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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탈(脫)시설 지원정책’ 발표가 있기까지 
 
4일 서울시는 장애인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정책안을 발표했다. 시설을 벗어나 자립생활을 희망하는 장애인들에게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이 같은 변화는 지난 해 3월부터 시설비리를 폭로하고, 장애인의 탈(脫)시설 권리를 요구해 온 장애단체들과 활동가들의 노력 덕분이다.
 

'시설'은 거주자들의 사회성을 앗아가고,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가치와 권리, 욕구마저 상실케 한다. ©사진 -장애인문화공간 제공

서울시의 정책내용은 ▼개인별 상담을 통해 맞춤 지원하는 ‘장애인 전환서비스 지원센터’와 ▼자립생활 전 단계에, 장애인이 3~6개월 거주하면서 지역사회 복귀에 적응하는 ‘체험홈’ ▼시설에서 퇴소한 장애인이 자립할 때까지 거주할 수 있는 ‘자립생활가정’을 도입하고, ▼신규 건립하는 장애인 시설은 30인 이하로 소규모화하며 ▼생활시설서비스를 전문화한다는 것 등을 골자로 한다.

 
당일 오후 2시, 국가인권위원회 정문 앞에서는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자립생활 쟁취투쟁 보고대회>가 열렸다. 석암재단 등 서울시 관할 사회복지시설 비리에 대해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장애인의 자립생활 지원정책을 제안해 온 관련단체와 당사자들이 그간의 상황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시설에서 나온 후 서울시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62일간이나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숙농성을 벌여온 여덟 명의 중증장애인을 비롯해, 많은 참가자들이 서울시의 자립생활 지원정책이 마련되기까지의 과정과 의미를 되짚어보았다.
 
“장애인도 크리스마스를 지역사회에서 보내고 싶다”
 
‘시설’은 장애나 빈곤 등의 이유로 거주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이들을 수용해 보호하고, 치료 등의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작년 8월 발표된 장애인복지발전 5개년 계획에 따르면, 장애인생활시설 1개소 당 평균 72명 이상이 생활하고 있다. 보편적 거주환경으로 볼 수 없는 대규모 시설이 장애인생활시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설’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히는 것은 ‘시설화’이다. ‘시설화’는 지역사회에서 격리된 채 장기간 생활한 결과, 사회성을 잃어버리고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가치와 권리, 그에 대한 욕구마저 상실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항하여 등장한 ‘탈시설’이라는 용어는, 시설 보호를 반대하고 시설거주자들이 ‘시설’을 나와 지역사회에서 보편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다.
 
2008년 3월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사회복지시설 비리척결과 탈시설 권리쟁취 공통투쟁단’, ‘석암재단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는 서울시 관할의 성람재단과 석암재단의 시설 비리문제에 대해 시의 책임을 묻고,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를 보장하라며 활동을 시작했다.
 
서울시는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에 대한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하고, 11월 ‘장애인이 행복한 도시, 서울-장애인행복도시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그러나 장애단체들은 이 프로젝트가 탈시설 권리를 보장하기엔 역부족이라며 반박했고, 자립생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운동은 해를 넘기게 되었다. 그 해 12월 장애단체들은 “장애인도 크리스마스를 지역사회에서 보내고 싶습니다” 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노숙 농성을 해도 “살면서 지금이 가장 행복해”
 

장애운동단체들은 지난 해 3월부터 시설비리를 폭로하고, 장애인의 탈(脫)시설 권리를 요구해왔다. ©사진 -장애인문화공간 제공

올해 6월 4일, 시설에서 나온 8명의 중증장애인이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면담을 요청하고, 탈시설-자립생활권리 3대 요구안을 수용할 것을 요청하며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요구안은 탈시설 5개년 계획을 수립할 것과, 중증장애인에게 자립주택을 제공할 것, 그리고 활동보조 생활시설을 확대하고 대상 제한조건을 폐지하라는 것이다.

 
노숙농성을 한 ‘석암재단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방상연(지체장애 1급)씨는 시설에서 나와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자유”라고 말했다. 그는 7월 21일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찾아가는 인권영화제> “시설 밖으로 세상을 향해” 상영회에서 이같이 말하며, ‘인간이기에 자유가 없는 생존과 보호를 거부하고, 거리에서의 노숙을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2009년 탈시설워크샵 자료집>에 실린 인터뷰에 따르면, 노숙농성 중인 장애인활동가가 시설 안에서의 생활과 시설 밖에서의 생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교한 내용이 나온다.
 
“밖에도 맘대로 나갈 수 없었어요. 사회적응훈련이라고 해서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만 나갈 수 있었어요. 맨날 방에만 누워있었죠. 지적 장애인들에게 손찌검 하는 선생님들도 많았어요. (…) 살면서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 비록 시청 앞에서 잠을 자고, 하루 종일 사람들에게 서명을 해달라고 말을 하다 보면 입이 얼고 몸이 아파요. 하지만 여기엔 자유가 있어요.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있는 지금, 이곳의 삶이 나에겐 가장 행복해요.”
 
장애인 자립생활의 권리를 위해 ‘한 걸음’
 
8월 4일, 결국 서울시는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정책을 발표하면서 “이번 계획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생활시설 장애인의 지역사회 복귀 욕구를 서울시가 선도적으로 지원”하고자 하는 것으로서, “오세훈 시장의 장애인복지 우선 해결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오후, 장애단체들이 참여한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자립생활 쟁취투쟁 보고대회>에서 주최 측은 “한국의 장애운동 사상 최초로 시설장애인이 더 이상의 시설수용을 거부하며” 자립생활 권리를 외쳤던 투쟁이었으며, ‘추상적으로만 이야기되던 탈시설 논의가 구체적인 정책으로 마련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정책의 실질적인 성과는 실무자들의 이해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을 때 얻을 수 있다. 그것이 서울시의 탈시설 지원정책이 수립되기까지 1년 6개월 간 장애인당사자와 단체들이 보여준 노력과 메시지에 사회구성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김소희/ 일다 www.ildaro.com [관련 기사 보기] 시설과 골방에서 희망없이 살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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