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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스포일러가 있으니,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은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으로 주인공 명은은 고향인 제주도를 찾았다. 명은(신민아), 명주(공효진) 자매, 마지막까지 어머니 곁을 지켰던 현아 이모와 명주의 딸 승아가 한 자리에 모였다. 명은은 가족들과 친해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무덤덤해 보인다.
명은은 언니 명주에게 함께 아버지를 찾으러 떠나자고 한다. 명주가 명은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매는 아버지가 다르다. 사는 모습도 다르다. 명은은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고, 명주는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르며 시장에서 생선을 판다. 명은은 짧은 컷트 머리에 바바리 코트를 입었고, 명주는 긴 퍼머머리에 현아 이모가 낡은 옷을 모아 리폼해 준 스커트 차림이다. 성격도 정반대다.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두 자매가 명은의 아버지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이, 여성로드무비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의 내용이다.
‘아비 없는 자식’ 명은
영화 속에서 명은은 시종일관 언니 명주를 지독히도 경멸한다. 명주가 ‘아비 없는 자식’을 낳았기 때문이다. 명은은 자신이 아버지 없이 자랐기 때문에, 명주가 또 자신과 같은 처지의 조카를 낳은 것이 지독히도 싫은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명은의 분노, 가슴 아린 아픔이 전해져 온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없다고 놀림 받아왔던 명은처럼, 명주의 딸도 그렇게 놀림을 받는다.
가족, 아버지, 트랜스젠더. 어울리지 않는 세 단어의 조합이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한 사람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말들이다. 영화 말미에, 오랫동안 명은의 가족들 곁에서 ‘현아 이모’로 불려왔던 그녀가 명은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명은의 아버지 현식은 젊은 시절 시장에서 사고가 날 뻔 했던 명주를 구해주었다. 이를 계기로 명주의 어머니와 친하게 지내게 된다. 현식은 여자로 성 전환할 계획을 갖고 있었고, 사정을 알게 된 명주 어머니는 아이를 좋아하는 현식에게 명은이라는 예쁜 딸을 낳아준다. 현식은 일본에서 수술을 받은 뒤 돌아와, 현아 이모로서 이들 곁에 머물게 된 것이다.
현식(현아 이모)과 명주 어머니의 관계는 분명치 않다. 연인간 로맨스였는지, 연민이었는지, 딸을 구해준 데 대한 고마움이었는지, 우정이었는지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현식은 명주의 어머니에게 쓴 편지에서, 자신이 ‘결코 가질 수 없었던’ 존재인 딸을 준 것에 대해 ‘당신이 보여준 헌신과 사랑, 용기에 감사 드린다’고 표현하고 있다.
명은은 애초에 남녀 간 사랑의 결과물로 태어난 딸이 아니었다. 명은은 여성들 간의 우정과 헌신, 인간적인 친밀함, 연민과 같은 포괄적인 사랑 속에 태어난 아이였다. 그런 점에서 명은은 정말 ‘아버지 없이’ 태어난 아이로 볼 수 있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가지는 의미나 역할에 비추어보면, 명은의 시작점부터 설명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남녀 간 로맨스가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헌신과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를 상상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어렸을 때 친구들이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놀리면, 어머니는 명은에게 ‘사람들이 나쁜 거다’라고 말했다. 명주도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놀림 받고 울며 들어오는 딸 승아에게, 어머니처럼 말한다. 생각해 보면 이들 가족은 참 현명하다. 아이를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놀리는 사람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정해 놓은 규율, 아버지의 규율, 어머니의 규율, 가족의 규율 따위는 이들 가족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아끼고 헌신하며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족의 가치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식이 성전환 이후 현아 이모가 되어 한 가족이 되었을 때도, 명주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을 때도, 이들은 기쁘게 또 다른 가족을, 사랑을 나눌 한 사람을 맞아 들였다.
세상의 통념으로 인해 깨닫지 못한 ‘사랑’
그러나 명은은 이러한 가족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늘 불평하고 투정했다. 아낌없는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것이 사랑인 줄 깨닫지 못했다. 그녀는 늘 아버지를 찾아 헤맸다. 명은에게 아버지는 세상사람들이 정해 놓은 올바름의 규율 같은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가진 기준으로 자신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이 충분히 사랑 받는 존재가 아니라 ‘아비 없는 자식’으로 낙인 찍힌, 무엇인가 결여된 불쌍한 아이일 뿐이었다.
반면, 명주는 현아 이모를 가족으로 받아들였고, 그녀가 이전의 현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현아 이모는 명주와 가족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는 존재였고, 이미 가족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명주는 이러한 ‘사랑’이 혈연이나 성별과 같은 구분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딸에게도, 세상이 뭐라고 손가락질하든 ‘그들이 나빠’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명은은 명주와의 여행을 통해서, 자신이 지금까지 불행했던 이유는 사랑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아집 속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미처 사랑을 깨닫지 못해서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세상이 가르쳐 준 삶의 기준 대신, 가족들이 보여준 사랑의 가치를 선택하기로 결정한다.
“나의 여행은 이제야 시작이다. 그가, 아니 그녀가 오랫동안 나를 찾아 헤맨 것처럼 나도 이제 긴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
이제 명은은 아기가 처음 걸음마를 배우듯 사랑하고 사랑 받는 법을 배우기 시작할 것이다. 또 남들이 뭐라고 얘기하든 간에, 사랑하는 사람들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주기 위해, 어머니가 그러했고 현아 이모가 그러했고 명주가 그러했듯, 그녀들과 닮은 모습으로 살아 갈 것이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 가족에 대해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겠지.
지금 이대로가 충분히 좋다고. 시로/ 일다 ⓒwww.ildaro.com
[트랜스젠더 관련기사] 트랜스젠더 무에타이 복서이야기 | 김비 인터뷰 "세상이 귀를 막지 않는다면…"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포스터
명은은 언니 명주에게 함께 아버지를 찾으러 떠나자고 한다. 명주가 명은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매는 아버지가 다르다. 사는 모습도 다르다. 명은은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고, 명주는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르며 시장에서 생선을 판다. 명은은 짧은 컷트 머리에 바바리 코트를 입었고, 명주는 긴 퍼머머리에 현아 이모가 낡은 옷을 모아 리폼해 준 스커트 차림이다. 성격도 정반대다.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두 자매가 명은의 아버지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이, 여성로드무비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의 내용이다.
‘아비 없는 자식’ 명은
영화 속에서 명은은 시종일관 언니 명주를 지독히도 경멸한다. 명주가 ‘아비 없는 자식’을 낳았기 때문이다. 명은은 자신이 아버지 없이 자랐기 때문에, 명주가 또 자신과 같은 처지의 조카를 낳은 것이 지독히도 싫은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명은의 분노, 가슴 아린 아픔이 전해져 온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없다고 놀림 받아왔던 명은처럼, 명주의 딸도 그렇게 놀림을 받는다.
가족, 아버지, 트랜스젠더. 어울리지 않는 세 단어의 조합이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한 사람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말들이다. 영화 말미에, 오랫동안 명은의 가족들 곁에서 ‘현아 이모’로 불려왔던 그녀가 명은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부지영 감독의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현식(현아 이모)과 명주 어머니의 관계는 분명치 않다. 연인간 로맨스였는지, 연민이었는지, 딸을 구해준 데 대한 고마움이었는지, 우정이었는지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현식은 명주의 어머니에게 쓴 편지에서, 자신이 ‘결코 가질 수 없었던’ 존재인 딸을 준 것에 대해 ‘당신이 보여준 헌신과 사랑, 용기에 감사 드린다’고 표현하고 있다.
명은은 애초에 남녀 간 사랑의 결과물로 태어난 딸이 아니었다. 명은은 여성들 간의 우정과 헌신, 인간적인 친밀함, 연민과 같은 포괄적인 사랑 속에 태어난 아이였다. 그런 점에서 명은은 정말 ‘아버지 없이’ 태어난 아이로 볼 수 있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가지는 의미나 역할에 비추어보면, 명은의 시작점부터 설명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남녀 간 로맨스가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헌신과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를 상상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어렸을 때 친구들이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놀리면, 어머니는 명은에게 ‘사람들이 나쁜 거다’라고 말했다. 명주도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놀림 받고 울며 들어오는 딸 승아에게, 어머니처럼 말한다. 생각해 보면 이들 가족은 참 현명하다. 아이를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놀리는 사람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정해 놓은 규율, 아버지의 규율, 어머니의 규율, 가족의 규율 따위는 이들 가족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아끼고 헌신하며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가족의 가치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식이 성전환 이후 현아 이모가 되어 한 가족이 되었을 때도, 명주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을 때도, 이들은 기쁘게 또 다른 가족을, 사랑을 나눌 한 사람을 맞아 들였다.
세상의 통념으로 인해 깨닫지 못한 ‘사랑’
명은을 통해 관객들은 사회의 시선과 통념, 그리고 사랑의 가치에 대해 반문하게 된다.
반면, 명주는 현아 이모를 가족으로 받아들였고, 그녀가 이전의 현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현아 이모는 명주와 가족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는 존재였고, 이미 가족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명주는 이러한 ‘사랑’이 혈연이나 성별과 같은 구분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딸에게도, 세상이 뭐라고 손가락질하든 ‘그들이 나빠’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명은은 명주와의 여행을 통해서, 자신이 지금까지 불행했던 이유는 사랑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아집 속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미처 사랑을 깨닫지 못해서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세상이 가르쳐 준 삶의 기준 대신, 가족들이 보여준 사랑의 가치를 선택하기로 결정한다.
“나의 여행은 이제야 시작이다. 그가, 아니 그녀가 오랫동안 나를 찾아 헤맨 것처럼 나도 이제 긴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
이제 명은은 아기가 처음 걸음마를 배우듯 사랑하고 사랑 받는 법을 배우기 시작할 것이다. 또 남들이 뭐라고 얘기하든 간에, 사랑하는 사람들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주기 위해, 어머니가 그러했고 현아 이모가 그러했고 명주가 그러했듯, 그녀들과 닮은 모습으로 살아 갈 것이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 가족에 대해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겠지.
지금 이대로가 충분히 좋다고. 시로/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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