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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는 필리핀 이주여성들이 한국에서 인신매매되어 성산업으로 유입되고 있는 현실을 보도하고, 이같은 문제가 발생되는 근본적인 원인과 대책을 모색하는 기획기사를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 기획연재는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필자 박수미님은 두레방 외국인성매매피해여성지원시설 소장입니다]
 
필리핀가수 크리스티나의 산산이 부서진 꿈
 

탈출에 성공한 크리스티나가 성매매를 강요당하며 일한 외국인전용클럽은 거제시 옥포항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의정부에 있는 ‘두레방’(기지촌여성 지원단체)에서 일하면서, 매우 자연스럽게 이주여성들을 만나 왔다. 적어도 내가 만나왔던 여성들은 엔터테이너로서의 자신을 매우 자랑스러워했고 당당했다. 그러나 밝고 활발한 성격으로 늘 분위기를 주도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몇 주 전, 크리스티나(필리핀 국적, 1983년생)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랬다.

그녀는 필리핀사람들도 인정하는, 노래 실력이 매우 뛰어난 가수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통해, 필리핀보다 훨씬 좋은 조건에서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로, 한국 프로모토와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됐다.
 
그 어렵다는 한국행 비자와 입국 수속을, 한국 프로모토와 필리핀 현지 에이전시가 척척 알아서 진행시켰다.
 
크리스티나는 필리핀 출국 전, 한국어로 된 계약서에 내용도 모른 채 사인한 적이 있다. 동시에 영어로 된 계약서에도 사인을 했다. 이곳 저곳에 사인을 한 적은 있지만, 정작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은 한국 프로모토와 맺은 2장짜리 계약서 한 부가 전부다. 계약서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받거나 꼼꼼히 검토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는 물론, 그와 관련해 제안을 하거나 불평할 수 있는 권리가 전혀 없었다.
 
한국 프로모토의 승낙만이 그들에게 기쁨이고, 한국행 비자를 보장받는 든든한 보증인들을 연결해 준 필리핀 현지 에이전시에 대한 신뢰관계로 인해 조금도 ‘이상하다’는 의심을 하지 않았다. 필리핀 현지 에이전시도 필리핀에서 매우 유명하고 규모가 있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그 곳에서 가수로 발탁돼 외국으로 나갈 기회를 희망하고 있다. 장차 한국으로 연예인 자격으로 입국하게 될 여성들은, 한국에서 성공한 가수가 되는 꿈만 꾸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크리스티나는 한국에 입국하게 되었다. 그리고 입국하자마자, 거제시 옥포의 한 외국인전용클럽에서 일하게 됐다. 일하는 몇 개월 동안, 본인은 원하지 않았지만 쿼터를 채우지 못한 대가로, 업주와 마마상(필리핀 여성)으로부터 성매매를 하도록 권유 받았고, 그녀는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쿼터’란 업소(외국인전용클럽)마다 다르지만, 여성들이 고객들로 하여금 보통 한 달에 300잔~500잔까지 매상을 올려야 하는 것을 뜻한다. 이 쿼터제도는 종업원 한 사람에 해당되는 몫이며, 그것을 채우지 못할 시에는 벌금을 물거나 구박, 욕설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여성들을 압박한다. 미군들은 보통 군대에서 음주단속이 있기 때문에 주스를 취급하고, 이 곳 옥포에선 미군이 아닌 근로자 등 일반 외국인들이 주 고객이기 때문에 술을 취급하고 있으며, 이곳의 업주, 마마상, 매니저들은 여성들에게 약(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술에 쉽게 취하지 않는 약으로 추정됨)을 복용시켜 많은 양의 매상을 내도록 강요하고 있다.
 
크리스티나는 이런 환경이 너무 무서웠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송탄으로 올라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도 가수가 아닌, 외국인 남성, 주 고객인 주한미군들을 접대하는 일을 했다. 여기선 성매매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또다시 옥포로 내려 보내지자, 그녀는 탈출시도를 하게 됐다. 송탄에서 만난 친구 덕분에 혼자 택시를 타고, 버스로, 서울까지 왔다.
 
친구는 “자신들을 도와주겠다고 자처하는, 평택에 새로 생긴, 한국 NGO단체” 두레방 쉼터를 소개해주었다고 했다. 그녀는 곧 우리 단체의 필리핀인 스탭과 통화한 뒤, 쉼터에 입소하게 됐다.
 
성매매 피해에 대한 형사고소를 결정하다
 

외국인연예인 자격으로 입국한 여성들에 대한 인신매매, 성매매 강요 등 피해사례들이 계속 밝혀지고 있다. 쉼터에서 상담하는 장면.

크리스티나 또한 여느 다른 여성들처럼, 필리핀으로 ‘조용히’ 돌아가고자 했다. 하지만 자신의 안위 때문에 또 다른 필리핀 여성들이 자기와 같은 성매매 피해를 입게 된다면, 자신 또한 그 범죄를 용인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자신의 진술로 인해 단 한 사람이라도 그 곳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용기를 낸다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매우 어려운 결정을 했다. 성매매 피해에 대한 형사고소절차를 밟는 것이었다.
 
크리스티나는 또, 받지 못한 임금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짐 가방은 물론이고, 월급도 챙기지 못할 각오로 그곳을 나왔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고소절차를 알려주면서 동시에, 노동부에 진정하여 받지 못한 임금을 받아내자고 제안했다. 이미 법적 대응을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더이상 프로모토의 심기를 고려하면서 적당히 타협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이유에서다.
 
대부분 이곳 외국인연예인 자격으로 입국하는 여성들은, 임금체불 문제에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처음에는 단순히 한국 프로모토 측 보복이나, 갈등과 분쟁을 기피하는 그 나라 사람들의 성향이라고 이해해왔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을 존중하여, 한국 프로모토 매니저들에게 돈을 지급하라고 권고 수준의 연락만 취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한편, 피해여성들은 본인들이 성매매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약서에 대해 매우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막대한 위약금을 프로모토에 지급해가면서, 자유로운 상태를 회복하려는 여성들도 있다.
 
외국인전용클럽의 외국인연예인들은 어쩔 수 없이 가수가 해야 할 일이 아닌, 남성고객들의 유흥을 북돋우는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철저하게 근무시간을 지키며 계약사항을 이행하고자 노력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은 계약파기의 전적인 책임은, 업소를 나온 여성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성매매 등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역할을 강요하는 사업장 내부구조의 문제 때문에 여성들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성 착취 목적으로 외국 현지여성들을 유인하고, 노예제도와 같은 계약서를 빌미로 여성들을 인신매매한 한국 프로모토와, 여성들을 인계한 대가로 돈을 챙긴 필리핀 현지 에이전시, 이들의 도움으로 업소를 운영하며 실제로 성매매를 강요해왔던 업주들이 계약파기의 전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외국인연예인들은 예상치 못했던 근무환경과 조건을 참고 이행할 의무를 그 누구로부터 강요당해서는 안될 것이다.
 
현지 에이전시-한국 프로모토-성매매 업주의 착취구조
 
성매매 피해와 임금체불 피해를 별개 문제로 다루는 한국 행정시스템 덕분에, 고소를 진행하는 과정에서(피해자와 피의자의 위치에서가 아닌) 노동부를 통해 고용주와 고용된 자의 위치에서 ‘당당하게’ 일한 대가를 요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노동부에서 한국 프로모토 책임자를 피해자인 크리스티나와 대면시키면서, 임금을 받기 위해 협상을 시도하는 것이 여간 불편하고 불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쨌든 두 차례의 노동부 조사 및 중재의 결과로, 한국 프로모토로부터 계약서에 기록된 금액대로, 받지 못한 월급을 모두 받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 프로모토가 크리스티나가 계약기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위약금 부분 등 그녀로 인해 입게 된 피해액을 정산하여, 소송을 준비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노동부의 조사 과정이 진행하면서 비로소, 본인은 가지고 있지도 않지만 본인의 사인이 잔뜩 담긴 영수증, 계약서 등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 중 눈에 띈 것은, 월급 중 일부를 필리핀 에이전시에게 수속절차 대가로 지불하겠다는 내용이다. 당연히 크리스티나는 필리핀 에이전시가 그녀의 월급에서 일정 부분을 지급받은 줄 모르고 있었다.

크리스티나를 둘러싼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해관계와 착취구조를 분명하게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와 같은 만행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크리스티나의 성매매 피해사실을 입증하는 길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든 피해사실을 진술할 수 있는 여성이 나와주기를 바랐던 그 동안의 바람대로 크리스티나를 통해 모든 법률과정들이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피해여성도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업주는 물론 크리스티나가 속해있는 한국 프로모토는 성매매 강요사실을 부인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난항 속에서 또 한번 우리를 힘들게 했던 곳이 있다. 바로 필리핀 대사관이다.

‘조용히’ 돌아가라? 필리핀대사관의 역할
 

아웃리치(외국인 성매매 피해여성들과 자연스럽게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유용한 정보, 생활용품을 제공하는 활동) 사진

필리핀대사관 또한 그녀가 ‘조용히’ 필리핀으로 돌아가기를 바랬다. 또 그녀의 형사고소 결과뿐 아니라, 그녀가 체류자격을 변경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매우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늘 느끼지만, 이곳 여성들의 문제를 위해 동분서주할 때마다 ‘어쩌면 이렇게 그들 편에 서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곳이 없나’ 라는 쓸쓸함과 박탈감에 사로잡힌다.

 
사실 나는 ‘조용히’ 돌아가려는 피해여성들에게,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가난한 여성들을 통해 이익을 얻고, 계속해서 더욱 빈곤한 상태로 내몰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분노할 줄도 모른다면서. 하지만 “성매매 피해가 무슨 자랑거리라고 소란을 피우냐”는 수많은 사람들의 냉대와 무시와 낙인을, 여성들은 몸 전체로 느끼고 서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리를 내라”고 당부했던 내 요구가 얼마나 무리한 제안이었는지 절감하게 되었다.
 
필리핀 대사관 측에 호소문을 작성해 전달했다. 전적으로 그들 편에 서달라는 내용이다. 이유를 불문하고 피해 입은 자국민들을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달라고 했다. 이러한 당부가 너무 감정적이고 쓸모 없어 보일지 몰라도, 당시로선 매우 절박했다.
 
법적으로 피해사실들을 밝혀내고 처벌을 요구하기 위해, 귀국을 연기하면서까지 정의를 실천하고자 하는 자국 피해여성들의 결정을 존중해주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진정한 보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피해여성들의 현실
 

지금까지의 외국인 성매매, 인신매매 피해여성들의 이야기는 우리들로 하여금 많은 것들을 질문하게 한다.
 
① 이곳 기지촌 주변지역에 배치되고 있는 외국인연예인들의 문제가 과연, 빈곤과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이주를 결심한 여성 한 개인의 문제인가?
② 그렇기 때문에 모든 책임과 피해까지 본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 마땅한 것인가?
③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상황 속에서,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제안해야 하나? 성매매는 잘못된 것이니, 차라리 본국으로 돌아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고 조언할 것인가? 아니면, 불법체류가 되더라도 그곳으로부터 일단 나오라고 할 것인가?
④ 탈성매매를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귀국 또는 미등록상태로 다른 일을 찾는 것이 될 것이다. 이 두 가지 상황 속에서 무엇인가를 선택했다 해도, 과연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⑤ 그들이 겪은 문제는 한국에서 발생한 일이라는 점 외에,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란 말인가?
 
이 몇 가지 질문이, 피해여성들에 대한 이해와 관심에 조금이나마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관련 기사 보기] “친구가 한국에서 인신매매 당했어요” | ‘인신매매 피해자’ 규정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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