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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국가, 남자…’ 강력한 메시지를 해체하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09. 7. 12. 09:00

오인환 작가의 개인전 [TRAnS] 
 

결과가 열려있는 작업, 오인환의 “이름 프로젝트: 당신을 찾습니다, 서울”(2009)

현재 대~한민국!의 미술계는 미술시장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술작품을 상품 혹은 주식처럼 인식해 재산축적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대기업의 행태나, 고소득자들의 미술 트렌드가 존재한다는 것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사실이다. 실제로, 많은 미술작가들이 상품화하기 쉬운 ‘회화’에 전념하고 있으며, 대형갤러리에서 전시되고 거래되는 것도 거의 회화이다. 예술(미술)이 물질로 안착하여 그 소유자를 즐겁게 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형식으로 고착된다면, 더 이상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있을까 싶다.
 
모든 가치가 자본으로 수렴되어 사람들의 감각을 마비시켜 가고 있는 이 시대에 예술의 역할이 더 잘 보고, 잘 듣고, 잘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면, 그 역할을 올바로 수행해가고 있는 현대미술 작가의 작업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게이 미술가’로 불리는 작가 오인환 
 
전시 소개에 앞서, 작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고흐의 작업보다 그의 예술가다운(?) 삶에 감동을 받는 경우가 많다. 작가와 작가의 작업을 분리시킬 필요는 없으나, 작가의 아우라 때문에 작업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경우도 있어, 작업을 보기 전에 작가의 정보를 접하는 것을 경계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작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작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작가 오인환은 우리가 보통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학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프로필에 학력을 기재하지 않는 작가다. 24시간 작업만 하는 ‘전업작가’가 되는 것보다, 예술가도 개인에게 부과된 다양한 일을 겪어내며, 개인으로서의 삶과 예술가의 경험을 동시에 유지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예술가가 예술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어야 정말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후원시스템이나 미술시장으로부터 독립될 수 있기 위해 작가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일도 중요하게 보는 이다. 

오인환 “이름 프로젝트: 이반파티”(2009)

그러나 오인환이라는 작가 앞에 붙는 수식어는 대부분 ‘게이 미술가’이다. 하지만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전략으로 삼는 작가라고 제한하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아직도 게이 미술가들의 작업이 그들만(?)의 독특한 감성을 주 무기로 삼는다면, 오인환 작가는 단지 성 정체성의 문제로 한정시키지 않고, 하나의 성향이나 방식이 절대화되었을 때의 문제점으로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성애’가 ‘정상’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동성애’가 배제되는 방식에 관심을 가진다. 또한 ‘남성문화’가 ‘남성’문화가 아닌 일반적인 문화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강요 받게 되는 것들에 집중하는 것이다.

 
“진짜 사나이”의 유쾌한 변형
 
진짜 사나이(The Real Man/ Sound & Video installation, dimensions variable/ 2009)는 그러한 작가의 문제의식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작업이다. ‘군가’임에도 불구하고 전 국민 누구나 알 법한 노래 ‘진짜 사나이’는 원래의 악보를 뒤집은 새로운 악보로 만들어지고, 그것을 바탕으로 원곡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르게 연주되다가 점차 트랜스음악으로 바뀌어간다.
 
설치된 대형스크린에는 가사가 음악에 맞게 한 글자씩 등장한다. 그런데 가사는 ‘가나다...’ 순서로 재배열되어 있기 때문에 거대한 화면 여기저기에서 글자가 보였다 사라지고, 글자를 따라 시선을 이리저리 이동시켜야 하는 수고를 해야 했던 관객은 결국 너무 빨리 이동하고 변화하는 가사를 따라 보기에 실패하고, 해체된 텍스트를 시각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남자라면 가족과 조국을 위해 몸 바칠 수 있어야 한다’는 기존의 강력한 메시지를 해체하여 자아도취적인 트랜스음악과 영상으로 바꾸어 놓은 이 작업의 유쾌함은 신랄한 비판보다 설득력 있다.
 

오인환 작 “우정의 물건” (2000, 2008)

진짜 사나이”가 사운드와 텍스트 혹은 이미지가 조화를 이루어 작업의 효과를 도왔다면, 태극기 그리고 나(The Flag and I/ Sound & Video installation, dimension variable/ 2009)는 사운드와 이미지(대상)의 충돌이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작업이다.
 

국기게양대와 국기가 세 개의 화면으로 분리되어 보인다. 각각의 화면은 조금씩 움직이긴 하지만 거의 고정되어 있고 태극기만이 펄럭이고 있다. 세 개의 화면에 가로로 분할되었으나 세로로는 이어져 보이던 국기게양‘대’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화면이 조금씩 더 흔들리며 정체 모를 숨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거칠어진 숨소리가 신음소리로 바뀌어 절정에 이를 때쯤 영상은 하나씩 끝이 난다.
 
펄럭이는 태극기와 거친 숨소리가 주는 긴장감은 그 둘 사이의 물리적 관계를 알게 되는 순간 웃음과 탄성을 유발한다. 국기가 국가와 같이 신성시되던 시절에는 태극기를 보며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했다. 이제 그 국기의 신성함도, 국가에 대한 뜨거운 마음도 사라진 지 오래지만, 아직도 존재하는 태극기의 상징성에 예의를 갖추듯 만세 자세로 정지해 촬영한 영상이 이 작업인 것이다. 화면에는 태극기와 국기게양대의 이미지만 보이지만, 자세를 유지하기 위한 촬영자의 사적인 신체의 고통이 화면의 흔들림과 소리로 드러나게 된다. 여러 가지 해석에 충분히 열려있는 작업이다.
 
관객과 몸으로 부딪쳐 소통하는 미술 
 
결과가 열려있는 작업도 있다. 그것은 바로 “이름 프로젝트: 당신을 찾습니다, 서울”(Name Project: Looking for You in Seoul/ Advertising truck, text on wall/ 2009)이다. 한국에서 가장 흔한 이름 10개를 선정해, 전시기간 동안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을 찾는 광고판을 탑재한 트럭으로 서울 곳곳을 누비며, 그 이름의 주인이 전시장을 방문하는 프로젝트에 동의할 때까지 진행되는 작업이다. 

몇 명을 찾을지, 몇 명이 전시장을 방문할지 알 수 없는 이 작업은 과정과 결과까지도 열려 있는 작업으로, 미술작업이라는 것이 가시화된 물질로 결론지어 마무리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님을 주장하는 작업으로 볼 수 있다. 

2002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유실물 보관소” (Lost and Found /2002)

“Body-Words Between Men”(Rubber sheets, dimensions variable/ 2009)도 관객의 참여에 따라 고무판 아래 숨겨진 단어가 얼마나 드러날지 알 수 없는 작업이다. 남자들 사이에서 가능한 다양한 행위들-친근한 행위, 폭력적인 행위, 성적인 행위-을 나타내는 영어와 한글 단어는, 관객이 신발을 벗고 밟아야 고무판 아래에서 도드라질 수 있다. 때로는 말보다 몸으로 부딪침으로써 소통되는 부분들에 대해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이 외에도, 2002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유실물 보관소(Lost and Found/ Photograph transferred from Polaroid, various objects placed on steel shelves, dimension variable/ 2002)우정의 물건(Things of Friendship/ Cibachrome print, various object, each photo: 115.6×77.5cm/ 2000, 2008)과 같은 이전 작업도 만나볼 수 있다. “이름 프로젝트: 이반파티”(Name Project: Ivan Party/ Paint on wall, print on paper/ 2009)와 같이 앞으로 계속 진행될 작업도 볼 수 있다.

 
“이름 프로젝트: 이반파티”는 작가가 2004년부터 이반친구들과 함께 했던 연말파티를 위한 포스터를 2006년부터 제작하면서 시작된다. 파티 참석자 모두는 중첩해서 서명함으로써 참석을 기념하는 그룹서명을 만든다. 이반으로서의 개인의 신분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공동체의 존재를 시각화하는 이 그룹서명과 참석자들의 이름 중 커밍아웃한 사람의 이름만 남겨두고 지워진 포스터를 통해, 소수자의 익명성을 강요하는 사회/문화적인 한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업이다.
 
소격동에 위치하고 있는 아트 선재에서 이달 19일까지 열리는 오인환 작가의 개인전 <TRAnS>는 현재 진행형의 전시다. 현재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전시기간 동안 작업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계속 진행될 수 있는 작업들의 전시라는 점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그가 주의를 기울이는 사회의 문제들이 쉬이 해결되지 않을 것이기에, 그의 뜨겁고 냉철한 작업은 계속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충열/일다 @www.ildaro.com  (※ 작품 사진은 아트선재 홈페이지에 게시된 것입니다.)

[경찰버스가 갤러리앞을 막은이유 |이곳은 감시와 통제의 유토피아 |공장안에 ‘이름’을 전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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