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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말 용산구에서는 정부의 의료급여 수급권 선정기준 변경지침으로,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 187명이 사전 통보도 없이 2종으로 강제 전환되는 사건이 있었다. 변경된 제도의 내용이 여기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기초생활수급권자(이하 수급권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가난한 이들의 생활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걸 보여준 사건이다.
 
이에 ‘가난한 이들의 건강권 확보를 위한 연대회의’ 등 12개 단체들은 ‘기초생활보장 권리찾기행동’(이하 권리행동)이라는 연대모임을 꾸려, 기초생활수급권 보장 실태조사에 나섰다.
 
기초생활보장법 10년 '수급권자의 소리를 듣다, 사회 안전망을 점검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너무 복잡하다.”

“가구원수에 따른 생계비를 정확히 알 길도 없고, 마땅히 알아볼 데도 없다.”
“10년 동안 아이 키우느라 너무 힘들었다. 1년 전에 수급신청 했다. 신청주의 문제 있다.”
“처음 수급자 신청할 때 사회복지사와 상담하는 과정에서 말하기가 망설여졌다. (동사무소에) 상담실이 따로 있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상담했으면 좋은데, 오픈 된 자리라 불편했다.”
“자녀가 실제 부양을 하지 못하는데도 수급 적용을 안 해주는 것은 문제가 있고 시정되어야 한다.”
“내년 재계약인데 전세 값을 올려달라고 할거고, 이보다 더 싼 집은 없다. 주거문제가 시급하다.” -<2009 기초생활수급가구 실태조사> 수급권자들의 의견
 
권리행동은 지난 15일 국회도서관에서, 7,8월 전국 기초생활수급 539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가구현황과 수급권 보장 관련 실태조사결과를 발표하고, 대안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시행 10년째를 맞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적용을 받고 있는 수급권자들의 목소리가 실태조사를 통해 공론의 장으로 나온 것은, 우리 사회 가난한 사람들의 ‘사회적 안전망’을 점검해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월 소득 20%이상 주거비 부담, 생계형 채무 늘어
 
김선미 활동가(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가 발표한 기초생활수급가구 실태조사결과를 보면, 조사대상 수급권 가구의 주거 점유형태는 무보증월세(32.9%)와 보증부월세(30.6%)가 많았고 전세(14.6%) 순이었다. 월세가구가 많다는 것은 전체생계비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보증부월세의 70%, 무보증월세의 95%가 적정 부담선을 넘는 ‘월 소득 20% 이상’을 주거비로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최저생계비의 17.25%로 책정된 현행 주거급여액이 적정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또 조사대상 가구 중 46.6%가 부채를 가지고 있었는데, 부채발생 원인은 가족의 사업실패, 실직, 사고나 질병이 많았다. 이들의 부채는 주로 생계비, 주거비, 의료비로 사용되고 있어 대부분 ‘생계형 채무’임을 알 수 있다.
 
채무연체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은행거래가 막히고(37.2%), 취업이 어려워지고(10.4%), 추심을 받는(10.9%) 등, 부채로 인해 생계비 마련과 채무변제를 위한 경제활동에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채무와 경제활동 간 악순환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정보력 없는 취약계층 ‘몰라서 신청 못한다’
 
기초생활수급권은 ‘신청’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정보접근성이 낮은 취약계층일수록 수급권에서 더 멀어질 수 있는 맹점이 있다. 권리행동의 조사결과, 수급신청 경로의 38%가 ‘이웃 혹은 아는 사람들로부터 듣고’ 신청하게 되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전달체계에 대한 인식이 아직 낮은 것이다.
 
조사대상 수급권가구의 수급신청과정에 대한 평가결과, 서류가 복잡하고 상담공간의 미흡한 점이 문제로 드러났다. 특히 2007년 기초생활보장제도 전달체계 개편으로 상담실이 구비되도록 규정되었는데도, 신청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한 공간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고 있는 곳이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또한 49.7%가 수급확정 이후 내용변경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응답했으며, 83.5%가 수급확정 내용 불만에 대한 이의신청제도를 모른다고 응답했다. 많은 수급권자들이 용산구 의료급여 강제전환 사건과 같은 사태에 무방비 노출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수급권자들의 급여내용에 대한 인지도는 생계급여(75.2%), 의료급여(67.2%)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자활급여(42.9%), 주거급여(33.8%), 교육급여(32.7%), 장제급여(17.9%), 해산급여(13.8%) 등 그 밖의 급여내용에 대해선 낮은 인지도를 보여주었다.
 
때문에 권리행동 측은 급여안내 및 고지를 의무화하고, 수급 모의조회 시스템을 갖추고, 별도 신청 없이도 각종 감면제도가 자동 연결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또 이의신청 핫라인 운영 및 기간폐지, 소급적용기간 연장 등도 요구했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우선과제로 꼽혀
 
최예륜 활동가(빈곤사회연대)는 수급권자 실태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제시했다. 가장 우선 꼽힌 것은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는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부양능력이 있는 부양의무자(1촌의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가 있을 경우, 최저생계비 이하의 저소득자이어도 수급권에서 제외한다. 이는 ‘빈곤이 사회적 책임’이라는 전제로 제정된 이 법의 정신에 배치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실제로 부양의무자가 부양을 하고 있지 않는 경우에 해당하는 이들을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한 셈이다.
 
다음으로, 현행 최저생계비 기준이 적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식비, 교육비, 의료비, 주거비 등을 일률적으로 계측하여 정한 ‘절대적 빈곤선’이 아닌, ‘상대적 빈곤선’(중위소득 혹은 평균소득)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빈곤문제는 단순히 의식주 생활뿐 아니라 박탈감, 사회적 배제 등 사회구성원 간 상대적인 면도 고려해야 하므로, 상대적 빈곤선 도입은 향후 우리사회 사회적 안전망에 관한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권리행동은 이 밖에도 ▲과도하게 책정되고 있는 재산의 소득환산율을 완화할 것 ▲소득 파악이 어렵다는 것을 빌미로, 빈곤화 이전 노동사실을 근거로 자의적으로 소득을 추정하는 추정소득 부과를 폐지할 것 ▲근로능력 수급권자에 대한 강제적 노동부과 방식이 아닌, 일하면서 탈수급 이후를 준비할 수 있도록 수급권자에게도 소득공제제도 등을 부여할 것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신진희/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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