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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유학생의 눈에 비친 한국, 한국인  토모오카 유키(28)님은 작년 9월부터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일본인 유학생입니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다양한 사람들 간의 이해와 소통을 가로막는 것들에 대한 글을 기고했으며, 고주영님이 번역했습니다. 이 기획연재는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일다)

출신국가의 ‘경제수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오류 

2008년 5월 열린 다문화축제에서, 이주민의 권리에 대한 선전물을 보고 있는 사람들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우리는 세계각국을 대할 때, 주로 경제 수준을 잣대로 하여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를 구별합니다. 외국인을 만나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왜 우리나라에 있는지를 알려고 하기 이전에, 그 사람의 출신국가부터 따지고, 그 나라가 잘사는 나라인지 못사는 나라인지로 먼저 그 사람을 판단해버리곤 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출신국가의 경제 수준에 끼워 맞춰서 잘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은 ‘능력 있는 사람’, 또 못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은 ‘능력 없는 사람’이라고 섣불리 재단하기 십상입니다. 가장 염려가 되는 것은, 이런 기준이 무의식 중에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어서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내 친구의 경험을 소개하겠습니다. 그 친구는 몽골에서온 유학생입니다. 친구가 어느 날 불쑥 전화를 걸어와서는,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었으니 기분풀이로 술이라도 같이 마시자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도 전화로는 이야기하지 않아, 직접 만나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면서 술을 마시다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날 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모르는 아저씨가 갑자기 말을 걸더니 그게 싸움으로 번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늘 침착한 성격이라 쉽게 화를 낼만한 인물이 아니어서, 뭔가 큰 이유가 있었겠지 싶었습니다.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술에 취해있던 그 아저씨는 내 친구가 몽골에서 온 유학생이라는 것을 알고서 바로 태도를 바꾸더니 무시하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가 몽골사람이라는 이유로 별안간 막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는 거죠.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 격식 없이 인간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던 친구였지만, 그 아저씨의 막말과 오만한 태도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싸움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아, 같은 유학생 신분인 나에게 전화를 했던 모양입니다.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차별의식이 더 무서워

외국인을 출신국가의 경제수준으로 평가하고 있진 않은가 © [느티.박현정]

그런데, 이야기를 하며 비로소 마음을 가라앉히고 냉정을 찾은 친구는 “술 취한 아저씨는 나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술 때문에 그런 태도를 취한 것뿐이겠지 하면서, 술을 마시지 않았으면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았을 거라고 ‘믿고 싶다’는 겁니다.
 
아마도 친구의 이런 심정은 한국인에 대해 불쾌한 기억을 가진 외국인이라면 누구든 갖는 생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단 한 사람의 말과 행동 때문에 한국을, 한국인을 미워하기는 싫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몇 년이나, 혹은 긴 세월을 한국사회에서 살아야 하는 입장이라면 더더욱, 한 번의 아픈 경험 때문에 한국이나 한국인에게 갖고 있던 긍정적인 믿음을 부정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과 사회를 미워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야 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견디기 힘든 고통이 될 수 있습니다.
 
관점을 조금 바꿔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아저씨의 말과 행동이 고의적이 아니었다 해도, 그 사람의 마음 어딘가에 한국보다 경제 수준이 떨어지는 몽골이라는 나라나 몽골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우월감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마음 어딘가에 그런 생각이 없었더라면, 처음 본 사람을 하대하는 태도를 취했을 리 없겠지요.
 
그 아저씨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도 경제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구별하려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나의 무의식 속에 이런 판단 기준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의식하고 있어야 변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저는 만약 그 친구가 ‘잘사는 나라’에서 온 유학생이었다면 그 아저씨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는 가정을 해보게 되더군요.
 
다문화사회, 나의 작은 노력에서 시작되는 변화

작년 다문화축제에 5만명 외국인이 참여했다. 한국은 다문화사회지만, 인식의 변화는 더디다. ©이주여성인권센터

고의적인 차별은 아닐지언정, 선입견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이 접하게 됩니다. 만약 ‘내가 외국에서 그런 일을 겪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 입장을 바꿔 생각해본다면 정말 좋을 텐데요.
 
한국어를 배워 어느 정도 사람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놀랐던 일이 있습니다. 거리에서 흑인을 보자, 위에서 아래로 몸을 흘끔흘끔 훑어보면서 “저 사람 너무 새카매서 눈밖에 안보여” 라고 말하며 지나가는 한국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무언가를 보는 듯한 눈초리로, 그렇게 말하며 지나가는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또, 어느 강의에서 강사가 가난한 사람과 부자를 빗대어 얘기하면서 “흑인처럼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 모두가 차별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무의식적으로 사람에 대해 인종이라는 구분, 그리고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라는 경제적 기준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루하루 ‘다문화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이런 모습들을 아직도 흔히 볼 수 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또 외국인과 한국인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도 매체들을 통해 자주 접하게 됩니다. 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 한번 자신의 문제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나는 외국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는가.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를 기준으로 외국사람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이든 한국인과 똑같은,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인식해줬으면 하는 것이 저를 비롯해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들의 바람일 것입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싶은 것입니다. 다문화사회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금세 그 변화에 적응할 수 있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노력이 외국인과 한국인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작은 한걸음이 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주여성] 한국에 살지만, 나는 자랑스런 베트남인 | 한국어 잘하면 친구가 될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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