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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시 덕천마을에 다녀오다 재개발 반대 플랫카드가 걸린 덕천마을 삶의 공간을 가꿔온 이웃들이 살고 있는 동네 풍경 하천 건너 고층아파트단지로 인해, 시야가 막힌 덕천마을
하천 길을 따라 산책하다 보면, 건너편에 낡고 허름한 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가 보인다. 하천을 사이에 두고 그 동네를 에워싸고 있는 현대식 고층아파트단지들과는 아주 낯선 모습이다. 수 년간 산책을 다니면서 그곳에 가볼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내 시선에 잡힌 그 동네는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동네 같아 보여,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
그 동네의 이름은 ‘덕천마을’이다. 안양천 바로 곁에 위치한 탓에, 여름마다 물난리를 겪어야 했던 가난한 서민들이 모여 살아온 동네라고 한다. 그런데 현재 그곳에 안양시 최초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2012년까지 재개발 사업을 완료하여 30층 높이의 고층 아파트를 포함한 4천250 세대가 거주할 수 있는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조성하는 것이 시의 계획이다.
동네 여기저기를 둘러보니, 그곳에는 가로수가 없고 전신주가 가로수를 대신하고 있었는데, 내 어린 시절 동네를 떠올리게 했다. 전신주가 없고 가로수가 즐비한 건너편 아파트 촌과는 참으로 대조적이다.
대신 슈퍼, 세탁소와 같은 가게 앞에는 좁은 입구만 남겨놓고 화분들을 늘어놓아 언뜻 보아서는 꽃집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또 대문 위, 담벼락 앞이나 담장 위, 옥상에도, 또 2~3층 건물 계단 위나 안마당에도 어김없이 화초나 나무, 채소를 심은 화분들이 놓여 있어, 그 싱그러운 녹색빛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게다가 단독주택이나 연립주택의 좁은 마당 한 구석을 지키고 있는 키 큰 나무들은 동네의 나이를 가늠하게 해줄 정도로 세월을 느끼게 했다.
하천 건너편에서 바라볼 때와 달리, 덕천마을은 을씨년스럽고 우울한 동네가 아니었다. 그곳에도 나름대로 삶의 공간을 가꿔나가는 평범한 우리 이웃이 살고 있었다. 거기엔 동네의 나이만큼이나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정겨운 집들이 존재했고, 정 붙이며 살고 있는 이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다음 달부터 비워질 동네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결국, 서울처럼 안양에서도 도시 재개발은 사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 모양이다. 살고 있는 사람 대부분은 턱없는 보상금과 함께 내쫓기는 것 이외의 다른 선택이 없으니 말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
왜 도시는 획일적인 아파트단지로 채워져야 하나
도시 재개발 사업을 지켜보면, 원주민에 대한 배려도 없지만 도시 자체에 대한 고민도 부족한 것 같다. 가까운 미래에는 지구인 절반이 도시에서 살 거라는 예측 앞에서, 우리가 껴안고 가야 할 도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꼭 필요하다. 도시 재개발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야 하지만, 더 이상 지금까지의 도시로는 곤란하다.
시에서는 덕천마을을 친환경 마을로 재개발할 거라며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테니, 다른 곳과 별다르지 않을 것이다. 주변 아파트단지들과 닮은 동네가 하나 더 생길 뿐일 테니까. 도대체 왜, 재개발만 하면 도시를 송두리째 바꾸는 걸까? 그것도 왜, 아파트 대단지로만 바꿔야 할까? 왜, 모든 동네가 똑같은 꼴을 하고 있어야 하는 걸까?
골목 안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녀 보니, 이 동네는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촌과는 다르다. 그 나름의 개성과 특색이 있었다. 시장통 골목에서 겨우 찾아낸 식당만 해도 그렇다. 단독주택을 개조한 곳이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는 중에도 낯설어 어리둥절해지는, 평소 내가 접하는 식당과는 분명 다른 공간이었다. 그래서 바로 이웃 동네를 방문하면서도 색다른 곳을 찾아 멀리 여행 나온 사람의 호기심과 흥미가 생겨났다.
비록 손보지 않은 낡은 집들이 대부분이고, 곳곳이 쓰레기로 지저분하고, 또 상가와 주택, 연립주택과 소규모 아파트단지가 서로 무계획적으로 뒤섞여 있긴 했지만, 시멘트벽돌 담벼락처럼 동네 곳곳이 나를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이끌고 간다. 세월을 거슬러 서 있는 느낌이었다. 우리의 과거가 바로 거기 있었다.
낡았다는 이유로 사라지는 ‘우리 동네’
도시가 꼭 ‘새 것’이어야 하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에도 정을 붙이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오래된 동네가 드문 우리나라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귀하다. 평생을 이곳에서 보낸 사람들이 있고, 동네 어귀어귀마다 세월의 흔적이 새겨져 있는 덕천마을. 그처럼 과거의 기억을 담고 있는 동네가 낡았다는 이유로 사라진다는 것은 분명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덕천마을은 어떤 의미에서 이미 죽어가고 있는 동네이기도 하다. 재개발 계획으로 인해 동네를 떠난 사람도 생겨났고, 더 이상 애착 없이 살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버림받은 공간도 하나 둘 늘고 있는 형편이다. 무엇보다도 재개발 관련 입장 차이로 마을 주민들 사이의 분열이 커져가고 있었다. 집주인과 세입자, 빌라 주민과 상가 주민 등. 재개발 사업은 바로 주민들의 분열을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결국엔 다정했던 이웃들의 사이가 나빠지고, 대부분은 더 열악한 환경으로 내쫓기게 될 것이다. 생사를 걸고 싸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끝까지 남아 결판이 나지 않는, 암울한 전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마을을 돌아 나오는데, 하천 건너편, 한참 마무리 중인 신축 아파트 단지가 눈 앞을 턱 가로막는다. 그 고층아파트 단지는 덕천마을의 눈을 가리는 답답한 병풍이 되어 있었다. 숨이 막혀 왔다. 길에 내걸린 플랫카드들을 뒤로 한 채, 서둘러 동네를 빠져 나왔다. *함께 읽자. 한성옥과 김서정 <나의 사직동>(보림, 2003) www.ildaro.com
이경신의 철학하는 일상/ 일다 [그림으로 보는 관련기사] 신도시 개발로 사라져간 우리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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