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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거의 공황상태나 다름없이 지내던 중, 나를 위로해주었던 건 다름 아닌 <시티홀>이라는 드라마였다.
 
‘일상이 곧 정치’라는 걸 보여준 드라마
 

현실에서 벌어지는 정치세계를 리얼하게 보여준 드라마

처음엔 이 드라마에 도통 관심이 생기질 않았었다. TV채널을 돌릴 때마다 추상미의 오버하는 연기 장면이 나오길래, 그저 그런 코믹 드라마인 줄 알았다. 시장이니 의원이니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정치는 그저 배경이자 소재일뿐이려니 생각했다.

 
게다가 남녀주인공에게도 전혀 흥미가 생기질 않았다. 여주인공 신미래 역할을 맡은 김선아는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의 삼순이 캐릭터와 거의 흡사해보였고, 남자주인공 차승원에게는 손톱만치의 호감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장애가 있는 내게 (남녀 불문하고) 잘 빠진 몸매는 선망의 대상이기보다 내 왜곡된 몸을 소외시키는 존재인 탓일까.
 
그러다 드라마가 중반도 훨씬 넘어섰을 무렵부터 채널을 고정하기 시작했다. 디테일하게 묘사되는 정치세계와 암투에 몰입되기 시작했고, 여주인공 신미래가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제서야 차승원의 성숙해진 내면연기도 눈에 들어왔다. 나중엔 나도 모르게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에 몰입되면서, 내심으론 대통령을 꿈꾸면서 사랑에 모든 것을 던지는 이런 비현실적인 남자캐릭터에 빠져드는 자신이 한심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이 드라마가 코믹정치냐, 코믹멜로냐 하는 것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이 드라마가 정치드라마가 아니라고 처음부터 밝혔다지만, 이 드라마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에서 어김없이 벌어지고 있는 정치세계를 아주 깊숙이, 그리고 리얼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정치가 우리와 무관하거나 먼 세계가 아님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그러므로 정치혐오증, 정치기피증을 한방에 날려버린 것만으로도 <시티홀>의 위력은 굉장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최근 종영된 SBS 드라마 "시티홀"의 한 장면

우리는 늘 정치판은 더러운 곳, 특별한 정치꾼들만이 판치는 곳일 뿐 평범한 사람들은 범접하지 말아야 할 곳으로 여기면서, 어쩔 수 없이 더러운 정치꾼들을 그곳으로 보내는 역할만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하지만 <시티홀>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정치적(?)이었다. 가장 일상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구호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살아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적어도 ‘정치는 이런 것이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정치는 이런 것이다’라는 지표와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시티홀의 등장인물들을 살아 숨 쉬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그를 살아오게 한 힘…누구에게나 강점은 있다
 
무엇보다 내가 <시티홀>에 매료되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여주인공 신미래의 ‘승리’ 스토리였다. 코믹드라마답게 많이 황당하고 억지스러운 점이 있지만, 신미래는 10급 공무원이었다가 인주시의 존경받는 시장으로서 승리의 역사를 만든 장본인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만나기 어려운 희소성, 가짜희망에라도 매달려야 할 만큼 암담한 현실 때문에 이 드라마에 시선을 고정했던 건 아니었다.
 
극중 인물 신미래에게는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강점이 분명 있었다. 돈도 배경도 없는 여자이기에 감히 시장후보로 나섰을 때 모두가 비웃었고, 조국 역시 단지 허수아비 시장으로 앉혀둘 요량이었지만, 그녀는 시장통 서민들과 애환을 나누는 성장과정을 통해 시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보다도 정확히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쥐뿔 나게 가진 것 하나 없으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못하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으며, 남들이 다 낮추어보는 10급 공무원 생활에 충실했기에 누구보다도 시정에 밝았고, 하루하루의 일과를 꼼꼼히 기록한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증거를 자신의 힘으로 확보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위기가 올 때마다 도망치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여주인공 신미래 캐릭터는 매료될 만하다.

신미래의 이러한 강점은 걸출한 영웅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보통사람도 가질 수 있는 점이기에, 나는 거기에서 애써 희망을 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알게 모르게 사람의 가치를 세상의 잣대에 비추어 등급 매기며, 될 사람과 아닌 사람, 날 사람과 아닌 사람을 제멋대로 규정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날려버리는 통쾌한 일격이라고나 할까.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온갖 속임수와 야비한 방법을 동원해 무차별한 폭력을 가하지만, 그녀는 아무 가진 것 없이도 약하다는 이유로 망연자실한 채 당하고만 있는 청순가련형 여자가 아니다. 눈물짓는 피해자, 남자주인공의 구원에 의해서만 행복해질 수 있는 우리 드라마 여주인공의 전형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 내가 이 드라마에 빠지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누구에게나 강점은 있다. 그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 쓸모없고 문제투성이이며 희망이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보기 힘든 사람일지라도, 그에게는 지금까지 그를 살아오게 한 힘이 내재되어 있게 마련이다. 내가 보기에 시티홀의 신미래는 영웅도,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지만, 자신의 강점을 믿고 그것을 잘 찾아나간 여자였다.
 
지난 몇 주 동안 시티홀 덕분에, 희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강점을 믿고 그것을 잘 살려나가는 데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어 위안을 받았다. 드라마 속에서가 아니라 내가 몸담고 있는 일상에서,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희망을 만날 수 있다면 내게도 다시금 용기가 생길 텐데….

[김효진의 다른 생각] 일다 ⓒwww.ildaro.com  필자의 다른 글 보기 [장애가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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