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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녀동수법 파헤친 <성적 차이, 민주주의에 도전하다>
2002년 6월 하원선거가 치러지던 때 난 프랑스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 좌파는 40%, 우파는 20% 정도의 여성후보자를 내세울 것이며, 여성후보자가 50%에 미치지 못하는 정당은 정부보조금을 삭감당하게 될 거라는 기사를 접했을 때, 난 솔직히 여성 입후보자가 많아 좀 놀랐다. 프랑스 언론은 거대 정당들이 보조금을 포기하면서까지 남녀동수 후보를 내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의 잣대를 들이댔지만 말이다.
비록 선출된 여성대표가 아니라 출마한 여성후보자와 관련된 법일 뿐이지만, ‘남녀동수법’(Parité), 더 분명히 말하자면 ‘남녀동수공천법’을 통과시킨 프랑스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녀동수 운동, 국가주권 개념의 위기에서 탄생
미국 역사학자 조앤 W. 스콧의 책 <성적 차이, 민주주의에 도전하다>는 바로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놓았다. 그가 이 책에서 시도하고 있는, 프랑스의 남녀동수운동에 대한 역사적 고찰은 ‘여성의 정치 참여비율이 낮은 프랑스가 어떻게 입후보자 절반을 여성으로 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법을 통과시킬 수 있었을까?’에 대한 의문, 아니 감탄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의 흥미진진한 분석을 따라가다 보면, 남녀동수운동은 세계역사의 흐름과 만나 탄생한 지극히 프랑스적인 여성운동이고, 남녀동수법은 역사적 우연이 가세하여 초기 정신이 변질되어 구체화된, 우연과 필연의 산물임을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1944년부터 여성참정권이 인정되어 왔지만, 선거에서는 남성들만 선출되었다. 여성이 선출되는 것을 법이 막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20세기 후반에 와서야 비로소 여성도 공직에 진출하기 시작했는데, 그 수는 미미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여성정치가를 늘리려는 목표 아래 ‘‘남녀동수운동’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운동이 출현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20세기 후반의 ‘세계화’, ‘유럽화’의 움직임 속에서 프랑스 내 북아프리카 출신자들이 문화적 동화를 거부한 채 차이를 인정해달라며, 완전한 프랑스인이 될 권리, 즉 국적을 요구해 온다. 하지만 현실정치는 시민사회와 괴리되어 있었고, 정치전문가 집단은 자기 이해관계에 갇혀 폐쇄적인 집단으로 부패해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소수집단의 차별종식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1980년대 후반, 극우세력이 부상한다. 정치인과 언론인은 이를 두고, 프랑스의 국가주권 개념의 위기, ‘보편주의’에 기반한 프랑스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에 봉착했다고 진단한다. 때맞춰 페미니스트들은 대의제 위기상황을 이용하고 유럽연합의 영향력을 빌어 탈출구를 모색한다. 즉, 국가주권도 강화하고 양성평등도 실현할 수 있는 대안, 다시 말해 국가의 대표자 성비 50대 50을 주장하며, 1992년부터 남녀동수 캠페인을 본격적으로 전개해 나간다.
‘해부학적 성차를 가진 보편적 존재’로서의 여성
남녀동수 지지자들이 ‘잘못된 보편주의’를 바로잡아 민주주의와 양성평등을 확립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프랑스식 보편주의를 끌어안으며, 미국식 다원주의적 대안을 비껴 났다는 지적은 눈여겨볼 만하다. 이러한 선택은 결국 소수집단(여기서는 동성애자 집단)의 차별을 용인하는 한계에 부딪친다.
아무튼 프랑스 대혁명 이후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프랑스는 보편주의와 추상적 개인주의를 대의민주주의의 사상적 기반으로 삼아 왔다. 분할될 수 없는 국가의 실체는 추상적 개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추상적 개인’이란 가족, 직업, 종교, 재산, 지역과 같은 구체적인 특징을 갖지 않는,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이며, 국가의 대표로서 동질적이고 일반적인 의지를 실현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여성은 자연적인 성차로 인해 이성적 능력을 갖춘 추상적 개인이 될 수 없기에 대표자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남녀동수운동을 시작한 이들은 남성들로만 구성된 정치집단 역시도 남성만을 대변하기에 보편적일 수 없으니, 보편성의 이상, 민주주의 이념에 위배된다고 문제 제기했다. 또 여성혐오를 극복한 진정한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간 종의 해부학적 이원성에 따라 ‘성적 특징을 가진 추상적 개인’을 인정해야 한다며 기존의 보편주의를 반박했다. 모든 개인은 여성 아니면 남성이고, 따라서 국가의 대표자도 남녀동수여야 한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이끌어낸다.
이 입장은 기존의 페미니스트인 평등주의자와 차이주의자의 입장과 구별됨을 알 수 있다. 전자는 정치적 개인이 육체적, 사회적 차이인 성차를 고려할 필요가 없고, 여성과 남성은 같기 때문에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온 반면, 후자는 대의제의 대표는 추상적 개인이 아니라 구체적 행위자여야 하고, 여성과 남성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여성도 정치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던 것이다.
‘여성은 소수집단 될 수 없어’…반차별법과 할당제는 거부
그런데 여성을 추상적 개인인 보편적 존재로 정의하게 됨에 따라 ‘반차별법’이나 ‘여성 할당제’는 거부된다. 차이에 기반한 소수집단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 반차별법이라면, 여성은 모든 집단이나 공동체에 포함되어 있는 종의 절반이라는 점에서 반차별법의 대상인 소수집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할당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까닭은 대의제를 탈성(性)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해부학적인 성차는 받아들이더라도 문화적인 성차, 젠더는 거부한다. 사회문화적 성차야말로 여성 불평등의 기원이며, 남성이 특권을 부여 받아온 권력관계를 작동시켜 왔다고 평가한다.
성차를 가진 추상적 개인을 통해 대의제를 탈성화하려는 생각, 즉 ‘사회문화적 성차’를 주장하지도, 여성이 차별 받는 ‘집단’임을 주장하지도 않고, 해부학적인 성차를 추상화해 다양한 개개인으로서의 여성이 보편적인 대표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 이 ‘차이의 딜레마’에 저자는 주목한다.
특히 사회문화적 성차를 제거하기 위해 해부학적 이원성을 추상화하고, 자연적이고 생물학적인 성차와 사회문화적 성차를 구분하려는 시도의 어려움이 동성커플 권리운동과 맞물리면서 남녀동수캠페인에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온다고 해석했다.
동성커플 권리운동과 맞물려, 이성커플 중심주의 드러내
당시 동성커플 권리 운동가들은 동성커플이 상속, 공동재산소유, 건강보험공유, 병원 방문권 등 사회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동성동반자관계를 인정해 주는 법이 필요했다고 주장해 왔고, 1999년에 동성커플을 인정하는 ‘PACS’(시민연대협약)법이 제정되었다.
그런데 그 법이 제정되기까지, 프랑스 사회는 이성애를 보편화하려는 집단 히스테리로 한바탕 들썩인다. 마치 법이 동성커플과 동성가족을 인정하기만 하면 남녀의 육체적 차이도, 이성애도 모두 부정되어 사회가 불안정해지기라도 할 듯이. 공공연한 이혼, 혼외 자녀, 가부장의 약화, 의학적 도움으로 인한 출산과 같은 현실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데도, 결혼제도로 묶여진 남녀와 그들의 생물학적 아이로 구성된 가족을 신화화하길 주저치 않았다. 이성커플만이 재생산을 보장하는 사회안정의 토대라면서 동성애자에게는 자녀, 가족, 친족을 법적으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집했다.
이에 ‘‘PACS’법은 동성커플에게 재생산, 입양, 친권, 출산을 허용하지 않는 불평등한 법이 되었고, 동성애자 권리의 측면에서 평등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불평등을 가리기 위해 보편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동성커플만이 아니라 결혼하지 않은 이성커플까지도 포함시킬 수 있도록 성을 배제한 채 커플을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법, 즉 삶의 공동기획을 가진 두 사람이 결혼제도 밖에서 커플의 삶을 보장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으로 정당화했다.
저자는 프랑스 사회가 차별은 반대하지만 차이는 인정해야 한다며, 동성애혐오와 더불어 이성커플 중심주의를 내보임에 있어 보편주의를 어떻게 동원하고 있는지, 또 동성애자 권리를 축소시키기 위해 동원된 논리, 성차에 기반한 이성커플 중심주의가 남녀동수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남성지배로 인해 여성차별이 결과했기에 법을 바꿔 양성관계를 평등하게 하고자 했던, 다시 말해서 사회문화적 성차에서 차별이 결과했다고 보았던 초기 남녀동수운동가와 달리, 실비안느 아가젠스키와 같은 남녀동수를 지지한 차이주의자들은 성차가 자연적 본질인 만큼 이성커플이야말로 보편적이고 근원적이어서 법은 자연 질서인 차이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에 의하면, 남녀동수운동의 양성평등의 토대는 추상적 개인이 아니라 이성 커플이고, 인간문화는 상보적인 양성의 차이에 기초한다.
남녀동수법의 효과는 아직도 진행형이라지만
남녀동수법이 통과된 이후, 여러 차례 선거가 치러지면서 그 법의 효과가 현실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고 한다. 여성의원 수가 증가했으며, 정계 밖의 학술, 비즈니스, 스포츠 등의 영역에서도 여성과소 대표성에 대한 새로운 자의식이 생겨났다.
하지만 비례대표제 선거에서 여성의원 수가 증가한 것에 비해, 다수대표제 선거에서는 그 효과가 적었다. 또 여전히 남성들은 실권을 여성에게 내주지도 않았으며, 시의원 선거에서는 지역명사의 아내나 연인이 시의원 후보로 추천되었고, 직무의 성역할도 두드러졌으며 우파가 선전했다. 저자는 조심스레, 여성이 남성에 비해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변화하고, 젠더를 고려하지 않는 대의제가 현실화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로 남녀동수법의 감흥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은 채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 내게 그토록 감동을 주었던 남녀동수법에 대한 감흥은 솔직히 좀 줄어들었다. 다른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 위에서 획득한 양성평등의 법, 그 한계가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황보신/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정치와 여성 기사보기] 여성386은 어디에…결혼과 함께 사라지다 | 여성총리시대는 다른가?
2002년 6월 하원선거가 치러지던 때 난 프랑스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 좌파는 40%, 우파는 20% 정도의 여성후보자를 내세울 것이며, 여성후보자가 50%에 미치지 못하는 정당은 정부보조금을 삭감당하게 될 거라는 기사를 접했을 때, 난 솔직히 여성 입후보자가 많아 좀 놀랐다. 프랑스 언론은 거대 정당들이 보조금을 포기하면서까지 남녀동수 후보를 내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의 잣대를 들이댔지만 말이다.
비록 선출된 여성대표가 아니라 출마한 여성후보자와 관련된 법일 뿐이지만, ‘남녀동수법’(Parité), 더 분명히 말하자면 ‘남녀동수공천법’을 통과시킨 프랑스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녀동수 운동, 국가주권 개념의 위기에서 탄생
프랑스 남녀동수운동 다룬 조앤 W. 스콧 "성적 차이, 민주주의에 도전하다"
그의 흥미진진한 분석을 따라가다 보면, 남녀동수운동은 세계역사의 흐름과 만나 탄생한 지극히 프랑스적인 여성운동이고, 남녀동수법은 역사적 우연이 가세하여 초기 정신이 변질되어 구체화된, 우연과 필연의 산물임을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1944년부터 여성참정권이 인정되어 왔지만, 선거에서는 남성들만 선출되었다. 여성이 선출되는 것을 법이 막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20세기 후반에 와서야 비로소 여성도 공직에 진출하기 시작했는데, 그 수는 미미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여성정치가를 늘리려는 목표 아래 ‘‘남녀동수운동’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운동이 출현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20세기 후반의 ‘세계화’, ‘유럽화’의 움직임 속에서 프랑스 내 북아프리카 출신자들이 문화적 동화를 거부한 채 차이를 인정해달라며, 완전한 프랑스인이 될 권리, 즉 국적을 요구해 온다. 하지만 현실정치는 시민사회와 괴리되어 있었고, 정치전문가 집단은 자기 이해관계에 갇혀 폐쇄적인 집단으로 부패해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소수집단의 차별종식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1980년대 후반, 극우세력이 부상한다. 정치인과 언론인은 이를 두고, 프랑스의 국가주권 개념의 위기, ‘보편주의’에 기반한 프랑스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에 봉착했다고 진단한다. 때맞춰 페미니스트들은 대의제 위기상황을 이용하고 유럽연합의 영향력을 빌어 탈출구를 모색한다. 즉, 국가주권도 강화하고 양성평등도 실현할 수 있는 대안, 다시 말해 국가의 대표자 성비 50대 50을 주장하며, 1992년부터 남녀동수 캠페인을 본격적으로 전개해 나간다.
‘해부학적 성차를 가진 보편적 존재’로서의 여성
남녀동수 지지자들이 ‘잘못된 보편주의’를 바로잡아 민주주의와 양성평등을 확립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프랑스식 보편주의를 끌어안으며, 미국식 다원주의적 대안을 비껴 났다는 지적은 눈여겨볼 만하다. 이러한 선택은 결국 소수집단(여기서는 동성애자 집단)의 차별을 용인하는 한계에 부딪친다.
아무튼 프랑스 대혁명 이후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프랑스는 보편주의와 추상적 개인주의를 대의민주주의의 사상적 기반으로 삼아 왔다. 분할될 수 없는 국가의 실체는 추상적 개인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추상적 개인’이란 가족, 직업, 종교, 재산, 지역과 같은 구체적인 특징을 갖지 않는,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개인이며, 국가의 대표로서 동질적이고 일반적인 의지를 실현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여성은 자연적인 성차로 인해 이성적 능력을 갖춘 추상적 개인이 될 수 없기에 대표자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남녀동수운동을 시작한 이들은 남성들로만 구성된 정치집단 역시도 남성만을 대변하기에 보편적일 수 없으니, 보편성의 이상, 민주주의 이념에 위배된다고 문제 제기했다. 또 여성혐오를 극복한 진정한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간 종의 해부학적 이원성에 따라 ‘성적 특징을 가진 추상적 개인’을 인정해야 한다며 기존의 보편주의를 반박했다. 모든 개인은 여성 아니면 남성이고, 따라서 국가의 대표자도 남녀동수여야 한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이끌어낸다.
이 입장은 기존의 페미니스트인 평등주의자와 차이주의자의 입장과 구별됨을 알 수 있다. 전자는 정치적 개인이 육체적, 사회적 차이인 성차를 고려할 필요가 없고, 여성과 남성은 같기 때문에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온 반면, 후자는 대의제의 대표는 추상적 개인이 아니라 구체적 행위자여야 하고, 여성과 남성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여성도 정치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던 것이다.
‘여성은 소수집단 될 수 없어’…반차별법과 할당제는 거부
그런데 여성을 추상적 개인인 보편적 존재로 정의하게 됨에 따라 ‘반차별법’이나 ‘여성 할당제’는 거부된다. 차이에 기반한 소수집단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 반차별법이라면, 여성은 모든 집단이나 공동체에 포함되어 있는 종의 절반이라는 점에서 반차별법의 대상인 소수집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할당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까닭은 대의제를 탈성(性)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해부학적인 성차는 받아들이더라도 문화적인 성차, 젠더는 거부한다. 사회문화적 성차야말로 여성 불평등의 기원이며, 남성이 특권을 부여 받아온 권력관계를 작동시켜 왔다고 평가한다.
성차를 가진 추상적 개인을 통해 대의제를 탈성화하려는 생각, 즉 ‘사회문화적 성차’를 주장하지도, 여성이 차별 받는 ‘집단’임을 주장하지도 않고, 해부학적인 성차를 추상화해 다양한 개개인으로서의 여성이 보편적인 대표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 이 ‘차이의 딜레마’에 저자는 주목한다.
특히 사회문화적 성차를 제거하기 위해 해부학적 이원성을 추상화하고, 자연적이고 생물학적인 성차와 사회문화적 성차를 구분하려는 시도의 어려움이 동성커플 권리운동과 맞물리면서 남녀동수캠페인에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온다고 해석했다.
동성커플 권리운동과 맞물려, 이성커플 중심주의 드러내
당시 동성커플 권리 운동가들은 동성커플이 상속, 공동재산소유, 건강보험공유, 병원 방문권 등 사회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동성동반자관계를 인정해 주는 법이 필요했다고 주장해 왔고, 1999년에 동성커플을 인정하는 ‘PACS’(시민연대협약)법이 제정되었다.
그런데 그 법이 제정되기까지, 프랑스 사회는 이성애를 보편화하려는 집단 히스테리로 한바탕 들썩인다. 마치 법이 동성커플과 동성가족을 인정하기만 하면 남녀의 육체적 차이도, 이성애도 모두 부정되어 사회가 불안정해지기라도 할 듯이. 공공연한 이혼, 혼외 자녀, 가부장의 약화, 의학적 도움으로 인한 출산과 같은 현실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데도, 결혼제도로 묶여진 남녀와 그들의 생물학적 아이로 구성된 가족을 신화화하길 주저치 않았다. 이성커플만이 재생산을 보장하는 사회안정의 토대라면서 동성애자에게는 자녀, 가족, 친족을 법적으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집했다.
이에 ‘‘PACS’법은 동성커플에게 재생산, 입양, 친권, 출산을 허용하지 않는 불평등한 법이 되었고, 동성애자 권리의 측면에서 평등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불평등을 가리기 위해 보편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동성커플만이 아니라 결혼하지 않은 이성커플까지도 포함시킬 수 있도록 성을 배제한 채 커플을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법, 즉 삶의 공동기획을 가진 두 사람이 결혼제도 밖에서 커플의 삶을 보장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으로 정당화했다.
저자는 프랑스 사회가 차별은 반대하지만 차이는 인정해야 한다며, 동성애혐오와 더불어 이성커플 중심주의를 내보임에 있어 보편주의를 어떻게 동원하고 있는지, 또 동성애자 권리를 축소시키기 위해 동원된 논리, 성차에 기반한 이성커플 중심주의가 남녀동수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남성지배로 인해 여성차별이 결과했기에 법을 바꿔 양성관계를 평등하게 하고자 했던, 다시 말해서 사회문화적 성차에서 차별이 결과했다고 보았던 초기 남녀동수운동가와 달리, 실비안느 아가젠스키와 같은 남녀동수를 지지한 차이주의자들은 성차가 자연적 본질인 만큼 이성커플이야말로 보편적이고 근원적이어서 법은 자연 질서인 차이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에 의하면, 남녀동수운동의 양성평등의 토대는 추상적 개인이 아니라 이성 커플이고, 인간문화는 상보적인 양성의 차이에 기초한다.
남녀동수법의 효과는 아직도 진행형이라지만
남녀동수법이 통과된 이후, 여러 차례 선거가 치러지면서 그 법의 효과가 현실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고 한다. 여성의원 수가 증가했으며, 정계 밖의 학술, 비즈니스, 스포츠 등의 영역에서도 여성과소 대표성에 대한 새로운 자의식이 생겨났다.
하지만 비례대표제 선거에서 여성의원 수가 증가한 것에 비해, 다수대표제 선거에서는 그 효과가 적었다. 또 여전히 남성들은 실권을 여성에게 내주지도 않았으며, 시의원 선거에서는 지역명사의 아내나 연인이 시의원 후보로 추천되었고, 직무의 성역할도 두드러졌으며 우파가 선전했다. 저자는 조심스레, 여성이 남성에 비해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변화하고, 젠더를 고려하지 않는 대의제가 현실화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로 남녀동수법의 감흥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은 채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 내게 그토록 감동을 주었던 남녀동수법에 대한 감흥은 솔직히 좀 줄어들었다. 다른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 위에서 획득한 양성평등의 법, 그 한계가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황보신/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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