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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여성들의 성을 소비하는 한일 남성들 
 
[일다는 필리핀 이주여성들이 한국에서 인신매매되어 성산업으로 유입되고 있는 현실을 보도하고, 이같은 문제가 발생되는 근본적인 원인과 대책을 모색하는 기획기사를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 기획연재는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필자 사카모토 치즈코님은 현재 연세대학교대학원 박사과정으로,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이 기사를 통해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한 국제인신매매 문제를 일본사회의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분석, 전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카라유키’에서 ‘쟈파유키’까지, 일본의 국제인신매매 역사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죽은 ‘카라유키’들을 불쌍하게 여긴 여주인이 명치41년(1909) 세운 카라유키들의 무덤이다. 2006년 말레이시아 산다칸에서 촬영. ©사카모토치즈코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빈곤한 가정의 많은 딸들은 가족들을 위해 희생양이 되어 공장이나 유곽으로 팔려갔다. 에도시대 말부터는 서서히 해외로 이주노동으로 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을 ‘카라유키’(카라=먼 곳, 유키=가다)라고 불렀는데, 이 용어는 점차 성 노동을 하러 해외에 나가는 여성들을 가리키게 되었다.
 
‘카라유키’ 연구로 알려진 야마자키 토모코(山崎朋子)씨는 조사과정에서 카라유키상이 후에 일본군‘위안소’ 설치 및 관리를 도왔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리고 1980년대 일본에서는 ‘쟈파유키’(ジャパゆき)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다. 경제강국이 된 일본(쟈팬)으로 일하러 간 동남아시아 출신 여성들을 가리킨 말이다. 이때쯤부터 일본남성들의 한국행 ‘기생관광’이 사회문제가 되어 한국의 여성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했고, 이후 일제점령 하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한국과 일본사회에서 대두되기 시작했다.
 
성매매 목적인 ‘흥행비자’로 필리핀여성들 입국
 
2004년 미국 재무부가 발표한 <인신매매 보고서 2004년도 판>은 ‘주로 태국, 필리핀, 러시아, 서구에서 상업적, 성적 착취를 위해 일본으로 팔려가고 있다’고 하면서, 일본을 ‘감시대상국’으로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는 2005년 형법개정을 통해 인신매매를 ‘유괴’로 간주했고, 2006년경부터 외국인여성에 대한 ‘흥행비자’ 발급이 엄격해지면서 사실상 성매매 목적인 흥행비자 발행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 일본정부는 이런 ‘표면적’인 조치를 통해, ‘감시대상국’ 지위에서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는 충분하지 않지만, 노력하고 있는 나라’로 승급됐다.
 
일본 출입국관리국 통계에 따르면, 2006년 12월 31일 현재 신규 입국외국인 중 ‘흥행비자’로 입국한 사람은 4만8천249명(0.7%)인데, 1위는 필리핀(8천608명)이다. 신규 일본입국 필리핀인의 10%가 흥행비자로 입국했다.
 
또 2007년 1월 1일 현재, 일본의 불법체류여성들 중 22%이상이 필리핀여성(1만9천168명)이며, 필리핀남성(9천323명)의 2배 이상이다. 이중 ‘흥행비자’를 가진 불법체류 필리핀인은 6천975명이다.
 
국제비난으로 日 비자발급 엄격해지자, 한국유입 급증
 
필리핀 해외고용국(POEA) 통계를 보면,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은 아시아에선 홍콩과 일본으로 주로 이주했다. 그러나 2005년부터 일본 행은 감소하기 시작했고, 2006년엔 급격하게 하강했다. 한편 한국으로 간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의 수가 2003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해, 2006년엔 한국입국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주목할 것은 ‘흥행비자’를 통해 들어오는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의 목적지가 압도적으로 한국과 일본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최근 일본은 입국이 어려워지면서 급격한 하강곡선을 보이는 반면, 한국은 놀라운 속도로 급증하고 있다. 입국 심사가 엄격해진 일본을 대신해 한국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흥행비자’는 말 그대로 공연을 목적으로 한 비자일 수도 있지만, 성매매를 시키기 위한 인신매매를 위장한 비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일본의 경험을 통해 학습했다.
 
일본군이 쉽사리 일본군‘위안부’ 제도를 형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카라유키’를 통해 이미 통로가 확립되어 있었던 배경이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1970년대부터 ‘쟈파유키’를 통해 동남아시아와 일본사회는 커다란 국제적 인신매매 통로를 구축해왔다. 일본이 그 통로를 해체하지 않은 채 국제적 비난을 피하려고 비자 발급만 엄격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국제적 인신매매 통로는 여전히 탄탄하게 살아있다. 그 통로를 과연 누가 이용하고 있을까?
 
현재 필리핀에서는 HIV 감염문제가 심각하다. 감염자들이 감염 사실을 숨기려고 하기 때문에, 정확한 감염자 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경로는 주로 일본이나 한국 등 해외에 이주노동을 갔다가 성매매를 하게 돼 HIV에 감염된 것이라고 한다. 더 이상 일하지 못하게 되어 귀국한 여성들인 것이다. 이들 여성들에 대해 일본이나 한국에서 어떤 지원을 하고 있을까. 가난하다는 이유로 생명의 위협까지 감수해야 하는 것일까.
 
한국 다문화정책에서 배제된 ‘여성이주노동자’

 
한국에선 1990년대 중반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시아지역 여성들과 한국인남성의 국제결혼이 늘기 시작했다. 특히 2000년대 되면서 급격하게 증가한 “외국인 며느리”들은 결혼이주여성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최근 한국정부는 다문화가족정책을 세워 결혼이주여성들과 그 자녀에 대한 지원을 시작했다. 왜냐하면 이들은 한국인의 좋은 아내이자, 좋은 어머니로서 한국사회 구성원이 되어야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들 역시 한국사회에 늘어나고 있다. 장시간, 저임금, 단순노동을 하며 본국으로 송금해야 될 경우가 많은 이들의 생활에 대해선 어떤 지원도 찾아보기 어렵다. 여성노동자의 경우 처음부터 인신매매로 입국돼 성매매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다른 목적(비자)으로 입국했다가 점차 성 노동으로 변해가게 되는 사람도 있다.
 
한국이 다문화사회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 대상은 국제결혼을 통해 정착하게 된 이주여성들인 것으로 보인다. ‘다문화’라고 하면서 결국 ‘한국가족의 일원’이 되거나 한국인으로 귀화해야 겨우 정책지원의 대상자가 될 수 있다. 돈을 벌러 왔다 언젠가 본국으로 돌아갈 이주노동자들이나 유학생들은 여전히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문제가 발생해도 구제받지 못하는 ‘외국인’이다.
 
특히 한국에 와서 성 산업으로 유입된 이주여성들의 경우엔, 이들을 상품화하는 한국남성사회의 ‘필요’로 인해 입국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다. 예컨대 외국인모임이나 한국어강좌에서 결혼이주여성들과 성 노동을 하는 이주여성들이 함께 할 일은 거의 없다.
 
이제 ‘코리유키’가 생긴 것인가
 
많은 한국인들이 1980년대 일본남성들의 ‘기생관광’을 비판했다. 또 1990년대부터 오늘까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파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아왔다. 일본군, 일본정부, 일본남성의 가해에 대해 책임을 묻고 사죄와 배상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인정도, 사죄도, 배상도 피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 현실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웠을까. 아니면 배우지 못했을까.
 
오늘도 평택 미군 기지촌에 가면, 클럽에서 일하는 필리핀 여성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올해 7월 평택에 개소된 쉼터, ‘두레방 외국인성매매피해여성 지원시설’에는 끊임없이 도움을 요청하는 필리핀여성들의 사연이 이어지고 있다. 두레방 박수미 소장에 따르면, 이제 한국으로 팔려온 필리핀 여성들의 성매매 대상은 미군뿐 아니라 한국으로 온 남성 이주노동자들도 포함돼있다고 한다.
 
미군이나 외국인노동자들을 상대로 필리핀 여성을 파는 한국업자들에 대해, 일본 대신 한국으로 여성을 파는 필리핀업자들에 대해, 국제적 인신매매 통로를 연 일본업자들에 대해, 우리가 아무것도 못한다면 조만간 코리아로 가는 ‘코리유키’라 불릴 여성들은 늘어나기만 할 것이다.
 
평택 두레방에서 도움을 받은 루신다는 ‘필리핀에 돌아가 내가 한국에서 당한 것을 밝히고, 더 이상 나 같은 일을 당한 필리핀 여성이 안 나오도록 노력하고 싶다’고 하며 귀국했다. 또 크리스티나는 정의를 찾기 위해, 자기와 같은 성매매 피해를 입게 될 필리핀 여성들을 한 명이라도 줄이기 위해, 또 현재 피해를 당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탈출할 용기를 주기 위해, 한국에서 형사고소를 결정했다.
 
이제는 더 이상, 목소리를 낼 각오를 한 당사자들이 소외되거나 불이익을 당해선 안 된다. 평택이나 기지촌 지역만 아니라, 모든 시민들이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누군가의 삶을 하루빨리 보호해야 한다. 제2의 루신다, 제2의 크리스티나가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몫이 우리에게 있다.
 
‘쟈파유키’ 문제도, 일본군‘위안부’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과 달리, 일본군‘위안부’ 생존자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지내온 한국에서는, 국경을 넘은 여성들의 인신매매 피해에 대해서도 시민사회의 문제의식과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힘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고 싶다. [일다] www.ildaro.com

[관련 기사 보기“친구가 한국에서 인신매매 당했어요” | 거제도까지 팔려가는 필리핀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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