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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여행 가이드북 <희망을 여행하라> 
 
대학 시절을 떠올리면, 방학 때마다 친구들은 외국으로 여행을 가곤 했다. 배낭여행이라는 명목으로 부모님께 지원을 받아 유럽여행을 다녀오기도 했고,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인도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이렇게 외국여행을 자유롭게 다니는 친구들도 있었던 반면, 또 다른 친구들은 외국에 나가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꺼리기도 했다. 경제적인 빈곤 때문에 여행을 사치스럽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해외여행은 다른 세상에 속한 이야기로 느껴졌을 것이다.
 
상품이 되고, 산업이 되어버린 ‘여행’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행은 어느덧 소비하는 여행, 파괴하는 여행이 되었다.

사실,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가’하는 객관적 지표 같은 것은 없다. 개인마다 자신의 경제적 지위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듯이, 여행에 대한 생각도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상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떤 이들은 고급호텔에 묵으며 최고급 관광패키지를 이용하고 면세점 등에서 쇼핑을 즐기지만, 또 어떤 이들은 장애인과 함께 대중교통이나 도보를 이용해 인도를 횡단하는 생태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두 집단의 차이는, 여행을 통해 소비하는 금액이나 참가자 개인의 경제적 지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여행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한국처럼 일정 정도 국민소득지표에 도달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많은 수의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여유 있는 자들이 소비하는 상품 정도로 여기고 있다. 고급화된 소비의 일종, 사치스러움, 부의 척도, 삶의 경제적 여유와 밀접한 방식으로 해외여행을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해외여행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더 많은 소비를 부추기며, 소비자들을 여행상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때문에 소비자는 마치 상품을 고르듯 더 편하고 더 희소성 있는 여행을 선택하게 된다. 해마다 늘어나는 해외여행인구는 거대자본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다. 여행산업은 마치 숨겨진 황금 광처럼 자본을 끌어들이고, 소비 창출만을 목적으로 한 개발이 줄을 잇고 있다.
 
그 결과 수많은 폐해들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그 부작용이 빈곤한 국가, 저소득층에게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관광개발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쫓겨난 원주민, 일터를 잃어버린 사람들, 파괴된 생태계는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여행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소비’하는 여행에서 ‘살림’의 여행으로
 
<희망을 여행하라>(이매진피스 임영신, 이혜영 공저, 소나무)는 ‘소비’하는 여행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여, 새로운 ‘살림’의 여행, 돌봄의 가치와 공존하는 관계로서의 여행을 제시한다. “공정여행(Fair Travel) 가이드”라는 부제를 달고, 여행에 관한 새로운 생각과 실천을 모색하고 있다. 이 때 ‘공정여행’이란 “여행에서 만나는 이들의 삶과 문화를 존중하고, 내가 여행에서 쓴 돈이 그들의 삶에 보탬이 되고, 그곳의 자연을 지켜주는 여행”을 말한다.

2007 티벳 시각장애인 학교 "사진 출처-이매진피스 제공"


이 책은 다양한 시각에서 우리가 하는 여행에 대해 성찰하도록 이끈다. 우리가 태국여행 길에 코끼리 등에 올라타고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동안, 절반이 넘는 아기코끼리가 잔인한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착란에 빠지거나 죽어가고 있다. 만약 우리가 히말라야를 트래킹하며 일회용 물병에 담긴 물을 마셨다면 그 수는 144병에 이르고, 재활용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고스란히 히말라야의 쓰레기로 남게 된다. 트래킹 중 숙소에서 따뜻한 샤워를 했다면, 히말라야를 지켜주는 나무 세 그루를 베어낸 셈이다.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발리의 화려한 리조트, 관광객들은 리조트가 만들어지면서 많은 원주민들이 추방당해 삶의 터전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까. 평소와 다름없이 배를 타고 고기를 잡던 인도네시아 어부들은, ‘경관을 망친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됐다. 꿈의 리조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열악하며, 현지인들의 삶은 그보다도 더 열악하다.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여행의 편의와 자유를 누리는 동안, 많은 현지인들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흔히 여행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고, 무료한 삶에 원동력이 되어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자유와 휴식을 위해, 다른 누군가를 짓밟고 그 희생을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라면 어떠한가. 과연 나는 여행이 즐거웠으며, 진정한 ‘편안함’을 누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새로운 여행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공정여행 가이드북 "희망을 여행하라"

책의 본문에는 이러한 고민 속에서 새로운 여행을 상상하고, 실천해온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여행산업이 가져온 폐해와 반작용에 관한 분석과 사례들은, 어렵고 먼 얘기가 아닌 생생한 여행자의 입장에서 서술되고 있다. 따라서 여행을 꿈꾸고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 ‘아 나도 이랬었는데…!’할만한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공감대를 통해, 독자라면 누구나 작은 실천의지를 갖도록 독려를 받는다. ‘공정여행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셈이다.
 
책을 덮은 후엔, 마치 책을 따라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다. 다시 발을 한 발짝 내디디면 책 속에 등장하는 ‘공정여행길’에 오를 수 있을 것만 같다. 여행자들이 만난 공정여행 길의 소중한 만남들이 생생하게 내 꿈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네팔을 방문해서 굴 아저씨 커피도 마시고 싶고, 카트만두 환경교육 프로젝트 KEEP을 방문해 ‘포터’(히말라야를 오를 때 짐을 운반해주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자원활동에도 참여하고 싶다. 여성의 취업이 어려운 네팔에서 여성가이드를 육성하고, 사람이 닿기 어려운 마을을 방문해 수입을 지원하는 ‘쓰리 시스터즈’와 함께 히말라야를 트래킹하고 싶다.
 
생생한 만남의 이야기와 상세한 지도들까지 갖춰져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었을 때, 떠날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된듯해 든든한 느낌이랄까. 꼭 히말라야가 아니더라도, 이 책은 내 삶의 모든 여행에 중요한 가이드가 되어줄 것 같다. 휴가여행을 앞 둔 친구들에게도 여기저기 추천해두었지만, 혹여 읽을 시간이 없는 친구들을 위해 책에서 소개하는 다음 수칙을 일러두었다.
 
<공정 여행자가 되는 10가지 방법>
 
01. 지구를 돌보는 여행-비행기 이용 줄이기, 1회용품 쓰지 않기, 물을 낭비하지 않기
02. 다른 이의 인권을 존중하는 여행-직원에게 적정한 근로조건을 지키는 숙소, 여행사를 선택하기
03. 성매매를 하지 않는 여행-아동 성매매, 섹스 관광, 성매매 골프 관광 등을 거부하기
04. 지역에 도움이 되는 여행-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 음식점 가이드, 교통시설 이용하기
05. 윤리적으로 소비하는 여행-과도한 쇼핑 하지 않기, 공정무역 제품 이용하기, 지나치게 깎지 않기
06. 친구가 되는 여행- 현지 인사말을 배우고 노래와 춤 배우기, 작은 선물 준비하기.
07. 다른 문화를 존중하는 여행-생활방식, 종교를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기
08. 상대를 존중하고 약속을 지키는 여행-사진을 찍을 땐 허락을 구하고, 약속한 것을 지키는 여행
09. 기부하는 여행-적선이 아니라 나눔을 준비하자. 여행 경비의 1%는 현지 단체에.
10. 행동하는 여행-세상을 변화시키는 여행.
 
이 책은 생각보다 여행자들의 목소리가 힘이 세다는 것을,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천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많은 사례를 통해, 여행자들이 침묵하지 않고 정의를 요구한다면 더 나은 여행, 나아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확인하고 싶다면,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일구기 위한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구독을 권하고 싶다. 
시로/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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