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경험으로 말하다/이경신의 죽음연습

CCTV가 안전지킴이?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09. 8. 13. 08:30
도처에 감시의 눈이 있다. 횡단보도 앞에 서 있거나 공원에서 쉬는 동안에도, 아파트 입구를 들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는 동안에도 CCTV는 쉬지 않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은 카메라의 감시대상이다. 항상 누군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 안심이 된다기보다 오히려 불편하고 불쾌하다.
 
안전을 감시시스템에 맡기는 사회
 

어느새 CCTV가 우리 삶의 공간 곳곳에 설치됐다

몇 년 전 아파트 동 대표를 할 당시, 엘리베이터에 CCTV를 설치하자는 안건이 올라왔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어린이나 여성이 폭력에 노출되는 것을 막자는 것이 이유였다. 이 안건에 반대한 동 대표는 단 한 사람이었는데, 그 이유는 ‘사생활 침해’라는 것이었다. 나도 그 의견에 공감했지만, 어린이와 여성의 안전이 염려스러워 감히 반대하지는 못했다. 안건은 주민투표에 부쳐져 다수의 지지를 받은 후, 엘리베이터뿐만 아니라 아파트주차장, 놀이터 주변 등 곳곳에 CCTV가 설치됐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 내 CCTV 설치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재작년 안양 어린이 유괴살해사건이 일어난 이후, 동네 공원과 주변 거리까지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었다. 이어 동장이 가가호호 방문해 찬반서명을 받으러 다녔을 때도, 썩 내키지 않았지만 ‘아이들 키우는 부모마음이 오죽할까’ 하며 찬성에 서명했다.
 
결국 아파트 내에서만이 아니라 거리 구석구석까지도 카메라의 눈이 빼곡히 들어섰다. 경기침체로 다들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도 CCTV산업은 호황이었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난다.
 
도대체 언제부터 ‘CCTV설치가 안전보장’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여론이 되어 버렸을까? 범인을 잡지 못한 것이 마치 CCTV가 부족한 탓인 것 같고, CCTV가 없어 범죄가 더 생기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곤 한다. 거기에는 방송매체도 한몫 한 것 같다. CCTV 덕분에 범인을 체포할 수 있었다는 보도를 심심찮게 접하게 되니 말이다.
 
나 역시도 ‘지켜보는 눈이 있으면, 범죄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의 안전을 카메라 감시시스템에 내맡기는 것이 제대로 된 선택일까. 아니, 충분한 선택일까?
 
신뢰 있는 이웃관계가 범죄예방에 효과적
 
도처에서 지켜보는 눈이 있으면 범죄가 생기기 어렵다는 생각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실제로 범죄는 인적 드문 으슥한 곳, 사람의 눈이 잘 미치지 않는 곳에서 발생하니까.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 지켜보는 눈이 CCTV라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CCTV는 단순히 범죄행각만을 포착할 뿐, 벌어지는 범죄를 제지하지 못한다. 게다가 범죄자의 입장에서는 카메라만 잘 피하면 된다.
 
오히려 카메라의 눈보다는 이웃의 눈이 범죄 억제력이 더 높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위해 바로 달려 나와 주는 동네라면, 그 틈새로 범죄가 비집고 들어오기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CCTV 설치에 앞서 이웃간의 신뢰 있는 관계를 구축하는 일이 먼저일 것이다.
 

추천 도서: 김진애 "이 집은 누구인가"

그런데 정작 우리의 이웃은 어떤 모습인가? 특히 도시 아파트 촌에서는 잦은 이사로 이웃이 수시로 바뀌기도 하지만, 새로 이사 왔다고 해서 이웃에게 자기를 소개하는 사람도 드물고, 새로 이사온 이웃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평소에도 서로 인사를 나누는 일은 흔치 않다. 오히려 먼저 인사를 건네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기 일쑤다.

 
이웃이 함께 모여 동네를 걱정하는 일도, 동네를 위해 봉사하는 일도 거의 없다. 아파트값을 담합해 올리려 할 때, 장기임대주택 건설에 반대할 때처럼 금전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고 생각할 때만 예외다.
 
서로가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지도 못하니까 이웃관계란 서먹하고 소원할 뿐, 다들 고립된 섬처럼 무관심하게 살아간다. 경우에 따라서는 무관심에서 그치지 않는다. 공동주거생활임에도 불구하고 자기편의대로 생활하여 이웃에 피해 주는 일을 개의치 않는다. 게다가, 아이들의 성폭력과 유괴를 걱정하는 부모 중에는 이웃어른에게 인사까지 금하면서 이웃을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을 하며 담쌓는 사람까지 있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안전한 사회란, 범죄자를 잘 검거하는 사회이기에 앞서, 범죄가 발생하기 어려운 사회여야 한다. 그렇다면 상호 배려하여 좋은 이웃이 되려는 노력이야말로 범죄피해자를 양산하지 않는 범죄예방의 보다 근본적인 대책일 것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CCTV만 도처에 설치하면 안전문제가 해결되는 양하는 태도는 깊이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창살 없는 우리’, 감시사회를 향해
 
CCTV가 범죄자 검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소수의 흉악범을 잡기 위해 모든 시민을 감시 아래 두는 것은 분명 과도한 조치다. 솔직히, 설치된 감시카메라가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하지는 않을까 우려가 된다. 모든 사람을 합법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체계, 안전에 대한 강박으로 우리 스스로가 그 체계를 구축할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자유를 강탈당한 안전.’ 지금 우리는 자진해서 ‘창살 없는 우리’ 안으로 기어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카메라를 곳곳에 배치해두고 스스로를 감시의 대상으로 만들고 있는 우리 사회를 결코 건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미 감시의 눈은 넘쳐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공원에서 그네를 탈 때마다 나를 주시하는 카메라의 눈. ‘도대체 내가 뭘 한 건가?’ 내 어리석음에 속이 상한다.  이경신 / 일다 www.ildaro.com

[관련 글] 프라이버시권은 누가 지키나 | ‘감시’하는 사회 | 안전이라는 이름의 감옥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