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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파는 의사, 나카무라 사토루씨 현지 증언]

부시 미국 전 정권이 일으킨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지 8년이 지났다. 지금 한국이 아프간 재파병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일본에서도 ‘인도양 급유활동’이라는 형태로 이 전쟁에 관여해온 이래 다시 아프간 파병움직임에 반대하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약 이전에 깨끗한 물 필요해…‘우물 파는 의사’
 
일본 ‘World Peace Now’는 민주당 정권 출범을 계기로,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기존의 ‘미국 의존’이 아닌 ‘지원’의 태도를 보여주길 바라는 취지의 강연회를 개최했다.

NGO ‘페르샤와회’ 현지 대표이자 의사이기도 한 나카무라 사토루씨 강연회장에, 700명의 사람들이 가득 메웠다.

나카무라씨는 아프간난민들의 한센병 치료를 위해 1984년 파키스탄 페샤와르 병원에 부임했다. 당시는 1979년부터 10년간 이어진 구소련에 의한 아프간 침공이 한창이었다. 그곳에서 아프간 난민들을 치료하게 된 경험을 계기로,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진료가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끼고, 1991년에 아프간 달라에누르에 진료소를 건립했다.
 
그러던 2000년, 큰 가뭄이 엄습했다. “아프간에는 ‘돈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눈(눈 녹은 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 아프간 국민의 80%는 농민으로, 여름에 산에서 녹아 내려오는 물을 사용해 농사를 짓는다. 이 물이 여름 전에 증발하면서 푸르렀던 대지는 사막화되고, 농민과 아프간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유목민의 자급자족 생활은 붕괴되었다.”
 
나카무라씨는 “물 부족으로 인해 이질이 크게 유행했고, 영양실조에 걸린 환자를 진료하면서, 아프간에 필요한 것은 약보다 청결한 물이 우선이라고 생각해 1,600개의 우물을 팠다. 다음해에도 큰 가뭄은 계속되었고, 400개의 우물을 파는 계획을 세우던 중에, 바로 9.11사태가 터졌다”라고 설명했다.
 
“아프간의 구 탈레반 정권이 범인인 오사마 빈 라덴을 숨기고 있다는 이유로, 미국의 복수공격이 시작됐다. 우리들이 해온 것을 한 순간에 짓밟는 전쟁이라는 것이 너무도 괘씸했다. 그때는 일본도, 세계도, 뭔가에 씌운 것 같았다.”
 
군대 파견되면, 평온한 지역도 전투지대가 돼
 

미국의 공격에 의해 탈레반 정권은 무너졌다. 다음해 도쿄에서는 ‘아프간부흥지원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부흥사업은 도회지를 윤택하게 했을 뿐, 농촌은 배제되었다. 전쟁은 빈부의 차를 확대했다”고, 나카무라씨는 이야기했다.
 
“세간의 관심은 축구 월드컵으로 옮겨가고, 아프간은 잊혀져 갔다. 우리들은 전란과 가뭄으로 피폐해진 난민을 앞에 두고,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2003년 용수로 건설 등의 ‘푸른 대지 계획’을 시작했다. 그때가 마침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날이었다.”
 
나카무라 사토루씨는 “테러로 치안이 악화되었기 때문에 군대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완전히 그 반대”라고 주장했다. “군대가 파견되면 그 수에 비례하여 그때까지 평온했던 지역이 전투지대로 변한다”는 것. “국제사회나 일본의 여론이 아프간 정세라고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주 일부의 도시에 사는 유복한 아프간 사람의 주장”이라며, 그는 분개했다.
 
그리고 미군에 대해서도 “무인탐사기를 띄워 사람이 모이는 곳을 파악하고 폭탄을 투하하므로, 오폭이 일상다반사가 되었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사람이 없는 곳에 폭격이 일어나 이상하다고 생각했더니 죽음을 당한 것은 양떼였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린이들이 공부하는 모스크 학교나 결혼식 같은 곳인데, 매스컴은 ‘탈레반 군사를 소탕’한다고 보도한다. 미군은 전투원임을 확인하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죽이고서 확인하는 식이기 때문에 엉망진창이다. 미군의 증원 파병은 무분별한 살상의 증가로 이어진다.”
 
“죽이면서 지원하는 건 불가능” 아프간을 푸른 대지로!
 
수로 건설에 착수한 지 6년이 된 올 8월, 전체 길이 24킬로미터의 농업 수로가 완성되고 사막화되었던 대지에 푸르름이 되살아나고 있다.
 
“기계가 아닌 인력에 의지했던 에도시대에 고안된 치수기술과, 돌을 취급하는데 익숙한 아프간 농민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공사에는 연 인원 55만 명의 아프간 사람이 참여했다. 전문기술자가 아니었던 현지 농민이 지금은 수로 수복과 시공기술을 익혀 앞으로는 자신들 힘으로 수로를 유지하고 넓혀나갈 수 있게 되었다.”
 
나카무라씨는 “너무 힘든 작업이었지만, 그들의 눈동자는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빛났다”며, “아프간을 예전과 같은 풍요로운 곡창지대로 재생시키는 것은, 전란 중에 뜻을 못 이룬 채 쓰러진 이토 카즈야(2008년 강도에 의해 살해당함)에 대한 최선의 애도”라고 덧붙였다.
 
아프가니스탄 영상을 보여주면서 진행된 나카무라 사토루씨의 보고는 “죽이면서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는 자료였으며, 일본의 파병 움직임에 대한 재고를 촉구하는 것이었다.

※<일다>와 제휴를 맺고 있는 일본언론 <페민>의 10월 15일자 기사로, 오오츠카 아이코 기자의 보도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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