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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시기에 유도부 코치로부터 지속적으로 겪은 성폭력을 세상에 알린 전 국가대표 유도선수 신유용의 ‘미투’ 형사재판이 시작되었다.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에 피해자가 증언을 하러 간 날, 방청석에는 피해자를 응원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재판부가 방청인들을 퇴정시키고 비공개 재판을 하자고 하여 마찰을 빚었다. 피고인을 퇴정시켜 달라고 하자, 피해자보고 안에 들어가 화상으로 증언하라고 했다. 우리는 피해자도, 방청인도 재판정에 있는 것을 택했다. 재판부에 피고인 앞에 가림막을 설치해달라고 했지만, 가림막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렇게, 피해자가 피고인을 1.5m 전방에 두고 면전에서 증언하게 되었다.

 

▲ 검찰 조사를 받으러, 그리고 형사재판이 열릴 때마다 서울역과 익산역을 오갔다. 익산행 차안에서 잔뜩 긴장된 상태로 할 일을 점검하는 내 모습과(왼쪽), 야밤에 서울행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 긴장이 풀리고 피로가 몰려와 곯아떨어진 모습(오른쪽)이 신유용의 카메라에 담겼다. (사진: 신유용 제공)

 

사건을 맡은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피해자가 법적으로 다투는 과정에서 받을 부담과 상처 등을 고려해, 물리력의 행사가 명징한 최초 성추행과 성폭행만을 고소 대상으로 정리한 것이었다. 유죄가 인정된다면, 법원이 죄질을 판단해 양형에 반영하면 될 일이었다. 검찰도 내 의견에 동의했다. 덕분에 이날 증인신문에서 다뤄질 쟁점이나 사안도 어느 정도는 좁혀져 있었다.

 

가해자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흘렀어도 피해자에게는 어제처럼 생생한 기억이었다. 피고인의 변호사가 무엇을 묻든, 피해자는 누가 들어도 납득이 될만한 답을 했다. 피고인의 변호사는 첫 성폭행을 당한 직후 피고인의 방에서 특정 과자를 먹기도 하지 않았냐고 추궁했다. 피해자가 그렇다, 아니다가 아니라 ‘제가요? 저 그 과자 안 좋아합니다’라고 답했다. 질문한 변호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방청석에서는 탄식과 웃음이 흘러나왔다.

 

불편한 기억을 꺼내는 일이 흔쾌할 리 없지만, 피해자는 눈물은 흘려도 증언을 멈추지 않았다. 증언을 모두 끝내고 나서야 자신의 변호사 품에 안겨 울었다. 어렵게 휴가를 내고, 그보다 더 어렵게 딸이 겪은 이야기를 들을 마음의 준비를 했던 피해자의 어머니는 재판 내내 우셨다.

 

변변찮은 가해자의 ‘연인’ 주장과 가해자 측 증언들

 

피해자 증인신문은 지난한 형사재판의 전반부의 끝에 불과했다. 그 다음 기일에는 피고인 측이 신청한 증인들에 대한 증인신문이 있었다. 피해자는 증인신문을 보려고 서울에서부터 내려왔는데, 재판부는 증인들이 불편해한다며 피해자를 퇴정시켰다. 피해자 변호사인 나만 남겨졌다.

 

피고인이 신청한 증인들의 증언은 굉장했다. 한 증인은 성경험이 없는 상태였던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당한 성폭행을 두고 ‘아팠지만 좋았다고 말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검사가 피해자가 당시 가해자에게 수시로 구타당한 상황에 대해 묻자, 피해자가 주말에 집에 다녀오면 몇백그램이나 살이 쪄서 왔으니 맞을 짓을 한 것이고, 그래서 때려준 거니 고마워할 일이라고 답했다.

 

다른 증인은 ‘피해자가 2011년에 피고인의 팔짱을 낀 걸 본 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재판장이 그에게 2011년에 몇 학년이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피해자가 고1이었던 것은 확실한데 자기는 몇 살이었는지, 몇 학년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답했다. 얼마나 많은 거짓말로 피해자를 흠집낼까 걱정이 많았는데, 피고인 측 증인들의 증언이 이런 수준이다 보니 걱정이 무색해졌다.

 

가해자는 마지막까지 자신은 결코 성폭력을 한 적이 없다며, 둘이 연인이었다고 주장했다

 

신유용은 자신이 다니던 중고등학교 유도부원 25명 중 유일하게 생계곤란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었다. 그가 고등학교 시절 내내 열심히 쓰고 교환하며 예쁘게 꾸며온 다이어리들에는 아기자기한 여학생의 일상이 가득했고, 당시 사귀던 또래의 남자친구에 대한 설렘 폭발 이야기들도 담겨 있었다. 그런데 피고인은 신유용과 연인이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16세 제자와 성관계를 했었다는 것 이외에는 신유용에 대해 아는 것, 내놓은 추억어린 물품 하나, 기억 한마디가 없었다. 이 변변찮은 ‘연인’ 주장은 어린 피해자를 어떻게 취급하였는지 여실히 보여줄 뿐이었다.

 

피해자 변호사로서 마지막 기일 발언을 하며, 말미에 피해자 어머니가 쓴 탄원서의 내용을 인용하며 마무리했다. “딸을 강간해온 사람의 결혼삭인 줄 모르고 결혼식 축의금을 전하고 고맙다고 말할 때, 피고인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나….”

이 날 재판이 끝나고, 그간 체육계 미투에 힘 실으며 지속적으로 법원으로 와 준 지역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마련해준 응원의 자리에 참석했다. 만 16살의 신유용에게는 기댈 어른들이 없었지만, 만 23살의 신유용에게는 곁을 지켜주는 많은 어른들이 생겼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보태온 체온 하나하나로, 군산에서 우리가 보낸 시간은 마음 뜨거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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