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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를 통해 산업화와 도시화 들여다보자 
 
비가 내린다. 그래도 오늘은 얌전히 내려주니 고맙다.
 
올 여름, 천둥, 번개, 세찬 바람을 동반한 폭우가 몇 차례 지나는 동안 오래된 모니터와 텔레비전도 타버렸지만, 베란다 물난리로도 곤욕을 치렀다. 우리 집만 아니라 동네 아파트 여러 집이 이번 비로 물난리를 겪었단다. 그 때문에 관리소 직원들은 비가 잠시 멎은 사이 방수공사 하느라 쉴 틈이 없다.

기후변화로 인해, 우리 여름이 갈수록 아열대 지역 여름과 닮아가고 있다. ©이경신

막대한 재산손실을 야기하기도 하는 등 심각한 재난이 되고 있다. 오늘도 매체는 앞다투어 비 피해 소식을 전하느라 분주하다.
 
가열된 지구는 물의 재난을 부르고
 
사실 비는 물의 순환과정의 자연스런 일부일 뿐이다. 비로 대지에 떨어진 물은 땅속 깊숙이 스며들어 지하수가 되거나 강으로, 바다로 흘러간다. 물론 그 과정에서 증발하기도 한다. 이렇게 물은 쉬지 않고 돌고 돌면서, 지구생명체들의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삶의 조건이 되어 왔다. 그래서 물을 ‘생명수’라고 부르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물이 지나치게 많거나 너무 부족해지면 물은 생명체에게 삶을 위태롭게 하는 두려운 존재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름철에 집중되어 홍수를 일으키는 폭우와 태풍은 분명 공포다. 그런데 여름철 강수량이 해마다 증가하고 국지적 집중호우도 점차 늘어나면서, 물로 인한 피해는 전보다 더 커져만 가고 있다. 이처럼 물로 인한 자연재해는 기후변화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왜, 우리의 여름이 아열대 지역의 여름과 닮아가는 변화를 겪고 있는 걸까? 여름철 비의 양을 증가시키고 집중폭우와 태풍을 빈번하게, 또 위력적으로 만들어, 물을 점점 더 자연재앙으로 내모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추천도서. 데이비드 드 로스차일드 "뜨거운 지구에서 살아남는 유쾌한 생활습관 77" (추수밭, 2008)

무엇보다 과학자들은 온실기체의 증가로 인한 지구온난화를 기후변화의 주된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온실기체란 온실효과를 내는 수증기를 포함해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등과 같은 기체를 뜻한다. 산업화는 화석연료의 과도한 사용을, 화석연료 소비는 온실기체 방출을, 과도한 온실기체는 지구의 심각한 가열을, 지구온난화는 극단적인 기후변화를 연속적으로 야기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앞으로 건조한 곳은 더 건조해지고, 습한 곳은 더 습해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폭우로 힘들어 하고 있는 동안에도, 지구 저편에서는 가뭄으로 물이 부족해 격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증발한 비가 되돌아오지 않아 땅이 황폐해지고 사막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점점 강력해지고, 증가하는 가뭄과 홍수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을 고통 속으로 내몰고 있다. 사계절을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봄, 가을이 줄어들고, 여름철 폭우와 태풍은 강력해지는 반면, 겨울가뭄은 심각해지고 있는 우리 기후만 보더라도, 지구온난화가 기후에 미치는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온실기체 배출량 세계 6위, 배출량 증가율 세계 1위로, 지구온난화에 앞장서고 있는 나라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나라 국민인 나는 쏟아지는 비 앞에서 내 생활방식에 대한 겸허한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하리라. 그나마 에어컨 없이 살고 있고, 해외여행 계획도 없긴 하지만, 그 외에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은 진행 중이다.
 
빗물을 보듬지 못하는 도시
 
심각한 기후변화를 초래한 산업화와 더불어, ‘도시화’ 역시도 비를 두려운 존재로 만드는 데 한 몫하고 있다.
 
비록 억수 같은 비가 내리더라도 그 동안엔 산림, 논과 밭, 습지와 초지가 내리는 비를 받아 안아 물을 머금어 주었다. 그런데 산림벌목, 도로포장 등을 동반한 도시화는 지표면이 물을 흡수할 수 없게 만들었다. 따라서 비가 땅에 머물지 못하니 계속 흘러나갈 방도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도시지역에서 흡수되지 못한 빗물은 하천을 통해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양이 한꺼번에 흘러내려가게 되고, 결국 홍수피해는 더 커지기에 이르렀다. 당연히 빗물이 지하수가 될 기회도, 여유도 주지 않는다.

하천에 가보니, 새로 조성한 안내판과 벤치, 꽃밭 등이 모두 물에 휩쓸려 처량한 꼴이 됐다. ©이경신

비가 그친 틈을 타서 잠시 동네 하천에 나가 보았다. 불어난 물은 징검다리를 모두 삼킨 채 바삐 흘러가고 있었다. 평소 물고기 떼가 몰려 다니고 새들이 여유롭게 오가는, 잔잔하고 투명한 하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누런 흙탕물 강이 되어 있었다.

 
하천의 주위 풍경도 평소와 딴판이었다. 하천 가 다리난간들은 엿가락 휘듯 구부러져 있었다. 아예 누워버린 것, 부러진 것도 보였다. 또 하천 가 벤치들도 제 자리를 한참 벗어나 풀밭 여기저기에 엎어진 채로 나뒹굴고 있었다. 곳곳의 안내판도 뿌리 뽑혔다.
얼마 전 새로 조성한 꽃밭은 아예 사라져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꽃들이 심겨 있던 자리에는 물이 지나가며 만들어낸 진창과 여기저기 패여 있는 물웅덩이만 눈에 들어왔다. 꽃들 중간에 있던 큰 바위 돌만 홀로 덩그러니 그 자리를 지켰다.
 
그 와중에도 풀들은 꿋꿋이 자기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 지금 미처 일어나지 못하고 비스듬히 누워 있는 풀도,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일어나 씩씩하게 제 삶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풀이 지켜준 땅은 크게 상처입지 않고 그대로였다. 도시가 삼키지 못하고 뱉어내는 물에도 풀이 무성한 땅은 살아남았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과도하게 손댄 땅은 모두 휩쓸려, 처량한 꼴로 황폐해졌다.
 
하천을 통해 흘러간 빗물은 한강으로 들어가 마침내 먼 바다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물론 물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언제나처럼 끝없는 순환의 여정을 이어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 순환의 모습은 전과 같지는 않다. 우리가 지구를 가열하고 대지를 숨막히게 하는 만큼 우리에게 난폭한 물벼락이 되어 되돌아올 것이다.
 
다시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의 굉음이 귀를 찢는다. 빗방울도 무섭도록 굵어지고 거세졌다. 서둘러 달려가 창문을 닫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다행히도 물막이 공사를 한 베란다는 아무 이상이 없어 오늘 밤은 무사히 잘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어딘가에는 또 물난리로 눈물 흘릴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장마가 지나가면 또 태풍이 몰려 올 텐데, 여름비가 점점 더 두려워진다. 이경신 |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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