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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국가폭력, 심리적 파괴력이 더 무섭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08. 9. 10. 22:06
국가폭력, 심리적 파괴력이 더 무섭다
수치심과 무력감…정의를 바라는 사람들의 의지 꺾어버려
 
 
과거 정치폭력의 피해자였던 분들과 함께하며 그 분들이 힘을 되찾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러한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만남에 더하여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정치폭력 피해자, ‘과거가 되살아난 듯한 현실’에 더욱 힘들어
 
이미 되돌이킬 수 없는 고통이 지나간 뒤, 고통의 시간을 조금 더 잘 넘기기 위해 사람이 함께 버티는 과정이 심리치료의 한 측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시때때로, 이러한 고통이 도대체 어디서 비롯되었나 하는 강한 분노와 깊은 슬픔이 찾아옵니다.
 
치유의 고비 고비를 넘기면서도 어김없이 생존자도, 저도 한없이 슬퍼해야만 했습니다. 되돌이킬 수 없는 그 경험을 조장했으며, 더하여 애도하거나 보호받을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 이 사회를 향해 말입니다.
 
한국 사회에 이들을 위한 지원체계가 매우 미약하며, 폭력을 폭력이었다고 말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야 하는 현실이라는 점을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약은 못줄 망정 최소한 병을 도지게 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안 그래도 피해자가 세상을 안전하고 평화로운 공간으로 바라보는 일은 무척 힘듭니다. 허나 이 사회가 과거를 반성하거나 치유책을 마련하지 못할 망정, 눈에 훤히 보이는 억압체계가 구축되는 현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제 피해자는 눈앞의 현실로 닥쳐온 국가폭력의 위협을 감당해야 하게 생겼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피해자가 생겨 그도 ‘생존해내야만 하는’ 삶을 살아야 할 지 모릅니다.
 
개인의 정체성을 빼앗고 권력에 순응하게 만드는 국가폭력
 
▲ 시민들의 촛불을 끄려고 인도까지 봉쇄해버린 경찰차량   © 일다
불의가 승리하고 있으며 정의가 억눌린다는 조짐은, 피해자에게 매우 큰 불안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래도 세상에는 안전한 구석이 있고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정의로운 공간이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지난 폭력의 고통을 극복하는데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공권력이 남용되고 있는 현 상황은, 그러한 회복의 밑받침을 송두리째 앗아가려 하는 듯 보입니다.

 
자기 신념과 의지대로 정치적인 의사를 표현하는 평화롭고 정당한 행위를 억압하는 현재의 행태들은, 사람의 신념과 정체성을 파괴하는데 ‘유용하다’고 알려진 고전적인 방식의 심리적 폭력에 해당됩니다. 예측할 수 없고 이해되지 않는 물리적 폭력을 당하거나, 신체적 자율성을 침해 받거나,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주는 방식으로 신념에 의한 행동을 처벌하는 행태는 사람을 매우 무력하게 만듭니다.

 
특히 인권이 유린된 데서 나오는 수치심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발언하거나 행동하지 못하게 하며, 강한 분노 속에서도 어쩔 수 없이 권력에 순응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또한 힘있는 사람들은 범죄를 저질러도 쉬이 처벌을 면한다거나, 힘있는 자들을 옹호하는 세력이 가장 큰 권력을 쥐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권력의 자리를 국민의 삶에 대한 관심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장악하게 된다는 위협, 이러한 불의에 대한 느낌은 보다 공평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어내는 파괴력을 지닙니다.

 
억압으로 인한 무력감, 수치심, 회의감은 결국 사람으로 하여금 사회의 불의를 부인하고 눈감고 살게 만드는 미묘한 심리적 억압 체계입니다.

 
세상이 정의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면

 
▲"우리의 무관심이 가져온 형벌,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 ©조은하作
과거 정치적 억압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마치 그 시절이 되살아난 듯하다고 경악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신념이 억압되거나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은 유령처럼 되돌아온 과거의 공포에 또다시 맞서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요즘에는 심리치료 과정에서, 이 세상을 향해 더욱 슬퍼해야만 할 뿐 아니라, 폭력이 또 다시 재현되지는 않을까 하는 새로운 두려움에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불미스러운 일로 가득한 현 사회로 인해, 한풀 꺾인 삶의 의지를 다지기 위해 더 먼 길을 돌아가야 하게 생겼습니다.

 
물론, 피해자를 둘러싸고 있었던 억압이 풀어졌던 경우는 이전에도 없었습니다. 심리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억압받은 흔적은 후유증이라는 형태로 피해자의 고통을 지속시켰습니다. 그러나 심리학에서 피해의 후유증에 대해 ‘폭력이 끝난 상황에서도 마치 폭력이 이어지는 듯한 경험’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무색하게도, ‘폭력이 끝난 상황’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릴 때 성폭력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던 사람들은 가해자에겐 관대하며 피해자를 비난하는, 혹은 성을 사는 일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반복적인 폭력 안에 놓여야 했을 것입니다. 국가의 이름 하에 자유를 침해 당하고 폭력에 시달린 사람들은 여전한 낙인과 감시체제 안에서 끝나지 않은 폭력을 살아내야 했을 것입니다. 삶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을 향해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는 일은, 실은 평화롭게 보이는 시대에서도 지속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세상이 정의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면, 생존자들이 세상을 용서하고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는 기회도 커집니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힘을 키우고 있다는 세상의 마지막 정의를 목격하면서, 생존자는 실낱 같은 희망으로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희망의 불씨를 읽어냈고, 이번 기회에 더 힘껏 싸우겠다고 말합니다. 절망에 빠진 피해자를 위한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더 힘껏 싸우겠다고 말하는 분들도 실은 생존자들이겠지요.

 
권력을 휘두르며 개인을 억압하는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개인의 심리 안에서도 억압된 욕구는 어떤 형태로든지 분출되기 마련입니다. 욕구가 가장 건강한 형태로 발현하는 심리적 작용을 일컬어 ‘승화’라고 합니다. 정의를 향한 욕구도 반드시 창조적인 움직임과 지혜로운 대응으로 승화할 터입니다. 그리고 그 창조적인 움직임을 통해 누군가에게 되돌아오고 있는 과거의 고통을 막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08/08/22 [12:43] 여성주의 저널 일다 ⓒ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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