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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노년의 성과 사랑 그리고 죽음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09. 12. 16. 15:32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의 성’에 관한 이야기는 금기 사안이었다. 노인들이 성적욕구를 표출하거나 성행위를 하는 것은 주책스럽고 점잖지 못한 행동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실제 한 조사에 따르면, 현실에서 노인들의 성생활은 그 빈도수가 청년기와 같이 왕성하지는 않아도 지속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80% 이상의 노인들이 월 1~2회의 성행위를 하고 있고, 독거노인의 경우도 20% 이상이 성생활을 하고 있었다. 빈도도 일반 노인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월 1~2회 정도였다. 노인들은 본인들의 성생활 저해요인으로 ‘노인에 대한 무시와 사회적 편견’을 꼽았다.
 
이런 실태조사결과를 보면, 지금까지 노인들에게 씌워진 ‘성적으로 욕망하지 않는’ 탈성화되었거나 무성화된 이미지는 유교적 ‘신화’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주요 등장인물은 “내일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의 노인들이다. 우유배달원 김만석과 이름 없이 성씨만 불리어 온 송씨 할머니는 손수레를 끌며 폐지를 모아 고물상에 팔아 생계비를 유지하고 있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는 장군봉 할아버지는 집에서 근거리에 있는 주차관리소에서 근무한다. 주된 이야기는 김만석과 송씨의 연애담과 장군봉과 순이의 부부애에 관한 것이다.
 
IMF 직후인 1998년 겨울, 비루한 일상을 살고 있는 이 노인들은 추운 겨울 눈이 내리는 날, 김만석과 송씨 할머니가 언덕길 비탈진 곳에서 만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김만석의 순이 할머니에 대한 끌림은 다름 아닌 그녀의 입술모양 ‘요’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성적 끌림이고, 욕망하는 남성의 이성애적 끌림이다. 만화의 장면은 신체의 외부이자 내부인 입술을 클로즈업한다. 비루한 신분을 표상하는 색동보자기와 쭈그러진 송씨 할머니의 얼굴을 생략한 채 주름진 입술만 클로즈업 된 장면은, 할머니의 입술을 순간 요염한 젊은 여성의 그것처럼 성적 메타포로 탈바꿈한다.
 
반면, 송씨의 김만석에 대한 끌림은 김 노인과 달리 육체적 욕망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송씨는 비탈진 곳에서 김 노인의 낡은 오토바이에 튕겨진 돌멩이에 이마를 맞고 길거리에 엎어진다. 송씨는 ‘다리에 힘이 빠진’ 자신의 모습과, 가는 귀가 먹고 욕을 입에 달고 사는 김 노인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그 후 송씨는 김만석을 통해 아버지에게조차 부여 받지 못한 이름 ‘송이뿐’을 갖게 된다.  김만석에게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라는 이중적 의미를 띠고 있는 ‘송이뿐’은 비로소 ‘호명된 주체’로서 의미를 갖게 되고, 국가라는 집단에 귀속된 존재가 된다.
 
이렇듯 송씨 할머니에게 김만석은 비탈진 새벽 길에 함께 노동하는 존재로 동질감을 갖게 하는 동료이자, 동시에 자신의 여성성을 일깨워 준 남성이다. 또한 먹을 것(우유-모성)을 주고 힘겨운 리어카를 이끌어 주며, 자신에게 이름을 붙여준 자이자, 훗날 자신을 고향으로 데려다 주는 자로서, 힘겨운 세상에서 안락한 곳으로 이끄는 ‘구원자’, ‘해결사’ 역할을 한다.
 
송씨 할머니와 김만석 할아버지 사이에서 벌어지는 연애는 노인들의 일상을 통해 감춰진 성적 욕망을 드러냄으로써, 그 동안 터부시하거나 배제되었던 이들 세대의 로맨스를 그려내고 있다.
 
송씨의 이웃 장군봉 할아버지(79세)는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고 있다. 그는 벽면 가득 그릴 수 있는 종이를 붙여준 후, 아내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대문을 걸어 잠그고,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주차장으로 출퇴근을 한다.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온 장 노인은 집에 돌아와서는 집안을 치우고, 치매에 걸린 아내를 씻기고, 새벽 2-3시가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든다. 그는 피곤에 찌든 일상을 견디기 위해 주전자 한 가득 커피를 물처럼 끓여 마시는 것이 습관화 돼있다.

 
아내 순이는 치매에 걸리기 전 남편과 하루 종일 일어났던 소소한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길 좋아했다. 그러나 치매에 걸린 후 말을 잃게 되었다. 이제는 장 노인이 아내에게 하루 일과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런데 시종일관 대화는 소통되지 못한다. 치매에 걸리기 전 순이는 장 노인에게 수다를 떨었지만, 장 노인은 내내 듣기만 할 뿐 본인의 일상은 전하지 않았다. 순이가 치매에 걸린 후 말을 거는 주체가 장 노인으로 바뀌게 되지만, 이제 순이는 그의 이야기를 듣기만 할 뿐이다.
 
이야기의 ‘주고받음’은 치매에 걸린 순이가 집밖으로 나갔다 돌아온 뒤에야 이뤄진다. 고장 난 알람시계 때문에 출근 시간에 늦은 장 노인은 서둘러 나가다 대문 잠그는 것을 잊어버렸다. 내복만 입은 채 집밖으로 나오게 순이는 김만석을 만나게 되고, 그의 오토바이까지 타게 되었다. 오토바이에 올라 탄 순이는 ‘달’을 보고 이를 기억하게 된다. 집에 돌아온 순이는 자신이 본 달을 그림과 말로 표현하려 한다.
 
장군봉은 순이가 애써 표현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그 감정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함께 그림을 그리게 된다. 장 노인은 비로소 순이의 수다가 단순히 치매 때문에 없어진 것이 아니라, 추억할 거리가 없고 새로운 것을 체험하는 일상이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 후 장 노인은 의사로부터 곧 순이가 곧 죽게 될 것이라는 선고를 받는다. 홀로 남겨질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 장 노인은, 결국 집안에서 순이의 손을 잡고 가스 불을 켜놓은 채 자살한다.
 
죽음까지도 함께한 장 노인 부부에 대한 이야기는 부부애의 완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김만석과 송씨의 사랑에서 보여준 남성/여성의 고답적인 성 역할 이미지는 장 노인과 순이 부부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겹쳐진다. 남성(장노인)/여성(순이)의 이미지는 수동적/능동적, 베푸는 자/받는 자로 말이다.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금기시되어왔던 노인의 성과 사랑, 죽음을 동시에 다루며 이것들을 일상 속에 녹아 흐르게 한다. 그 동안 비어있었던 노년들의 일상이 그들의 시선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노년에게도 꿈꿀 수 있는 ‘사랑’의 모형을 제시하고 노인들의 ‘연대’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기존의 고착화된 ‘수동적 여성-능동적 남성’ 간의 성 역할은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면도 보인다. 이 작품은 이를테면, 우리 사회의 모성신화를 답습해 공명을 일으켰던 영화 <집으로>처럼,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기존의 보수적인 성 역할 담론을 답습하면서 독자를 ‘무리 없이’ 매료시키고 있는 셈이다. (김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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