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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성폭력, 언제까지 묻어버릴 텐가
아동성폭력, 안전하지 않은 사회③
 

대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집단성폭력 사건은,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인데다가 장기간에 걸쳐 엄청난 규모로 확산되었다는 점에서 사회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정작 해당 학교와 지역사회에선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커녕, 오히려 이 사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언론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났던 아동성폭력 사건이, 지금은 해당학교와 학부모 등에 의해 ‘과장된 일, 없었던 일’로 되어가고 있는 양상인 것이다.
 
대구 초등학교 집단성폭력 사건에 대응해 온 시민사회공동대책위는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할 부모와 학교, 그리고 교육청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조차 없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만약 누군가 아동성폭력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좋은 것일까.
 
아동성폭력 문제와 특징을 알고 있는 전문가들은, 수면위로 떠오른 사건을 지금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이와 유사한 사건은 또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때문에 아동성폭력 문제에 대응하는 현재 한국사회의 모습이 어떠한지 그대로 드러내어 점검해보고,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뀌어야 할 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시민대책위에서 활동해 온 남은주 대구여성회 사무국장을 만나, 지금까지의 상황을 전달받고 문제해결을 어렵게 만든 원인과 대책이 무엇인지 의견을 들어보았다.
 
학생 집단성폭력 사건에 대해 여론의 관심이 높았지만, 사건의 전모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아이들에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설명해달라.
 
▲  남은주 대구여성회 사무국장   © 일다
“남학생들 간에 성추행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선생님을 통해 처음 인지된 것은 작년 11월이었고, 올해 4월에 여학생에 대한 집단성폭행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사건의 전모를 보면 맥락이 있다. 학교 짱이 있고, 학년 짱이 있고, 반에도 짱이 있는데 그것이 기본 틀이다. 아이들은 애초에 성폭력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폭력의 한 형태로 나타났다. 남학생들은 형들에게 맞고, 성폭행을 당하고, 돈을 빼앗기고, 그리고 다른 아이들을 잡아와야 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었고, 잡혀가는 아이들이 점점 늘면서 여자애들까지 동원된 것이다.

 
다단계로 일어난 거대한 사건과 그 외에도 개별적인 성폭력 사건들이 일어났다. 이런 문화를 접한 아이들이 화장실에서 여자애들을 성폭행한 사건 등이다.

 
선생님이 경찰에 제출한 명단이 100명에 가까운데, 22명이 중학생이다. 그 명단도 가해학생들 중심이라, 피해자 수는 가늠이 안 된다. 저학년은 선생님이 개입할 수라도 있지만, 아이들은 고학년만 되어도 말을 안 한다. 규모가 더 심각하고 엄청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언론에 공개되는 다른 청소년 집단성폭력 사건을 보아도, ‘과연 그게 전부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건이 알려졌음에도 학교가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는 것이 의문스럽다. 전 교장이 사표를 제출하고 징계위원회에서 몇몇 책임자에게 주의조치를 준 것 외에, 정작 아이들을 위한 대책이 없지 않은가?

 
“학교는 나름대로 대책을 세우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처음에 지방방송에서 이 사건이 다뤄졌을 때, 교육청과 학교는 ‘안정화’란 이름으로 대책을 내놓았다. 선생님들에게 매일 훈화말씀을 하라는 식의 내용들이다. 학부모 교육도 했다. 피해아동을 놔두고 주변이 취하는 행동이란…. 학교는 (사실을 밝힌) 담임교사가 병가 내고 안 나왔으면 하고 대책위를 고소고발하고 싶어한다.

 
지금 학교와 부모들은 동성간에 일어난 사건과 여아의 피해가 발생한 것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별개의 일인데, 선생님이 뻥튀기를 하는 거라고 몰아세우고 있다. 경찰에 고소가 된 사건 이외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려고 한다. 그러니 대책이 안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은가. 사실에 대한 인지부터가 다르니 말이다. 아이들이 상담을 받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 시기에, 어른들은 없었던 일로 하려고 한다.”

 
학교보다도 부모의 태도가 더 납득되지 않는다. 왜 부모가 아이를 보호하지 않는 것인지.

 
“우선 학생들이 엄마한테 말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가해자보다 엄마가 더 무섭고, 엄마를 화나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도 자신의 아이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피해를 당한 것이 분명한데도, 부모가 절대 그런 일 없다고 하는 걸 보면 안타깝다. 아마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아이를 보호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은 아이도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자라면서는 생각이 바뀌고 원망하게 될 수도 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장 먼저 문제가 무엇인지 직면하고, 말하고, 분노하고, 치유해야 한다. 성폭력 문제는 직면을 하기도 쉽지 않다. 이 사건을 보면 부모나 학교나, 사실과 직면하기부터 안 되기 때문에 대책을 이야기할 수 없겠구나 싶다.”

 
혹시 남자아이가 당한 성폭력이라서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하는 것은 아닐까. 성폭력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인가?

 
“문화적으로 우리 사회는 남자아이가 겪는 성폭력에 대해 관심이 없다. 아이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남자아이들은 피해자이면서 또한 가해자이기 때문에, 부모들은 사건을 해결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아직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덮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덮으면, 없던 일로 덮어버리면, 과연 정말 없던 일이 되는가? 얼굴만 숨기고 몸통은 그대로인 것과 같다. 이 함정이 나중에 드러날 수밖에 없다.

 
아이가 성에 대해 지식을 갖게 되는 시기에 지금 겪은 사건을 인지하게 되고, 고비고비 힘들 때마다 올라올 것이다. 성행위를 하는 시기나, 결혼 시기에도 오버랩 될 것이다. 자식을 낳거나 키울 때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금 치료하면 함정이 구덩이에 불과하지만, 지금 숨겨버리면 빠져서 못 나올 정도로 커질지 모른다.

 
어리기 때문에 피해는 더 클 수 있다. 자발적으로 성폭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강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피해가 더 클 수도 있다. 성범죄자가 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성폭력은 평생에 걸쳐 자아에 영향을 미친다. 자신뿐 아니라 자라면서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그 불행의 역사가 계속되어선 안 된다.”

 
지역 아동센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점도 사태를 악화시킨 요인이라고 보는데, 그렇다면 과연 아이들을 보호해줄 사람이 누구인가 묻게 된다. 특히 아동성폭력 문제에 있어 전문가가 별로 없는 것 같다.

 
▲  남은주 대구여성회 사무국장   © 일다
“지역 아동센터에서 초기에 제대로 상담을 해주었으면 문제가 이렇게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해자의 부모에게 성폭력 사실이 없었다고 하면서, 동성간 성폭력에 면죄부를 주었기 때문이다. 사건의 핵심에 있는 아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니, 사건의 얼개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에게 안전하다 싶을 때는 교육자가 감당하지 못할 사실까지 오픈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말을 안 한다. 아이가 말하지 않는다고, 그런 일 없었다고 한다고 해서 성폭력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가? 사실을 이야기한 아이 중에는 팔이 부러진 아이가 있고, 귀가 찢어진 아이가 있다. 멱살 거머쥐고 ‘너 뭐라고 말했어?’ 라고 묻는 것도 직접 목격했다. ‘가서 불면 죽는다!’ 하는 형들이 있는데, 어떻게 아이가 어른들에게 말하겠나.

 
선생님이 ‘많이 힘들지? 내가 도와줄게. 또 누구를 도와주면 좋을까?’ 하고 묻는 것과, 아이에게 체크리스트를 가져와서 체크해보라고 하는 것, 무엇이 전문성일까. 시간이 갈수록 문제가 더 복잡해지는 걸 보면서, 정말 아동성폭력 사건에는 ‘전문가가 있어야 하는 구나!’ 하고 절실히 깨닫게 된다.”

 
학교가 아동성폭력 문제에 손을 놓고 있어선 안 되지 않을까. 성폭력과 관련한 매뉴얼이 필요하고, 교육청에 확실한 보고체계와 전담 팀이 꾸려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는데.

 
“지금으로선 성폭력 사건에 학교가 먼저 개입하면 안 될 것 같다. 이 사건이 인지된 시기에 학교폭력대책위원회가 열렸는데, 10여명 학교 관리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감투 쓰는 분들, 아이가 중심에 있지 않다. 땅값 떨어지면 책임 질래? 하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학교운영위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한다. 또 지역 내에서 비밀엄수도 되지 않는다. 안되겠다.

 
그러니 교사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학교나 교육청에 보고하지 않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 외부시스템을 활용하는 편이 낫다는 얘기다. 학교에 먼저 알려지면 대책이 없는 것 같다. 그때부터 숨겨야 하는 판이 되고, 은폐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생긴다. 관료적 분위기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없어서 문제라기보다, 어떤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학교에서 대책위를 꾸리는 것이 민주적인 방식이겠지만, 거기서 땅값 걱정이나 하고 있으면 이야기가 다르다.

 
교장이 아동성폭력 사건을 묻을 수밖에 없는 것이, 나중에 교육청으로 가야 하는데 성폭력 사건을 보고하면 자신에게 마이너스가 되기 때문이다. 교사들도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낮은 평가를 받고, 수업 제대로 못한다고 비난을 받는다. 그럼 다른 교사들은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도 묻어야지!’ 하게 되어 있다.

 
이 사건도 주위에서 집요하게 교사를 괴롭히고 있다. 학부모는 교사에게 학교에 나오면 머리채 다 뜯어놓겠다고 협박하고, 교사들도 너 때문에 학교가 알려졌다고, 거짓말 한다고 비방한다. 주위에서 선생님을 너무 힘들게 해서 매일 울고 있다. 사실을 말하기 시작하면서 생기는 엄청난 일들과 마주하면서, 선생님이 느끼는 고립감이 클 것이다.”

 
아동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고 예방하기 위해서 학교와 교육청, 그리고 우리 사회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교육청은 일단 책임공방을 안 했으면 좋겠다. 그때부터 문제가 덮이기 시작한다. ‘누가 십자가를 질 것인지’부터 찾는다. 책임공방은 그만두고, 함께 대책을 논의하고, 아이를 생각하는 방식이었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전학시켜야 하나, 퇴학시켜야 하나’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학교가 전문가와 함께 대응하고 지자체와 정부기관도 나서야 할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한 가지 변화가 있다면, 대구지역의 다른 학교에선 성교육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에게 성교육을 하지 않았더니 사건이 이렇게 발생하는 구나, 초기에 대응하지 않고 전문가에게 의뢰하지 않으면 사건을 키우는 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의 학교는 교사들의 근무조건도 그렇고, 아이를 생각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닌 듯이 보인다. 또 우리 사회에는 아동인권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고, ‘사회적으로 아이를 키어야 한다’는 관점도 없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아이들이 가해자든 피해자든 평생 그렇게 살 수는 없다. 평생 성폭력 가해자로 사는 것,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이들이 가해자가 되는 것도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이 돌아버려서가 아니라, 다 전후 맥락이 있는 구조적인 문제이므로 이를 해결해야 한다. 피해자도 스스로 자책하거나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치유와 단련이 필요하다. 그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는 것, 이게 핵심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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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1 [08:30] 여성주의 저널 일다 ⓒ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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