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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할머니들을 통해 행복한 노년을 고민하다 
 
이번 학기 마지막 그림수업이 있던 날, 수업동기인 한 할머니께서 선생님과 학생 모두를 점심식사에 초대하셨다. 앞으로 이 수업에 참여 못하게 되어 아쉽다면서, 그동안 함께 했던 사람들과 식사라도 나누자고 말이다.
 
할머니는 육십 대 후반이라는 연세가 무색할 만큼 활기차고 멋쟁이시다. 그런데 우리 그림 반에는 또래 할머니가 두 분 더 계시다. 세 할머니 모두 산뜻하고 단정한 차림새로 나오셔서 그림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참 멋지게 나이 드시는 분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나이가 많이 들더라도 계속 배우면서 살아야겠다’고 평소 생각하고 있던 터라 할머니들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사회적 역할에 갇히지 않고, 내 개성을 찾는 노년
 
식사를 끝낸 후 서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한 할머니께서 “이렇게 배우러 다니지 않았다면, 젊은 사람들이 우리를 상대라도 해주겠어?”라며, 젊은 친구들과 함께 그림도 배우고 이야기도 나누는 즐거움에 대해 말씀하셨다. 또 “그림을 그리면서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어.” 라는 이야기도 덧붙이셨다. 길을 걷다가도 빛을 느끼고, ‘어떻게 그리면 좋을까?’ 하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고.
 
그렇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나이에 갇힌 채 죽을 날을 기다리며 지루하고 답답한 나날을 보낼 필요는 없다. 나이가 들어도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친구로 사귀고,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새 세상을 접할 수 있다. 세상 보는 눈도 변화시켜 나가고, 계속 꿈도 꿀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혹시 젊은 시절에 못다 이룬 꿈이 있다면, 그 꿈에 작은 날개도 달아보는 노년, 멋지지 않은가.
 
그러기 위해서는 ‘나’ 개인으로 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아내, 어머니, 할머니로만 살아온 여성이라면 이제 그 역할은 과감히 밀쳐두고, 내 개성을 발휘하며 ‘내 얼굴’로 살려고 애쓸 필요가 있다. “노년을 자유롭게 보내고 싶으면,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노인들의 말을 곁으로 흘려 들을 일은 아니다. 사회 속의 역할에만 매달리다 보면, 웅크리고 쪼그라든 ‘나’를 무덤에 데리고 갈 일만 남을 뿐이다.
 
시간도, 경제적 여유도 없는 할머니들
 

추천서- 시몬느 드 보부아르 "노년" (책세상, 2002)

그런데 그런 멋지고 자유로운 노년도 경제적 뒷받침이 없다면 힘든 게 사실이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종종 만나게 되는 할머니들은 그림반 할머니들과 처지가 너무나 다르다. 할머니들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자녀에게 의존해 있다. 기혼자녀와 함께 기거하다 보니, 자연스레 가사일을 부담하게 되고, 손자손녀 돌보는 일도 떠맡게 되는 것 같다. 맞벌이 하는 자식인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루는 엘리베이터에서 낯익은 이웃할머니를 뵈었는데, 그림 그리러 가는 내게 부러운 시선을 던지시며 조금 기운 빠진 모습으로, “뭘 좀 배우고 싶어도, 아이들 돌보느라 어디 시간이 있어야 말이지” 하며 말꼬리를 흐리셨던 게 생각난다.
 
그 할머니에게 부족한 것은 시간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무언가를 배우러 다닐 경제적 여유도 없을지 모른다. 노년을 향유하려면 시간만이 아니라, 경제적 자립도 필수적인 조건이다.
 
경제적 자립이란 젊은 시절부터 준비해야 한다. 물론 아직도 여성들 상당수가 경제적 자립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노년에 이르러 경제적 빈곤으로 비참한 삶을 하루하루 이어가고 있는 할머니들이 많다. 늙도록 살 수 있다는 것, 즉 장수를 복이 아니라 형벌로 여기면서 살아가는 할머니들 이야기는 눈물겨울 지경이다. 그나마 나이 들어 남편이나 자식에게 의지해 먹고 살 수 있는 여성은 다행일 수도 있다. 그림 반 동기 할머니들이나 우리 아파트 할머니들처럼.
 
스스로 경제적 자립조차 해내기 어려운 할머니들의 현실을 감안할 때, 자기 개성을 발휘하고 욕망을 드러내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꿈꾸라고 말하는 것은 비현실적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젊은 시절부터 자립적 노년을 스스로 준비하며 진정으로 행복한 노년을 설계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무리 젊다고 해도 요절하지 않는 이상, 요즘처럼 평균연령이 높은 시대에 노년은 거의 모두가 죽기 전에 거쳐 가야 하는 과정일 테니 말이다.
 
젊어서부터 준비해야 하는 정신적, 경제적 자립
 
노인이 젊은이의 다가올 미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회 속에서는 흔히 젊은이와 노인을 서로 대립시켜 바라보지만, 실제로 한 개인에게 있어 노년의 삶은 젊은 시절의 삶과 연속되어 있다. 노년과 청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젊어서도 하지 못한 자립을 늙어서 하기도 어렵고, 노년이 되어 갑작스레 자기 개성을 찾고 발휘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젊어서부터 자신을 잘 알고 개성을 발휘하고 꿈을 실현해나가는 사람만이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나’ 개인으로 즐거운 노년을 향유할 수 있게 되기 마련이다. 내 꿈을 자신의 아이를 통해 대리 만족하려는 사람이 어떻게 노인이 되어 자기 꿈에 날개를 달 생각을 하겠는가. 어려운 일이다. 노년은 젊어서부터 키워온 정신적, 경제적 자립의 기반 위에서 잘 준비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나이 들고 있다. 나이가 들어도 욕망과 감정은 여전히 살아 있다. 젊은 시절의 욕망이 변화할 수는 있더라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의 욕망을 지속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미래, 노년을 어떻게 향유할 수 있을지 고민은 계속되어야 한다. 노년의 기초적 생존은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을 모색하고 방도를 마련한다고 할지라도, 살아남는 노년이 아니라 즐겁고 행복한 노년은 개인적 차원의 작은 노력들이 오랜 시간 이루어낸 결실이 아닌가 싶다. 이경신/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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