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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는 사람들

한국女-이주男 가족이 말하는 ‘다문화’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09. 11. 30. 16:08
성.인종차별 사회의 다문화정책에서 배제된 사람들  필자 정혜실님은 현재 ‘다문화가족협회’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인 남편과 결혼하여 15년간 생활해 온 경험을 토대로, 한국사회의 가부장제와 인종주의의 폐해를 지적하고, 다문화관련 법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짚어보는 글을 기고하였습니다. 이 기사는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파키스탄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귀국한 날

1994년 파키스탄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두 달간의 여행을 마치고 남편과 함께 귀국한 그 첫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첫날이 바로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공부하고 활동하는 이유가 시작된 날이기 때문이다.
 
김포공항 출입국에서 서남아시아 출신 파키스탄 남성이 바로 한국인여성인 나의 남편이기 때문에, 우린 따로 출입국사무실에 불려가서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다. ‘국가적 위계’와 ‘여성’, ‘인종’, ‘차별’ 등의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게 스치고 지나갔다.
 
1시간이나 지연된 입국심사에서 화가 나서 “내가 미국사람이랑 결혼해도 이렇게 했겠어요?” 했더니, “아니요” 라는 간단한 대답이 돌아와 기가 막혔다. 비참하고, 뭔가 울컥하는 기분으로 한국에서의 결혼생활은 시작되었다. 그러한 일들은 나와 비슷한 결혼을 선택한 다른 여성들과 경험을 공유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다국적 연애와 결혼, 그 자유로움?
 

2006년 5월 이주노동자 축제

1990년대 초 이주노동자들이 국내에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정착 기간들이 늘어나자 한국인여성과 연애하고 결혼하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한국사회엔 전과 다른 국제결혼 양상이 하나 둘 나타났다. 전엔 주로 여성들이 서구국가 출신 남성과 결혼해 한국을 떠나던 것으로 생각해왔는데, 아시아남성과 결혼한 여성들은 한국에서 살고자 했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 한국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아시아남성의 현실과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그렇게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외국인남편에게는 반드시 체류할 자격으로 ‘비자’(Visa)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국제혼인법은 한국 특유의 ‘부계중심’ 법체계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못했다. 외국인아내들의 경우 한국남성과 결혼하면 바로 국적이 부여되었던 반면에 말이다.
 
그나마 받을 수 있는 체류자격은 C-3와 같은 친지나 가족방문 같은 비자로, 3개월 이상 체류할 수 없고 노동도 할 수 없었다. 이마저 불법체류사실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이미 체류기간이 넘은 남편들은 해당 되지 못했다. 또, 3개월이 넘을 때마다 가까운 국외로 나가서 비자를 연장해 올 경제적 형편이 되지 못한 남편들은 결국 불법체류자로 전락했다.
 
한편 자녀들은 외국인등록에 의해 살아야 했고, 한국인으로 살기 위해선 비혼모의 자녀처럼 살아야 했다. 한국인으로 포섭되지 못한 자녀들은 의료혜택도, 교육의 혜택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경제적인 여유가 되어 외국인 투자형식의 법인회사를 설립했던 몇몇 사람들의 경우는, 이러한 결혼관계에서 특권층이나 다름없었다.
 
이주남성과 결혼한 한국여성의 사회적 위치
 
때문에 나의 결혼생활은,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이 차별에 맞설 수 있는 힘이 된다는 생각에 집중돼, 남편과 함께 정말 열심히 ‘돈’이라는 걸 벌었다. 돈이 많은 걸 해결해주리라는 생각과, 차별에 대해 함께 연대해서 운동을 하기보다는 나 하나 잘살면 된다는 생각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사업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어려워지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 돈을 좇아 움직이는 일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 일은 다행스럽게도 잘 풀렸지만, 1년 이상을 지옥 같은 느낌으로 살면서 새롭게 나와 같은 처지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결혼 초 ‘도대체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게 뭐지?’ 하고 의문을 품게 만들었던 남성중심의 국가 안에서, 여성인 나를 다시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혼인제도’에서의 국제결혼을 한 한국여성의 사회적 위치, 이웃과 살면서 알게 된 남다른 시선, 공적 기관인 법무부출입국이나 대사관 등에서 받았던 차별대우들로 인해, 얼마든지 자유롭게 사랑도 연애도 결혼도 가능하리라 믿었던 마음은 무너졌다. 사실은 일상의 삶을 지배하는 구조, 즉 사회시스템 안에서 철저히 가부장제에 의해 구속 받고 있었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해답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제도적인 변화인 법을 바꾸는 일과, 사람들을 시선을 바꾸어 낼 인식의 변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과연 그 변화의 주체자로 나설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힘을 실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사)안산이주민센터였고, 또 하나는 여성학이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변화를 원하는 여성들의 모임인 ‘파키스탄커플모임’을 2000년대 들어와 알게 되었고, 이들과 지금까지 함께 활동해오고 있다.
 
처음에 결혼관련 비자도 없던 시절에 많은 활동가와 당사자 여성들의 노력, 결혼이민자여성에 대한 정책 실시, 그리고 호주제 폐지운동과정에서 국제결혼 관련법제들도 바뀌었다. 이제 F-2라는 비자로, 외국인남편의 체류와 노동이 보장되고, 국적 취득도 보다 쉬워져 체류기간 2년 이상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게 됐다. 재수까지 해가면서 귀화시험을 봐야 했던 나의 남편과는 달리, 지금 결혼하는 사람들은 귀화시험도 면제된다.
 
이처럼 2009년 현재, 제도상으로 두드러지는 차별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다문화가족지원법’도 생겼는데, 그 법에서 이주남성이든 결혼이민자여성이든 모두 다문화가족으로서 지원받을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외국남성들로부터 한국여성을 보호한다?

 

미등록 이주아동 교육권 보장을 위한 서명운동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제공

그러나 우리가 2007년에 ‘다문화가족협회’라는 협회를 창립한 이유는, 새로 제정된 ‘다문화가족지원법’을 통해 국가가 어떤 식으로 우리를 배제하고 있는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다문화가족’이라는 법적 정의는 한국인배우자와 결혼한 이주남성이나, 결혼이민자여성, 그리고 그 자녀로 구성된 가족들만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주노동자가족들이나, 난민은 배제된다. 또, 정책시행에서 많은 정부산하기관이나 지원단체들이 사업의 초점을 ‘결혼이민자여성’의 사회통합에 맞추고 있어, 여전히 이주노동자 남성과 결혼하는 여성과 이들의 가정들은 차별을 겪고 있다.
 
국가의 노골적인 차별을 느낄 수 있는 처음단계는 역시 혼인신고와 관련비자발급 단계다. 불법체류자로 있던 남편이 혼인신고를 통해 비자를 받아 한국으로 들어오고자 한다면, ‘비자를 노리고 한 결혼’이라는 의심을 당연히 받게 된다. 연상의 여자나, 이혼경험이 있는 여성, 장애여성이 이주노동자와 결혼한다고 한다면, 그 또한 위장결혼이나 비자목적 결혼으로 의심받는다.
 
아니면 ‘정상적인 여자’가 이주노동자와 결혼한 것은, 유혹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주노동자 남성의 성적인 능력이나 언변 문제가 부각되면서, 한국여성들을 순진하고 어리석은 여성들로 취급한다. 결혼과정에서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은 도무지 인정되지 않는다.
 
이주여성들의 비자 처리 기간의 신속함에 비하면, 연애과정을 통해 결정된 한국여성들의 국제결혼은 참으로 까다롭다. 그 명목은 한국여성을 ‘보호한다’는 것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이러한 국가적 ‘보호의식’은 한국인남성들에게도 전이되어 나타나는데, 한국여성들의 국제결혼을 반대하는 각종 활동단체들의 내용에서 확연히 알 수 있다. 한국남성들이 ‘단속해야 할 누이’로서 한국여성을 바라보는 가부장적 지배의식과, 단일민족으로서 순혈성이 손상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인종주의가 뒤섞여 있다. 또 그들은 이주남성들로 인한 한국여성들의 피해사실을 과장하거나 왜곡 포장하여, 외국인혐오증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사실 이런 인식이 특정단체에 속한 남성들만의 것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알게 모르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낄 때가 많다. 과거로부터 ‘화냥년’, ‘양공주’, ‘혼혈아’ 등이 내포하고 있는 차별적인 인식들이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해왔음을 알 수 있다.
 
국가권력과 성(젠더)의 문제, 그리고 인종과 계급의 문제가 중첩되어 나타나는 이러한 문제에서 한국여성이든, 이주여성이든 자유롭지 못하다. 삶이 어렵고 지난하면 제일 먼저 희생의 대상이 되는 가족 내 여성들이다. 호주제는 폐지됐지만, 남성의 가부장적 부계혈통을 이어가는 가족제도의 실질적 변화는 갈 길이 멀다.
 
성/인종/계급문제 중첩…‘연대의 자리 넓어지길’
 

'보노짓 사건'을 계기로, 2009년 8월 25일 열린 한국사회 성.인종차별문제 토론회

올 여름, 우리 사회는 이러한 핵심적인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자각의 불씨를 지핀 것이 ‘보노짓 사건’이다. 버스에서 한국여성과 함께 있던 인도출신 남성이, 한국인남성으로부터 심한 인종차별, 성차별 발언과 폭력적인 행위를 당했다. 두 사람은 경찰서에 가서도 공권력의 차별까지 겪었다.

 
이 사건을 통해 그간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해오던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여성, 그리고 인권단체들이 연대하게 되었다. 70여 개 단체들이 ‘성.인종차별 대책위원회’를 꾸려 연명하고 함께 활동하고 있다. 성(gender)의 문제이면서, 인종차별의 문제이고, 국가, 계급 등의 문제들이 서로 교차하고 중첩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함께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결혼여성과 남성에 대한 차별, 서구와 제3세계 출신의 사람들 간 계층이 형성되는 모습, 모국어로 자녀를 기르는 일들이 쉽지 않은 이주여성들, 국가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도구로 이용되는 이주여성의 재생산권리 등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그래서 연대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다. 한국여성과 이주여성들의 결혼문제가 따로 일 수 없고, 국제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들이라도 공통의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인종’이라는 문제를 놓고 보았을 땐, 여성이나 남성이나 다 같이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이라는 국가 안에서는 누군가의 특정 문제로 보일 수 있지만, 내가 국가적 경계를 넘어 잠시 타국이라는 곳에 발을 디딘 순간 나의 문제로 직면해 다가옴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 국가의 평범한 여성으로서 단지 ‘결혼’이라는 걸 했을 뿐인데, 이렇게 내 삶이 정치적으로 변화되어 가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오늘도 케이트 밀레트의 이 말을 되새긴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
 
삶의 주체로 살아가다 보면, 일상의 작은 개인사적 일들이 결국 국가구조 안에 놓여 있는 일들일 수 있음을 알게 되기도 하고,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새삼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게도 된다. 그래서 고민해 본다. 여성이, 또 남성이 ‘사람으로 사는 일’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자유스러운 날들은 언제 올 것인가? 그리고 그날이 가까워지는 날들을 위해 함께 고민하는 연대의 자리가 자꾸 넓어지기를 바라며 물어본다.
 
“우리 같이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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