거침없이 버리게 된다.
 
한국사회의 개 식용문화는 잉여동물들이 양산되는 시스템을 부추기는 요소로 작용한다. 펫숍의 잉여동물들은 경매를 통해 식용재료로 팔려 나간다고 한다. 이렇게 잉여동물이 양산되는 시스템 덕에, 동물의 생명은 더욱 가볍게 ‘처분’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반려동물들이 유행에 따라 바꿀 수 있는 장난감이나, 기분에 따라 죽여도 되는 미물처럼 다루어지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잉여동물의 수를 줄이기 위해 행정기관이 번식장이나 펫숍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유기동물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덧붙여보겠다. 논쟁의 여지가 있겠지만, 저자는 첫 번째로 중성화 수술을 꼽고 있다. 잉여동물을 줄임으로써 유기동물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중성화 수술로 각종 질병을 예방할 수 있고, 스트레스 감소 등 수명 또한 길어진다고 한다.
 
또한 훈련상식을 제대로 배워서 반려동물들이 주위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할 것, 반려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익히고 실천할 것, 산책할 때 이름표와 줄을 반드시 부착할 것 등,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원칙을 강조한다.
 
반려동물과 함께하기로 결정했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버리지 않는 책임감을 가질 것, 잃어버렸다면 보호소나 구청을 통해 되찾기 위해 노력할 것, 새로운 반려동물을 맞이하려는 사람이라면 버려진 동물을 입양할 것, 그리고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항의하거나 고발할 것, 버려진 동물을 만났을 때 못 본 척하지 말고 구조할 것, 마지막으로 이러한 유기동물들의 문제를 주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길고양이를 입양한 후에 생긴 변화들
 
‘건강이’를 보낸 이튿날, 기적 같은 선물을 받았다.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나는 어디선가 ‘야옹’하는 작고 가는 울음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건강이’가 그리워서 환청이 들리는 줄 알았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컴컴한 건물 계단에 왠 새끼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 손으로 안아 드니, 우리 ‘건강이’보다 약간 큰 체구에 ‘건강이’와 똑같이 왼쪽 뒷다리가 절단된 새끼고양이였다. 이름은 ‘건투’라고 지었다. 마치 ‘건강이’가 천사가 돼서 ‘건투’를 우리에게 보내 준 것만 같았다.

 
‘건투’가 가족이 된 이후, 우리의 일상에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작은 사료봉투를 들고 다니며 길고양이가 보이면 주곤 한다. 집 앞 고양이가 자주 보이는 장소에 사료봉지를 두기도 한다(동네주민이 싫어할까 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두긴 하지만). 유기동물 보호센터에 적은 액수나마 후원을 시작했고, 길을 가다 아픈 아이들이 눈에 띄면 도움을 줄 수 없을까 걸음을 멈추곤 한다.
 
건강이가 떠난 뒤로, 갑자기 내 주위에 아프거나 다친 고양이들이 눈에 띄게 급증했다. 그러다 보니 걱정도 늘어났다. 추위가 시작되면 길고양이들이 얼어 죽거나 사고로 죽는 경우가 늘어난다고 한다. 추우니 따뜻한 자동차 밑에 들어갔다가 깔려 죽는 경우도 많고, 먹이를 찾다 얼어 죽는 경우도 많다.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면, ‘건투’는 겨울을 넘기기 힘들었을 거라고 한다. ‘건투’같은 아이들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골목길 담장 구석에, 지붕 아래 빈 틈새에서 새끼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그만 아량을 베풀어 통조림이라도 가끔 놓아주길, 그것이 어렵다면 국물 낸 멸치 조각들이라도 가져다 주길 바란다.
 
많이 힘들어 보이는 아이들이라면, 직접 구조하기가 여의치 않더라도 모른 척 지나치지 않기를. 조금의 수고를 들여 입양할 수 있는 사람들을 알아본다면 금새 찾을 수도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덧붙여, 이 책의 부록으로 <유기동물의 행복한 입양이야기>가 있다. 온라인 공간 <동물책 함께 만드는 작업실>의 행복한 입양이야기 게시판에 올라온 사례들을 모아 엮은 내용들이다. 유기동물을 입양해 행복한 삶을 보내는 59가족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책의 관점이 남다른 것 같아 찾아봤더니, 출판사인 ‘책공장 더불어’(blog.naver.com/animalbook)는 동물생명전문출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알고 보니 동물을 너무 사랑하는 어떤 여성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출판한 책 전권에 반려동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돋보인다. (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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