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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의 시선으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읽기
*김효진님은 <오늘도 난, 외출한다>의 저자이며, 장애여성네트워크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사에 스포일러가 있으니 소설을 보실 분들은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말,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탐닉하던 내게 남편이 핀잔을 주었다.
“젊은 소설가 책이나 읽고… 뭐 볼 게 있다고.”
“젊은 소설가?”
그러고 보니 그 동안 젊은 소설가의 소설에 빠져본 적이 한번도 없었기에, 스스로도 이상하긴 했다. 마냥 가볍기만 한 소설 나부랭이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흐름을 깨고 싶지 않아 긴 말은 하지 않았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예담)는 2008년 12월부터 2009년 5월까지 6개월 동안 온라인서점 예스24 블로그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라고 한다. 연재를 시작할 무렵부터 “박민규의 색다른 연애소설”로 인구에 회자되며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다.
연애소설? 사랑을 주제로 하였으니 연애소설인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겠지만 “색다른 연애소설”이라니 좀 심하다 싶다. 세상에 흔하디 흔한 것이 남녀의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이니, 그 모든 것을 두고 다 연애소설이라고 칭하진 않는다. 게다가 더할 나위 없이 못생긴 여자와 성공한 영화배우 아버지를 둔 잘생긴 스무 살 남자와의 사랑이어서 색다르다고들 하는 걸까?
요동치던 1980년대 중반, 버림받은 청춘들
이 소설은 온 나라가 팽창하던 부를 주체하지 못하고 요동치던 1980년대 중반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성장소설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1980년대 중반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갑자기 큰돈을 만지게 된 것도 그 무렵이다. 부동산이며 증권이며… 비누거품이 일듯 팽창하던 세상의 분위기와, 갑자기 불어난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갈피를 못 잡던 사람들, 그 사실을… 인정하진 않으면서도 다 같이 부러워하던 사람들… 땀 흘려 일하기가 갑자기 서먹하고 무안해진 사람들… 가난이 죄란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은 사람들과…(41, 42쪽)”
가난만 죄가 아니었다. 그 1980년 중반부터 못생긴 것도 죄가 되는 세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못생긴 여자일까? 미친 듯이 속력을 내던 자본주의의 절대적인 희생양은 노동자, 농민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외모가 돈보다 더 절대적인 세상에서, 못생겼다는 이유로 자신을 부정하고 살아야 했던 그녀는 소수자 중에서도 어느 누구의 관심과 배려조차 받지 못하는 가장 버림받은 소수자였다.
그렇게 세기의 추녀와, 배우로서 성공한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슬픈 청춘인 작중화자 ‘나’는 자본주의의 최전선이었던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나 사랑을 시작한다. 자본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부’와 ‘아름다움’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어 있는 나와 그녀의 사랑은 그래서 닿을 듯 닿지 못하고 서로를 비껴가는 애잔한 사랑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 작품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둘의 사랑을 통해 소설 속 주인공들의 연애사를 넘어 부와 아름다움을 숭상하며 서서히 인간을 파괴시켜가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을 신랄하게 반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의 복원
소설 속의 여주인공은 스스로를 “세상이 만들어낸 장애인”이라고 표현했다. 사실, 이 세상 모든 장애인들은 ‘세상이 만들어낸’ 장애인들이다. 장애인들은 장애 그 자체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분리하거나 기회를 제한하는 차별 때문에 고통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소설 속 그녀의 편지 형식을 빈 긴 독백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인정받지 못하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지만… 저는 분명히 세상이 만들어낸 장애인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들과 함께 학교를 다녀야 했고, 남들과 비슷한 옷을 입어야 했고… 그리고 언제나 남과는 다른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268쪽).”
여섯 살 때 들은 ‘야 이 못난아’라는 최초의 놀림 이후 메주, 미친 메주, 호박, 돼지, 괴물, 산돼지 등등 언제나 따라다녔던 지독한 별명들…. 여중생이 된 이후 놀림은 사라졌지만 지독하게 격리되어야 했던 학교생활… 대응하면 “열등감 덩어리란 소릴 듣고 잠자코 있으면 바보가 되는” 비웃음과 동정… 여자로 살아가려면 웃음거리가 되기에 그녀는 “마음속에서 스스로의 얼굴을 도려낸 여자”였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누구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을 거란 절망감 때문이었다. 중3 때 생리를 시작했던 눈 내리는 겨울날, “도대체 내게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일까”라고 회의하는 대목에서는 심하게 감정 이입되었다. 게다가 첫 화장을 했던 날의 심경에 대한 세세한 묘사까지…. 이후 직장생활에서 못생겼다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불이익은 웬만한 사람이라면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므로 생략해도 좋을 듯하다.
소설 속 그녀는 분명 장애여성인 우리들과 매우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녀 표현대로라면 장애여성인 우리보다 더욱 더 깊은 상처와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 상대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다가가는 것
지금까지 예쁜 여자, 아니면 최소한 평범하기라도 한 여자가 아니라, 추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은 거의 없었다. 그런 면에서 추녀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복원시켜낸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값지다.
게다가 흔하디 흔한 사랑타령의 재탕-외모이데올로기만큼이나 사랑이데올로기도 위험하다-에 머물지 않고 독자들에게 문제의식을 던질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를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살아있는 생명체로 복원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소설가 박민규는 못생긴 그녀의 언어를 통해 그녀에게 숨을 불어넣는다. 언제나 자기 생각은 뒷전이고 “아니, 아니에요” 하는 그녀와 같은 존재들의 언어를 복원시켰다는 건, 그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진심이기에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머뭇거리기만 하는 작중화자 ‘나’를 대신해 멘토 역할의 요한은 말한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쟤는 진심이야(140쪽).”
우리 모두 불완전한 존재로서 상대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이상의 진실이 또 있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알 수 없는 희망이 솟아오르는 느낌이 든 것은 왜일까.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문화 읽기] 영화 <버라이어트 생존토크쇼>의 욕망 | 해외입양인의 자전만화 <피부색깔=꿀색>
*김효진님은 <오늘도 난, 외출한다>의 저자이며, 장애여성네트워크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사에 스포일러가 있으니 소설을 보실 분들은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말,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탐닉하던 내게 남편이 핀잔을 주었다.
“젊은 소설가 책이나 읽고… 뭐 볼 게 있다고.”
“젊은 소설가?”
그러고 보니 그 동안 젊은 소설가의 소설에 빠져본 적이 한번도 없었기에, 스스로도 이상하긴 했다. 마냥 가볍기만 한 소설 나부랭이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흐름을 깨고 싶지 않아 긴 말은 하지 않았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예담)는 2008년 12월부터 2009년 5월까지 6개월 동안 온라인서점 예스24 블로그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라고 한다. 연재를 시작할 무렵부터 “박민규의 색다른 연애소설”로 인구에 회자되며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다.
연애소설? 사랑을 주제로 하였으니 연애소설인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겠지만 “색다른 연애소설”이라니 좀 심하다 싶다. 세상에 흔하디 흔한 것이 남녀의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이니, 그 모든 것을 두고 다 연애소설이라고 칭하진 않는다. 게다가 더할 나위 없이 못생긴 여자와 성공한 영화배우 아버지를 둔 잘생긴 스무 살 남자와의 사랑이어서 색다르다고들 하는 걸까?
요동치던 1980년대 중반, 버림받은 청춘들
이 소설은 온 나라가 팽창하던 부를 주체하지 못하고 요동치던 1980년대 중반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성장소설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1980년대 중반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갑자기 큰돈을 만지게 된 것도 그 무렵이다. 부동산이며 증권이며… 비누거품이 일듯 팽창하던 세상의 분위기와, 갑자기 불어난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갈피를 못 잡던 사람들, 그 사실을… 인정하진 않으면서도 다 같이 부러워하던 사람들… 땀 흘려 일하기가 갑자기 서먹하고 무안해진 사람들… 가난이 죄란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은 사람들과…(41, 42쪽)”
가난만 죄가 아니었다. 그 1980년 중반부터 못생긴 것도 죄가 되는 세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못생긴 여자일까? 미친 듯이 속력을 내던 자본주의의 절대적인 희생양은 노동자, 농민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외모가 돈보다 더 절대적인 세상에서, 못생겼다는 이유로 자신을 부정하고 살아야 했던 그녀는 소수자 중에서도 어느 누구의 관심과 배려조차 받지 못하는 가장 버림받은 소수자였다.
그렇게 세기의 추녀와, 배우로서 성공한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슬픈 청춘인 작중화자 ‘나’는 자본주의의 최전선이었던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나 사랑을 시작한다. 자본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부’와 ‘아름다움’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어 있는 나와 그녀의 사랑은 그래서 닿을 듯 닿지 못하고 서로를 비껴가는 애잔한 사랑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 작품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둘의 사랑을 통해 소설 속 주인공들의 연애사를 넘어 부와 아름다움을 숭상하며 서서히 인간을 파괴시켜가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을 신랄하게 반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의 복원
소설 속의 여주인공은 스스로를 “세상이 만들어낸 장애인”이라고 표현했다. 사실, 이 세상 모든 장애인들은 ‘세상이 만들어낸’ 장애인들이다. 장애인들은 장애 그 자체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분리하거나 기회를 제한하는 차별 때문에 고통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소설 속 그녀의 편지 형식을 빈 긴 독백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인정받지 못하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지만… 저는 분명히 세상이 만들어낸 장애인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들과 함께 학교를 다녀야 했고, 남들과 비슷한 옷을 입어야 했고… 그리고 언제나 남과는 다른 취급을 받아야 했습니다(268쪽).”
여섯 살 때 들은 ‘야 이 못난아’라는 최초의 놀림 이후 메주, 미친 메주, 호박, 돼지, 괴물, 산돼지 등등 언제나 따라다녔던 지독한 별명들…. 여중생이 된 이후 놀림은 사라졌지만 지독하게 격리되어야 했던 학교생활… 대응하면 “열등감 덩어리란 소릴 듣고 잠자코 있으면 바보가 되는” 비웃음과 동정… 여자로 살아가려면 웃음거리가 되기에 그녀는 “마음속에서 스스로의 얼굴을 도려낸 여자”였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누구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을 거란 절망감 때문이었다. 중3 때 생리를 시작했던 눈 내리는 겨울날, “도대체 내게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일까”라고 회의하는 대목에서는 심하게 감정 이입되었다. 게다가 첫 화장을 했던 날의 심경에 대한 세세한 묘사까지…. 이후 직장생활에서 못생겼다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불이익은 웬만한 사람이라면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므로 생략해도 좋을 듯하다.
소설 속 그녀는 분명 장애여성인 우리들과 매우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녀 표현대로라면 장애여성인 우리보다 더욱 더 깊은 상처와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 상대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다가가는 것
지금까지 예쁜 여자, 아니면 최소한 평범하기라도 한 여자가 아니라, 추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은 거의 없었다. 그런 면에서 추녀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복원시켜낸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값지다.
게다가 흔하디 흔한 사랑타령의 재탕-외모이데올로기만큼이나 사랑이데올로기도 위험하다-에 머물지 않고 독자들에게 문제의식을 던질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를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살아있는 생명체로 복원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소설가 박민규는 못생긴 그녀의 언어를 통해 그녀에게 숨을 불어넣는다. 언제나 자기 생각은 뒷전이고 “아니, 아니에요” 하는 그녀와 같은 존재들의 언어를 복원시켰다는 건, 그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진심이기에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머뭇거리기만 하는 작중화자 ‘나’를 대신해 멘토 역할의 요한은 말한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쟤는 진심이야(140쪽).”
우리 모두 불완전한 존재로서 상대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이상의 진실이 또 있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알 수 없는 희망이 솟아오르는 느낌이 든 것은 왜일까.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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